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가벼운 이야기로 우리는 이지형의 장편소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를 알고 있다. 문학평론가 도정일이 "만화적 상상력"이라고 부른 이지형의 '모던 보이' 이야기는 무척 유쾌했다. 40년대의 경성도 30년대만큼 날렵했을까. 대동아 전쟁이 발발하고, 반도에서는 소위 민족 말살정책이 서슬퍼렇던 그 총력전의 시대에? 하지만 이 실용주의의 시대에 그런 실증주의적 분석은 허랑하다. 확실히 사람들은 민족이니 독립이니 하는 무게감을 뺀, 날렵한 시대물을 원하는 면이 있다.

정용기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은 그런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만한 영화다. 독립운동의 비장함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독립운동을 빙자한 도둑질이나, 희화화된 독립운동가들만이 남아 있다. 이 영화 속에서 소위 독립운동가라고 하는 친구들은 지나치게 우둔하거나, 지나치게 영리하다.


1-1. 안티내셔널리즘? - 우둔한 독립운동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이름을 딴 카페 상호가 무색하게도, 이 까페의 사장과 요리사는 영화에서 가장 우둔한 쪽에 속한다. 이들은 까페를 운영하여 번 돈을 상부(아마 임정)에 독립운동 자금으로 갖다 바치는 한편, 종종 내려오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일제 유력 인사나 중요 시설에 대한 태러를 감행(시도)한다.


이를테면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식의 허무한 계획을 세우고서 엄청난 테러를 기획하는 그들의 모습은, 독립운동이라는 큰 거대담론 자체를 희화화시키고 만다. 거기서 독립운동의 존재이유는 사라지고, 우리편/상대편 식의 단순한 2분법과 웃음만 남는다. 여기서 웃음이 유발되는 요인은 '거대담론'이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져버리는가에 있다. 김기림(1988, 142)은 '비소법比小法bathos'을 통한 '유머'를 단순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가령

"군대는 새벽거리를 국경으로 향하여 이동하기 시작했다. 중화기重火器가 이에 따르고 치중부대가 뒤를 따랐다"고 말하여 무슨 비상 사태인 줄만 알게 해놓고 끝에 가서 "이리하여 군대는 연습지로 향하였다"

라고 하는 식이다. "상부에서 '동방의 빛' 고것을 탈취해 오랴." "계획은 있고?" 계획이 있을 리가 없다. "뭐 별로 계획할 것두 없겠구먼." 이런 식이다.

예고편에서는 사장은 열혈 독립투사로, 요리사는 '생계형 독립운동가'로 소개되었지만, 실상은 사장이나 요리사나 모두 빠듯한 생계生計 곧 살 궁리 속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 그것은 요리사 희봉의 "그럼 이번에는 다이아만 훔치고, 정무총감은 담에 한가할 때 좀 죽이면 워뗘?"와 같은 대사나 사장의 "해서 독립운동도 까먹지 않게끔 좀 정기적으로 꾸준히 해야 되는겨."에서 잘 드러난다.


1-2. 안티내셔널리즘? - 영리한 독립운동

봉구는 지나치게 영리하고, 제멋대로인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온갖 문화재들을 일본인들에게 고가를 받고 팔아넘긴다. 영화에서 액션 장면을 가장 많이 보여주는 그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테러리즘을 통한 독립운동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는 독립운동가연한 적이 없다. 그가 독립운동에 관련이 있었음을 보여준 것은 오로지 그가 가져온 금괴 10궤짝이 독립운동 자금 대신 건국 자금으로 쓰이게 되었다고 말하는 내레이션뿐이다.

그러나 봉구라는 캐릭터는 코미디 영화의 등장인물로서 상당히 매력적인데,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1999, 31, 1448a)가 말한 대로 "희극은 실제 이하의 악인을 모방하려 하고, 비극은 실제 이상의 선인을 모방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가 문화재를 팔아넘기는 것에 대해 전당포 주인은 "그게 다 민족혼인데." 하고 혀를 찬다. 하지만 봉구는 태연하게 말한다: "민족혼이 밥 멕여 줍니까. 오까네お金가 아리마센ありません인데."

봉구가 외모나 체격, 그리고 영리함 등 많은 면에서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우월한 캐릭터임에도 그의 행동이 코미디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그가 도덕률에 있어 우리보다 낮은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령 "저는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은 아니에요. 전 불의를 보면 그냥 쭉 봐요."라고 장난스럽게 대답해서 웃음을 유발한 한 잘생긴 연예인처럼, 봉구도 모든 면에서 멀쩡한 사람이 문화재 뒷거래를 한다는 것, 그러면서도 쿨한 답변을 할 줄 안다는 것이 코미디의 조건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1-3. 안티내셔널리즘? - 춘자와 하루꼬와 해당화의 사이

춘자는 미네르빠에서 인기 있는 가수이면서, 해당화라는 이름을 걸고 일본인이나 친일파의 사저를 뒤지는 도둑이다. 그는 "한국인이지?"라는 질문에도 "일본인이지?"라는 질문에도 도리질을 한다. 식민지인과 내지인 사이에서 태어난 상황은 한 여자의 삶을 이중적으로 만들어냈다. 가수/도둑의 사이, 한국인/일본인의 사이, 곧 춘자/하루꼬/해당화의 사이에 그가 존재한다.

특히 유명한 테러리스트 독립운동가인 안중근의 마디 없는 손도장과 해당화라는 이름은 춘자가 독립운동가일 것이라는 심증을 굳게 하지만, 그건 시쳇말로 낚시다. 여기서도 역시 춘자의 존재는 독립운동이라는 거대담론을 우습게 만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1-4. 안티내셔널리즘 < 내셔널리즘

하지만 이런 세목들에서 내셔널리즘이 희화화되는 중에도 오히려 관객은 복류하는 내셔널리즘의 강력함을 체험하게 된다. 미네르빠의 사장과 요리사는 결국 정무총감을 암살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내용이나, 봉구가 빼돌린 돈이 결국은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였으며, '동방의 빛' 사건으로 빼돌린 돈은 건국 자금으로 쓰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이 그렇다. 여기서 미네르빠의 사장과 요리사는 단순한 마음의 소유자로 방법은 졸렬하지만 우직한 충성심을 가진 그들 나름대로 탁월한 독립운동가라고 다시 자리매김하게 된다. 봉구 역시 탁월한 사기꾼 기질을 독립을 위해 쓴 것이었다는 사실이 직소퍼즐의 완성을 통해 밝혀지면서 그에 대해 가졌던 관객의 의구심은 풀리고 만다. 그는 기지 넘치는 독립운동가의 자금책으로 재포장된다. 열 궤짝의 금괴를 '해방된 조국'에 그대로 갖다바쳤다는 설정은 잠깐 스치듯이 지나가지만, 현재 정치권의 부패에 질린 관객들에게는 반드시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에서 보여주는 내셔널리즘의 희화화는 관객들이 내셔널리즘에 침윤되어 있을 때라야 빛을 발하는 이중 장치라는 것이 밝혀진다. 가령 봉구의 경우를 보자: 민족혼을 팔아먹는 그의 윤리 의식이 웃음을 유발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객들은 그보다 고상한 윤리 수준, 곧 좀더 강한 내셔널리즘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주인공 봉구가 악한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미에 금괴 열 궤짝을 건국 자금으로 바쳤다는 설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미네르빠의 사장과 요리사도 역시 희화화된 테러리즘적 독립운동에서 웃음을 유발하지만, 그들이 실패한 독립운동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무총감 테러에 성공하여 '해피 엔딩'을 만들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춘자에 이르면 좀더 재미있어진다.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니라는 춘자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그에게서는 경계인의 눈물 자국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니라던 춘자는 결국 해방 이후에도 별다른 설명 없이 조선, 아니 미군들이 모인 남쪽의 한국에 남는다. 패전국 일본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승전국 로시아로 가서 멋진 재즈 바를 차리지도 않고 말이다. 그도 아니면 로시아에 더 가까운 이북이나 김기림이 "아라사의 소문이 자주 들리는 곳"이라고 노래했던 곳으로도 가지 않고 말이다. 바로 몇 분 전까지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그 '사이'에 있으면서 내셔널리즘을 비웃을 준비를 하고 있던 춘자는, 조금의 고민도 보이지 않고 '해방된 조국' 남한을 택한다. 걸출한 도둑이었던 해당화가 어느 새 의존적 여성 춘자가 된 것은, 그가 '사이'에서 '남한'으로 삼투되는 것과 때를 같이 한다. 그런데 관객들은 그런 춘자의 변화를 별다른 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데, 여기서 작용하는 것이 내셔널리즘이다. 한국인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춘자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 하고 놀랐을 것이다. 춘자春子라는 촌스러운 이름부터가 그렇다. 본인이 아무리 하루꼬春子라고 불러 달라고 애써도 민족혼을 들먹이는 전당포 주인은 그를 춘자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엔딩 크레딧에서조차 하루꼬가 아니라 춘자로 등장한다.)

춘자와 하루꼬 사이, 혹은 그 둘과 해당화 사이에서 머물던 그는 어느 사이인게 해당화를 먼저 지워버리고, 그 다음에는 하루꼬를 지워버렸다. 그렇게 그는 안티내셔널리즘에서 내셔널리즘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된다.


2. 전당포의 자본주의

《원스 어폰 어 타임》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전당포이다. 모든 음모는 전당포를 기점으로 시작되고, 독립운동이라든가 하는 중요한 의제는 전당포에서 드러난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위기 상황 역시 전당포에서 드러난다. 그 말은, 이 영화가 자본주의를 밑바탕에서부터 깔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자본주의를 세상의 모든 것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간명하게 정의한다면, 전당포야말로 초기 자본주의의 총아라고 할 만한 것이다; 온갖 물품들이 금액, 곧 숫자로 환산되어 나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박태원(1987, 56)의 「피로」와 오장환(1989, 24)의 「古典」은 전당포를 이렇게 언급한다:

나는 그 고무장화의 피곤한 행진을 보며, 그것을 응당 물로 닦고 솔질을 할 그들의 가엾은 아낙들을 생각하고, 또 그들의 아낙들이 가끔 드나들어야만 할 전당포를 생각하고, 그리고 그곳에 '삶'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전당포에 고물상이 지저분하게 늘어슨 골목에는 가로등도 켜지지는 않았다. 죄금 높다란 포도鋪道도 깔리우지는 않었다. 죄금 말쑥한 집과 죄금 허름한 집은 모조리 충충하여서 바짝바짝 친밀하게는 늘어서 있다. 구멍 뚫린 속내의를 팔러 온 사람, 구멍 뚫린 속내의를 사러 온 사람. 충충한 길목으로는 검은 망또를 두른 쥐정꾼이 비틀거리고, 인력거 위에선 차車와 함께 이미 하반신이 썩어가는 기녀들이 비단 내음새를 풍기어가며 가느른 어깨를 흔들거렸다.

그런데 《원스 어폰 어 타임》의 전당포는 박태원이나 오장환이 언급한 곳보다 더 다이내믹한 공간, 곧 장물아비의 집으로 묘사된다. 확실히 "민족혼이 밥 먹여 줍니까. 오까네가 아리마센인데."라고 봉구가 전당포에서 말했을 때 그는 도굴꾼의 마인드로 자신을 위장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독립운동을 위한 운동 자금을 위해 문화재를 팔아 넘겼던 것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드러나는 당연한 결론은 독립에도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기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독립운동가들은 기본적으로 운동의 자금책이었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미네르빠의 수익금은 분명 임정으로 들어가고 있고, 전당포 주인의 역할 역시 마찬가지다. 봉구는 문화재를 팔아먹거나 사기를 쳐서 운동 자금을 모금하고 있다.

여기서 그들의 저항적 내셔널리즘과 자본주의의 끊지 못할 인연이 드러난다. 미네르빠의 사장과 요리사가 남쪽에 남은 것은 임정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에서 충분히 보이지만, 봉구와 춘자가 남쪽에 남은 것 역시 이와 같은 자본주의와의 연관 관계를 통해 이미 드러나 있던 것이라는 점이다.


내셔널리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원스 어폰 어 타임
《원스 어폰 어 타임》은 1940년대를 정확하게 그리지 못하고 있다. 이 영화는 시대물도 아니며, 비장한 각오로 봐야 하는 영화도 아니고, 그저 오락꺼리일 뿐이다. 문제는 그런 영화일수록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시장 논리다. 영화의 포스터는 "독립군의 시대는 가고 사기꾼의 시대가 왔다!"고 우스꽝스럽게 주장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독립군의 내셔널리즘에서 한 발짝도 옮기지 않고 있다. 더구나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라는 극단적 자본주의가 횡행하는 21세기 초 남한의 관점을 그대로 영화에 투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영화에서 1940년대의 경성이 아니라 2000년대 첫 10년의 서울을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영화에서 내셔널리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긴밀한 커넥션을 느낄 수 있다면, 그대와 나 역시 자본주의의 총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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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김기림. 1988. 『金起林 全集』. 4: 文章論. 서울:심설당.
박태원. 1987. 『小說家 仇甫氏의 一日』. 기민근대소설선10. 천안:기민사.
오장환[최두석 엮음]. 1989. 『오장환 전집』. 1: 詩. 서울:창작과비평사.
Aristoteles et al.. 1999. 『詩學』. 천병희 옮김. 서울: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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