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방학이나 휴가철을 맞은 사람들이 꼭 책읽기 다짐을 둔다. 오래 벼르던 대하소설 읽기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전을 통해 스스로를 뒤돌아보려는 사람도 있고, 역사책이나 교양과학 책을 읽으며 견문을 넓히려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어떤 대학생들은 긴 방학을 이용해서 사상서 원전 읽기를 통해 스스로의 지적 토대를 마련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해서 이제 행복한 책읽기의 계절은 가을이 아니라 여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다짐과 시도 속에서는 책읽기의 즐거움보다 책읽기의 괴로움, 부담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는 위인의 말씀을 우리는 하루라도 빼놓지 않고 귀에 새길듯이 들어왔다. 그 금언의 무게는 아무래도 학생들이 가장 무겁게 느끼게 마련이고, 그 부담은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추천도서목록으로 집약된다. 대개 일리아드나 방법서설, 또는 논어나 열하일기로 시작되는 그 목록은 선인들이 세상에 남긴 서 말의 구슬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다. 하지만 문제는 목록 어디를 봐도 그 구슬을 어떻게 꿰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물론, 가짜 구슬을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조차 전혀 없다는 것이다. 얼마쯤은 이 막막함이 아직 옥석을 구분할 수 없는 우리 학생들이 진 부담의 무게를 더 무겁게 하는 것이다. 이만하면 학생들로서는, 괴테는 드 네르발의 번역으로 읽고 에드가 포우는 보들레르의 번역으로 읽는다고 되어있는 프랑스의 독서전통과 지성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는 서구유럽의 교육방식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보다 올바르고 책임 있는 도서목록이라면 추천할 만한 책을 정확하게 가리켜야 한다. 책의 본질은 제목에서가 아니라 그 내용을 담은 한 문장, 한 문장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연관되는 여러 책들을 잘 안배하여 보다 체계적인 독서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책들은 서로 이야기 나누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많게는 20여종이 넘는, 같은 제목의 책들 사이에서 방황하고, 그 책을 넘어서면 또다시 다가오는 거대한 책의 산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다. 교육자와 연구자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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