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바뀌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대체로 '사회의 변화'가 그 원인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언어학자 울만Ullmann은 말의 의미변화 원인을 언어적, 역사적, 사회적, 심리적 원인, 그리고 외래어의 영향에 의한 원인 등 다섯 가지로 나누었지만 그 다섯 원인들이 무자르듯 정확하게 갈라지는 것은 아니다. 가령 우리네 근대화 과정을 생각하면 일본을 통해 서구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외래어 혹은 외국어의 영향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것은 또한 사회적 원인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음이 비슷한 것들은 의미혼동을 겪게도 된다. 역사적 원인이라는 것은 이런 사실들을 통시적으로 보았을 때의 변화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비근한 예를 찾느라 우리네 근대화 과정을 예로 들었지만, 사실 그만큼 심각한 언어변화를 찾기도 힘들다. 해서 우리말 속에는 일본말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왔는데, 지속적인 '국어순화'를 통해 일본말은 많이 사라진 상태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말의 생명력은 끈질기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말 낱말책에 실린 일본말과 일본식 한자어를 합치면 30%정도가 된다고 한다. 과연 책을 읽다보면 독자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사실들이 많이 있다. "이것도 일본말이었어?"

본전이라는 의미의 '똔똔,' 어린이들이 주로 배우는 놀이인 '셋셋세(세세세),' 감청색이나 짙은남색을 뜻하는 '곤색'은 물론이고 일생一生을 뜻하는 '생애生涯'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힘'의 전남 방언으로 등록되어 있는 '히마리' 등이 모두 일본말이라는 것이다. ('생애'는 물론 정극인의 「상춘곡」에도 등장하지만, 그때의 '생애'는 지금과 같은 일생의 뜻은 전혀 담지 않고 처한 환경 혹은 생활 환경을 뜻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테레비television, 리모콘remote controller, 레미콘ready-mixed-concrete, 도란스trans 등에서 보듯이 본래 일본어가 아닌 것들까지도 우리는 일본식으로 자주 읽는 것이다. 책에는 없지만 밧데리battery와 같은 낱말은, 일본에서 영어를 배워 발음이 어색한 윗 세대들의 표기법을 비웃는, 요즘 젊은 층들도 아무 거리낌없이 쓰는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장을 완전히 수긍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말이 된 낱말들까지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말의 순수함은 혈통의 순수함만큼이나 검증하거나 보장하기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말이 다른 말들 속으로 들어갈 때는 각자의 자리매김을 다시 하기 때문이다. 복거일은 '사라さら'라는 말을 없앨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쓰고 있다.

지금 우리의 삶에서 사라는 접시와 완전한 동의어는 아니다. 사라는 큰 접시를 뜻한다. 그래서 그 말을 몰아내면, 다른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은 언뜻 보기보다 크다
- 복거일『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문학과지성사, 1998, 132쪽.
이렇듯 개개의 말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는 복 씨가 어떻게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게 큰 영어공용어화를 주장하게 되었는지 그 복잡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위의 글만은 우리가 새겨 읽어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말 속에서 걸러내야 할 일본말이나 한자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계주라는 말보다는 이어달리기라는 말이 훨씬 좋다. 공사판의 수많은 일본말들은, 최근 '순화'의 노력을 하고 있듯이, 우리말로 바꾸어써도 전혀 지장이 없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모든 일본말을 우리말로 바꾸어써야 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실질적으로 저자 박숙희씨도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철학哲學이나 기차汽車와 같은 낱말은 일본식 한자말이지만, 우리말로 정착이 된 것이라고 보고 이는 책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말로 정착되었다'의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가령 '와사비'와 같은 낱말은,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끔 '겨자'라는 말을 쓸 뿐, 우리말 언중들이 다같이 쓰는 말인데 이를 꼭 '고추냉이 양념'이라고 고쳐야 하는가말이다. 더구나 와사비는 초밥 등의 일본음식을 먹을 때 주로 쓰는 말인데말이다.

그 밖에 사소한 문제들도 있다. 이를테면, 이해를 돕기 위해 넣은 예문이 일본말을 쓰면 "불량한 사람"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자네들이 무슨 불량배인가, 좋은 우리말을 놔두고 왜 일본말이야."라는 예문이 가진 문제점은 명확하다. 그건 일제강점기의 낱말인 "불령선인不逞鮮人"의 현대판 민족주의적 번안어이다. 또한 부부인듯한 두 사람이 등장할 때, 남자쪽은 대개 '해체'나 '하오체'를 쓰고 여자쪽은 '해요체'를 쓰는 것도 바른 묘사는 아니다.

반드시 바꿔 써야 할 우리말 속 일본말
박숙희/한울림어린이(한울림)

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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