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Monde.fr : Radiohead s'explique sur son disque téléchargeable au prix fixé par l'acheteur

라디오헤드Radiohead가 자신들의 새 앨범인 '인 레인보우즈In Rainbows'를 정가prix fixé로 팔겠다고 선언했다. 이 영국 록그룹은 그간 이뤄진 인터넷 다운로드를 통한 음반 판매 방식을 높이 평가했고, 메이저 음반사와의 재계약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라디오헤드의 보컬 톰 요크Thom Yorke는 지난 지난 5일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Le Monde》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무척 많이 손해를 보았다는 주장이나 수백만을 벌었다는 주장에 대해 "양쪽 모두 진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미의 언론들에 따르면 앨범이 온라인으로 공개된 이후 100만~150만 명 가량이 다운을 받았고, 무료로 다운로드를 받은 것은 40%~60% 정도이다. 영국인과 미국인의 대부분, 그리고 독일인과 프랑스인의 일부는 평균 5유로(약 6770원)를 지불했다.

톰 요크는 "과거에는 우리들이 디지털 저작권을 갖지 못했고, 다만 앨범 한 장이 판매될 때마다 1파운드(약 1900원)만을 받았지만, 지금은 전액을 다 받는다."며 "지금의 거래 방식이 우리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톰 요크는 다운로드 방식의 아이디어가 자신들의 매니저로부터 온 것임을 밝히며, "최근 몇 년 동안 낸 앨범의 해적판이 모두 출시 이전에 웹에 올려졌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 올려서는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음악을 콘트롤할 수 있으며, 전 세계가 그 음악을 한날한시에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 레인보우즈


라디오헤드는 자신들의 매니저는 앨범을 아예 CD 형식으로 내지 않기를 바랐으나 그럴 경우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직영 회사la compagnie indépendante인 엑스엘XL을 통해 배포되는 In Rainbows의 CD는 12월 31일부터 구입이 가능하다. 또한 수집가 박스 세트는 사이트에서 12월 3일부터 40파운드(약 7만6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EMI와의 계약 만료에 대해 에드 오브라이언Ed O'Brien은 "메이저 음반사와 재계약할 이유는 수익의 극대화뿐이었을 것"이지만 "수익의 극대화가 충분한 동기motivation suffisante가 되었던 적은 없다."고 못박았다.

라디오헤드 디스크박스 판매


한편, 수집가 박스 세트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다운로드판 외에 8곡이 더 들어 있는 수집가 박스 세트는 12월 3일부터 배송이 시작될 것임에 분명한데도

우리는 크리스마스 이전에 이 물품이 배송되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WE'RE GOING TO TRY AND GET THEM OUT BEFORE CHRISTMAS, BUT CANNOT GUARANTEE THIS.

라는 문구가 씌어 있다. 그래서 라디오헤드는 무료 다운로드가 박스 세트를 팔기 위한 홍보 제품produit d'appel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톰 요크는 "누구나 사물을 여러 방식으로 볼 수 있지만, 솔직히, 그런 냉소주의는 우리에게 낯선 것이다"라고 항변했다. 톰 요크는 또한 엠피쓰리mp3 파일의 음질이 CD보다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사실임을 인정하며 "사람들은 형태나 디자인, 생태학 등이 진화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공예품과 같은 것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생각한다"며 CD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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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 border fences 'an eco-danger'

미국에서 멕시코와의 국경선을 따라 담fences을 쌓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 담은 700마일(1125킬로미터)에 이르고, 센서나 강한 빛 등의 첨단 감시 장치도 달려 있을 거라는 것이다. 멕시코 환경부는 이 행동이 국경지대의 생태를 파괴한다고 반발했다. 그 국경지대 중에는 소노라Sonora 사막과 같이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막 생태계도 포함된다고 한다. 멕시코 정부는 이 건으로 국제 사법 재판소에의 재판 회부도 준비중이다.

전문가들과 미국·멕시코 양국의 생태 활동가들이 멕시코 정부를 위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 담이 동물들을 보다 작은 그룹으로 묶게 되어 유전적 다양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다. 재규어나 멕시코 흑곰, 영양의 일종인 소노라 가지뿔영양Sonora Pronghorn이 영향을 받는 동물들에 포함된다.

보고서는 환경적인 데미지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녹색 회랑green corridors"을 제안했는데, 이것은 길 없는 황무지를 만들어 사람들은 쉽게 오가지 못하지만 동물들은 자유로이 오갈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다른 제안으로는 선인장을 통해 '살아 있는' 울타리fences를 만들자는 것과, 물이나 벌레, 꽃가루 등이 투과할 수 있는 담을 만들자는 것 등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 마이클 처토프Michael Chertoff는 담장화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리오 그란데 강이 적절한 장벽이 되어 준다는 논리를 일축시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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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성노동자들의 HIV 공포
HIV fears over Nepal sex workers


네팔이나 방글라데시, 미얀마(버마)에서 인도로 건너가 성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가 보다. 기사에 보면 이들은 캘커타의 소나가치Sonagachi나 델리의 GB가GB Road, 그리고 뭄바이(봄베이)의 카마티푸라 등의 홍등가red light districts로 가서 생계를 위해 성노동을 하는 모양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기까지는 있을 수 있는 일... 정도로 생각해보고 싶지만... 이들 중에는 어린 소녀도 있다고 하는데, 14세 이하의 소녀들도 이 일을 하는 모양이다.

네팔에서 성노동을 위해 인도로 갔다가 돌아오는 여성들을 검사해본 결과 40%가 HIV에 양성 반응을 나타냈다고 하는데, 14세 이하 소녀들의 경우에는 이 수치가 60%라고 한다. 처녀와 관계를 가지면 HIV/에이즈를 치료할 수 있다는, 널리 퍼진 미신myth 때문으로 추측된다고 기사는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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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문학이 유럽 각 민족문학으로 분산되면서 그 문학의 수준이 현저하게 저하되었다. 이후 그 각 민족 문학의 발전과정에서, 보다 자세히는 프랑스 문학의 발전과정에서, 소설의 형성기에 그 발전에 영향을 끼친 작가가 누구일까 생각하다보니 거기에 라블레Rabelais가 있었다.

마르뜨 로베르는 그의 『기원의 소설, 소설의 기원』에서 『돈끼호떼』와 『로빈슨 크루소』를 소설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로빈슨 크루소』가 들어간 것은 근대의 예술로서의 소설이 부르주아의 예술이라고 볼 때 이 작품이 시민계급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이지만, 『돈끼호떼』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갖고 있다. 『돈끼호떼』는 단순한 스토리텔링만이 아니라, '어떻게 쓸 것인가'의 질문이 그 안에 들어있는, '글쓰기의 모험'을 하고 있는 글이라는 점에서 소설의 기원이라고 로베르는 말하는 것이다. 물론 로베르는 라블레의 글에 대해서 소략된 설명만을 잠깐 하고 넘어가지만, '글쓰기의 모험'이라는 로베르 자신의 기준에서 보면 라블레는 세르반떼스나 디포보다 앞선 소설문학의 기원으로 삼아야 마땅하다.

라블레는 이미 그 당시에 언어의 자의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언어가 형식과 음성만으로도 충분히 기능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의미와 무관한 표현들은 '의미의 해체'와도 비슷한 지점이 있다. 라블레의 소설은 말이 말을 낳아서 끊임없이 확장되어 나가는 소설이다. 예를 들어, 디오게네스가 자신의 '집'이었던 드럼통을 굴리는 장면에서 그 굴리는 행위가 무려 63개의 동사로 묘사가 되는데, 첫 서너개를 빼고는 모두 의미와 관계없이 발음이 비슷한 것들로 63개를 채워넣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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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Journalisme은 말 그대로 하루하루jour의 일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시사 프로그램이나 뉴스 뿐만 아니라 오락 프로그램까지도 포괄하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오락 프로그램까지도 시대를 관통하는 흐름을 담고 있다. 그들은 항상 대립되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데, 지금은 '성장 대 분배', '개혁 대 보수'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언론을 흔히 개에 비유하여 감시견watch dog, 애완견lap dog, 경비견guard dog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한다. 우리는 5공시절에 철저하게 애완견의 역할을 수행했던 언론을 보아왔다. '보도지침'이나 '땡전뉴스'는 이제 유명한 얘기가 되었다. 또 이를테면, 《누가 한강의 자갈을 보았는가》라는 프로그램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저 프로그램에 따르면 한강의 자갈을 본 사람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며, 한강종합개발은 그의 공로다. 여기에 대해서는 좀더 깊은 검토와 성찰이 필요하겠지만 애완견의 대표적인 사례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심지어 그때는, '거리의 편집인'이라는 말까지도 등장했을 정도다. '거리의 편집인'들은 신문을 꼼꼼히 훑어보고 팔릴 만한, 이슈가 될 만한 기사들에 빨간 색연필로 표시해두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가리키는 기사를 보고 신문을 샀다. 실제 신문의 편집인들은 허수아비였기 때문이다. 신문의 편집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는 언론이 경비견의 역할로 이행된 상태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즉, 언론이 체제수호의 역할을 맡으며 기득권에 편입되었다는 주장이다. 김중배 전 MBC 사장은 수년 전에 "지금부터 언론이 싸워야 할 대상은 정치권력이 아니라 자본이다"라고 말했다. 나도 그 당시엔 무슨 소리인지 잘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충분히 동의할 만한 내용이다.

어떤 면에서는 지금의 언론은 잠자는 개sleeping dog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프로그램이 오락화되어가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무서운 동질화이다. TV 연속극들의 '불륜의 강도强度'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점차 쇼프로그램이나 연예인들의 토크쇼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오락 프로그램'으로 구분된 것들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시사프로그램이나 교양프로그램도 뚜렷한 오락화·연질화軟質化 현상을 보이고 있다. 《미디어비평》이 《신강균의 사실은…》으로 바뀐 것에서 우리는 그 한 예를 볼 수 있다. 자연 도큐멘트리들도 점차 극화劇化되고 있고, 《경찰청 사람들》류의 비교적 오락성짙은 교양프로그램도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나 《100분 토론》역시 청취율/시청률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다시말해 오락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시선집중》의 공격적인 질문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 그것이 청취율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100분 토론》에서 그것은 특히 토론자를 정할 때나 토론 주제를 정할 때 고민의 핵으로 작용한다. 인기있는 토론자를 세우고자 하는 욕심은 늘 있지만, 그러면 또 항상 같은 사람을 세우게 된다. 또, 교육이나 사회 현안에 대해 토론을 하고 싶지만, 정치 문제가 아니면 시청률이 높게 나오질 않는다.

스스로는 '정도定道'와 '금도禁道'를 지켜야 하지만, 시청률이 지나치게 낮으면 프로그램이 '의미'를 잃게 되기 때문에 무작정 오락성을 배척할 것만은 아니다. 그 중간점을 열심히 찾아가는 것이 《…시선집중》이나 《100분 토론》의 목표가 될 것이며, 언론의 목표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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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MBC의 존재 양상은 모순적이다. '공영방송'이라는 직함은 갖고 있지만, 운영은 모두 광고로 충당된다. 그래서 나는 한참을 MBC도 시청료 받아야 한다고 여러 곳에서 언급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름뿐인 '공영방송'이 있다면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진짜 공영방송화 시키는 방법과 아주 민영화를 시켜는 방법이 있지만, 나는 시청료 등의 지원을 통해 좀더 공영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순진하게' 생각해보면 시청료 2000원 내면, MBC의 광고 의존도가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광고 단가를 낮출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 15초짜리 광고 하나 단가가 700만원정도다. 더구나 이것은 하루만 하거나 한달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훨씬 더 장기계약을 해야만 광고 계약을 맺을 수 있는데, 이를테면 이것은 중소기업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광고 단가가 낮아지면 중소기업도 공중파 방송에 광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말로만 중소기업 육성 운운하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더 사실적이지 않은가.

또 대기업의 경우도 광고 단가 인하로 얻은 실질적인 생산비 저하를 통해 제품 가격을 동결하거나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순진하게'만 생각하면 소비자들은 시청료의 얼마쯤은 이런 가격 인하를 통해 돌려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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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특강 내용은 인터넷에 무분별하게 올리지 말아달라. 예전에도 내가 한 말이 인터넷에 오른 적이 있는데, 큰 소동이 일어났었다. 지금 내가 한 특강 중에서 몇몇 부분만 오려서 신문이나 인터넷에 게제가 되면, 사람들은 맥락을 모르기 때문에 흥분할 수 있다. 나는 인터넷의 문제점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말을 잘라서 게시하면 맥락context은 사라지고 문장text만 남고, 역사history는 사라지고 얘기stroy만 남는다.
Posted by 엔디
강연의 시작은 박맹호 대표의 유년시절의 추억이나 전란 당시의 상황, 그리고 대학 졸업 후의 '낭인浪人'생활 같은 개인적인 문제로 시작했지만 마땅히 이어갈 말이 없었던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박맹호 대표는 연대기에 따른 출판에 대해 조금씩 이야기했다.


그가 출판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대부분의 책은 일본어 중역본이었다고 했다. 내용뿐 아니라 장정·디자인도 일본 책에서 그대로 베껴 글씨만 한글로 바꾸었다고 했다. 그는 거기서 '창피함'을 느꼈던 것 같다.

1950년대의 우리나라 출판은 '구루마くるま' 즉 수레에 끌고 다니며 출판사를 경영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책이 거의 일어판 중역이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때부터 시작한 출판사로 계몽사나 삼성출판사, 금성출판사 등을 예로 들었다. 그렇지만 50년대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대학도 '전시연합대학'이라는 것을 만들어 교육할 때니 보다 상업적일 수밖에 없는 출판업이 어찌 할 수 있었을까.

1960년대부터는 출판업계가 화려한 신장을 맛보게 되었었나보다. 그런데 그 '화려한 신장'이라는 것이 대체로 세일즈를 통한 책 구매였던 것이다. 흔히 말하는 그 '교육열'이 '나는 이래도 아이들만은…'하는 생각에 외판원의 언변까지 맞물려 읽든 안 읽든 전집류를 한두 질씩 들여놓게 되는 과정은 안 봐도 뻔한 일이다. 우리 집에도 예전에 그런 전집류가 두어 질 있었고, 어느 집에를 놀러 가도 다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하지만 단행본 시장의 성장없이는 진정한 출판업계 신장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박맹호 대표의 지론이다. 그는 "단행본은 각 분야의 꽃"이라고 했다. 옳은 말이다. 단행본은 건전한 출판문화의 밑거름이 되는 동시에, 그 속한 분야에 대한 가장 거짓없는 평가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신념을 가진 그가 왜 지금 다시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에 매달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에도 분명 건질 책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기존 번역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기왕에 다른 번역본이 있는 책을 중복 출판하는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다. 괴테나 헤세, 셰익스피어는 이제 제대로된 전집이나 선집이 나올 차례지 문학전집에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세계문학전집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오는 '대산세계문학 총서'가 될 것이다. 신뢰할 만한 번역이 없는 책이나,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책은 단행본으로 내는 것보다 전집류에 포함시키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민음사 창사가 1966년이니까, 그의 출판사 창사는 대략 앞에 언급된 정도의 토양에 바탕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전집류가 아닌 단행본을 먼저 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위기가 왔었다고 했다. 책을 팔 곳이 없었던 곳이다. 서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남아 있는 서점은 학습참고서, 월간지, 대중소설 위주였다고 한다. 단행본을 내도 그것을 전시하고 팔만한 공간이 없었으니 처음에 위기가 닥쳐올 밖에. 그러나 곧 '종로서적'이 생기면서 단행본 시장의 그 숨통이 트이고 다행스럽게도 단행본 출판이 활성화되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박맹호 대표에 따르면 민음사에서 처음으로 만든 책은 '세계시인선'이었다. 당시 일어 중역판 시집에 많이 진저리가 난 모양이다. 마침 해외유학파 소장 학자들이 그 즈음에 대거 귀국해 각자의 어문전공에 따라 번역을 맡길 수가 있었다고 했다. 번역에 혹 문제가 있을까봐 책은 원문原文과 역문譯文을 함께 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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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만든 책은 '오늘의 시인 총서'였다. 해방 이후 활동한 시인으로 기준을 정해놓고 김수영, 김춘수, 정현종, 황동규, 강은교 등 다섯 시인을 먼저 택해 1차분을 내놓았다. 당시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2000부였는데 다섯 종이 각 2000부씩 일만 부 첫 쇄가 일주일만에 매진되었다고 했다.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새로운 시에 목말라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인 것 같다. '오늘의 시인 총서'는 그 외에도 '최초의 가로쓰기 시집', 국판 판형에서 벗어나 '현재의 판형(국판 30절)으로 제작한 최초의 시집' 등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즐거운 자랑을 늘어놓았다.

1974년에는 김수영 전집을 발간했고 김수영 문학상은 그 인세로 주는 상이라고 했다.


당시 출판은 소설이 먹여살렸다고 하는 게 옳은 말인듯 하다. 그는 당시 회자되던 "출판의 대종大宗은 문학이고 문학의 대종은 소설이다"라는 말을 언급하며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당시는 유주현, 정비석 등의 대중 소설들이 날개돋힌 듯 팔렸던 때였다고 했다.

그런데 당시의 젊은 작가들과 젊은 비평가들에 힘입어 그런 현상은 조금씩 극복되어 나갔다고 그는 말했다. 당시에 최인훈, 조해일, 김승옥 등의 소설이 있었고 김현, 염무웅, 김치수 등의 평론가가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같은 계간지를 만들어 동시대의 작품들을 싣고 비평하게 되면서 '보이지 않는 혁명'이 일어났다고 박맹호 대표는 이야기했다. 기존 잡지 『현대문학』등이 문예진흥원 기금을 받으면서 발간되었던 데 비해 이런 계간지들은 문예기금도 없이 시장을 석권했다고 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민음사도 『세계의 문학』을 창간했다. 당시 편집인은 김우창 선생과 유종호 선생님이었다. 그 분들은 당시 40대이셨다고 했다. 편집인이 바뀌고서 『세계의 문학』도 이전같지 않다는 은사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이런 계간지는 당시에 효과적으로 기능했나보다. 예전에는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만 하면 역사에 이름이 남고 소설가니 시인이니 할 수 있었지만 계간지 이후로는 지속적으로 계간지에 글을 써야 독자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지속적인 글쓰기가 없이는 독자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풍토가 생겼다고 했다. 신춘문예가 결과에서 과정으로 바뀐 것이다.

어쨌든 소설에 있어서 민음사는 '오늘의 작가상'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첫 수상작인 한수산의 『부초』에서부터 그는 말머리를 떼었다. 당시 30만 부나 팔린 이 책에 힘입어 한수산 씨는 집도 없던 사람이 집을 사고 지금도 부자라고 그는 우스개를 섞어 이야기했다. 2회, 3회 수상작인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과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도 그의 입에 올랐다. 노출판인의 멋진 자랑거리 아닌가!

80년대 이후로는 소설과 비평의 위기라고 하지만 사실 그때 교보문고가 등장하고 하면서 출판시장 전체는 다종 출판의 시대가 열린다고 그는 구분하고 있었다.


도서정가제에 대한 한 학생의 질의에 박맹호 대표는 자신은 찬성한다고 밝혔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파나 온라인 서점에서 파나 출판사 입장에서의 마진은 같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온라인 서점이라고 출판사로부터 책을 싸게 가져가기는 힘들 것이다. 내 생각에는 오히려 현찰거래를 하는 온라인 서점이 어음거래를 하는 오프라인 서점보다 출판업계에는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어차피 출판사는 정가의 60-70% 정도를 받고 서점에 넘기는 것이다.


앞으로의 계간지의 역할에 대한 질의도 있었다. 그는 앞으로는 계간지로 상업적인 성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계간지는, 외국의 경우처럼, 각 전문 분야에서 동호同好를 가진 사람들끼리의 잡지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7,80년대에는 계간지와 단행본은 불가분의 관계였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그는 판단했다.


출판 산업이 어려우신데 견딜만 한가? 하는 질문에도 그는 웃으며 답했다. 우리도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본래 "출판은 전 산업의 얼굴"이라고. 불경기 때에도 잘 되는 산업이 있다면 그와 관련된 책은 또 나간다는 것이다. 가령 조선업이 잘 되면 조선업 관련 책이 나가고, 반도체가 잘 되면 반도체 관련 책이 나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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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신간이 나올 때마다 느끼는 "쾌감" 때문에 후배들에게 물려주지도 않고 여직껏 욕심내어 계속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희열은 고통을 극복한다"며 학생들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당부했다. 긴 시간의 강연은 이 질의를 끝으로 마감을 지었다.

잦은 절판으로 화를 돋우던, 그래서 내가 많은 책을 갖고 있음에도 늘 나의 질타를 받던 민음사에 대한 감정은 많이 누그러졌다. 솔직히 인정하자. 민음사는 가장 좋은 출판사 중의 하나이다. 김우창 전집이 절판되었다지만 애초에 민음사가 아니면 어디서 김우창 전집을 내겠는가.
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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