어느어릿광대의견해/그말이잎을물들였다

도우미 유감遺憾

엔디 2007. 1. 15. 01:17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들…’ - 조선닷컴:

도우미라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노래방 도우미'가 망쳐놓았다,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끔 말은 가능한 한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동의를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 언어심미주의자가 망설일 분명한 이유가 있다: 도우미의 '출신성분'이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로 도우미가 가장 처음 쓰인 것은 1993년, 대전 국제박람회EXPO 때다. 박람회 안내요원을 20대 여성들로 뽑아, 그들을 '도우미'로 이름했던 것이다. 선진국들 사이에서는 올림픽만큼이나 중요하고 인기있는 행사라고 언론에서 난리를 치던 엑스포였기 때문에, 도우미라는 이름도 쉽게 대중들에게 각인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당시의 광고나 팸플릿을 조금만 관심있게 들여다 보았다면 '도우미'의 출신성분이 그리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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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도우미'는 사람들이 흔히 짐작하는 대로 '도움-이' → '도우미'의 짜임이 아니다: '도우미'는 '도움을 주는 우아한 미인'의 줄임말이다. 사소한 것 같아 보이지만, 이것은 '도우미'가 그 말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결점을 보여준다.

나는 '도우미'가 남성을 지칭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노래방 도우미도 마사지 도우미도 여성이고, '가정부'나 '파출부' 대신 쓰이는 '도우미 아줌마'도--'아줌마'에서 알 수 있듯이--여성이다. 맨 처음의 쓰임인 박람회 도우미도 여성이다. 그 비밀은 '도우미'가 본질적으로 '우아한 미인'이기 때문이다.

'미인美人'은 한자로만 보면 양성의 구분이 없지만, 국어사전을 뒤져보면 대개 여성을 지칭한다고 되어 있다. '우아優雅'하다는 가치도 대개 여성에게 요구되는 가치이다. 아름다움이나 우아함 자체가 대개 여성을 평가하는 기준이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으로 이루어졌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인데, 이 두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낱말이 '도우미'인 것이다.

'도움을 주는' 이가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사실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도움을 받는' 이는 남성일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했다는 혐의를 품게 한다. 왜냐하면 '도우미'라는 말 속에는, 남성은 도우미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논리가 품어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에서 박람회 도우미에게 도움을 받은 여성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성 역할 구별의 전통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못된다.

도움을 받는 남성과 도움을 주는 여성이라는 사회적 이분법은, 옹호론자들이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고 입을 모으는 매춘賣春 또는 유사 매춘의 연상을 가능케 한다. 사실 이는 단순한 연상 작용이 아니라 필연적인 귀결인데, '우아한 미인'이라는 가치가 남성으로부터 여성에게로 강제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하에서의 여성의 미덕이기 때문이다. 또 '우아한 미인'이라는 가치는 무엇보다 보여지는visible 물리적인physique 가치이며, 따라서 젊고 예쁜 노래방 도우미의 눈에 띄는visible 육체적physique 가치로 전환되기가 어렵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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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미'는 일부 국어순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순우리말이 아니다. '순純우리말' 자체도 순우리말이 아닌 현실 속에서, 순우리말이라는 것이 대체 무슨 가치를 갖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사소한 오류는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토박이말이 보다 정겹고 아름답다는 말에 나는 광범위하게 동의하지만, 억지로 만든 순우리말에는 오히려 거부감이 먼저 든다. '올인'을 '다걸기'로 바꾼다거나, '웰빙'을 '참살이'로 바꾸는 것에 대체 누가 동의를 하겠는가. 더욱이 '다걸기'는 '올인'보다 아름답지 못하며, '참살이'는 '웰빙'의 뜻을--그 부정적인 뜻까지도--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니 도대체 쓸 일이 없는 낱말인 것이다.

국어순수주의자들이 성공사례로 자주 드는 것이 '도우미'이다. 하지만 '도움을 주는 우아한 미인'이라는 말을 들여다보면 '우아優雅'와 '미인美人'은 한자말이다.

3
백 보 양보하여, '도우미'의 통시적 분석을 포기하고 공시적으로 '도움-이'라고만 분석하는 데 동의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어째서 '도움이'가 아니라 '도우미'인가 하는 점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이'는 뒷가지接尾詞가 아니라 안옹근이름씨依存名詞다. 이 말은 '이'는 이름씨名詞의 뒤에 붙는 것이 아니라 매김씨冠形詞 뒤에 붙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들음이'가 아니라 '들은 이/듣는 이/들을 이'가 맞고, '먹음이'가 아니라 '먹은 이/먹는 이/먹을 이'가 맞다. 이때 자주 쓰여 굳은 매김씨-이름씨의 결합은 하나의 낱말로 인정할 수 있다. 가령 '지은이'나 '엮은이', '펴낸이' 등이다. 이 세 낱말은 모두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림말로 등재된 것인데, 솜솜 뜯어보면 모두 '매김씨-이'의 형태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우리말에는 움직씨動詞의 줄기語幹에 '이'가 붙는 경우가 있는데 '더듬이', '앓이', '지짐이' 등이 그 예이다. 이 경우는 반드시 '~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무언가를 도와 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순우리말을 원하는 사람은 '돕는이'나 '돕이'라는 말을 써야 마땅할 것이다.

('절름발이'나 '애꾸눈이'처럼 이름씨 뒤에 '이'가 붙은 것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움직씨 '돕다'가 변하여 '도움'이라는 이름씨가 된 경우와는 차이가 없지 않다.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이름씨-이'의 형태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도우미'가 아니라 '도움이'가 되어야 한다.)


도우미는 몇 번을 곱씹어봐도 아름답지 않은 말이다. 내 생각으로는 아주 없어져야 할 말이다. '노래방 도우미'는 '도우미라는 아름다운 낱말'의 오용誤用이 아니라 그 말이 본래 가진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말일 뿐이다.

위와 같은 긴 글보다 한 마디 말이 더 눈에 들어온다면: '도움이'가 아니라 '도우미'라고 굳이 표기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된다. '미'가 '美'를 곧바로 환기시키지 않는가 말이다. (맨 위에 링크한 조선일보 기사 제목도 참조하자: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