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까르뜨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외쳤을 때, 그의 목소리에는 자못 흥분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는 이성을 가지고 세계의 한 부분을 정확하게 설명했던 것이다. 헬라인처럼 로고스logos를 원했던(고전1:22) 데까르뜨는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거기서 보았던 것이다.

대학 시절, 박이문 선생님의 교양 철학 수업을 들을 때 참 의아했던 일이 있다. 이성의 신뢰자를 자청했던 그 수업의 이공계열 친구들이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세계의 모든 데이타를 알게 되면 이후 세계의 진행 방향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를테면, 그들은 목적론téléologie보다는 기계론méchanisme의 입장에 선 셈이었는데... 나를 의아하게 했던 것은 그들이 쓰는 서술어였다. 결국 그들은 객관적인 자료data를 필요로 한다고 하면서도 가장 주관적인 말 '믿습니다'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그들의 '믿음'을 이상하게 여기며 친구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관해 대화했다.) 라플라스나 하이젠베르크에 대한 수학사/과학사적 지식은 부족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젊은 이공학도들의 열정이라 볼 수 있겠다.



여기 또다른 열정이 있다: 상상력의 열정이다. "합리주의가 이성에 의해 세계를 분석·파악하는 반면에 낭만주의는 상상력에 의한 세계 자체의 변모를 꾀한다."(23쪽) 상상력과 이미지는 세계를 이해하는 것을 뛰어넘어 세계를 변모시키려고 한다. 시인 브르통Breton의 말을 들어보자:

언젠가는 과학들이 처음 보기에는 자신들과 대립적으로 보이는 이 시적 정신에 접근할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지금 그 과학들의 쇠사슬을 끊고, 여러 측면에서 부드럽게 휩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바로 발명이라는 천재이다. (38-39쪽)

그는 일종의 돈오론을 설파하는데, 그에 따르면 "우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두 항의 접근에서 독특한 빛, 즉 이미지의 빛이 뿜어 나오는 것"(46쪽)이라는 것이다.

이미지는 상상력이 세계를 이해하는 도구가 된다. 가령 바슐라르는 객관적 인식의 정신분석la psychanalyse de la connaissance objective을 방해하는 이미지들을 배제하고 보다 정확한 세계 이해를 위한 책을 쓰다가 거꾸로 그 이미지들에 매혹당한다. 그는 『불의 정신분석』의 서문에서

우리는 불에 대한 직관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무거운 오류들에 억눌리고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줄 작정이다. 그 직관이야말로 경험과 측정만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 직접적인 확신을 형성하도록 우리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Bachelard, 11)

라고 쓰고 있으면서도 책의 끝부분에서는 그 이미지의 몽상에 빠질 것을 권하기도 한다(59쪽).

한편 곽광수 교수는 『가스통 바슐라르』에서 바슐라르의 『공기와 꿈』은 이미지에 의존하지 않은 상상력으로 나아가는 통로라고 보고 있기도 한데(곽광수, 49-50), 앞서의 '돈오론'과 연결시킬 수 있다면 이런 상상력은 열반nirvana의 경지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브르통과 바슐라르, 그리고 보들레르와 뒤랑을 읽어나가면서 상상력이라는 것이 삶을 이루는,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우리는 알아차리게 된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그 희망의 긍정이다. 우리는 상상력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 삶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어떤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잠에서 깨자마자 꿈을 기록했다고 하는데, 우리의 상상적 몽상rêverie도 매일 기록한다면 하나의 체계와 세계 이해의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것은 또 다른 상상력과 몽상의 열정이다.


Bachelard, Gaston. 1977. 불의 精神分析. 삼중당.
곽광수. 1995. 가스통 바슐라르. 민음사.


프랑스 문화와 상상력
박기현 지음/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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