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하게 중편이나, 장편이라도 좀더 짧게 압축시킬 수 있는 작품이다. 수많은 옛날 헐리우드 영화가 우리 눈을 어지럽히고, 그 배우들의 이름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그 많은 영화제목을 빼고 나면, 이 작품은 그저 옛날엔 참 좋았지 류의 과거를 아름답게 재구성하는 회고소설에 불과해질 것이다.

회고소설? 하긴 어떤 이는 이 소설을 회고소설이라고 부를 것이고 어떤 이는 이 소설을 표절에 대한 소설이라고 부를 것이지만, 이 소설은 기실 그 아무 것과도 관련이 없다. 영화가 삶의 한 부분이었던 그 당시를 애정어린 손길로 재구성해내고 있으면서도, 항상 '지금-여기maintenant-ici'를 잊지 않고있는 작가의 펜은 헐리우드 키드가 느꼈던 '고스트幽靈 현상'과는 정반대되는 방향을 가지는 것이다.

꿈을 이야기하면서 현실을 생각하는 '나'와 현실을 살면서 꿈만을 생각하는 헐리우드 키드의 삶 중에 어느 삶이 더 훌륭하다거나 위대하다거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어째서 '나'는 현실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헐리우드 키드는 어째서 현실을 무시하지도 못하면서 애써 도외시할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보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덧) 권성우 씨가 붙인 책끝의 해설은 그야말로 불필요한 해설이다. 초등학생 독후감처럼 줄거리 재구성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1993. 1. 9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민족과 문학사, 1992)를 읽다. 이 소설의 문제점은 주인공 임병석이 어떻게 '헐리우드' 방식의 삶과 '키드' 상태를 벗어나느냐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환상과 실제를 구분하지 못하여, 어른이 되어 현실의 삶을 대변하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임병석이 어떻게 어두컴컴한 극장(환상과 도피)을 나와 집(현실과 책임)으로 돌아오는가 보여주는 것이 이 소설의 관건이다. 작가는 그러나 '패스티스pastiche'된 시나리오 한 편을 짜깁기해놓고 임병석을 죽이는 것으로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마감시킨다. 그러므로 임병석이 '헐리우드' 방식의 삶과 '키드' 상태를 벗어났느냐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자명해진다. '패스티시'란 '헐리우드' 특유의 문법이며, '패스티스' 자체가 아직은 예술가로 독립하지 못한 상태 즉 '키드'의 예술이겠기 때문이다.



헐리우드키드의 생애
안정효/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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