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책/소설

연애소설 아닌 척 하는 연애소설: 쓰지 히토나리『냉정과 열정사이 Blu』

엔디 2003. 5. 20. 05:24
쯔지 히또나리의 『냉정과 열정사이』도 결국 얼마간 연애소설을 벗어난 체하는 트랜디 연애소설일 뿐인 것 같다. 쥰세이의 직업이 독특해서 몇몇 전문적인 단어들이 등장하고 그것이 소설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것이 소설의 축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하나의 지엽으로 그칠 뿐이다.

작기는 때로 神에 비견된다. 소설은 사실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고 소설의 등장인물 역시 실제로는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작가는 신이어서는 안 된다. 상상력은 망상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신의 거짓말'처럼 본래부터 모순되는 개념이다.

소설은 삶을 담아야 한다. 그러나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몇 달, 몇 년, …, 몇십 년까지 다루는 소설에서 삶의 세목들을 모두 다룰 수는 없다. 작가는 무엇을 더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뺄 것인가를 더 주의깊게 생각해야 한다. 밥을 먹었다, 화장실에 갔다, 잠을 잤다는 것이 세세하게 묘사된다고 생각해보라.

조반나의 이야기, 메미의 아버지, 쥰세이의 어린시절은 소설의 줏대되는 이야기에 그다지 개입하지 못하고 떠돌고 있다. 그런 것들은 '밥을 먹었다'와 그리 먼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냉정과 열정사이 - Blu
쓰지 히토나리 지음, 양억관 옮김/소담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