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어릿광대의견해

범인은 누구인가: 사이코패스 공포의 사회학

엔디 2008. 10. 22. 01:18

연예인이 죽으면 악플, '묻지마 살인'은 사이코패스다. 일종의 공식이 된 듯하다. 일단 이해할 수 없는 무차별 살인이 일어나면, 당연하다는 듯이 사이코패스부터 의심한다. 문화일보가 인용한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들은 치밀하며, 죄책감이 없고, 반사회적이지만, 평상시에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그럼 사이코패스는 왜 생기는 것이며 이들을 구별할 방법은 없을까? 사이코패스 범죄를 막으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사이코패스, 사회의 불수의근?#

영화 《검은 집》 포스터
언론이 인용한 전문가들의 말만 들으면, 사이코패스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사회의 불수의근不隨意筋이다. '재수 없이' 이 사람들에게 걸리면, 우리는 그냥 죽는 길 밖에는 없다. 사이코패스에게 죽을 확률이 골프를 치다가 홀인원을 하고 나서 벼락에 맞을 확률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 무차별 '묻지마 살인'이 순전히 개인적인 것이라면 저 확률을 그저 '재수'에 맡기고 삶을 감내하는 수밖에 없을 따름이다. 이런 일반적인 믿음은 대중문화를 통해 급속하게 퍼져 나간다. 영화 《검은 집》의 홍보 문구는 이 사이코패스라는 것은 선천적인 것이며, 이 사이코패스들은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처럼 말한다:

흔히 ‘싸이코’라고 알고 있지만, 그들은 전혀 다른 존재들이다
그들은 인간 유전자를 공유한 완전히 다른 생명체라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정장을 입은 채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사이코패스와 슈퍼테러리즘#

그러나 사이코패스는 단지 정신 질환의 일종일 뿐이다. 사이코-패스psycho-path를 한국어로 그대로 옮기면 정신-병일 따름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사이코패스들은 PCL-R 검사를 통해 밝혀내는데, 사실 평소에도 과대망상증, 자신과 타인에 대한 안전불감, 충동제어 문제, 무책임성, 지루함을 참지 못함, 병적인 자기애, 병적인 거짓말, 폭력적 경향, 반복적인 싸움, 알콜 및 마약 남용 등의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이러한 증상은 분명 아주 일상적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전혀 분간해낼 수 없는 수준 역시 아닐 것이다.

'묻지마 살인'은 사실 슈퍼테러리즘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슈퍼테러리즘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테러이다. 이런 유의 테러가 생긴 것은, 사회가 그만큼 소외된 개인을 포용하지 못한 탓에, 그 개인이 사회 전체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이런 슈퍼테러리즘 문제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의 문제라고 보아야 옳다. 가령 엄청난 희생자를 낳은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역시, 장애인을 포용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일어난 비극이라는 견해도 있다.

사이코패스 사건 예방#

사이코패스의 증상과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를 비롯한 슈퍼테러리즘의 원인을 조합하면, '묻지마 살인'에 대한 예방은 사회의 보호에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사회가 소외된 개인을 충분히 보호하고 감싸 준다면, 아무리 충동 억제가 부족한 사람이라도 '묻지마 살인'을 일으킬 만큼 심각한 상황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남을 배려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의식이 희미해지는 경쟁사회의 부산물"이다.

아직도 언론은 슈퍼테러리즘 사건에 대해 서술하면서 "용의자가 사이코패스라는 주장이 있다"는 식으로 B급 호러영화의 정서로 접근한다. 사이코패스라는 딱지가 한번 앉으면, 그 다음부터는 더이상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고시원 방화 사건에서도 사이코패스 이야기가 파다했다. 용의자 정 씨가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는 아마 검사를 받아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그가 경찰 진술을 통해 스스로 핍박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요컨대 그는 사회로부터 소외받은 사람이었거나 스스로 그렇게 여겨온 사람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범인은 누구인가?#

『시지프의 신화』를 통해 자살에 대해 긴 변론을 내놓은 까뮈는 이렇게 말했다(17-18):

자살에는 수많은 이유들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볼 때 가장 뻔한 이유가 반드시 가장 확실한 이유라고는 할 수 없다. 깊이 반성한 끝에 자살하는 일은(그렇다고 이 가설이 전연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드물다. 거의 언제나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위기의 발단이 된다. 흔히 '실연'이니 '불치의 병'을 운운한다. 이와 같은 설명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바로 전날, 절망에 빠진 사람의 친구 하나가 그에게 무관심한 어조로 대꾸한 적은 없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바로 그자가 죄인이다. 왜냐하면 그것 한 가지만으로도 유예 상태에 있었던 모든 원한과 모든 권태가 한꺼번에 밀어닥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다. 소외 계층을 우리의 이웃으로 품지 못한 우리 사회 전체가 범인이다.

참고문헌

Camus, Albert. 2000. 『시지프 신화』. 김화영 옮김. 개정판. 알베르카뮈전집4. 서울:책세상.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