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시계, 최초의 달력은 사람의 눈이었다. 사람들은 태양과 달의 모양과 움직임, 물의 흐름을 보고 세월歲月과 시간時間과 촌음寸陰을 알았다.

박주택의 시집 『시간의 동공』은 시인의 눈을 따라 시간의 흐름을 꿰뚫어보고, 눈이 보았던 기억과 그 속에 숨어있는 계급을 살펴보는 시집이다.

시인의 눈은 먼저 "문을 닫은 지 오랜 상점"을 바라본다. 불빛이 없어 어두운 그곳에는 발가벗겨진 채 갇혀 있는 인형이 보인다. 시인은 문득 섬뜩함을 느낀다. 그리고 사뭇 달랐던, 처음 그곳에 갔을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때는 허리춤이 드러난 한 여자가 물을 뿌리며 창을 닦고 있었고, 사랑스러운 아이와 고요한 커피 잔도 시인의 눈에 들어왔다. 아마 인형도 그 때는 옷을 걸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인은 그 먼 기억과 다른 괴기한 광경만 볼 뿐이다. 시 '폐점'의 내용이다.

기억은 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무엇인가를 기억하는 행위는 과거와 지금이 같은지 다른지 비교하게 하고, 그 사이 수많은 시간의 물결과 주름을 알아보게 한다. 문제는 이 물결과 주름이 만드는 숫자의 흐름에는 어떤 정치적인 함의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간이란 계급을 재편성하는 과정이란 느낌이 들 때
햄버거는 입속에서 혈관을 터뜨리고 커피는 저녁처럼 어두워졌다
순환하는 인간들, 청춘은 중년이 되고 또 다른 청춘은
이곳을 가득 메우며 노년에 이르게 됨을 눈치채지 못한다

- 「강남역」부분.

여름 저녁 강남역 인근의 번화가를 지나다보면 젊음이 하나의 계급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땀 냄새가 가득한 그 청춘의, 여름의 계급은 「여름들」에서 보듯 자꾸 무엇인가를 소유하려고 하고, 무엇인가를 불러들이려 한다.

그러나 그 계급은 결국에는 부질없이 지고 마는 계급이다. 여름이었던 시간은 어느새 가을로, 가을이었던 시간은 금세 겨울로 변해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깨달은 것일까. 시인은 「여름 말 사전」에서 "여름이 갈 때 용서하자"고 노래한다. 이어 「가을 말 사전」에서는 "빈 들에 서서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본다." 이어 눈보라가 치고 종소리가 울리면 그제서야 "여름이 겨울처럼 늙어가 이제는 울음조차" 시인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소년이었을 때」).

사실 겨울이 지나면 이승에 남는 것은 없다.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성서의 예언처럼 모두 본래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이제 남은 것들은 자신으로 돌아가고
돌아가지 못하는 것들만 바다를 그리워한다

- 「시간의 동공」부분.

하지만 망각만이 남아 있을 것 같은 겨울 이후에도 여전히 기억은 끈질기게 깨어 있다. 시인은 그것을 '미련'이라고 부른다.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은 기억되려는 욕망 속에서 무덤이라는 것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곳은 미련의 둥지다
저마다 지붕을 틀고
게걸스러웠던 입을 다문 채 죽은 것처럼
누워, 햇빛을 쬔다
[...]
죽어서도, 끝끝내
버리지 못하는 미련의 노란 창문이다.

- 「묘지」부분

물론 이런 기억이 갖고 있는 미련은 마냥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땅 속에 묻힌 무덤은 뿌리이지만, 줄기와 여름의 꽃잎들은 한 나무의 가지가 되기 때문이다. 조선 3대 태종 부부와 23대 순조 부부가 나란히 묻힌 헌인릉에서 노는 아이와 부모들을 보고 반 세기를 살아온 1959년생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뿌리들은 어느 마음의 끝 땅속에 내려
이토록 질긴 목숨으로 얽혀 있을까
바람이 지나가면 그 흔들림만큼 흙 속을 엉켜드는
목숨들 두 번의 생이 있다면 아름다움이 다투어 묶이는
창문에 나가 동터오는 집의 입구를 바라볼 것이다

- 「헌인릉 가서」부분

삶의 성(城)은 언젠가 조금씩 몰락해가는 것이지만 계속해서 다시 지어지는 것이며, 그 모든 주름져가는 과정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시간의 동공 - 10점
박주택 지음/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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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엔디

김수영의 시 「'金日成萬歲'」를 읽었다. 제목만 봐도 어지간해서는 출간을 못했겠구나 싶은 시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 것이다. 이를테면, 텍스트가 가리키는 달이 분명 '한국의 언론 자유'라고 하더라도, 그 손가락인 텍스트가 너무 '섹시'했기 때문에 당국은 텍스트 자체를 모자이크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건 김수영 같은 시인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아름다운데다 달을 가리키기에 더이상 효과적인 수단을 찾을 수가 없었던 탓이다. 시를 읽어 보자(김수영 2008, 119):

'金日成萬歲'
韓國의 言論自由의 出發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韓國
言論의 自由라고 趙芝薰이란
詩人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金日成萬歲'
韓國의 言論自由의 出發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韓國
政治의 自由라고 張勉이란
官吏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1960.10.6.)

시적인 기교를 거의 부리지 않은 무척이나 담박한 시다. 김수영이 진실로 김일성을 추종하는 시인이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고, 오로지 무엇이든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검열의 왕국을 불평하고 있는 것이다.

김수영은 외로이 잠이 들었다가 깬다. 그는 함께 이야기할 말벗이 없다. 장면이라는 관리뿐 아니라 조지훈이라는 시인까지도 '자유'에 대한 '견해'가 달랐기 때문이다. 김수영은 그보다 일찍이 1956년에는 「눈」이라는 시를 통해 대나무숲에라도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을 쏟아놓기도 했다(김수영 1981a, 97):

기침을 하자
젊은 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1956)

4월혁명이 일어난 후, 김수영은 4월 26일 조간에 발표된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는 시를 통해 이제 '상식'이 된 민주주의와 자유를 부르짖는다. (그날 낮 1시 이승만은 하야를 발표한다.) 김수영은 "기침을 하자"에서 벗어나 하고 싶었던 말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운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제2공화국이 들어서자 김수영은 6월 30일 일기에서 비통하게 말한다(김수영 1981b, 333):

第二共和國!

너는 나의 적이다.
나는 오늘 나의 완전한 휴식을 찾아서 다시 뒷골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거기에는 어제의 나는 없어!
[­…]

오오, 자유. 오오, 휴식.
오오, 허망.
오오, 그럼 나의 벗들.

第二共和國!

너는 나의 적이다. 나의 완전한 휴식이다.
영광이여, 명성이여, 위선이여, 잘 있거라.

그가 이런 어조로 2공화국을 '까'는 이유는 무엇일까. 혁명 속에서 말의 자유를 만끽했던 김수영이 2공화국에서 어떤 훼방을 발견한 것이 아닐까? 분명히 2공화국은 최인훈의 『광장』을 용인했고, 대한민국 제2공화국 헌법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사전 허가 또는 검열제를 금지하는 등 자유권의 강화가 많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김수영은 한국의 언론 자유에 대해 '~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으로의 자유'가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 같다. 다시 김수영의 일기를 보자. 9월 20일자 일기다(김수영 1981b, 338-339):

언론자유나 사상의 자유는 헌법조항에 규정이 적혀있다고 해서 그것이 보장되었다고 생각해서는 큰 잘못이다. 이 두 자유가 진정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위선 자유로운 환경이 필요하고 우리와 같이 그야말로 이북이 막혀 있어 사상이나 언론의 자유가 제물로 위축되기 쉬운 나라에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이 두 개의 자유의 창달을 위하여 어디까지나 그것을 격려하고 도와주어야 하지 방관주의를 취한다 해도 그것은 실질상으로 정부가 이 두 자유를 구속하게 된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정부가 지금 할 일은 사회주의의 대두의 촉진 바로 그것이다. 학자나 예술가는 두말할 것도 없이 국가를 초월한 존재이며 불가침의 존재이다. 일본은 문인들이 중공이나 소련같은 곳으로 초빙을 받아 가서 여러가지로 유익한 점을 배우기도 하고 비판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되어있다. 언론의 창달과 학문의 자유는 이러한 자유로운 비판의 기회가 국가적으로 보장된 나라에서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검열이란 정부 기관이나 영진위, 기윤실, 유림 따위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검열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이미 존재하며, 자기 검열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검열이다. 글쓰는 사람이 조건반사처럼 글을 쓰면서, 심지어 혼자 생각에 잠겨 있을 때조차 스스로의 글과 생각을 제한해야 한다면, 거기엔 실질적인 검열이 없더라도 언론 자유가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가령 불평은 있지만 검열 때문에 불평을 말할 수 없는 오웰의 『1984』보다 불평 자체를 느끼지도 못하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더 끔찍한 세계다.

위 김수영의 일기를 읽고 놀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논리정연한 글에 고개를 끄덕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 「'金日成萬歲'」나 그 제목을 읽고서는 아마 한국인들의 대부분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김태권의 시사 책꽂이: 김수영전집

ⓒ시사인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1


10월 6일 이후, 이 시가 겪은 수난은 시인의 일기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여기에 옮겨 보자(김수영 1981b, 339-340, 342):

10월 6일

시 「잠꼬대」*를 쓰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썼는데, 현경한테 보이니 발표해도 되겠느냐고 한다.

이 작품은 단순히 〈언론자유〉에 대한 고발장인데, 세상의 오해여부는 고사하고, 《現代文學》지에서 받아줄는지가 의문이다. 거기다가 거기다가 趙芝薰도 이맛살을 찌푸리지 않는가?

* 이 작품의 최초의 제목은 「○○○○○」. 詩輯으로 내놓을 때는 이 제목으로 하고 싶다.

10월 18일

시 「잠꼬대」를 《自由文學》에서 달란다. 「잠꼬대」라고 제목을 고친 것만 해도 타협인데, 본문의 〈×××××〉를 〈×××××〉로(한글로--편집자 주) 하자고 한다.

집에 와서 생각하니 고치기 싫다. 더이상 타협하기 싫다.

허지만 정 안되면 할 수 없지. 〈      〉부분만 언문으로 바꾸기로 하지.

후일 시집에다 온전하게 내놓기로 기약하고.

한국의 언론자유? God damn이다!

[…]

10월 19일

[…]

시 「잠꼬대」는 無修正으로(언문 교체 없이) 내어밀자.

10월 29일

「잠꼬대」는 발표할 길이 없다. 지금같아서는 시집에 넣을 가망도 없다고 한다.

12월 25일

「永田絃次郞」과 「○○○○○」를 함께 월간지에 발표할 작정이다.

12월 25일

「○○○○○」는 〈인간본질에 대해서 설치된 諸制限을〉관찰하는 데 만족하고 있는 시이다.

김수영은 이 문제가 되는 시를 "아무렇지도 않게" 썼다고 했다. 그런데 아내에게 보여 주니 "발표해도 되겠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니 수영 자신도 은근히 걱정이 되는 모양인지 잡지에서 받아줄지 안 받아줄지 걱정한다. 《현대문학》이 받아주지 않았는지 《자유문학》으로 지면을 바꾸어 보지만 거기서 다시 타협을 요구하고, 김수영은 그걸 받을지 말지 고민한다. 결국 그가 《자유문학》에 내민 원고가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국 그 시는 발표할 지면을 찾지 못했다. 시집으로도 넣지 못한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김수영의 울분이 느껴지는 듯하다.

12월 25일자 두 일기의 「○○○○○」가 「'金日成萬歲'」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가타 겐지로永田絃次郞」 역시 월북 등 북한과 관련된 시이므로 「○○○○○」를 「'金日成萬歲'」로 보는 것에 문제는 없어 보인다. 김수영은 「○○○○○」가 단지 "인간본질에 대해서 설치된 제제한을 관찰하는 데 만족하"는 시라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 여기서는 '언론의 자유'라는 것을 넘어서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 설치된 모든 제한을 관찰하는 시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이유가 내부 검열 또는 자기 검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검열을 시작하게 되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김수영 1981a, 249-250):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 짜리 갈비가 기름덩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려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1965. 11. 4.)

1965년이면 1963년 윤보선을 상대로 대선에 성공한 '민간인' 박정희가 군인들을 베트남으로 파병했던 시기이다. 아마 이 때쯤부터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가 더욱 공고해졌을 것이다. 사상의 통제는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김수영은 "왕궁의 음탕"에 대해 쓸 수 없었다. 그것을 쓰면 잡혀갔을 것이고, 그것을 쓴다고 해서 받아줄 잡지도 출판사도 없었다. 김수영이 스스로 반성하고 있는 이 시, 「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를 읽을 때면, 그가 얼마나 소시민이었고 그가 얼마나 옹졸했는가를 생각하기보다는 그가 말을 하는 데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었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옳다.

김명인(2008, 168)은 "김수영에게 언론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문학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을 밝혀 쓰고 있고, 김현(1991, 399)도 마찬가지로 "그에게 있어서는 자유가 없는 곳에서의 시란 방랑이며 고초이며, 설사이다. 그것은 소음이다. 그러나 그는 그 소음을 더욱 크게 내지르려고 애를 쓴다. 그것은 저질의 참여시가 아니라, 높은 정신의 자기 학대이다."라고 쓰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김수영의 시 「'金日成萬歲'」를 그대로 실었을 경우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체제가 무너지거나 권위가 떨어지거나 했을 것인가 하는 가정이다. 이북의 1960년대는 이른바 '천리마 시대'였다. 천리마 시기가 되어 증산增産은 물론 사상의 통제도 더욱 심해졌다. 이 운동의 결과 북은 아마 상당 부분의 성과를 거두었던 것 같다. 김일성은 문예에 대해서도 천리마 운동이 필요하다고 교시한다. 그에 따르면 "문학과 예술은 언제나 현실보다 앞서"서 공산주의로 가는 투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작가들이 "천리마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비판한 모양이다(신형기·오성호 2000, 219-225).

한국 사회가 「'金日成萬歲'」를 용인하지 못했던 것은 자기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1960년대 당시에 김수영의 「'金日成萬歲'」가 발표될 수 있었다면 국가 체제는 물론이고 권위 역시 더욱 공고해졌을 것이다. 김수영은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시를 썼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그 영민한 김수영이 과연 「'金日成萬歲'」라는 시가 지면을 찾지 못하리라는 것을 몰랐을까. 사람들이 달을 보지 못하고 '섹시'한 손가락만 바라볼 것이라는 걸 그가 몰랐을 리 없다. 나는 그가 더 먼 미래를 바라보고 이 시를 썼으리라고 생각한다. 4월 혁명보다 더 먼 미래를 말이다. 4월 혁명은 성공한 혁명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김수영은 「그 방을 생각하며」에서 이렇게 말한다(김수영 1981a, 160):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狂氣----
失望의 가벼움을 財産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歷史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財産으로 삼았다

[…]

방을 잃고 落書를 잃고 期待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1960. 10. 30.)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꾼 셈이 되었고, 언론 자유도 없어 펜은 녹이 슨 데다 이제 뼈와 광기만이 남은 상태다. 재산은 실망의 가벼움뿐이다. 이것이 시인의 현실 인식이다. 1960년 10월이면 『광장』이 발표된 때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그 시기에 김수영은 이미 녹슨 펜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수영은,

그러나 수영은 언젠가 「'金日成萬歲'」를 출간할 날이 오리라고 믿었던 것일까. 그의 가슴은 그 때 무엇으로 풍성했던 것일까.

덧말) 정지창 교수는 다산연구소에 기고한 글, 「유언비어의 시대」에서 언론 자유가 없던 시절에 '유언비어'가 담당했던 기능에 대해 회고하고 있다. 그 시절 '유언비어'는 진실의 다른 이름이었다. 당시의 '유언비어'는 언론 통제를 공격하는 게릴라부대와 같다. 이제 '괴담'이라는 이름의 '유언비어'를 다시 통제하려고 하는 정권이 들어섰다. 김수영이 말했듯 민주주의와 자유는 이제 상식으로 되었다. '김일성만세'가 빤히 잡지에 실릴 수 있는 이 시대에, 언론 통제는 번연히 살아 있음을 본다. 방의 벽에라도, 인터넷 어느 구석에라도 나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 라고 낙서라도 꾹꾹 눌러서 하자.

참고문헌

김명인. 2008. "제 모습 되살려야 할 김수영의 문학세계: 김수영 미발표 유고 해제". 실린곳: 『창작과 비평』. 통권 140호. 서울:창비. 153-176쪽.
김수영. 1981a. 『김수영 전집』. 1:詩. 서울:민음사.
------. 1981b. 『김수영 전집』. 2:散文. 서울:민음사.
------. 2008. "'金日成萬歲'". 실린곳: 『창작과 비평』. 통권 140호. 서울:창비. 119쪽.
김현. 1991. "김수영을 찾아서". 실린곳: 김현. 1991. 『상상력과 인간/시인을 찾아서』. 김현문학전집3. 서울:문학과지성사. 392-399쪽. 처음실린곳: 『심상』. 1974년 3월호.
신형기·오성호. 2000. 『북한문학사: 항일혁명문학에서 주체문학까지』. 서울:평민사.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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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2008년 가을호(통권141호) '독자의 목소리'에 실린 요약:

김수영의 시 「‘金日成萬歲’」를 읽었다. 제목만 봐도 어지간해서는 발표 못했겠구나 싶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 것이다. 이를테면 텍스트가 가리키는 달이 분명 ‘한국의 언론자유’라 하더라도, 그 손가락인 텍스트가 너무 ‘쎅시’했기 때문에 텍스트 자체를 모자이크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읽어보면, 이 시는 기교를 거의 부리지 않은 무척이나 담백한 시다. 김수영이 진실로 김일성을 추종하는 시인이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고, 오로지 무엇이든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검열의 왕국을 불평하고 있는 것이다. 해제에서 김명인도 “김수영에게 언론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문학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밝혀 쓰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金日成萬歲’」를 그대로 실었다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체제가 무너지거나 권위가 떨어졌을 것인가 하는 가정이다. 한국사회가 이 시를 용인하지 못했던 것은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1960년대 당시에 이 시가 발표될 수 있었다면 국가체제는 물론이고 권위 역시 더욱 공고해졌을 것이다. 김수영은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시를 썼던 것이다.

김수영은 언젠가 「‘金日成萬歲’」가 발표될 날이 오리라 믿었던 것일까.

요약문을 보니 국가 체제와 관련된 부분에서 내 뜻과 달리 오해가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008. 08. 24. 00:41)

Posted by 엔디
   시집을 통독한 것이 얼마만일까. 시 한 편을 읽을 여유도 없는 삶이 무척이나 삭막하다. 여유란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니까. 마음이 무겁다. 시를 읽는다는 것이 그렇게 누리는 호사는 아닐까. “의심하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1. 밤/잠

  조영석의 시집 『선명한 유령』에서는 줄기차게 ‘밤/잠’이 등장한다. 시란 본래 꿈이고, 꿈은 대개 밤에 자면서 꾸는 것이니까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닐 수 있다. 통속적인 구분도 괜찮다면, 서정 시인은 밤에 시의 행을 늘려가고, 소설가는 낮에 ‘집필실’에서 원고지의 장수를 늘려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정 시인은 ‘밤’이라는 낱말을 지배한다. 시인은 골방에 들어가거나, 잠깐 눈을 감는 동안에도 밤을 불러낼 수 있는 것이다. 거기서 시인은 ‘지금/여기’가 아니라 ‘언젠가/다른 곳에서’를 상상할 수 있다: 밤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조영석의 시에서 밤은 불러서 오는 것이 아니고, 잠은 수동적인 것이다. “날이 새면 또 먼 길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39). 어디로 가는지 독자는 알 수 없다; 아마 시인도 모르기가 쉽다. 이인성이 “그때, 그가 돌아오려 했던 곳은 어디인가? 여기인가? 그렇다면, 여기서, 그가 여전히 돌아가려 했던 곳은 어디인가?”라고 인상적인 첫 연작 소설을 시작했던 것처럼, 그리고 프로스트R. Frost가 “Miles to go before I sleep, /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이라고 되풀이하여 되뇌었던 것처럼. 서정 시인들이 ‘밤’을 불러내어 ‘다른 곳’을 상상한다면, 조영석에게 ‘밤’은 오는 것이고, ‘다른 곳’은 가야 할 곳이다; 그의 시는 쓴 것이 아니라 쓰인 것이다. 그러므로 때로 그에게 잠은 ‘졸음’의 형태로 나타난다(42-43). 한국어의 관용구에서 나타나듯이 졸음은 ‘오는’ 것이다. 시인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그곳은 도달할 수 있는 곳일까?


2. 죽음

  잠과 죽음의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열왕기는 왕의 죽음을 묘사하면서 “자다sleep”라는 움직씨動詞를 즐겨 사용한다: “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누워자서 다윗성에 장사되니So David slept with his fathers, and was buried in the city of David(개역한글판/KJV).” 잠과 죽음의 유사성에 주목한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잠과 죽음의 가장 큰 공통점은 ‘오는 것’이라는 점, 곧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이다.

  시 「거대한 잠」은 시간에 묻혀 죽은 두 공룡에 대한 이야기이다: “육식 공룡 두 마리 / 얼굴을 마주 보며 잠들어간다.”라는 행들과 “그들만의 긴 빙하기 속으로 / 쓸쓸한 공룡 두 마리 얼어간다.”라는 행들은 분명히 같은 위상을 점하고 있다. 백악기가 끝나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등장하는 시기, 한 시대의 죽음을 시인은 그리고 있는 것이다. 공룡이 등장한 이유는 ‘지금/여기’에는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시집 전체를 통해 공룡의 변형을 우리는 많이 찾을 수 있다: 가령 시베리안허스키가 그렇다(30-31). 허스키는 거기서 아이를 죽인 죄로 처형된다. 허스키가 아장아장 다가온 아이를 물어 죽인 이유는 무엇일까? 햇볕이 너무 강렬해서? (그리하여 이방견은 삶의 부조리를 발견하고 끝내 처형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조영석의 시에서 죽음은 화장火葬이나 풍장風葬이 아니라 매장埋葬이다; 화장이 영혼을 자유롭게 날려 보내는 것이고, 풍장이--황동규에게서 보이듯이--삶/죽음의 경계를 지워 죽음의 고통을 극복하려는 것이라면, 매장은 일종의 가두는 행위이다. 사람은 죽는 순간 수인囚人이 되는 것이다: 땅의 수인. 그러므로 “매일 이 땅의 주인에게 사표를” 쓰지만 그 사표는 수리되지 않는다. 수리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스스로 찢어버린다(64-65).


3. 하강下降

  조영석의 시에서 죽음이란 매장이므로, 죽음이 하강의 이미지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불어에서 무덤tombe은 떨어지다tomber와 닮았다.) 앞에서 고찰한 잠에 대해 말하더라도, 한국어의 ‘곯아떨어지다’나 영어의 ‘fall asleep’에서 우리는 잠이 갖는 하강의 이미지를 밝히 알 수 있다. 그의 시는 바슐라르가 말하는 만큼 ‘역동적dynamique’이지 않다. 그의 시는 침잠하고 있다. “누이의 연애는 아름다워도 될까 / 의심하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때때로 상승을 뜻하는 낱말이 발견되지만, 오히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올라가는 것과 날아가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담배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다”(29), “주인 사내가 그물로 놈을 건져 올린다”(35), “씹다 버린 풀들이 바람에 실려 날아가고”(41), “살얼음을 깨고 썩지 않은 시체를 건져 올리는 날이면”(59), “뿌리를 통해 꾸역꾸역 올라오는 검은 물들이 보인다”(74). 그리고 날아오르는 것들은 결국 땅에 떨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물이 솟았다 떨어진다.”(110) 궁극적으로 상승을 가능케 하는 것, 모든 운동 에너지의 원천인 태양빛부터 적敵으로 설정되어 있다(30, 80).

  하강의 이미지는 무거움에 대한 상상력이다. 시집 맨 처음을 열면 생生이 얼마나 무거운가 하는 뼈아픈 자각이 있다. 작은 새를 보고, 불쌍히 여겨 새의 무게만큼 자기 몸을 내어주고 새를 살리려던 이가, 결국 자신의 온몸을 다 올리고서야 새와의 천칭의 균형이 맞았다는 불교의 설화를 우리는 알고 있다. 조영석의 시에서 새가 잠자리로 대치되어 있지만, 결국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생의 무게라는 것을 우리는 역시 알고 있다.

  시인이 이 생의 무게를 민감하게 느끼는 것은 그가 다른 별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는 본래 “지구보다 조금 가벼운 별”에서 살았다. 만유인력 인데, 여기서 G는 만유인력 상수이고 시인의 질량(m)은 같기 때문에, 만유인력 F는 행성 또는 별의 질량(M)에 비례한다. 지구보다 가벼운 별에서 살았다면 시인이 느끼는 만유인력의 크기는 아마 지금보다 작았을 것이다. 시인은 행성 지구에 살게 되면서 전에 없던 무거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인간은 결국 수인이다(43). 나는 처음에 조영석에게 시는 쓴 것이 아니라 쓰인 것이라고 말했다. 수인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쑥과 마늘을 100일 동안 먹어야 하는가(69). 소행성으로 돌아가야 하는가(65). 아니, 시를 써야 한다. 조영석에게 시는 인간으로서의 존재 이유raison d’être에 해당하는 것이다.


4. 무거움

  시인은 무거움을 항상 느낀다. 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돈에 대한 인식이다. 돈은 인간의 존재를 무겁게 만들며, 인간을 자기 아래에 복속시키고 수인으로 만든다(18, 29, 36-37, 89). 무거운 것은 값이 싸다(67). 시인은 이제 무거움의 사회적 차원을 느낀다. 돈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는 사회는 권투와도 같은 경쟁 사회이다(88-90). 사실 권투는 쇼다; 각본이 정해져 있다는 뜻에서 쇼라는 것이 아니라, 그 경기 결과가 직접적으로 만드는 사회 현상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시인이 “이것은 쇼가 아니다”라고 두 번 강조한 것은 그 권투가 달이 아니라 손가락이라는 뜻이다. 경쟁 사회에서는 ‘나’는 없고, 오로지 ‘조직’만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거기에서 돈이 나오기 때문에 ‘조직’의 쓴맛을 보면서도 꾹 참고 경쟁한다. 조영석의 시에 때로 ‘가장家長’이 등장하는 이유도, 실제로 아직까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가부장제 아래에서는, 가장의 죽음이야말로 가장 작은 사회--가족--의 죽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94-95).

  여기에 이르러 조영석은 ‘지금/여기’의 문제로 되돌아오는 셈이다. 시 한 편을 읽을 여유도 없는 삭막한 삶이 조영석의 시 옆에서 추문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또다른, 시인의 존재 이유이다, 시를 쓸 이유이다.


선명한 유령
조영석 지음/실천문학사

Posted by 엔디
짧게 쓴다.

"오오 노시인들이란 늙기까지 시를 쓰는 사람들, 늙기까지 시를 쓰다니! 늙도록 시를 쓰다니! 대한민국 만세(!)"라고 외쳤던 건 서른 살의 정현종이었다. (김현에 따르면) 그는 김광섭 선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선생의 시제詩祭에 찾아갔던 것이다.

그런 그가 이제 이렇게 말한다: "의외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절로 쓰게 됐다. 시란 이런 것이다. 절실하면 터져나오는 것이다. 앞 부분 대여섯 행에서 몇몇 표현만 다듬었다." 시를 쓰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도대체 시인이 시를 어떻게 보는 것인가. 절실해서 터져나왔다는 그 시란, '핵실험에 부쳐'라는 부제를 단 「무엇을 바라는가」라는 글이다.



나는 이런 종류의 글을 마주할 때마다 임화를 생각한다. 임화의 시를 넘어섰는가를 생각한다. 늘 회의적이다.

정현종은 후배 문인들에게 '침묵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나는 주제 넘게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침묵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Posted by 엔디
원제는 그저 Metamorphoses일 뿐이다. 변신이야기라는 제목은 아마도 일본어판인 『轉身物語』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인 신화학자 중에는 가장 유명한 이윤기가 펭귄판으로부터 옮겨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판을 읽었다. 이윤기는 일러두기에서 몇 가지를 고백하고 있는데, 먼저 라틴어 원문은 2인칭이며 운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어판은 3인칭 산문으로 되어 있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대신, 해석은 매끄러웠고 모난 곳은 없었다. (단국대 천병희 선생이 번역한 『변신이야기』가 작년에 나왔다. 라틴어에서 바로 옮겼고, 행갈이를 하여 운문의 형태를 하고 있다.)



1

1권과 달리 2권은 좀 지루하다. 그것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아이네이아스나 로물루스-레무스 이야기, 그리고 왠지 낯간지러운 카에사르와 아우구스투스에 대한 직접적인 아부 때문만은 아니다. 1부에서 등장한 신들의 이야기가 점차 영웅의 이야기나 인간의 이야기로 옮겨오면서 '변신'의 사례가 줄고 있기 때문만도 아니다. 원문의 문제인지 펭귄판의 문제인지 이윤기의 문제인지 한 문단의 길이는 점점 길어졌고, 산문화한 것은 똑같지만 그 안에서 아직 감지할 수 있었던 운문의 맛은 줄었기 때문이다. 1권이 산문시에 가깝다면 2권은 그냥 산문에 가깝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1권의 첫 서사序詞는 거의 시라고 해도 무방하다.

마음의 원願에 쫓기어 여기 만물의 변신 이야기를 펼치려 하오니, 바라건대 신들이시여, 만물을 이렇듯이 변신하게 한 이들이 곧 신들이시니 내 뜻을 어여쁘게 보시어 우주가 개벽할 적부터 내가 사는 이날 이때까지의 이야기를 온전하게 풀어갈 수 있도록 힘을 빌려주소서. (1:15)

이 부분은 본래 기도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지만, 다음 인용하는 구절들은 번역의 거름망을 통과하고 있는 시적 성취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아폴로가 이런 약속을 하자 월계수는 가지를 앞으로 구부리고 잎을 흔들었다. 고개를 끄덕이듯이…… (1:49)


나르키소스는 푸른 풀을 베고 누웠다. 곧 죽음이 찾아와 아름답던 그의 눈이 감기었다. 사자死者들의 나라로 간 뒤에도 그는 계속해서 스튁스 강에 비치는 제 모습을 바라보았다. 케피소스 강 요정들은 동생인 나르키소스의 죽음을 애도하느라 머리를 모두 깎아 그의 죽음에 바쳤다. 숲의 요정들도 울었다. 에코는 이들의 울음소리를 숲 하나 가득하게 되울렸다. (1:138)

반면 2권은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글이 무척 산문적이다. 묘사적인 부분을 일부러 찾아봐도 그렇다.

이윽고 신사神蛇는 빛나는 신전 계단을 기어내려와 뒤를 돌아다보았다. 떠나기에 앞서 정든 제단을 뒤돌아본 것이었다. 정들었던 집인 신전과 작별 인사를 나눈 이 거대한 신사는 자기에게 바쳐진 무수한 꽃다발 위를 기어 도시 한복판을 지나 방파제 있는 곳으로 갔다. 방파제에 이르렀을 때는 고개를 돌려 군중을 바라보았다. 배웅하러 나온 군중과의 작별을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산사는 이탈리아 배에 올랐다. 배는 신사의 무게가 무거웠던지 용골이 잠길 정도로 내려앉았다. (2:326)

짧은 문단에 '이윽고'를 두 번이나 썼다든가, 이별의 모습이 지나치게 장황하여 연설을 듣는 것 같다든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은 잘 다듬으면 훌륭한 시적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도, 아쉬움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2

한편 아부에 관해서라면, 나는 색다른 실망감을 맛보았다: 로마 최고 시인 반열에 오른 오비디우스의 아부 실력을 보고 싶었지만, 그런 것은 나타나 있지 않았다. 최고 시인의 아부는 무척 거칠고 직접적이어서 왠지 불쌍해보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역자 후기에서 이윤기는 이 아부를 용비어천가에 빗대고 있지만, 나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용가는 두줄 남짓한 글귀 속에서 중국 고사와 이성계 가문을 잘 맞대면서 훌륭한 시적 성취를 드러내고 있다; 정치적 의미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지라도 시적으로는 최고의 찬사를 받아 아깝지 않다. 고교 시절 배웠던 용가의 발췌문들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참신한 울림을 주고 있다.

『변신』의 아부는 그렇지 아니하니, 가령 다음 구절을 보자:

…… 그러나 카에사르는 당신의 나라에서 신이 되신 분이시다. 마르스 신의 직분인 전쟁은 물론이고 평화를 정착시키신 것은, 이 분께서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셨고, 평화시에는 많은 업적을 쌓으셨으며 엄청난 명성을 얻으셨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옳다. 카에사르의 공적 가운데 이 분을 아드님으로 삼으신 것 이상으로 빛나는 공적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329)

여기서는 죽어 혜성이 된 카이사르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양자인 아우구스투스를 대놓고 칭찬하고 있다. 카이사르의 수많은 업적보다 "프린캡스 폐하"의 존재 자체가 더 훌륭하다는 투다. 카이사르 대 아우구스투스의 관계가 사투르누스와 유피테르의 관계와 같다는 식의 표현도 등장한다. 그뿐이 아니다. 영원한 아부의 소재, 장수長壽 역시 빠뜨리지 않는다:

신들께 기도를 드리오니, 아우구스투스 폐하께서, 당신께서 다스리시던 이 땅을 떠나 하늘에 오르시고, 그 높은 곳에서 인자하시게도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루어지게 하시는 날이 더디오게 하소서, 다음 세기에나 오게 하소서. (2:336)

오비디우스의 꿈은, 그러나 당대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변신』의 결사結詞는 이렇게 끝난다:

내 육체밖에는 앗아가지 못할 운명의 날은 언제든 나를 찾아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내 이승의 삶을 앗아갈 것이다.
그러나 육체보다 귀한 내 영혼은 죽지 않고 별 위로 날아오를 것이며 내 이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로마가 정복하는 땅이면 그 땅이 어느 땅이건, 백성들은 내 시를 읽을 것이다.
시인의 예감이 그르지 않다면 단언하기니와, 명성을 통하여 불사不死를 얻은 나는 영원히 살 것이다. (2:336)

그러고보면 카이사르가 신이 되었다든가, 아우구스투스가 신이 되었다는 그의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지금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살고 있다. 오비디우스 역시 그런 영생을 누린다. 그는 무사이 여신들에게 늘 빌고 있지만, 지금 그 스스로가 시신詩神이 되어 수많은 시인들에게 다시금 영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신'은 과거 신화의 시대에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변신 이야기 1
오비디우스 지음, 이윤기 옮김/민음사

Posted by 엔디
자신을 '바람'이라고 부르던 兄이 있었다. 그는 발소리도 없이 나타났다가, 인기척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그는 어쩌면 자유로웠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제 '바람'으로서의 그가 많이 외로웠으리라고 짐작한다. 겨울의 문턱 즈음에 태어난 그가 스스로를 '바람'이라고 부를 때, 산뜻한 봄바람이 연상되는 경우는 없었다. 나는 매년 가을 경에 요절한 시인의 시비詩碑에 앉아 시를 읽곤 했다. 그때마다, 그때마다, 바람이 불었다.


황동규에게 '바람'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그의 시는 항상 바람 부는 곳에서 있고, 그 바람은 또한 항상 비바람 아니면 눈보라다. 때문에 그의 바람은 "산 위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도, 더운 여름날 여자들의 치마 끝자락을 살짝 들어올리는 가벼운 바람도 아니다. 그의 바람은 늘 습윤濕潤하고, 그러므로 무겁다. '바람의 시인'으로서 황동규는, 또다른 '바람의 시인' 정현종과는 아주 대조적인 시를 보여준다. 정현종의 바람이 율동을 통해 발레리나의 발을 대지에서 띄워준다면, 황동규의 바람은 발레리나의 발을 다시 땅에 붙박게 만든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황동규는 땅으로의 발디딤을 통해서 오히려 자유로워지려고 더 노력한다. 우리는 황동규의 구속과 자유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볼 것이다. 먼저 그의 「풍장風葬」 연작의 첫 일절을 보자.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이것은 「풍장1」의 첫 부분이다. 여기서 "아주 춥지는 않게" 위에 윗점을 좀 찍어보면 어떨까. 그는 그의 죽음이 아주 추울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옷도 입고 있고 전자시계도 차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죽음은 그의 생生과 구분된 것이 아니다. 시계가 "가는 채로" 있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삶의 시간과 죽음의 시간이 나뉘지 않는다는 인식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의 삶이 그토록 차가운 생이었는가, 우리는 그의 초기시를 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그의 데뷔작인 「시월」을 보자. 「시월」에 바람은 싸늘히 불고, 안개 속에 찬비가 뿌려진다. 바람은 빈 가지를 흔드는 존재이고, 낡은 단청 밖으로 이는 존재이며, 비와 함께 낙엽을 떨어뜨리는 존재이다. 그 계절 속에서 '나'는 "한 잎의 낙엽으로 좀더 낮은 곳으로" 내려지기를 원한다; 「즐거운 편지」에서는 '내'가 눈이 퍼붓는 골짜기에서 기다리는 존재로 표상된다.

시인에게 있어 데뷔작이 갖는 의미는 크다. 데뷔작은 그 시인을 시인되게 한 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데뷔작은 일정한 방향성方向性을 가지고 있다. 시인의 지향이 삶을 통해서 변모한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시인은 자신의 데뷔작으로부터 항시 자유롭지 못하다. 황동규의 시를 둘러보면 그의 시가, 겨울 장면이 하나도 없었다는 어떤 이상한 영화와는 달리, 가을이나 겨울, 혹은 그 언저리에 자리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의 시는 또한 비바람이나 눈보라 속에서 씌어지고 있으며, '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너의 마음 가에 바람소리 바람소리 - 「겨울 노래」
귀 기울이지 않아도 바람소리 바람소리 - 「겨울 노래」
문을 닫아도 바람소리 바람소리 - 「겨울밤 노래」
내 잠시 생각하는 동안에 눈이 내려 눈이 내려 생각이 끝났을 땐 눈보라 무겁게 치는 밤이었다 - 「기도」
소리 없이 바람은 불고 - 「이것은 괴로움인가 기쁨인가」
밤새 눈 속에 부는 바람 - 「어떤 개인 날」
포장 속에 우는 어두운 바람소리 - 「悲歌 제7가」
길게 부는 寒地의 바람 / 바다 앞의 집들을 흔들고 - 「기항지 1」
마당에는 은행나무가 바람에 잡혀 / 조심스런 첫 잎을 떨구고 있었다 - 「세 개의 정적」
우리 願의 오랜 물결 / 사면에 바람은 분다 - 「비망기」
폭풍경보의 바다 / 바람의 속도 속에 보이지 않는 해 - 「북해」
눈떠라 눈떠라 참담한 시대가 온다. / 동편도 서편도 치닫는 바람 - 「전봉준」
바람 속에 남아 있는 우리의 얼굴 - 「입술들」
바람에서 다른 바람으로 끌려가며 - 「더 조그만 사랑노래」
빗소리 속에도 바람이 부는지 / 풀들이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 「김수영 무덤」

되는대로 뽑아본 『三南에 내리는 눈』(이하 『三南』) 속에서의 바람의 등장모습들이다. 부분부분 인용된 것들을 쓱 훑어만 보아도 황동규의 '바람' 인식을 금새 알아차릴 수 있다: "문을 닫아도" 들리는 바람은 "밤새 눈 속에 부는" 바람, "무겁게 치는" 눈보라이며, 그것은 다시 "참담한 시대"를 암시하는 "폭풍경보"의 바람이다. 그런데 시 속에서 보이는 '내'가 그 바람 속에서 취하는 행동은 좀 놀랍다. 황동규, 혹은 황동규 시의 '나'는 그 바람 속에서 웃는다.

황동규 시에서 웃음은 놀라운 상황에서의 인식과 대응이다. 그 웃음은 그 안에 모든 것을 초탈해서 무의미화하려는 신비주의의 웃음이 아니라, 습윤한 인생의 한가운데를 관통하여 '나'의 모든 감정을 한 순간에 드러내는 웃음이다. 그러므로 그 웃음은 순수하지 않다. 가령 「겨울밤 노래」의 첫머리에서

조금이라도 남은 기쁨은 버리지를 못하던
해 지는 언덕을 오를 때면 서로 잡고 웃던
해서 눈물겹던 사내여 오라.

고 했을 때, "서로 잡고 웃"는 행위는 그 안에 많은 표현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 웃음이 다만 차가운 바람 속에서만 있을 수 있는 복합적인 것임을 밝혀주는 구절로는 「얼음의 비밀」의 1련, "헐벗은 옷 틈새의 웃음소리, 내민 살의 내민 살의 웃음소리."를 들 수 있다; 「갈매기」에서는 "나는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웃음을 울고 싶었다"고 노래함으로써 그 웃음의 정체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황동규 시에서 역시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새'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두자. 제목만으로 본다면 「갈매기」, 「들기러기」, 「철새」, 「바다새들」과 『三南』과 같은 시기에 씌어진 시들을 수록하고 있는,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이하 『바퀴』)의 「새들」이 있다. 다른 제목 아래 씌어진 새들의 숫자까지 합하면 훨씬 많다. 황동규가 기르는 이 수많은 새들은 기본적으로 '바람'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시행에 있어서는 바람보다 더 처절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 소원이라고 했을 때, 새는 그 소원이 있게 한 동물이다. 그러므로 새를 바라보면서 자유나 탈출, 혹은 도주逃走를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도주기」에서 그는 죽음을 암시하는 도주를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바로 다음에 수록된 기러기는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날아 내[리]"고 있으며, 들기러기들의 삶은 "다섯 달 겨울"로 설정된다. 떠남의 모티프는 「기항지1」에서도 보인다. "걸어서 항구에 도착했"지만, "정박중의 어두운 龍骨들"은 모두 "항구의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것이 이 시의 뼈대를 이룬다. '그'의 떠남은 번번이 좌절되는 것이다. 결국 그는 "행해를 단념한다." (「남해안에서」) '그'는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어디로 떠나고자 하는 것일까.

「어떤 개인 날」은 "아무래도 나는 무엇엔가 얽매여 살 것 같으다"는 자조적인 예언을 담고 있다. 「새벽 빛」에서는 "진실로 같은 틀로 나고 끝남을 알게 된다면, / 다시 나고 싶지 않으리라 / 이끼풀까지도, / 다시 살고 싶지 않으리라"고 보다 명확하게 이를 밝혀주고 있다. "해탈처럼 쉬운 건 없지 / 매일밤 해탈에 脫皮까지 하고 / 아침이면 한 바퀴 돌아 / 제자리에 와 있더라"라는 「네 개의 황혼」에서의 통탄할 인식은 이 얽매임이 무엇보다도 근원적이고 치유불가능한 것임을 고통스럽게 보여준다. 그래서 '그'은 의문을 표시한다. "같이 쫓기며 누리는 허황되지 않은 자유가 있을까." (「북해」)

역설적이게도 '그'의 자유는 단단함 혹은 땅의 단단함 속에서 찾아진다. 인도 시인에게 부쳐진 『바퀴』의 「편지․1」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이번 여름에는 미칠 듯 가을을 기다릴 것 같고
가을에는 또 꽝꽝한 얼음장이나 기다리며 살겠읍니다.

그것은 뜸[浮上]에서 자유가 아니라 두려움을 찾은 사람의 상상력이다. 항우의 고사를 연상시키는 「楚歌」라는 제목의 시는 "미치는 것도 미치지 않고 잔구름처럼 떠 있는 것도 두렵잖아요"라고 노래하고 있으니 말이다. 「김수영 무덤」은 김수영의 「풀」에 대한 독서讀書로 보이는데, "젖은 마음을 잠시 땅 위에 뉘어놓"는 행위나 "이 악물고 그대가 흔들리고 / 마지막으로 다시 풀들이 흔들[리]"는 묘사에서, 땅이 주는 휴식과 땅에 붙어 있으려는 의지를 볼 수 있다. 여기서 이중의 역설이 발생한다. 땅에 발 디딘 자만이 마음껏 떠날 수 있고, 마음껏 죽을 수 있다는 사소한 진리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그 순간을 「정감록 주제에 의한 다섯 개의 변주」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아버지가 죽은 후 아버지가 명당마다 타오른다.
명당이 죽은 후 명당이 우리 자리에 타오른다.
우리가 죽은 후 우리가 흰 옷 입은 도적이 되어 타오른다.
흰 옷 입은 도적들, 빨래 같은, 도처에 흰 천들.

죽음이 저질러졌다. 바람소리들이 되돌아왔다. 던진 돌도 되돌아오고 깨어진 머리들도 되돌아왔다. 삭제된 문장들도 삭제된 채 되돌아왔다. 골목에 파수 세우고 문서 태우고 우리가 습격하는 우리의 집들, 소리 소리 우리.

이 즈음에서 황동규는 바람에 얽힌, 눈에 얽힌 비밀을 털어놓는다. '金炳翼에게'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바퀴』의 시 「성긴 눈」에서 우리는 놀랍게도 "한두 마디씩 내리는 성긴 눈발"이라는 시구를 찾아볼 수 있고, 「더 조그만 사랑노래」에서는 "아직 멎지 않은 / 몇 편의 바람"이라는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고보면 『바퀴』에 실린 「새들」에서 "할 말을 않고 있는 새들"을, 「세 줌의 흙」에서 "몇 마디 아픈 말이 뱉어지지 않는다"는 쓰라린 고백을 찾아볼 수 있다. 말할 수 없음은 말하고 싶음과 긴밀히 연결된다. 그것이 「手話」를 부른다. 나중에 이성복에 의해서 「口話」로 발전할 이 시에서 시인은 삭발-눈발, "웃음 그 얼음 낀 벗음"과 같은 음성적 유사성에 의한 언어 유용과 "이건 […]", "저건 […]"의 반복을 통한 말배움을, 그리고 '조지다' '오입' 등과 같은 비속어를 통해서 새로운 말을 찾는 그의 치열함을 볼 수 있다. 그의 생을 괴롭히는 바람과 눈이 사실은 말[言]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구원도 말로부터 올 수밖에 없다는 인식으로 전환될 수 있다. 바람처럼 날아오는 말, 눈처럼 내려쌓이는 말을 우리는 삶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황동규의 연애시는 편지로부터 시작한다. 그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썼다는 「즐거운 편지」도 바람처럼 날아오고 눈처럼 쌓이는 한 통의 편지이며, 「조그만 사랑노래」와 「더 조그만 사랑노래」, 「더욱더 조그만 사랑노래」들도 "어제를 동여맨 편지"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사랑노래는 사랑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신뢰에 바탕을 두는 것이 아니라 '나'의 능동적인 기다림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편지이다. 그러나 그런 기다림의 가능성을 '그'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조그만 사랑노래」에서는 흩날리는 눈발을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으로 묘사하고 있고, 「더 조그만 사랑노래」에서는 "한 바람에서 다른 바람으로 끌려[간]"다는 표현까지도 등장한다. 그 어디에도 기다림에 대한 믿음의 근거는 보이지 않는다.

기다림에 앞서서 황동규의 현실 인식을 먼저 보자. 황동규는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 혹은 사람을 기다리는 사랑의 처지와 한국 혹은 한민족의 처지를 같은 것으로 보려고 하고 있다. 그것은 「태평가」에서 자세히 나타난다. 약소민족의 난해한 사랑 같은 것을 황동규는 계속해서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느끼고 있다. 에든버러에서 쓴 것으로 되어 있는 「낙법」은 "主語가 없는 그대와 나. // 칼날처럼 벗은 우리 조국"을 부르고 있고, 「虎口」에서는 "조국은 닫혀 있다"는 명제를 내세우기도 한다. 「정감록 주제에 의한 다섯 개의 변주」에서는 "축소된다, 모든 것이, 가족도 친구도 / 국가도, 그 엄청나게 큰 것들, 그들 손에 들려진 채찍도," 라고 선언하고 있고, 「돌을 주제로 한 다섯 번의 흔들림」에서는 "드디어 <너>도 <나>도 지워진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라. 어느샌가 <우리>만 남아, 아 항상 더불어 같이 살아야 할"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보여준다. 다음 단계는 그러한 의식을 역사 속에서 찾는 단계다. (시인이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했던 사람은 T. S. 엘리엇이었다.) 「전봉준」 시편들과 「허균」 시편들, 「열하일기」 시편들을 제시함으로써 황동규는 '그'의 기다림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봉준이"의 "일자무식"한 혁명이 '그'에게 있어서는 「手話」의 말의 혁명으로, 일자무식의 새로운 말배움으로 환치되고 있는 것이다.


황동규의 시 속에서 우리는 구원의 모습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구원은 여전히 '시-안'이 아니라 '시-바깥'에 있다. 시는 구원이 아니다. 이성복의 지적대로 문학이 자신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하나의 신비화이다. 그러나 문학은 기다림의 가능성을 알려줄 수 있다. 왜 우리는 소용없는 줄을 알면서도 "빛이 있으라"라고 목이 쉬도록 외쳐야 하는가.

잠언: 『三南』에서 보이는 시작의 발전과정을 다시 한 번 참조 해볼 것.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
황동규/민음사

Posted by 엔디
흼과 검음의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물과 뭍의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아니, 어제와 오늘의 사이엔, 말과 말없음의 사이엔, 있음과 없음의 사이엔, 처음과 끝의 사이엔, 아니아니, 삶과 죽음의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대답할 수 없다, 그렇다면,

검음과 흼의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뭍과 물의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아니, 오늘과 어제의 사이엔, 말없음과 말의 사이엔, 없음과 있음의 사이엔, 끝과 처음의 사이엔, 아니아니, 죽음과 삶의,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말장난. 옳다, 하지만 당신들은 삶의 상징인(,) 혀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관찰해본 일이 있는가. 한 번도 시집을 거꾸로 읽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물구나무서기를 해도 좋다.

「99.999999999」(158)는 100이 아니다. 곧, 99.로 한없이 가다가 좀 쉬자는 말이다. 이곳은 말하자면 경계의 땅이다. 레떼의 한가운데라고 생각해도 좋다. 시인은 "무언가를 위해 / 여기에 홀로 남아 있는 사람"을 언급한다. 그 사람은 털을 하나씩 뽑고 있는데, 어쩌면 자신의 생장生長을 뽑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식목일엔 그의 털을 심다."(156) 그러니까 삶과 죽음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거기서 그 사람과 자신의 거리를 지운다. 그러므로 경계이다.

거리를 지운다, 그것은 종종 사랑을 뜻한다.

그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집 안에서 살면서 집 밖에서 산답니다
모두들 너무나 사랑해서 그래요
그 마을 사람들 살을 보셨어요?
만지면 살짝 지워져요 만지는 사람을 받아들이느라고 그래요
그리곤 다시 생겨나요 다시 주기 위해서요

- 김정란, 「눈 내리는 마을」부분

그러므로 '당신'과 '나' 사이의 경계는 또한 '당신'과 '나'의 일부이기도 하다. 「졸음」(131)에서 시인은 사랑으로 경계를 이해한다. 경계선에 분명히 누군가 있었는데, 금세 사라진다. 아무래도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무슨 이상한 논리가 있는 것일까. 잠깐. 제목이 졸음이다. 데까르뜨 선생님, 우리가 존다면 졸고 '있는' 우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하겠지만,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인가요 죽어 '있는' 것인가요. (데까르뜨: "놀-고 '있'네.") 어쨌든 졸음은 깸과 잠의 사이에 있고, 잠은 다시 삶과 죽음의 사이에 있다. 기이한 것은 여기에서도 '털'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숫거웃은 눈꺼풀처럼 얌전을 떨고 있다. '삶'인 성기를 둘러싼, 생장의 상징인 털이 얌전하게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성교는 또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것이 아니던가. "당신도 아다시피 교수형을 당하는 사람들은 숨이 끊어지는 순간 힘차게 발기해서 사정을 하지." 이것은 조르쥬 바따이유의 소설 『눈 이야기』에 나오는 대사다. 바따이유는 『에로티슴』에서도 '생식과 죽음의 친화성'이라는 장章을 따로 두어 이렇게 언급한다: "시체 앞에서의 공포감은 우리가 배설해 내는 배설물 앞에서의 느낌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우리는 외설스러운 성행위 앞에서도 이맛살을 찌푸리며 외면한다. 성기도 배설물을 배설한다. 우리는 그곳을 수치스러운 곳이라고 부르며, 항문도 거기에 포함시킨다. 성 어거스틴은 성기의 외설성과 생식의 기능에 대한 언급에서, '우리는 똥과 오줌 사이에서 태어난다'는 통렬한 말을 한 바 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 괴로워하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즉시 사방에서 많은 산파들이 달려와서 밑을 만져보고, 나쁜 냄새가 나는 살덩어리를 발견하고는 그것이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내장요리를 너무 많이 먹은 탓으로 (여러분이 항문에 붙은 창자라고 부르는) 직장이 늘어나며 그녀에게서 빠져버린 항문이었다.

- 라블레, 『가르강뛰아/빵따그뤼엘』에서

우리는 똥과 오줌 사이에서 태어난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현대의 병원에서는 출산 전에 모두 관장을 시켜준다.)

그런데 시인은 그 죽음 속에서 말言語을 발견한 것 같다. 「졸음」에서 "너에게서 멀어질수록 빗소리에 민감해진다"고 말했던 시인은 보다 앞의 「상상력은 상상한다」(83)에서 "그대 있다 / 빗소리가 처음 시작된 곳에서"라고 노래했었다. 「상상력은 상상한다」에서 드러난 기이한 구강성교口腔性交의 묘사를 죽음을 노래하는 시로 보아도 될까. 이를테면 "성기가 내 혀를 빼앗는다(喝喝)"는 장면은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죽음의 침범 같은 것이 아닐까. 한두 연 앞으로 가보면 좀더 자세하다. "사타구니가 자라난다 / 어서 핥아라 어서 / 핥아 죽여라"(강조는 인용자).

혀langue는 그대로 말이다. "쓰라린 그 말 한마디 / 외치고 싶다"(98). 하지만 말할 수 없다. 그것이 중요하다, 말이란 일종의 금기이기 때문이다. 삶/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치명적인 독"(78)을 두려워한다면, 모두 입을 닫자. 이상하게도 시집 중간에 버티고 있는 「自序 : 말할 필요」(119-21)를 보자.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어떤 일을 알았다고 해도 그것은 기억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논의의 결론은 정해져 있다. 시인이 시집을 낸 이상, 시인은 이미 무언가를 말한 것이다. 제목부터 '말할 필요'다. "나는 저항한다. 나는 말한다. 참다운 모든 인연들에게 나는 나의 마왕을 빌려주리라."

시인은 아주 통속적으로 말하려 한다. 이를테면 "어린애가 앙앙 / 쥐가 끽끽 / 구두가 삐꺽삐꺽" 하는 소리 말이다. 이렇게도 말한다: "찌그러뜨린 말 / 일러바치는 광기 / 본뜬 익살"로도 말한다. 그것은 벌레같은 말이다. 이 시집에는 벌레와 관련된 시가 몇 있는데, 「벌레에 대한 변호」에는 '벌레'란 "벌레스크(burlesque)의 약어"라는 각주가 붙어 있다.

벌레스크는 원텍스트의 진지한 형식과 어조를 모방하면서 그 원텍스트와 부합하지 않는 하찮은 내용을 삽입하거나 이와는 반대로 원텍스트의 진지한 내용을 모방하면서 그에 걸맞지 않는 천박한 형식을 부여한다. 이로써, 기존의 문학이나 모든 문학장르 나아가 기존의 도덕적 관습까지도 익살스럽게 만들어버리는 대표적인 풍자양식이다.
-
정끝별, 『패러디 시학』

「위악」(118)이라는 시가 있다. 내용으로 보아 '위악僞惡'으로 읽어야 하겠다. "회문(回文)으로 만든 善"이라니, 이게 무슨 소린가. 회문이란 거꾸로 읽어도 같은 문장을 말한다. 시인은 여기서 선과 악의 사이를 '익살스럽게 만들어버린다.' 「행동하는 마음」(150)이나 「단속적인 절망들 간의 실험」(52)과 같은 시에서의 교묘한 바꿔치기를 볼 것이다. 해답은 「다른 계절」(48)에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이 어느 때인지 모르겠다 / 이곳에 누가 있는지 모르겠다 // […] 말이 왜 이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다"(11) (나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시의 증명을 해낼 수 있으나, A4용지가 좁아 이 발제에서는 생략한다.)

생각해볼 문제: 왜 시집 제목이 『광기의 다이아몬드』일까에 대해서 생각해도 좋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도 좋지만, 아무 것도 생각 안 해도 좋다.


광기의 다이아몬드
김록 지음/열림원

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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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서 오랫동안 잠자던 시집을 한 권 꺼내본 적이 있는가. 종이가 바스러질까 조심스럽게 꺼내서, 어딘지 색이 바랜 것 같은 모습에 눈을 껌뻑거린다. 그리고는 촛불 끄는 시늉을 하듯 조용히 입김을 불어본다. 더께앉은 먼지가 날아오르면서 눈을 따갑게 한다. 그렇게 한참을 눈을 비비고 나면, 별 무늬도 없는 장정인데도 제 색을 찾은 시집은, 미켈란젤로의 천정화처럼, 선명하게 윤기가 흐른다. 그러나 그 윤기를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선연하게 물이 흐른 흔적이 있다.



1


제비가 떠난 다음날 시누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제비집을 헐었다. 흙가루와 함께 알 수 없는
제비가 품다 간 만큼의 먼지와 비듬,
보드랍게 가슴털이 떨어진다. 제비는 어쩌면
떠나기 전에 집을 확인할지 모른다.
마음이 약한 제비는 생각하겠지.
전깃줄에 떼지어 앉아 다수결을 정한 다음날
버리는 것이 빼앗기는 것보다 어려운 줄 아는
제비떼가, 하늘 높이 까맣게 날아간다.

- 「제비집」全文

시인은 곳곳에서 먼지 앉은 시집을 발견한다. 그 위에 얹힌 먼지의 두께는 시집이 견딘 시간의 무게를 의미한다. "만큼"이라는 말이 의비하는 바가 그것이다. 그리고 "품다"나 "가슴털"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삶은 따뜻한 삶이다. "마음이 약한 제비"가 아마도 미련을 갖고 몇 번이고 둘러본 제비집의 모습이다. 집이란 기억을 담는 장소이고, 이를테면 몽상의 고향이다. 그리고, 기억은 먼지, 비듬, 터럭, 그리고 가루와 같은 입자로 등장한다.

서정주의 「新婦」에서 우리는 이미 이 '입자의 상상력'을 보았다. 우리는 "매운재"가 "초록 재"나 "다홍 재"와 다소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을 때로 받지만, 매운재의 사전적 정의가 "진한 잿물을 내릴 수 있는 독한 재"라는 것을 상기하면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가 견디어야 했던 시간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고, 거기서부터 매운재의 말맛을 다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리의 새가 죽어갔다. 한 가지 표정으로
굳어 있다. 응달에 흩어져 있는 새가 남긴 털들
한때는 새털이었던 털들이 흩어지고
털을 잃은 몸이 웅크리고 있다. 털들은 더 넓은 곳으로
흩어지고, 새의 죽음은 더 넓은 곳으로 퍼진다.
오그라든, 틀이 안 맞는 발가락들, 빛을 잃은 발톱들이 남긴
검은 그림자, 높은 곳에서 반들거리던 털들이 흩어지고
새 가슴에 구멍이 뚫렸다. 문을 열고 줄지어, 뿔뿔이 흩어지는
수십 마리의 구더기…… 검은 점을 하나씩 달고…… 날아다니던
구더기, 엉금엉금 기어간다. 너무 오래 갇혀 지냈다.

- 「구더기」全文

하나의 삶이 다만 많은 입자들로 바뀌어버리는 이 놀라운 환원은, 그 흩어짐을 통해서 더욱 세상에 편재하는omniprésent 것이 된다.

그런데 화자話者는 그 제비집을 헐었다고 했다. 제비가 몇 번이고 아쉬워했던, 자신의 몸을 품어주었던 제비집을 화자는 떠난 다음날 헐어버린다. 여기서 그가 빗자루를 들고 제비집을 허는 이유를 설명해야 할까. 그의 빗자루는 흙가루와 먼지와 비듬, 그리고 제비의 가슴털을 위한 것이다. 그는 마음이 약한 제비의 "상처", 그 기억들을 쓸어버린다. 그러나 불행히도 제비집은 사라지지 않는다. 화자가 제비집을 헐어버렸는지 모르지만, 제비의 기억은 화자가 쓸어버린 제비집 속에 남아있다. 다만 흩어질 뿐이다.


나는 매달려 생을 다 허비하고 말 거야
[…]
나를 가두는 것이 있다면
밑으로 끌어내리는 힘이었다. 알 수 없는 끝내 느낄 수도 없는
시간이었다. 나는 천천히 지워져갔다 단단해지면서.

- 「좀약」부분

좀약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흩어지지만 좀약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죽어가는 좀약은 자신의 몸뚱아리를 흩으면서 자신의 몸을 퍼뜨린다. 이 시는 「구더기」와 함께 죽음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 시로서 중요성을 가진다. 시간이 우리를 지운다는 것은 쉽게 인식 가능하지만, 지움으로써 단단해진다는 것은 얼핏 이해하기 힘든 명제다.

봉현이 형은 방위병이었다. 그는 한 마리 개구리였다.
죽은 다음에 강해졌다. 강해지기 위해
죽었다. 입을 닫고 눈을 부릅떴다. 살아 남은 者는
약하다, 그래서 울음 주머니가 필요하다


- 「개구리」부분

「개구리」에서도 그와 같은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죽은 다음에 강해졌다"는 진술은 그 다음 행의 "입을 닫고 눈을 부릅떴다"는 근거를 딛고 있다. 그는 이제 더이상 울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좀약은, 좀약은 죽음으로써 다만 사라져 없어지지 않는가. 그러나 오래된 장롱을 열었을 때 흠씬 풍겨오는 좀약 냄새를 생각해보자. 그 좀약은 기화氣化됨으로써 더욱 단단해진 것이 아닌지.

「그 노인」에서는 제비가 노인으로 바뀌어 다시 등장하고 있다. 노인이 살던 집 처마끝의 제비집에 시선을 멈춘 화자는, 거기서 다시 노인의 생전 모습을 그려본다.

봄이 왔다. 담쟁이넝쿨 뻗어나와 그 집
흙벽을 덮는다. 봄에 얼어 죽은 노인이 살던 집
처마끝 제비집, 바람에 검불들 흔들린다. 백발의 노인은
꺼칠한 수염을 달고, 마루 끝에 서서 먼 산을 바라보곤 했다.


- 「그 노인」부분

읽는이들는 그 집이 흙벽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유심히 볼 일이다. 흙벽은 그 이름부터가 옛집古家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그 입자인 흙을 쌓아 만들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퇴적형의 기억을 생각하게 된다. 노인이 얼어죽자 담쟁이덩굴은 그 기억의 흙벽을 덮어버린다. 덩굴은, 보아뱀처럼, 기억의 흙벽을 자신의 몸 속으로 완전히 소화시킨다.

우리는 시의 마지막에서 그 노인이 평생을 홀아비로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의 앞부분에 제시된 폐가閉家의 모습으로 봤을 때, 그 노인에게는 후사後嗣가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무도 따지 않는 열매들 붉어져갔다."가 갖는 명백한 생식生殖의 의미도 여기서 풀린다. 그 노인은 어쩌면 스스로를 구더기라고 생각했을까.

구덩이에서 알을 깔 수는 없었다
더러운 生을 물려줄 수는 없었다


- 「구더기의 꿈」부분

노인이 얼어죽었다는 데서, 우리는 안락함을 주지 못하는 집의 존재를 새롭게 깨닫는다. 바슐라르의 행복한 상상력과는 달리, 때로는 집도 아무런 구원이 되지 못한다. 자기 집을 얹고 사는 동물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들의 집은 그들에게 힘겨움은 주면서도 진정한 휴식은 되지 못한다.

집이 되지 않았다 도피처가 되지도 않았다

- 「달팽이의 꿈」부분




2

시인에게 진정한 휴식은 오로지 죽음으로만 가능하다. 노인의 죽음 혹은 그 죽음의 공간, 그도 아니면 그 죽음의 기억을 덮은 담쟁이덩굴에서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다. 또, 하늘나라를 가리킨다 하더라도 어색하지 않은 따뜻한 남쪽나라를 향해 날아간 제비집에서도 그것은 발견된다. 죽음이 휴식이 된다는 것은, 흔히 지적되듯이 물화物化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물화는, 시인에게는, 결코 어둠에 속한 것이 아니다. 시인이 묘사하는 삶의 모습들이 오히려 어두움에 속한 것이다.

이제 그 눈물 속에서 보낸 밤들을 돌려보낸다
흐르는 강물아, 썩어 흐르는 강물아 그 깊은 밤들은 이제
끝이다
[…]
이제는 추억을 버려야 살 것 같다
[…]
강둑에 앉아 마른
풀을 만지며 흘러가지 않는 구름들을 본다, 전할 말 없느냐


- 「沙金」부분


화자는 눈물 속에서 밤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흐르는 강물에게 밤의 작별을 고하는 것은, 그 강이 밤과 같은 것이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강물은 추억을, 썩어 흐르는 강물은 썩은 추억을 가리킨다. 앞서 인용했던 「구더기」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보자. 새가 죽고 나서 날아다니던 수십마리의 구더기가 새 가슴의 문을 열고 흩어졌다고 시인은 적고 있다. 사체死體에 파리가 쉬를 슬면 구더기가 나타난다는 인식을 시인은 뒤집고 있는 것이다. 구더기는 살아 있을 때 그 몸 속에 있다가, 새가 죽자 거기서 나와 흩어진다. 시인에게서는 삶과 죽음이 역전되어 있다.

한편 화자는 지금 구름을 동경하고 있다. 그 구름은 이를테면 보들레르의 이방인이 "나는 저 구름을 사랑하오... J'aime les nuages..."라고 고백했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이 시의 구름은 고정되어 있다. 흘러가지 않는다. 그 흐르지 않음이 강물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는 것은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 "전할 말 없느냐"는 의문문의 객체가 강물인지 독자인지 밝히기는 힘들지만, 확실한 것은 화자는 이제 곧 구름으로 지칭되는 다른 곳으로 갈 것이라는 것이다. 그가 가려고 하는 곳은 과거가 없는 곳이다.

몇몇은 사생아를 낳고
과거 없는 곳으로 떠났다.

- 「1985년」부분


과거가 없다면 그곳은 미래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은 사생아를 낳았기 때문이다. 과거가 없는 곳이란 없으며, 다만 현재화된 과거, 물화된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새하얀 구름이 받쳐주는 색채의 감각에 힘입어 그곳은 밝은 곳이다. 밤의 추억들을 버리고 시인은 밝은 곳으로 떠나고자 한다.

나는 언젠가 이 무거운 몸을 버리고
환해질 것이다
그때는 아무것도 아닐
움직이지 않는 내 몸을 덮어줄 먼지들이
내 주위엔 얼마든지 있다

- 「솜공장에서―먼지」부분


죽으면 그 죽음을 덮어줄 수 있다. 그러면 그 먼지 안에서, 담쟁이덩굴 안에서, 그리고 흩어지면서 죽음은 환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그 죽음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생식을 부정한다는 면에서 삶에의 부정, 세상에의 부정에 다름 아니다. 시인은 시간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죽음 속에서 시간은 더이상 흐르지 않는다.

죽음이란, 단지, 물러가지 않는 어느
튼튼한 벽과 영원히 만나
날개를 가두는 것이라고,

- 「바퀴벌레의 춤」부분

아아아아, 입만 크게 벌리고 있다
갈 곳을 잊고 있다 쓸쓸하고 변하지 않는
공기가 한 줌, 그 크게 벌린 입 안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 「죽음, 변하지 않는―노가리」부분

더듬어 무덤 하나를 찾고 있다, 타버린 돌들로 뒤덮인 작은 무덤. 죽음은 늙지 않는 것이리.

- 「판교리2―무덤」부분


그러므로 시인에게 있어 죽음은 없어짐은 아니다. 죽음은 그대로 있음이다. 아, 이제 드러났다. 시인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을 송두리째 가두고 싶은 것이다. 가엾은 사랑을 빈집에 가두는 몸짓으로, 시인은 자신의 사랑의 기억을 가둔다.

앞으로도 그런 배꽃은 피지 않을
거다. 배꽃은 녹지 않는 눈이다. 내리지 않는 눈이다. 그리고
배꽃은, 배나무집 女子가 안겨주는 작은 혹이다. 눈 한 번
맞추지 못한 女子, 나 혼자 쳐다보고 感電된 그 女子의 먼
눈이다.

- 「배나무집 女子」부분





3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이다. 그는 자식을 낳는 족족 잡아먹었다. 크로노스는 시간이라는 뜻이므로 대개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것은 시간'이라는 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크로노스의 막내 아들인 제우스가 어머니 레토와 함께 크로노스를 속여 죽인 다음, 배를 갈랐더니 거기에서 하데스와 포세이돈을 비롯한 그의 형제·자매들이 뛰쳐나왔다는 사실은 모두 간과하고 있다. 시간은 모든 것을 삼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은 그 삼킨 것을 그 안에 보존한다. 시간에 의해 소화된 과거는, 현재로서의 과거이다. 하데스와 포세이돈이 제우스보다 형임에도 제우스가 맏형 노릇을 하게 된 것은, 크로노스의 뱃속에 있었던 그들이 갓난아이의 모습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이야기는 그점을 보다 명확하게 해 준다.

먼지의 집에서 먼지 속에 쌓여 있던 모든 것들은, 그러므로 항상 부활의 조짐을 갖고 있다. 그것들은 그곳에 죽어 있음에 틀림없지만, 그럼으로써 보존된 것이다. 이를테면, 「그 노인」은 노인이 평생 홀아비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끝나고는 있지만, 그 바로 앞 연에서 까치가 집을 지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까치는 텃새라는 점에서나 노인이 죽은 다음 덩굴과 함께 들어왔다는 점에서나 노인의 적자嫡子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이미 부활의 단초가 보이고 있다. 특히 시집 뒤편에 실린 나무 시편들에서 그런 부활의 모습은 쉽사리 관찰된다.

그가 온다, 밤이 되기 전에 와서
가시가 되는 것이다. 두툼한 가시가
기다림의 가시가, 그대로 있다. 그가
다녀간 흔적들이, 혹 같은 열매들이
맺혀 있다.
 
불 속에서만 타오르는 연기의 냄새를 숨기고,
늙고 병든 여자가 숨어산다.
숨어산 지 오래 되었다.


- 「향나무」全文


열매와 불이 사실은 하나임을 지각하고, 여자가 타오른다는 진술을 잘 생각해보면 이 시는 부활의 시편이 되는 것이다. 향나무, 그 여자는 그를 기다리며 혹 같은 열매를 맺으며 숨어산다. 향나무의 향내를 생각해보자. 그것이야말로 죽음으로 단단해진 좀약의 인식이 아닌가. 그러므로 향나무의 향내야말로 부활이 아닌가 말이다.

참아보거라 참아보거라, 검은 흙에서 싹이 돋아나고
깍지를 풀고 콩이 커진다.

- 「측백나무1」부분


코로 숨쉬면 아픈 기억이 생생하고 입을 벌리면 썩은 이의 아픔이 구역질을 내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어머니는 담에 걸렸다. 그러나 이토록 어려운 시절과 함께 화자는 식물이 가진 생명력에 주목한다. 흙은 세월에 썩은 검은 입자이지만, 거기에서 콩은 더욱 잘 자라는 것이다. 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열매는 저 혼자 떨어지고, 그 안의 씨는 또다른 생명을 잉태하는 것이다.

나는 죽지 않았다. 나는 자식을 낳았다. 검은 피부의 아버지가
불쌍해졌다.
[…]
나는 죽을 순 없어, 베어져도 남길 것이
있어, 다시 살아나야 할 이유가 있어.
잘린 부분에서 자, 새로 태어나는
싹을, 두 눈 꼭 감고 지켜보아라.

- 「측백나무4」부분


늘 푸른나무인 측백나무는 시간 속에 갖힌 것처럼 늘 같은 색이다. 시간이 덮어버린 탓일까. '나'는 죽지 않고 자식을 낳았다. "검은 피부의 아버지"가 '나' 자신을 지칭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나면, 그 고통스러운 삶이 실은 부활의 삶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두 눈 꼭 감고 지켜본다.

그 아이 돌아오지 않고 기다렸네
[…]
그 아이 무덤 위에
억센 조선잔디 보름처럼 입히고 싶었네
그 자리 억새 사이 빛 고운
잔디씨, 누런 봉투 가득 훑어
나만 홀로 학교에 갔었네


- 「잔디씨」부분


두 눈 꼭 감고 지켜보았다. 기다려보았다. 그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긴 그렇다. '나'는 노란 단무지처럼 늘 아팠고, 어머니는 담이 결렸다. 그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아이 무덤 위에서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거기에는 억센 조선잔디가 있다. 누런 봉투 가득히 그 고운 잔디씨를 받아가는 '나'. '나'가 시인이 된다면 분명히 이 입자의 크로놀로지chronologie를 한 권의 시집으로 써내지 않을까.


먼지의 집
이윤학 지음/문학과지성사


Posted by 엔디
시인이란 본래 패배자들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러므로 외부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거나 좌절된 자신의 욕망을 글을 통해서 배설하는 것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글 속에서 항상 욕망의 몸짓을 찾을 수 있다. 작가 이청준은 일종의 시원적 글쓰기로 일기와 편지를 상정하고 있다. 그는 「지배와 해방」이라는 단편에서 이정훈이라는 소설가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이청준 2000, 111-112):

이 일기 쓰기와 편지 쓰기의 행위에는 우리가 지금 찾아가고 있는 문제의 해답―다시 말해 작가가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중요한 해답의 단서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짐작을 하신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마는 일기를 적거나 편지를 쓰거나 그런 것에 자주 매달리는 사람들은 대개가 바깥 세계에서 자기 욕망의 실현에 실패를 하는 경향이 많은 쪽이기 쉽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일기를 쓰는 행위가 보다 소극적이고 내향적인데 비해, 편지를 쓰는 사람 쪽이 조금은 더 적극적이고 외부 지향적이라는 차이는 있을망정, 어느쪽이나 똑같이 바깥 세계에 대한 공통의 원망을 지니게 됨으로써, 그 바깥 세계가 자기 생각과 주장에 거꾸로 승복해오기를 갈망할 뿐 아니라 궁극에 가서는 풍속이나 질서까지도 자기 식으로 뒤바꿔놓기를 바라는 내밀한 욕망을 지니게 된다는 점입니다.

시인에게는 항상 어떤 '적敵'이 있다.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은, 그러므로 항상 전쟁과 같이 치열한 것이다. 적어도 훌륭한 시인들은 그렇다. 그런데 그 적과 시인의 관계는 간단치가 않다. 어떤 의미에서는 적은 시의 원인이기도 하고, 시인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가장 친숙한 존재가 바로 적일 수 있다. 시인은 그러므로 때로 그 적을 극복하려는 경향보다는 그 적 속에서 안주安住하는 경향을 보인다. 적이 없이는 시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김우창은 소월의 시를 논하면서 그 주主가 되는 전통적 정서 '한恨'을 두고 "고통은 세계에 대한 반격이 되지 않고 감미로운 슬픔이 되어버린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그는 놀랍게도 곧이어 "素月이 의식적으로 전통적이 되었을 때, 보다 더 선명한 詩的 形象化에 성공한다"고 지적한다(김우창 1977, 45). 단순화시켜서 말하자면, 적은 시 자신인 것이다.

보들레르와 이성복의 적은 '권태'라고 할 수 있다. 권태ennui는 『쁘띠 로베르』 사전에 따르면 "① 깊은 슬픔, 커다란 슬픔 ② 어떤 모순을 겪는 고통 ③ 나태나 단조로운 일 혹은 관심의 상실에서 오는 피로와 텅 빔의 인상 ④ 막연한 우울, 관심을 잃게 만들고 아무 것에도 즐거움을 얻지 못하게 만드는 정신적 피로"이다. 권태는 슬픔이면서, 일종의 피로다. 그리고 그것은 텅 빈 것이기 때문에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막연한 것이다. 그 원인을 알 수 없다면 권태는 결국 치료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권태는 결국 삶의 파괴에 다름아니다(구연상 2003, 193):

권태는 삶 자체를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권태는 사람을 게으름뱅이로 만들거나, 무능력자로 만들기도 하고, 그 결과 사람이 맺어야 할 갖은 관계들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더 나아가 권태에 빠진 사람은 삶의 필요 자체를 느끼지 못하거나, 삶을 위한 발전이나 도전 또는 모험 등을 부질없는 짓으로 간주하곤 한다. 권태가 나태를 낳고, 나태가 뒤떨어짐을 낳는다면, 권태는 승진탈락 내지 삶의 실패를 뜻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권태는 철저히 제거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권태ennui라는 낱말은 우울spleen과, 그리고 나아가서는 죽음mort과 연결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러한 부정적 상황은 시를 통해서 철저하게 형상화됨으로써 뚜렷한 예술적 성취로 나타난다. 보들레르와 이성복은 권태와 우울에서 그리고 죽음의 안에서 치열하게 시를 쓴다. 그리고 그 시가 목표하는 것은 권태와 우울과 죽음의 극복, 혹은 결국 권태와 우울과 죽음 그 자체이다. 우리는 보들레르와 이성복에게 있어서 권태가 어떻게 시적 대상으로 자리 잡는지의 과정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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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정적 결론: 권태, 시의 동력

보들레르와 이성복에서 공통되는 것은 권태를 현실로 인식하고 그 현실에 대응하는 방안이다. 두 시인은 나란히 그 권태 속에서 잠을 자거나 죽음을 청했다. 물론, 그 대응 방향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성복이 좀더 시대의 아픔에 직접적으로 민감했던 것은 80년대 한국의 상황과 떨어뜨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그 둘의 차이는 여전히 명백한 선을 긋고 있다. 이를테면 보들레르는 『악의 꽃』 마지막에 위치한 시 「죽음La Mort」에서

오 죽음이여, 늙은 선장이여, 때가 되었소! 닿을 올리시오!
이 곳은 이제 지겹소, 오 죽음이여! 떠날 준비를 하십시다!
하늘과 땅이 잉크처럼 검다 해도,
우리 마음은, 그대도 알다시피 빛으로 가득차 있소!

그대의 독을 우리에게 부어 우리를 격려해 주오!
그 불꽃이 이토록이나 우리 머리를 불태우니, 원컨대
심연 깊숙히 잠기기를, 지옥이든 하늘이든, 무슨 상관이오?
미지의 깊숙한 곳까지, 새로움 찾기 위해.


O Mort, vieux capitaine, il est temps ! levons l'ancre!
Ce pays nous ennuie, ô Mort ! Appareillons!
Si le ciel et la mer sont noirs comme de l'encre,
Nos coeurs que tu connais sont remplis de rayons!

Verse-nous ton poison pour qu'il nous réconforte!
Nous voulons, tant ce feu nous brule le cerveau,
Plonger au fond du gouffre, Enfer ou Ciel, qu'importe?
Au fond de l'Inconnu pour trouver du nouveau!

라고 말함으로써, 죽음이 가진 무언가를 시 중요하게 바라고 있다. 이미 헛된 이상이 보통의 '여행'에 대한 극복에서 사라져버렸으므로, 이 '죽음'은 어떤 이상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 죽음은 죄péché와 연결된 권태가 교수대를 꿈꾸었듯이 어떤 보편적인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생이 그침이 아니라 새로운 삶인 것이다.

반면, 이성복에 있어서는 죽음조차도 그의 휴식은 아니다. 그는 애써 죽음에 도달해 무덤에 묻혔다가도,

일어나라, 일어나
내 어머니 부르실 때마다
황폐한 무덤을 허물고 나는 일어섰다


- 「처형處刑」

에서 보는 것처럼 힘겹게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는 같은 시에서 "가능하면 이 잔을 치워 주소서……"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죽기를 갈망하지만

희미한 불이 꺼지지는 않았다 아, 꺼졌으면 하고 중얼거렸다 꺼지지 않았다

- 「희미한 불이 꺼지지는 않았다」

는 비극적인 삶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가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본질적으로 삶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삶이 가엽다면 우린 거기
묶일 수밖에 없다


- 「세월의 습곡이여, 기억의 단층이여」

는 비관주의의 인식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것은 두 시인의 공통점이다. 두 시인은 모두 삶을 '죄'와 '권태'의 현장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두 시인의 시가 나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보들레르가 「시계L'horloge」에서 그토록 두려워했던 것이 '시간'이었는데, 마지막 장에 가서 늙은 선장 죽음에게 "시간이 되었소!"라고 외친 것은, 시간이 곧 죽음이 그의 시의 동반자라는 것을 인식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한편, 이성복의 경우에도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슬픔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낸 말 '치욕'을 두고 "그토록 피해다녔던 치욕이 뻑뻑한, / 뻑뻑한 사랑이었음"(「오래 고통받는 사람은」)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래 고통받는 이여
네 가슴의 얼마간을
나는 덥힐 수 있으리라

라고 선언하는 시인의 마음속에서, 고통이 바로 자기 시의 동력이라고 느끼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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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엔디
―보들레르에 관한 몇 가지 모티프와 그 이성복 초기시를 향한 영향관계 소고小考


1921년 안서의 번역시집 『오뇌懊惱의 무도舞蹈』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되고, 1941년 미당의 『화사집花史集』에 실린 「수대동시水帶洞詩」에서 "샤알·보오드레―르처럼 설ㅅ고 괴로운 서울女子를 / 아조 아조 인제는 잊어버려"라고 노래된 보들레르는 프랑스 상징주의의 시조始祖로서 여러 가지 층위로 한국시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시적 영향이라는 것은 마치 복류伏流하는 물과도 같아서 시집으로 묶여 출간된 '땅위'의 결실만으로는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결실을 비교함으로써 그 사이의 근친관계parenté를 알아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 중에서도 이성복의 경우는 보들레르와의 관계가 표면적으로 상당부분 드러난 경우에 속한다. 그것은 '이성복적 풍경' 속에서 보들레르가, 이성복 시의 가구家具로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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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대신하여

한 도시가 다른 도시의 과거로 완전히 함몰될 수 없듯이, 한 시인도 다른 시인의 과거로 환원될 수는 없다. 이성복을 이루는 요소는 보들레르 이외에도 많다. 가령 이성복의 또다른 스승은 카프카였다. 둘 사이의 유사성을 고찰해 보는 것은, 필연적으로 둘 사이의 차이점을 밝히는 일에 골몰하게 만든다. 그러나 보들레르가 이성복 시의 기본적 토양을 마련해주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둘 사이의 차이점이 있다면 '가족'의 문제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성복은 스스로의 시적 여정을 또한 '아버지―어머니―당신'의 세계로 압축시킨 일도 있는 반면에, 보들레르는 가족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근의 이성복은 보들레르에게 이렇게 잔소리한다:

수레바퀴가 돌아도 중심은 돌지 않는다. 테두리가 돌면 중심 축은 나아간다. 중요한 건 이뿐, 테두리가 중심 축 폼을 잡아서는 안 된다. 테두리가 돌기에 중심 축이 나아가는 게 아니라, 중심 축이 나아가기에 테두리는 도는 것. 우리는 모른다, 누가 이 수레를 어디로, 언제까지 끌고 가는지. 영원한 수레는 나아가고 헛되이 바퀴는 돌고 도는 것. 아 미치겠다 보들레르야, 보채지 좀 마라. 네 헛소리가 자갈밭 구르는 수레바퀴 소리보다 크구나. 어째 넌 그리 말귀를 못 알아듣냐.

- 이성복, 「보채지 좀 마라」 전문全文

그 잔소리의 근거는 보들레르의 「독자에게」의 두 줄이다: "우리 숨쉴 때마다, 안 보이는 강물처럼 죽음은 / 희미한 탄식 소리 지르며 허파 속으로 내려간다" 이성복이 얻은 세계관이 보들레르보다 더욱 현세지향적이라는 것은 바로 이곳에서 알 수 있다. 그것이 가족주의와 '음양'의 힘이다.

그러나 도시의 삶을 통해 근대성을 추구하고, 그것을 아름다운 시로 형상화하는 모습은 두 사람이 같다는 것은 기억해두어야 한다. 새로운 시는 아마도 거기서 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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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엔디
現代詩는 낭만을 배반합니다. 近代의 詩는 낭만을 긍정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하면서 이중적인 태도를 취해 왔지만, 현대시에서 그런 것은 통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제 똑.똑.해졌기 때문이죠. 센티멘틀이 바로 낭만임을 알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낭만, 즉 로망roman이란 말은, 사실 불어에서는 소설, 즉 이야기란 뜻이거든요.

낭만은 통속적 이야기, 전개가 뻔한 이야기, 그것입니다. 삶은, 삶은 그것과 어떤 관계일까요. 그것은 인환의 말대로 "(인생이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 것일까요? 어떤 의미에서 나는, 이 대목에서 인환에게 박수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인환은 그렇다면 이미 시인은 아닙니다.

詩는 새로운 삶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혁.명.시.란 419, 518, 1789, 1917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 곧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新生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詩가 말言의 사원寺인 것도 그 때문이지요.

공원길을 함께 걸었어요
나뭇잎의 색깔이 점점 엷어지면서
햇살이 우릴 쫓아왔죠
눈이 부시어 마주보았죠
이야기했죠
그대 눈 속의 이파리는 현실보다 환하다고

그댈 사랑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워
나뭇잎이 아름답다고 했죠
세상 모든 만물아 나 대신
이야기하렴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그러나 길은 끝나가고
문을 닫을 시간이 왔죠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기 위하여
나뭇잎이 아름답다고 했죠

- 「고독에 관한 간략한 정의」全文


노혜경의 시도 그 근저에 머물고 있습니다. 세상의 사랑은 많이 실.패.하는 것 같지만, 사회가 유지되는 걸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나 결국은 사랑을 찾고, 인류를 만들어 갑니다. 그런데 왜 성복은 "기다리던 것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고 했을까요? 노혜경의 시가 3련까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대시는 무서운 시입니다. (아직도 근대를 벗어나지 못한 예술은 영화입니다. 만화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아직 예술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이들 장르에서는 아직도 죄의 개념이 있고, 감독이 말이 많습니다. 그건,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대단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지요. 무서운 오만함입니다.)

現代詩는 그러므로 모든 관계를 否定합니다. 먼저 작가auteur와 작품œuvre의 관계를 부정합니다. 남는 것은 다만 글texte일 뿐입니다. 더구나 그 글은 쉿! (믿을 수 없는 글입니다…)

라자로가
거의 썩은 몸에 붕대를 친친 감고
동굴 입구에 나타났을 때
저 더러운 몰골은 죽은 자/산 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아무도/모두가 외치지 않은/외친 것은
(기록자는 신중히 삭제한다)

허공 중에 흩어져버린 살과 뼈를 급히 끌어 모아 다시 사람이 되는 일이
생각처럼 쉽고 즐거운 일이었겠냐고
라자로가 말하지 않은/말한 것은
(기록자는 한 줄 더 삭제한다)

너무 긴 세월을 메아리치고 있는
(나는 알아야 한다)
지워져버린 글자들
내가 죽여버린 글자들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

- 「진기한 기록」全文

정신분석학 이래로 작가의 모든 말은, 이미 떽스뜨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그의 떽스뜨에 이미 수많은 가위질이 행해졌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모든 詩는 '진기한 기록'일 뿐입니다. 그래서 시는 현실에서 두 단계나 떨어진 IDEA에 불과합니다. (모든 예술이)

노혜경의 시집 제목 그대로 우리의 모든 시는 『뜯어먹기 좋은 빵』에 불과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Then Jesus said unto them, Take heed and beware of the leaven of the Pharisees and of the Sadducees." (Mattew 16:6)

…그러나 바로 그 시가 다시 우리의 삶이 되기 시작합니다. 무섭고도 맹렬한 기세로. 기다리던 사람이 오지 않기 시작합니다. 삶이 지워지기 시작하고, 사랑이 실.패.하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게 現代입니다. (종말론자들이 이해되시지요?)



거기서 우린 만난 겁니다. 종말론자들처럼. 사랑.

2004. 10. 1.


뜯어먹기 좋은 빵
노혜경 지음/세계사

Posted by 엔디
김혜순의 시는 '몸의 시'이다. 인간이 육체와 욕망을 발견하게 된 것이 르네상스 이후라고 한다면 그때부터 생산되었을 수많은 시들에 몸의 묘사나 언급이 안 나올 리 없지만, 김혜순의 시를 '몸의 시'라고 하는 것은 그보다 더 나아간 의미에서이다. 대개의 경우, 시에서 나타나는 몸은 주체이거나 대상이다. 1인칭의 몸이 다른 대상을 욕망할 때, 그 '몸'은 주체의 몸이다. 또 1인칭이 3인칭의 몸을 욕망할 때, 그 '몸'은 대상의 몸이다. 그런데, 김혜순의 시에서 '몸'은 주체이자 곧 대상이다. 이 강렬한 나르시시슴narcissisme, 그것이 김혜순 시의 본질이다.

김혜순 시에서는 특징적으로 물의 이마쥬가 무척 강렬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거기서 물의 이마쥬는 자세히 살펴보면 실은 거울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물의 경우에는 나르키소스 자신이, 그리고 거울의 경우에는 이상李想이 예증적으로 그렇듯이 물과 거울은 자기 자신과 만나게 하는 동시에 이를 단절시키는 기능을 주로 한다. 때문에 나르시시슴의 끝은 늘 불행하다. 그러나 이처럼 불행으로 끝나는 나르키소스 이야기는, 벌써 주체와 객체의 분리를 상정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김혜순의 시에서 보이는 나르시시슴과는 거리가 있다.

「물 속에 잠긴 TV」는 그 징후가 보이는 작품이다. 첫째 연 맨 앞에서 화자는 "TV 욕조 속에서 하루 종일 나오지 않는 그녀를 들여다"본다. 그런데, 셋째 연 첫 행에서 화자는 앞서의 진술을 조금 바꾸고 있다. "나는 이어서 그녀라는 이름의 TV를 들여다보네." 그녀가 "TV 욕조 속"에 있다는 진술과 "그녀라는 이름의 TV"라는 진술은 거울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엇바뀜이다. 거울은 항상 자기자신을 '주인공'으로 비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울은 주체와 대상 사이를 단절시키기도 하지만, 주체와 대상이 있는 문맥contexte을 희석화시키는 기능도 한다. 그래서 나르시시슴은 생산성이 없는, 망각의 시학이 될 가능성이 짙다. 더구나 목욕이라는, 가장 강조된 자기애自己愛가 그 중심에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나르키소스는 아사餓死했던 것이다.

하지만 김혜순의 위의 시에서 물(거울)과 등치되는 매개로서 'TV'가 관련되고 있다는 것은 시사적이다. 거울과 TV는 주체와 대상을 만나게 하면서 동시에 단절시키는 유사점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밖의 기능은 모두 서로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거울이 자기자신을 비추는데 비해 TV는 자기자신이 아닌 것을 비추고, 거울이 문맥을 희미하게 만드는데 비해 TV는 문맥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거울 속에서 우리는 자신 속에 함몰되는데, TV 속에서 우리는 TV로 표상되는 세계 속에 함몰되어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화자는 그 TV를 거울삼아 그 속에서 자기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정 뉴스가 끝나면 그 뉴스에 이어서
그 뉴스를 견뎌내는 건 바로 그녀
오늘밤 자정 뉴스는 오십 명의 넥타이 맨 남자들을 보여주었지만
여자들이 맡은 배역은 불에 타 죽은 아이를 껴안고
몸부림치며 우는 역할뿐

화자는 TV속에 등장하는 "여자들" 속에서 자기자신을 보는 것이다. 본래 TV의 특성은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그래서 마치 우리가 TV를 지배하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하는 데에 있는데, 이 시의 화자는 그렇게 TV를 '지배'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그 뉴스를 견뎌내"고 있다. 그녀의 TV 시청은 "점점 더 깊은 땅속으로 끌려들어가서는 / 묻혀서도 숨쉬는 허파처럼 / 끝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TV 속에는 "여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의미심장한 2연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3연에서 앞서 인용했던 '주인공'이 된 "그녀"가 TV속에 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계속 "이어서" TV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시에서 TV가 거울역할을 대신했다는 것은 김혜순의 나르시시슴이 개인차원을 넘어선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거울은 자의식만을 강조하고 TV는 문맥만을 강조하는데 비해, "물 속에 잠긴 TV"는 두 가지 역할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이 TV에서부터 김혜순의 사회학적 상상력은 시작된다. télévision의 télé-가 본래 '원격遠隔의-'라는 뜻을 가진 접두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여기서 김혜순이 표현한 여성의 자의식이 사실은 보다 넓은 파문을 통해 퍼질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얼음 비단, 얼음 아씨」는 바로 그 점을 집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시이다. 길을 걷고 있는 화자를 누군가 안는다. 그 '누군가'는, "천사"로 지칭되고 있는데, "아주아주 멀고 먼 곳"에 있는 이다. 그는 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을 환하게 밝히며 들어"오고, "핏줄마다 살결마다 스며[든]"다. 그런데 여기서, "천사"들이 내 속에 있다는 것에서 사실은 나도 "천사"들을 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함께 안고s'embrasser있는 것이다. 생각을 더 진전시켜보면, "천사"들이 사실은 화자 자신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사"들은 화자의 안에 있기 때문이다. 곧, 화자의 자의식 속에 있기 때문이다.

"천사"와 화자를 연결시켜주는 것은 "氷蠶"이다. "氷蠶"은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누에인데, 서리와 눈 속에서 나며 이 누에고치에서 나온 실로 짠 천은 젖지도 않고 타지도 않는다고 하는 전설상의 동물이다. 더불어 얼음 빙氷자가 예비하고 있는 것은 화자의 눈물이다. 화자의 눈물은 "효모"로, "솜털"로 "가볍고도 환한" 이마쥬로 제시되어 있다. 눈물이면서 환하고 눈물이면서 젖지도 타지도 않는다고 하는 진술은, 그 눈물이 결코 소모적이고 자기 함몰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그 눈물은 생산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 눈물(곧, "氷蠶")로 화자와 "천사"가 튼튼하게 엮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눈물의 이마쥬는 「자욱한 사랑」에서는 "눈보라"로 바뀌어 나타난다. "이토록 자욱한 눈보라" 때문에 화자는 "헤집고 갈 수가 없"다. 그러나 여기서 "눈보라"가 부정적인 이마쥬만이 아닌 것은 바로 이어서 나온다.

세상에! 돌림병처럼 자욱한 눈보라!
이 병 걸리지 않고는 네 몸을 건너갈 수가 없겠구나

여기서 우리는 "눈보라" 역시 거울처럼 만남과 단절을 함께 주는 매개체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눈보라"는 거울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매개체이다. 거울은 만남을 주는 척하면서 실은 단절을 주는 매개체라면, "눈보라"는 단절을 주는 것 같은데, 사실은 만남을 주는 매개체인 것이다. '눈보라 돌림병'에 걸리기만 하면 "네 몸 속"으로 건너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돌림병"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돌림병"이란 말 자체와 "결핵"이 피를 상기시키고 있고, "어린 새"와 "아가의 심장을 만들어오시는 그분이 / 아무도 몰래 넣어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주머니"가 자궁(子宮)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월경menstruation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여성성을 말하는데 있어서 월경이 갖는 위상은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것이 여성만이 할 수 있는 것, 곧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과 관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레위기Lévitique 이래로 늘 부정하다고 여겨졌고 그것이 여성이 열등하다는 증거로까지 쓰여왔던 것이다. 여기서 월경을 일종의 병病으로 지칭하는 것은 '월경'이라는 단어가 종종 갖는 사회적 문맥과 관계가 깊다. 화자가 "나 어떻게 이 숨찬 눈보라 건너가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그러나 모든 여성들은 그 눈보라를 건너가야만 하며, 그 눈보라, 곧 "氷蠶"을 통해서 먼 곳에서도 서로를 안을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의 이와 같은 형상화는 '어머니로서의 여성'이라고 불릴만 하다. 바로 그 점에서 「어머니 달이 눈동자 만드시는 밤」은 좀더 상세하게 이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어머니는 "달"로 표상되고 있는데, 이것은 앞서 서술한 '월경'과 관계가 깊다. 월경을 '달거리'라고도 하는 것이다. 달에서 어머니를 보는 것은 아르테미스 신을 상기시킨다. 아르테미스 신은 달의 신이며 수렵의 신인데, 달의 둥근 굴곡이나 활의 둥근 모습이 만삭의 배와 같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바이다. 아르테미스 여신은 달의 신이자 출산의 여신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시에서 문맥은 좀더 넓게 펼쳐지고 있다. 화자가 "걸어들어"가는 곳이 바다이기 때문이다. 왕왕 모성성을 드러내는 바다의 모티프들이 여기에 드러나고, 밀물과 썰물을 두고 "우리 어머닌 한 천 년째 바다를 휘젓고 계시다"고 쓰고 있는데서 볼 수 있듯이, 여기서의 어머니는 개인적인 어머니가 아니라 세계의 어머니, 생명의 창조자로서의 신이다. 되짚어보면, 「자욱한 사랑」에 나왔던 바로 그 "네가 태어나기 전 먼먼 옛날부터 / 뜨거운 손길로 아가의 심장을 만들어오시는 그분"이 바로 어머니인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라노스에서부터 시작되는 남신들의 계보는 "바다 깊이 잠들어"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아버지'에게 배꼽이 있다는 것이다. 배꼽은 탯줄의 흔적이므로, 남신인 '아버지'도 실상은 '어머니'로부터 온 것이다. '누가복음'에서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와 아퀴나스의 제1원인으로서의 신의 우주론적 증명에서 보이는 남신의 역사도, 사실은 여신이 없다면 있을 수 없다는 거대한 인식의 전환이 여기에 보이는 것이다. 아퀴나스를 풍자하여, 제1원인으로서의 '어머니'는 "바다를 휘[저]"어서 생긴 "파도란 파도 / 그 모든 파도의 물방울 방울마다" 맺히는 "영롱한 눈망울"을 만들고 있다.

그 '어머니'는 '할머니'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혜순은 일찍이 씌어진 「딸을 낳던 날의 기억」에서

거울을 열고 들어가니
거울 안에 어머니가 앉아 계시고
거울 열고 다시 들어가니
그 거울 안에 외할머니가 앉으셨고
외할머니 앉은 거울을 밀고 문턱을 넘으니
거울 안에 외증조 할머니 웃고 계시고
외증조할머니 웃으시던 입술 안으로 고개를 들이미니
그 거울 안에 나보다 젊으신 외고조할머니
돌아 앉으셨고
그 거울을 열고 들어가니
또 들어가니
또 다시 들어가니

와 같이 쓴 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혜순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세계의 어머니, 곧 가이아로서의 대모라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어머니와 할머니와 증조할머니와 고조할머니와 ……로 이어지는 연대기-계보는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우주적 친연성의 필요조건이 된다. 이런 연대기가 있었기 때문에 "氷蠶"의 정신감응télépathie이 가능했던 것이다. 「잘 익은 사과」에서 맨 처음에 들려오는 소리들은 이와같은 우주적 친연성을 예표해주는 장치이다. 그런 우주적 친연성은 특히 화자가 "고향 마을"로 가고 있기 때문에 더욱 두드러지는데, 그 "고향 마을"에는 다름아닌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노망든 할머니"가 바로 대모다, 가이아다, 제1원인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넌센스라 하더라도 이 할머니 역시 언젠가 '어머니'였음에 틀림없다면, 화자가 그 할머니에게 우주적 친연성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처사라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김혜순적인 나르시시슴이다.

그러나 화자는 더이상 "氷蠶"의 이불 속에서 있을 수는 없다. 「어머니 달이 눈동자 만드시는 밤」에서 화자는

그러나 시방은 다시금 내가 그 바다에서 걸어나올 시각
나는 가슴에 나란히 포갰던 손을 풀고
오대양 육대주 넘실거리던
내 두 눈동자의 주름을 거두어 들고
이불 밖으로 몸을 솟구쳐올린다

고 쓰고 있다. 화자가 그 아름다운 친연성의 천국에 "천사"들과 함께 있을 수 없는 이유는, 그녀가 여전히 "자정 뉴스는 오십 명의 넥타이 맨 남자들을 보여주"는 '지금-여기'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여기'를 보여주는 시는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의 다른 시편들에 훨씬 많은데, 특히 표제시인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는 시인이 직접 남신에게 항의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남신의 역사(달력)는 지금껏 본 여신의 역사보다 훨씬 지루하게 그려져 있다. 남신들은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며, 지겨운 열두 곡의 노래를 계속해서 틀어댄다. 생명의 탄생과 관계하는 여성성의 환희와 비교해보면 남성의 역사의 권태로움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사실 「물 속에 잠긴 TV」만 보아도 그런 권태는 충분히 드러난다. 넥타이 50개가 쉴새없이 들락날락하는 TV!

권태는 시의 안과 밖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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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지음/문학과지성사

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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