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어릿광대의견해/그말이잎을물들였다 9

오매와 오오미: 정치와 말

언어의 조탁에 관심이 많았던 시문학 동인 시인 김영랑은 『영랑시집』에 실린 시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에서 가을이 깊어가는 시절에 대한 감탄이 담긴 누이의 한 마디를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내용으로만 보면 이 작품은 전적으로 그 누이의 말이 계기가 되어 쓰여진 작품으로 보이는데, 첫 연의 시작과 두 연의 마지막에서 똑같이 반복되는 그 한 마디가 시의 발단과 절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오-매 단풍들것네」 장광에 골불은 감닙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니리 바람이 자지어서 걱졍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보아라 「오-매 단풍들것네」 - 김영랑,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전문 강희숙 조선대 교수의 전라도의 언어 11: “오메 단풍 들것네”에 따르면 호남..

'국어순화'와 언어 심미주의: '우리말 다듬기' 유감

무분별한 한자어나 외래어의 사용은 분명히 언어의 양극화를 심화시켜 정보의 불균형을 낳는다. 정보가 민주적으로 배포되지 않는 곳에서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때문에 한자어나 서양 외국어 독해에 어려움을 겪는 대중들에게 외래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운동은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이를테면, '국어순화' 운동의 가장 큰 성과로 생각되는 '갓길'이 그렇다. 숄더shoulder나 노견路肩이라고 하면 썩 잘 다가오지 않는 개념이 갓길이라고 하면 한눈에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게다가 갓길은 숄더나 노견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말이다. 정과리(1998, 38)는 "'노견'이라는 가금家禽 종자 같은 이름을 벗어던지고 새로 차려 입은 우리말이 상큼한 여성성을 연상케"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우리말 다듬기 ..

'실용'주의와 언어 제국주의: 이명박 정부의 영어 이데올로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신경 쓰는 것은 한반도 대운하와 기업 투자, 그리고 영어 교육 뿐인 것 같다. 영어 몰입교육을 주창하다가 한 발 물러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다시 영어 이야기를 꺼냈다. 이경숙 위원장은 "처음 미국에 가서 (표기법 대로) '오렌지'를 달라고 했더니 못 알아들어서 'Orange'라고 말하니 알아듣더라"는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영어 교육을 위해서 외래어 표기법을 바꾸자고 제안했고, 인수위 공식적으로는 "학교 교육만으로 영어를 해결하기 위해 5년간 4조원을 들이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경숙 위원장은 적어도 한 대학의 교수로 오래 일했고 총장까지 지냈던 교육자다. 게다가 그런 사람이 국내에 TESOL(Teaching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

한국어의 국제 기구 공개어 채택과 한글 찬사 사이의 간극

한국어, 최초로 국제기구 공식언어 채택 쾌거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모든 언어가 '도구'로서의 기능만 갖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언어의 타동사적인 측면은 자동사적인 측면보다 훨씬 강조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언어 예술이라고 불리는 문학이나 언어를 통해 내밀한 사유를 하는 철학이 아니라면, 언어는 분명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도구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언어가 다른 언어보다 뛰어나다거나 못하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언어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이유는 분명히 언어 외적인 것이다. 옛적의 중국어, 프랑스어가 그랬고, 지금의 영어가 그렇다. 대학 시절 한 선생님은 대학생들이 소위 '원서'라고 하는 깨알 같은 영미권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 나라의 학문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

도우미 유감遺憾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들…’ - 조선닷컴: 도우미라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노래방 도우미'가 망쳐놓았다,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끔 말은 가능한 한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동의를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 언어심미주의자가 망설일 분명한 이유가 있다: 도우미의 '출신성분'이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로 도우미가 가장 처음 쓰인 것은 1993년, 대전 국제박람회EXPO 때다. 박람회 안내요원을 20대 여성들로 뽑아, 그들을 '도우미'로 이름했던 것이다. 선진국들 사이에서는 올림픽만큼이나 중요하고 인기있는 행사라고 언론에서 난리를 치던 엑스포였기 때문에, 도우미라는 이름도 쉽게 대중들에게 각인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당시의 광고나 팸플릿을 조금만 관심있게 들여다 보았다면 '도우미'의 출..

분데스리거?

차두리가 '분데스리거'라고 했다. 가십성 기사를 써대는 작은 언론사의 일이 아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분데스리거'로 뉴스 검색을 해보면 알겠지만, KBS와 MBC, 동아일보, 미디어오늘 등의 굵직굵직한 언론사가 이와 같은 용어를 썼다. 분데스리거라... 난 축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영국과 에스빠냐, 이딸리아, 독일의 축구 리그를 4대 리그라고 한다는 것은 들은 적이 있다. 각 리그는 당연히 제나라 말로 표기한다. 영국은 프리미어 리그Premier League, 에스빠냐는 프리메라 리가Primera Liga, 이딸리아는 세리에 아Serie A, 그리고 독일은 분데스리가Bundesliga인 것이다. (독일어는 복합명사를 무조건 붙여 쓴다.) 분데스리가는 연방, 연맹이라는 뜻의 분트Bund에 동맹, 단체라는..

한국 말의 로마자 표기법

1 로마자 표기법을 둘러싼 논란과 2000년 발표된 새 로마자 표기법안을 살펴보고 나서 나는 다시 『훈민정음』을 생각했다. 정인지는 『훈민정음』에 붙인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사방의 풍토가 구별되고, 성기聲氣가 또한 따라서 달라진다. 대개 외국(중국 이외의 나라)의 말은, 그 소리는 있되 그 글자가 없어서, 중국의 글자를 빌어다 통용通用하니, 이는 마치 모난 막대기를 둥근 구멍에 끼운 것과 같도다. 어찌 능히 통달하여 거리낌이 없을 것인가. 然四方風土區別, 聲氣亦隨而異焉. 蓋外國之語, 有其聲而無其字. 假中國之字以通其用, 是猶枘鑿之鉏鋙也, 豈能達而無礙乎. 우리가 한국 말을 로마자로 표기하려 애쓰거나 외국 말을 한글로 표기하려고 애쓰는 것은, 여러 사정으로 그것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지 결코 그..

어느 원어민 영어 강사의 오만

지하철에서 무료로 배포되는 《메트로》 4월 28일자에는 한국인의 '콩글리시'에 대한 비웃음이 실렸다. 론 샤프릭이라는 성균관 대학교 영어강사의 글이었는데 그의 글을 읽고서 나는 부아가 났다. "한국엔 눈에 거슬리는 콩글리시 너무 많아요" 론 샤프릭 성균관대 성균어학원 강사 kimhyuck@chollian.net 영어를 배우는 일이 한국인에게, 특히 대학생들에게는 아주 중요하고 절실한 일인 것 같다. 취업을 위해서든, TOEIC 고득점을 위해서든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못해 차고 넘친다. 그러나 공부하는 것에 비해 영어 구사능력은 별로인 것 같다. 한국인들은 평소 대화중에 외국어, 특히 영어를 많이 섞어 말을 한다. 같은 민족인 북한사람들과 의사소통이 잘 안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니. 채팅, 커뮤니..

프랑스의 언어정책과 한국의 언어정책

I. 서론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국제 사회에서 영어의 중요성이 점차로 강조되고 있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했으며, 공용어로 지정하지 않은 나라에서도 제 1외국어로 영어를 배우는 비율이 매우 높다(복거일 1998, 170-171). 이 때문에 최근 우리 나라도 '영어공용화론'이라는 논쟁이 있었고, 잠재적으로는 지금도 상반된 주장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영어를 배우는 인구가 점차로 늘고 있지만, 영어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것은 아마 미국에 대한 견제의 일부일 것이라 생각되는데, 모든 것을 경제의 논리로 환원시키는 신자유주의 논리가 거기에 스며있다. 그러나, 김종명이 인용한 독일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문화를 단순히 경제적 요인으로 격하시켜서는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