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무료로 배포되는 《메트로》 4월 28일자에는 한국인의 '콩글리시'에 대한 비웃음이 실렸다. 론 샤프릭이라는 성균관 대학교 영어강사의 글이었는데 그의 글을 읽고서 나는 부아가 났다.

론 샤프릭의 글 보기


그 글을 읽으며 내가 느낀 것은 그의 오만이었다. 그의 말대로 우리나라가 영어 제국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이북 사람들과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그의 '충고'와 '고견'에는 완전히 동의할 수 없다. 우리가 쓰는 영어는 이미 완전히 이땅의 영어, 한국식 영어이기 때문이다.

그는 간판이나 자막, CD케이스 등에 잘못된 영어가 많으니 사용할 때는 반드시 원어민에게 물어보고 사용하라고 충고한다. 영어는 (안타깝지만) 이미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말이다. 영어는 각 지방에서 토착어와 융합되기도 하고 적절히 변형되기도 한다. 때문에 그 나라에서만 쓰이는 영어가 따로 있는 것이고, 그것은 별로 부끄러운 일은 아닌 듯 싶다. 물론 올바른 영어를 쓰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영어가 이미 국제어라면 각각의 영어가 다 대접을 받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흔히 "영국식 영어", "미국식 영어"라고 하면서 영어를 구분한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 colour라고 새기는 단어를 미국에서는 color라고 새긴다. 영국인들이 미국인들에게 철자가 틀렸다고 무어라 할 수 있겠는가? 미국에서는 지하철을 subway라고 하고 지하도를 underground라고 한다. 영국에서는 지하철을 underground라고 한고 지하도를 subway라고 한다. 틀린 단어를 쓴다고 미국인과 영국인이 맞서겠는가? 영어는 각 지방별로 조금씩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끼리도 이렇게 다른데 영어의 일부를 외래어로 받아들인 나라나 외국어로 쓰는 나라에서는 당연히 다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샤프릭은 "Food Bank"라는 곳은 캐나다나 미국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공짜 식당이라고 하면서 그 이름을 쓴 우리나라 분식점을 비웃는다. 그것은 북아메리카 영어권의 특수한 경우일 뿐이다. Food Bank는 Food와 Bank의 합성어일 뿐이다. Bank라는 단어 자체에 '공짜'라는 의미가 들어있지 않은 이상 그것은 다른 문화권에서 충분히 다르게 쓸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영국에서 Food Bank라는 식당이 생겼어도 그가 비웃었을까?

"hooter's"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영어사전에서 hooter를 찾으면 "① 야유하는 사람 ② 올빼미 ③ 기적, 경적, 사이렌 ④《영俗》코" 정도로 나온다. hooter's가 미국에서 스트립쇼를 하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미국 내에 있는 상호일 뿐이다. 그런 논리라면 미국에서 'Reader'라는 이름의 도서대여점이 있다면 한국에서도 'Reader'는 도서대여점의 상호로만 쓰여야만 할 것이고, 미국에서 PLAYBOY가 누드잡지이므로 한국에서도 PLAYBOY는 누드잡지여야만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용인하지 못하는 듯 하다. 샤프릭은 아무런 필연적 연관이 없는 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오인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이자 번역가인 안정효 선생도 OK Corral이나 "-Barn"같은 식당을 보면서 영어도 모르고 만들었다고 비웃은 적이 있다. 가축우리corral에서 밥을 먹는다느니 헛간barn에서 밥을 먹는다느니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안정효 선생의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것이다. OK Corral은 정작 미국계 레스토랑 체인점이고, 미국에도 Angus Barn같은 식당이 있었던 것이다. 또, 3대 피자 체인의 하나인 피자헛의 'hut'역시 '오두막'이나 '군용 임시 막사'라는 뜻에서 '교도소의 독방'이라는 뜻까지 가지고 있는데, 3억의 미국인들은 교도소 독방에서 피자를 먹는 셈이 되고 말 것인가?

'우리 은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Woori와 Worry는 충분히 다른 것인데도 "Woori More Card는 더욱 걱정스러운 카드"라고 엉터리 번역까지 해가며 비웃는 데에까지 이르면 우리는 거의 그의 교양 수준까지 의심하게 된다. 하긴, 샤프릭 같은 교양수준의 사람들이 미국에 많을 것이므로 이를 염려하여 그의 '고견'대로 'Our Bank'로 표기하는 것이 좀더 나았을 것 같기는 하다. 일찍이 '쌍용'이 'Double Dragon'을 포기하고 'SSANGYONG'으로 표기하고 '쿨피스'가 'Cool Piss'를 포기했듯이 말이다.

다 알다시피 말은 '언중言衆'들의 것이다. 영어가 한국으로 왔다면 한국의 언중들에 의해 일정부분 변화를 거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영국의 영어가 미국로 가면서 변화를 겪었듯이 말이다. 비록 본래의 문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특정 지역 내에서만 사용된다면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언어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갖지 않은 수준의 사람이 이땅에서 대학 영어 강사를 하고 있는 것은 영어 제국주의 시대의 슬픈 현실이다. 영어를 가르친다면 적어도 영미 문학이나 언어학에 대한 기초적인 소양정도는 있어야 할텐데 말이다. 더구나 그런 이가 우리를 오만하게 비웃기까지 한다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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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또 하나의 생각 2009.04.23 14:52 신고 댓글주소 | 수정/삭제 | 댓글

    우리끼리쓰자는 영어라면 위의 강사가 지적한 내용들이 문제가 되지는 안겠죠.
    그렇다면 글쓰신 님의 이야기가 맞습니다만,
    저 원어민-교양이나 영미문학, 언어학이든 교직을 수행할 만한 자질이 부족한 것이 확실하다 하더라도-의 입장이 자기의 모국어를 가르치는 입장이라면, 듣는 입장 혹은 배우는 입장에서는 귀담아 들을만 하다고 봅니다. 물론 저 원어민이 글을 쓸때 "메트로"라는 무가지를 읽는 사람들이 영어를 배워야 "만"해야할 사람들이 아니고 이름없는 다수,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사람들의 입장을 가벼이 여겼다는 점은 수긍이 됩니다.

    하지만 영어를 직업적으로 배워야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 즉 영어라는 도구를 가지고 장사를 한다든지 외교를 한다든지 공부를 한다든지 하는 목적이 있는 행위를 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그것들이 지난번 광우병 사태의 문건처럼 흐리멍텅한 해석또는 오역으로 혹여라도 막대한 손해를 끼칠 그야말로 백만분의 일의 우려가 있더라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것이 당연하고요. 혹시나 이런 사람들이 이 무가지를 우연히라도 읽었다면 그중에 몇몇은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들입니다.
    우리끼리 이해하고 넘기는 표현들이 아닌 소위 그 언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참고하는게 맞겠지요.

    살짝 주변을 둘러보면 비영어권에서 한국으로 와서 일하는 근로자분들을 자주만날수 있는데, 이분들이 우리말 즉 한국어에 대한 언어장벽을 낮출수만 있다면 이렇게 불합리한 대접을 받지 않아도 될텐데 하는 생각을 저는 합니다.

    말이란 이렇게 힘이 있는 것이어서 제대로만 쓸수있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서 오는 폭력아닌 폭력에서 자신을 방어할 수단도 됩니다. 그것이 제국주의의 것이든 우리것이든.

    • Favicon of http://endy.pe.kr 엔디 2009.06.06 23:12 신고 댓글주소 | 수정/삭제

      언어의 장벽을 낮추자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저는 한국 내에서 쓰이는 유사 '영어'는 영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이미 한국어죠. 물론 한국어를 좀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노력은 중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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