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에 대학을 다녔어야 했다고, 스스로에게 늘 확인시키곤 했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에 걸쳐서, 혹은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에 걸쳐서 후다닥 해치운 대학 생활에 대한 약간의 자괴 같은 것도 있었다. 대학 생활이 내게 준 것은 무척 많았지만, 살펴보면 대개 지나간 것이나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함께 끼어 있었다.

맑스도 레닌도 제대로 읽지 못했고, 노동자의 삶을 위해 시위도 한 번 한 일도 없다. 그렇다고 학문을 깊이 탐구한 것도 아니다. 나는 늘 주위만을 기웃거렸을 뿐이다. 맑스-레닌을 읽기에 나는 너무 늦게 대학엘 들어왔고, 학문 탐구를 위해서는 너무 일찍 대학에 들어온 셈이다. 콤플렉스 탓일까. 내 책장에는 책들이 쌓이어 갔고, 그 책들은 다시금 내게 부담 혹은 콤플렉스로 다가왔던 것이다.

낮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이삼십 권의 책을 쌓아놓고 꽃에서 꽃으로 옮겨다니듯,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독법으로 책을 읽었다.
책에서 가장 관심 가는 부분은 저자의 약력인 것이다. 약력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장 주네처럼 도둑이었던 사람, 생 텍쥐페리처럼 비행기 조종사였던 사람, 랭보처럼 스무 살 때까지만 시를 쓴 사람, […]
저자의 살아온 삶을 읽고 난 뒤에는 책의 목차를 본다. 그리고 발행 날짜와 몇 판째 인쇄된 것인지를 본다. 제법 영악하게 책을 대하는 것이다. 목차를 보고 우선 당장 호기심이 가는 부분만 본다. 지금 당장에는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면 한쪽으로 치운다. 책 한 권의 소화는 그렇게 수월하게 끝난다.
(34-35쪽)

그러나, 팔십년대라고 해서 내가 '그곳'에 몸을 맡길 수 있었을까. 나는 집단이 개인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집단을 저버렸다.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개인주의자이고, 리버럴하며, 소부르주아였다.

그러나 끝내 라라는 뛰어난 조직 인자도, 투쟁적인 노동자도 될 수 없었다. 20년 동안 몸에 배인 그녀의 리버럴한 면과 소부르주아 근성이, 팜플렛 몇 권과 몇 달 동안의 단파 라디오 주체사상 강좌로 청산되지는 않았다. 그녀는 조직의 선전 대오에서 이탈되었고 당적을 박탈당했다. 그 후, 그녀는 문학이라는 나약한 인문주의적 덕성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그러나 그녀는 문학판에서도 회의와 갈등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
라라가 죽었다.
(54-55쪽)

소설은 라라가 등장하는 1부와 디디가 등장하는 2,3부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라라와 디디를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한 사람을 시기에 따라 둘로 나누어 놓은 것 같다. 라라는 디디가 되기 위하여 죽었다. 디디는 '살아남은' 주인공과 달리 그 죽음을 담보로 하여 90년대적 삶에 당당한 것이다. (이렇게 보지 않는다면, 놀랍도록 라라의 것과 닮은 디디의 80년대가 이해되지 않는다.)

빨간 라디오! 하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
이럴 수가 있다니!
나는 지금 디디의 얼굴에서 라라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이다.
(224쪽)

'살아남은' 것은 주인공만은 아니다. 한 번도 폐간당하지 않은 『현대문학』이나, 일제 협력에도 독재 협력에도 앞장선 미당, 그리고 스스로의 신념을 저버린 386세대 정치인들만이 손가락질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죄는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원죄original sin요, 경제적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연대책임 같은 것이다. 나는 베트남의 라이따이한들에게 미안한 것처럼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 미안한 것이다.

나는 80년대를 아무 것도 모른 채 다녔다. 아무 것도 모른 채 노동자를 억압했으며, 아무 것도 모른 채 분단 체제 유지에 기여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미국을 찬양하고 제3세계를 비난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숨이 막힌다. 사실 이 시절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바로 그 말이 무서운 것이다: "It's not my fault."


살아남은 자의 슬픔
박일문 지음/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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