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문학이 유럽 각 민족문학으로 분산되면서 그 문학의 수준이 현저하게 저하되었다. 이후 그 각 민족 문학의 발전과정에서, 보다 자세히는 프랑스 문학의 발전과정에서, 소설의 형성기에 그 발전에 영향을 끼친 작가가 누구일까 생각하다보니 거기에 라블레Rabelais가 있었다.

마르뜨 로베르는 그의 『기원의 소설, 소설의 기원』에서 『돈끼호떼』와 『로빈슨 크루소』를 소설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로빈슨 크루소』가 들어간 것은 근대의 예술로서의 소설이 부르주아의 예술이라고 볼 때 이 작품이 시민계급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이지만, 『돈끼호떼』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갖고 있다. 『돈끼호떼』는 단순한 스토리텔링만이 아니라, '어떻게 쓸 것인가'의 질문이 그 안에 들어있는, '글쓰기의 모험'을 하고 있는 글이라는 점에서 소설의 기원이라고 로베르는 말하는 것이다. 물론 로베르는 라블레의 글에 대해서 소략된 설명만을 잠깐 하고 넘어가지만, '글쓰기의 모험'이라는 로베르 자신의 기준에서 보면 라블레는 세르반떼스나 디포보다 앞선 소설문학의 기원으로 삼아야 마땅하다.

라블레는 이미 그 당시에 언어의 자의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언어가 형식과 음성만으로도 충분히 기능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의미와 무관한 표현들은 '의미의 해체'와도 비슷한 지점이 있다. 라블레의 소설은 말이 말을 낳아서 끊임없이 확장되어 나가는 소설이다. 예를 들어, 디오게네스가 자신의 '집'이었던 드럼통을 굴리는 장면에서 그 굴리는 행위가 무려 63개의 동사로 묘사가 되는데, 첫 서너개를 빼고는 모두 의미와 관계없이 발음이 비슷한 것들로 63개를 채워넣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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