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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와 언론 - 손석희

엔디 2004. 5. 3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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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Journalisme은 말 그대로 하루하루jour의 일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시사 프로그램이나 뉴스 뿐만 아니라 오락 프로그램까지도 포괄하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오락 프로그램까지도 시대를 관통하는 흐름을 담고 있다. 그들은 항상 대립되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데, 지금은 '성장 대 분배', '개혁 대 보수'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언론을 흔히 개에 비유하여 감시견watch dog, 애완견lap dog, 경비견guard dog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한다. 우리는 5공시절에 철저하게 애완견의 역할을 수행했던 언론을 보아왔다. '보도지침'이나 '땡전뉴스'는 이제 유명한 얘기가 되었다. 또 이를테면, 《누가 한강의 자갈을 보았는가》라는 프로그램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저 프로그램에 따르면 한강의 자갈을 본 사람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며, 한강종합개발은 그의 공로다. 여기에 대해서는 좀더 깊은 검토와 성찰이 필요하겠지만 애완견의 대표적인 사례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심지어 그때는, '거리의 편집인'이라는 말까지도 등장했을 정도다. '거리의 편집인'들은 신문을 꼼꼼히 훑어보고 팔릴 만한, 이슈가 될 만한 기사들에 빨간 색연필로 표시해두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가리키는 기사를 보고 신문을 샀다. 실제 신문의 편집인들은 허수아비였기 때문이다. 신문의 편집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는 언론이 경비견의 역할로 이행된 상태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즉, 언론이 체제수호의 역할을 맡으며 기득권에 편입되었다는 주장이다. 김중배 전 MBC 사장은 수년 전에 "지금부터 언론이 싸워야 할 대상은 정치권력이 아니라 자본이다"라고 말했다. 나도 그 당시엔 무슨 소리인지 잘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충분히 동의할 만한 내용이다.

어떤 면에서는 지금의 언론은 잠자는 개sleeping dog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프로그램이 오락화되어가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무서운 동질화이다. TV 연속극들의 '불륜의 강도强度'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점차 쇼프로그램이나 연예인들의 토크쇼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오락 프로그램'으로 구분된 것들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시사프로그램이나 교양프로그램도 뚜렷한 오락화·연질화軟質化 현상을 보이고 있다. 《미디어비평》이 《신강균의 사실은…》으로 바뀐 것에서 우리는 그 한 예를 볼 수 있다. 자연 도큐멘트리들도 점차 극화劇化되고 있고, 《경찰청 사람들》류의 비교적 오락성짙은 교양프로그램도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나 《100분 토론》역시 청취율/시청률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다시말해 오락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시선집중》의 공격적인 질문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 그것이 청취율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100분 토론》에서 그것은 특히 토론자를 정할 때나 토론 주제를 정할 때 고민의 핵으로 작용한다. 인기있는 토론자를 세우고자 하는 욕심은 늘 있지만, 그러면 또 항상 같은 사람을 세우게 된다. 또, 교육이나 사회 현안에 대해 토론을 하고 싶지만, 정치 문제가 아니면 시청률이 높게 나오질 않는다.

스스로는 '정도定道'와 '금도禁道'를 지켜야 하지만, 시청률이 지나치게 낮으면 프로그램이 '의미'를 잃게 되기 때문에 무작정 오락성을 배척할 것만은 아니다. 그 중간점을 열심히 찾아가는 것이 《…시선집중》이나 《100분 토론》의 목표가 될 것이며, 언론의 목표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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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MBC의 존재 양상은 모순적이다. '공영방송'이라는 직함은 갖고 있지만, 운영은 모두 광고로 충당된다. 그래서 나는 한참을 MBC도 시청료 받아야 한다고 여러 곳에서 언급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름뿐인 '공영방송'이 있다면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진짜 공영방송화 시키는 방법과 아주 민영화를 시켜는 방법이 있지만, 나는 시청료 등의 지원을 통해 좀더 공영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순진하게' 생각해보면 시청료 2000원 내면, MBC의 광고 의존도가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광고 단가를 낮출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 15초짜리 광고 하나 단가가 700만원정도다. 더구나 이것은 하루만 하거나 한달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훨씬 더 장기계약을 해야만 광고 계약을 맺을 수 있는데, 이를테면 이것은 중소기업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광고 단가가 낮아지면 중소기업도 공중파 방송에 광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말로만 중소기업 육성 운운하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더 사실적이지 않은가.

또 대기업의 경우도 광고 단가 인하로 얻은 실질적인 생산비 저하를 통해 제품 가격을 동결하거나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순진하게'만 생각하면 소비자들은 시청료의 얼마쯤은 이런 가격 인하를 통해 돌려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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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특강 내용은 인터넷에 무분별하게 올리지 말아달라. 예전에도 내가 한 말이 인터넷에 오른 적이 있는데, 큰 소동이 일어났었다. 지금 내가 한 특강 중에서 몇몇 부분만 오려서 신문이나 인터넷에 게제가 되면, 사람들은 맥락을 모르기 때문에 흥분할 수 있다. 나는 인터넷의 문제점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말을 잘라서 게시하면 맥락context은 사라지고 문장text만 남고, 역사history는 사라지고 얘기stroy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