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 하는 이명박 댓글 놀이가 유행이다. 알다시피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에 이은 두 번째 정치 패러디 댓글이다. 민노씨.네 블로그를 통해 이 댓글 문화에 대한 반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명박 댓글 놀이가 찌질한 이유는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 댓글이 이명박이 아니라 이명박을 찍은 유권자들을 향한 풍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찌질하다고 주장하는 글이다. 하지만 나는 이 논의에 동의할 수 없고, 이와 같은 댓글 놀이의 한계는 인정하고서라도 재미있으면서도 일말의 의미가 있는 이 놀이는 계속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표절하면 어때 책 많이 팔아서 경제 살리면 그만이지

경제 살리면 그만이지 댓글



1.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vs. "경제만 살리면 되지."

원문에서 "노무현 때문이다."가 수구 언론을 향한 것인 반면 "경제만 살리면 되지."가 유권자를 향한 것이라고 했는데 무엇보다 나는 거기에 100% 동의할 수 없다. 원문에서 두 풍자의 차이를 판단한 근거는 나타나 있지 않다. 추측컨대 "노무현 때문이다."의 문장에는 노무현이 들어가지만 실은 수구 언론을 향한 풍자인 반면, "경제만 살리면 되지."는 이명박의 언어 자체를 풍자의 대상으로 삼아서 언어의 객체와 풍자의 객체가 동일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추측이므로 확신할 수 없다.) 기실 지금껏 "노무현 때문이다."의 풍자성을 오독하고 실제로 그것이 노무현을 비난하는 것으로 인식한 사람들도 꽤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명박 댓글 놀이를 해서는 안 될 이유는 될 수 없다. 무엇보다 "경제만 살리면 되지."가 이명박을 찍은 유권자를 향한 것이므로 찌질하다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역시 수구 보수 언론인 조중동을 구독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을 조롱하는 것이 될 뿐이기 때문에 그 민주주의적 마인드에서의 찝찝함은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두 풍자의 층위는 똑같은 것이다.


2. 풍자의 힘?

나는 풍자가 큰 힘을 갖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본래 풍자라는 것은 패배자의 소극적 저항일 뿐이다. 현실 정치에서 패배한 이가 승리자에 대하여, 그래도 나는 너보단 이러이러한 면에서 낫지, 하고 자위하는 것 정도가 일반적인 풍자의 모습이다. 이상섭 선생은 『문학비평용어사전』의 '풍자Satire' 항목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1997, 280-281):

이처럼 풍자하는 사람은 풍자의 대상에 대하여 우월한 태도를 유지한다.
[…]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의 도덕적, 지적 표준은 특수한 교리에 근거하거나 보통사람들이 올려다 보지 못할 만큼 높은 것은 아니다. 풍자가의 수준은 그의 독자들이 암암리에 자연스럽게 수긍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고, 그가 공격하는 대상은 독자들도 역시 불찬성, 경멸하는 대상이다. 즉 풍자가는 자신의 입장을 변호함이 없이 독자들을 자기 편으로 갖고 있다. 독자는 풍자가의 공격에 자연스럽게 기꺼이 합세한다.
[­…]
현실에 대한 도덕적 비판을 통하여 사회악을 제거시키겠다는 풍자의 목적은 실제로 실현되지는 않았으니, 그런 의미에서 풍자는 언제나 실패작인 셈이다.

즉 좀더 과격하게 말하자면, 풍자는 ① 내가 대상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에서 출발하지만 ② 실제로 풍자가인 내가 그렇게 높은 수준인 것은 아니고, ③ 풍자의 독자 역시 새로이 유입되기 보다는 같은 편끼리의 낄낄거림에 불과하며 ④ 그런 점에서 풍자는 현실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항상 실패한다는 것이다. (물론, 가령 『걸리버 여행기』와 같은 수준 높은 풍자 예술의 경우는 예외이다.)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자신이 있는 정권은 풍자를 크게 탄압하지 않는다. 김지하가 김수영(1981, 184)의 「누이야 장하고나! - 新歸去來7」의 "누이야 / 풍자諷刺가 아니면 해탈解脫이다"를 (아마 의도적으로) 오독하여 「풍자諷刺냐 자살自殺이냐」를 씀으로써 풍자를 비장하게 만들어버렸지만(김지하 1993, 141-159), 사실 풍자는 잠깐의 웃음만 줄 뿐 전망이 부재한 양식이다. 그러니까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나 "경제만 살리면 되지." 모두 그런 풍자의 약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잠깐 촌철살인의 웃음이나 '썩소' 한 방 날려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되는 것이 풍자다. 풍자의 역할은 거기에서 마치는 것이다. 전망을 보고 비전을 보려면, 미안하지만 누리꾼들 스스로가 풍자에서 더 나아가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3. 그럼에도 풍자의 힘!

쓰다보니 풍자를 너무 깎아내린 셈이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나로서는 이만한 풍자만으로도 일단 만족한다. 아직 누리꾼들이 (어느 정도는 재미로 빠져들기도 하겠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판단하고 있거나, 최소한 이 풍자 댓글 놀이를 통해 사후에라도 판단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쥐띠해인데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

ⓒ여름하늘, http://skysumm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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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김수영. 1981. 『김수영 전집』. vol. 1. 詩. 서울:민음사.
김지하. 1993.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시선집』. 개정판. 창비시선 33. 서울:창작과비평사.
이상섭. 1997. 『문학비평용어사전』. 신장판. 서울: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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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inoci.net 민노씨 2008.01.03 08:59 신고 댓글주소 | 수정/삭제 | 댓글

    논의를 보태주셔서 정말 반갑게, 그리고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

    댓글놀이의 풍자 대상, 혹은 비판 대상이 무엇인가라는 부분은...
    어떤 것이 정답이라는 것은 없고, 그 구체적인 풍자의 풍경들 속에서 개별적인 서로 다른 답과 취지가 있을테고, 그것을 명확하게 확정하기란 어려운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저 해석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그 의미의 공통부분(다수설적인?)은 이런 것이 아닐까 정도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풍자의 힘? 부분을 재밌게 읽었는데...
    ㄱ. 말씀하신 취지에 일면 동의하면서도
    ㄴ. 이 문제는 "대안 없는 비판이 무슨 소용이냐"라는 비판 아닌 비판의 오류에 빠질 위험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소극적인) 저항 그 자체에 잠재적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요.

    아무튼 좋은 글 엮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 )

    • Favicon of http://endy.pe.kr 엔디 2008.01.03 18:13 신고 댓글주소 | 수정/삭제

      네, 같은 말이라도 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상황이 어떠하냐에 따라 풍자도 비판도 대상과 층위를 달리할 것입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풍자의 힘'을 믿습니다만, 그 힘을 과대평가함으로써 결국 풍자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는 나태함을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졸문의 "2. 풍자의 힘?" 부분도 그런 의미로 쓴 것이고요. 풍자에 말씀하신 대로 "잠재적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지만 그 응축된 것을 터뜨려 드러내기 위해선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블로거들을 비롯해서 내공이 뛰어나신 분들이 많아 적이 안심됩니다만, 그래도 저처럼 내공이 부족한 지금의 누리꾼들은 계속, 그리고 더더욱 공부할 필요가 있죠.

      ...그래서 바라건대는 '이명박 치하'에서 그 "(소극적인) 저항" 정신으로 복류하다가 언젠가 가령 4년 뒤 총선 때나 다음 대선 때 그것이 봇물로 터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말씀, 트랙백 모두 감사합니다.

      덧) 정신 없이, "민노씨 블로그"..라고 적었었네요. "민노씨.네 블로그"로 정정하였습니다. 대상을 그 이름대로 부르기, 중요하니까요.

    • Favicon of http://realfactory.net 이승환 2008.01.03 19:07 신고 댓글주소 | 수정/삭제

      두 분의 글 모두 잘 보았습니다. 사실 제가 쓴 글은 '당위'적 차원보다는 제가 내세우는 '가치'적 성격이 짙어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 스스로 이번 댓글놀이가 못 마땅한 것은 사실이지만요.

      저 개인적으로도 '풍자'에 대해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있어 아예 카테고리도 하나 갖추고 있는데 확실히 위의 인용을 보니 풍자의 기능과 현실에서의 한계를 정확히 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풍자는 대단히 짧고 단편적인 것으로 핵을 꿰뚫어 비판해야 하니 어지간한 내공으로는 좋은 풍자가 나오기 힘든 게 사실인 듯 합니다.

      분명 엔디님이 언급하신 것처럼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측면이 있겠지만) 단순히 이명박 지지자를 노린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풍자의 대상을 떠나 앞서 언급한 측면에서 이번 풍자는 개인적으로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는 괜찮았는 것 같았는데 말이죠 ^^

    • Favicon of http://endy.pe.kr 엔디 2008.01.05 22:31 신고 댓글주소 | 수정/삭제

      확실히 풍자는 재미있습니다. 그 맛에 하는 거죠.
      그리고 제가 보기에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가 "경제만 살리면 되지."보다 좀더 나은 풍자로 보입니다. 앞엣것이 확실히 더 재미있거든요. 하지만 여기서 그래도 중요한 것은 누리꾼들이 "경제지상주의"가 옳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 풍자는 그걸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 덜 재미있더라도) 저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2. Favicon of http://sarpla.tistory.com Saruman 2008.01.03 18:37 신고 댓글주소 | 수정/삭제 | 댓글

    하지만 '이게 다 노무현 탓이다'에 비해 '...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가 훨 찌질해보이는 건 사실이다. 중요한 건 현 상황의 차이다. 수구언론들의 노무현에 대한 부당한 공격은 공론화해야할 문제였고, 명백히 수구언론 쪽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탄생은 국민의 선택이었고, 모두들 이명박이 경제를 다른 중요한 문제들보다 우위에 둔다는 것을 알고 찍은 것이다. 이미 다 아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굳이 이렇게 떠들어봤자 패배자들의 찌질한 울음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치 대선 때 지들 주장은 하나도 안 하고 이명박 까기 바빴던 바보 여당처럼 보인다.
    '노무현 탓~'과는 확실히 다른 것이다. 수구언론의 폐해에 대해선 그 동안 많은 공감대가 형성돼왔지만 아직도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명박이 경제'만'을 강조한다는 것은 다 안다. 알고 그걸 원해서 뽑아줬던 알지만 타 후보가 너무 형편없어서 뽑아줬든 다 알고 뽑은 거다. 이런 댓글 놀이 해봤자 짜증만 유발할 뿐이다.
    이 댓글 전에 잠시 돌아다니다 사라진 댓글이 있다. '이명박은 30% 대통령'이라는 거였다. 그럼 '노무현은 35% 대통령'이란 말인가? 찌질함을 넘어 누워서 침뱉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댓글이었다. 다행히도 금방 사라졌다. 정말 다행이다. 저건 짜증을 넘어서 화가 나게 하는 댓글이었으니까.
    풍자라면 웃음과 깨달음을 함께 유발해야 하는 거다. 짜증이 아니라...

    • Favicon of http://endy.pe.kr 엔디 2008.01.05 22:52 신고 댓글주소 | 수정/삭제

      이명박을 국민이 뽑았다는 것은 맞지만, 수구언론들도 마찬가지로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거라고 생각해. 물론 선출 권력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이명박이 경제'만'을 강조한다는 것은 다 알지만, 그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현실적으로 잘 모를 사람들도 많거든. 이명박이 말하는 경제는 economy가 welfare가 아니라 business라는 것, 유권자들이 속속들이 알고 있었을까? 가령 "극빈층이 굶어 죽으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라고 한다면, "경제가 사는데 왜 극빈층이 굶어 죽어?"라고 반문할 이명박 지지자들이 있을지도 몰라. 이를테면 이런 경우에 "경제만 살리면 되지."라는 풍자는 엷은 빛이나마 발할 수 있다는 거지.
      내 말은 "경제만 살리면 되지."가 재미있거나 수준 높은 풍자라는 말이 아니라, 그 나름대로 필요한 수준의 풍자라는 거야.
      게다가 이명박이 경제'만' 강조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고 찍었으니 그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면, 이명박이 한반도 대운하를 공약 첫머리에 내세웠다는 것을 다 알고 찍었으니 그것도 무조건 진행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도 가능하잖아? 적어도 나는 어떤 후보의 득표수를 그대로 민심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해.

  3. Favicon of http://sarpla.tistory.com Saruman 2008.01.08 19:40 신고 댓글주소 | 수정/삭제 | 댓글

    흠. 근데 난 이제 '노무현 탓'은 반어적 의미로만 쓰는 줄 알았는데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이란 사람이 이천 화재도 노무현 탓이라고 했다는군. 참, 이런 참사도 저렇게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고 싶을까? 한숨이 나올 정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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