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어릿광대의견해 74

소설가의 죽음: '간지나는 이야기' 자판기

1 사람들은 왜 이야기를 읽을까? 또 왜 이야기를 쓸까? 내게 항상 관심을 끄는 말은 이런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쓰면 소설책 몇 권은 된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술에 취해 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의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어쨌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참 많다. 블로그나 까페가 붐비고, 인터넷 댓글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다. 술에 취한 것처럼 다들 자기 이야기를 내뱉고,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는 욕을 '씨부리'는 것이다. 이청준은 일찍이 언어사회학서설이라는 연작 소설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 가운데 한 편은 「자서전들 쓰십시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코미디언 피문오 씨의 자서전 대필 작가 윤지욱이 자서전 쓰기를 그만두는 이야기를 ..

한국어의 국제 기구 공개어 채택과 한글 찬사 사이의 간극

한국어, 최초로 국제기구 공식언어 채택 쾌거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모든 언어가 '도구'로서의 기능만 갖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언어의 타동사적인 측면은 자동사적인 측면보다 훨씬 강조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언어 예술이라고 불리는 문학이나 언어를 통해 내밀한 사유를 하는 철학이 아니라면, 언어는 분명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도구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언어가 다른 언어보다 뛰어나다거나 못하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언어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이유는 분명히 언어 외적인 것이다. 옛적의 중국어, 프랑스어가 그랬고, 지금의 영어가 그렇다. 대학 시절 한 선생님은 대학생들이 소위 '원서'라고 하는 깨알 같은 영미권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 나라의 학문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

국어 교과서 조심!

“국어교과서, 정권정당화 수단으로 이용돼” : 책 : 문화 : 뉴스 : 한겨레 지금 초등학교 5학년 국어 교과서에는 예전 같으면 좀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 두 편이나 실려 있다. 하나는 1학기 교과서에 실려 있는 '우리 집 우렁이 각시'라는 글이고, 다른 하나는 2학기 교과서에 실린 '엄마는 파업 중'이라는 글이다. '우리 집 우렁이 각시'는 평소 일상 속에서 권위적이었던 아버지가 실직한 이후 가족들 몰래 집안일을 한다는 내용이고, '엄마는 파업 중'은 집안 일이 엄마에게만 떠맡겨지자 엄마가 집 뒤뜰의 나무 위에 올라가 파업이라며 시위를 한다는 내용이다. 어른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쉽게 깨기 어렵고, 이야기를 꺼내기도 어려운 성 역할에 대한 내용과 주부 파업에 대한 내용이 눈길을 끈다. 아마 김대중 정부(국..

'디 워'에 대한 진중권의 언급과 관련하여

진중권 “‘디 워’ 비평할 가치도 없어”…네티즌 ‘발끈’ : 영화·애니 : 문화 : 뉴스 : 한겨레 '디 워'에 대해 처음 쓴다. 나는 '디 워'를 보지 않았지만, 그 애국심 마케팅과 관련하여 내셔널리즘 문제와 파시즘 문제, 그리고 감독 스스로의 코멘트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관련 기사나 블로그 포스팅은 유심히 살펴보았다. '디 워'를 혹평하는 평론가들에게 옹호자들이 했던 말은, 이 영화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 가족들이 함께 즐겁게 보는 영화이니 그런 식의 비평은 하지 말라, 는 것이었다. 즉, 영화에는 즐기기 위한 영화와 예술로서의 영화가 있는데 '디 워'는 예술로서의 영화가 아니라 즐기기 위한 영화이므로 '예술로서의 비평'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심 감독이 열심히 만들었고 한국 영화로서 이 만한 CG를..

블로거가 된 작가: 인터넷 소설과 블로그

이메일도 쓰지않던 박범신, 인터넷 소설 쓴다 : 문화일반 : 문화 : 뉴스 : 한겨레 블로그 회사마다 파워블로거, 킬러콘텐츠를 '영입'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 같다; 블로거라는 사람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이고, 콘텐츠는 쉽게 말해 블로그에서 하는 '말'이다. 이미 파워블로거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서비스를 옮겨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데이터의 백업이라든지 하는 문제에서부터 블로깅 툴의 익숙도 문제까지 크고 작은 문제들이 걸려 있다.) 그러니까 블로그 회사 입장에서는 블로그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이 새로운 방법이 될 수 있겠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박범신의 소설을 연재한다고 한다. 아마추어 작가들이 스스로의 시나 소설을 블로그에 올리는 경우는 많지만, 등단 소설가가 블로그를 통해서(만) 자..

한국의 악플 문화와 새로운 형태의 구글 코멘트

구글 댓글, 국내 포털은 흉내낼 수 없는 그 무엇 1 한국 포털의 댓글은 이제 아는 사람 사이에선 유명하다. 박노자 교수는 "악플"의 문화라는 글을 통해서 유별난 한국의 악플 문화에 대한 진단을 내린 적이 있는데... 진단 내용은 또 그렇다 치고 가령 한국 문화를 공부하려는 외국 학생에게는 - 어느 정도 성숙된 학생이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논문을 써야 할 일만 아니라면 - "네이버에서의 기사 댓글들을 읽어보라고" 교원의 양심을 걸고 권고할 수 있습니까? 저 같으면, 학생에게 "한국" 그 자체가 싫어질 것 같아서 절대 권고 못할 것입니다. 특히 "외국"이 개입되면 아예 입에 올리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하도 많이 나오기에 저만 해도 참아 못읽지요. 예컨대 한국 여성들과 가끔가다 추잡한 일을 벌이는 일부 영..

로스쿨과 사법 민주화

로스쿨이 바꿀 수 있는 사법의 세계 1. 손 무덤 로스쿨이 이토록 큰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은, 그 동안 법조인들과 변호사들의 삶이 평탄했기 때문이다. 시민의 손발인 판검사가 편했다는 것은 시민들이 그간 겪은 고통이 크다는 뜻이고, 말을 팔아 돈 버는 서비스업종 변호사가 편했다는 것은 아직까지 그들 앞에서 '손님'들이 '왕'인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 말은... 대다수의 시민들에게 법은 아직 먼 존재라는 말이다. 가령 단병호 의원의 딸인 단정려 씨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고 싶다는 소망"은 아버지와 같다고 밝힌 것(한겨레)이 이례적인 것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은 법의 보호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박노해 시인은 시 「손 무덤」의 일절을 통해 노동자가 느끼는 법과의 거리를..

뱀을 닮을 필요성: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과 단기선교

0. 선교의 중요성 주지하다시피 기독교에서의 선교란 무척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다. 마태복음 28장에서, 그리고 사도행전 1장에서 그리스도는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이를 지상至上 명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이후, 기독교의 역사는 선교의 역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개개의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보낸 선교사라고 보아야 옳다. 흔히 '임무'의 뜻으로도 쓰이는 mission은 본래 예수회Jésuite가 해외로 선교사를 파송할 때 사용했던 말로 '보내다'라는 뜻의 라띤어 'mittere'에서 나왔다고 한다. 선교사를 보내는 일, 선교사로 가는 일은 기독교의 임무mission인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영혼의 구원이 기독교의 존재 이유는 아니라는 점..

고도의 심리전?

탈레반, 피랍여성 울먹이는 육성 공개 탈레반에 피랍된 임현주 씨의 육성을 공개한 것을 두고 언론에서는 '고도의 심리전'이라고 난리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피랍자들의 육성을 들려주는 것은 저런 국제적으로 알려진 단체뿐 아니라 우발적으로 어린이를 유괴하는 유괴범들도 다 하는 기본적인 '협상' 방법이다. 상대를 잘 경계하고, 상대의 방법을 분석해야지 상대를 과장하는 것은 좋지 않다. 상대를 과장하는 과정에서 쓸데없이 감정이 들어갈 수 있고, 이 사안에는 또 민족주의가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 또 현재 사회에 만연한 개신교에 대한 반발심리도 커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고인이 되기는 했지만, 나머지 사람들이라도 건강하게 무사히 돌아오기를 빈다. 그리고, 개신교도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 개신교가 제발 좀 ..

기독교와 사탄의 2분법: 이랜드 사태

이랜드 사태가 점점 심각한 상태로 빠져든다.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오십년대 평양에서 '빨갱이'들을 악마라고 불렀고, 칠팔십년대에 학생운동하고 노동운동하던 사람들을 마귀라고 불렀고, 오늘날 노조 간부들을 사탄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우구스띠누스가 받아들인 플라톤주의의 쉬운 2분법이 기됵교에게 익숙할 수밖에 없지만, 저런 명칭은 지나치게 정치적이라서 더 부끄럽다: 일단 상대를 사탄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상대에 대한 모든 인식은 닫혀버리고 만다. 종교도 정치처럼 언어예술이자 립서비스로 변하는 순간이다. 이럴 때 개신교인임이 무척이나 부끄럽다,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