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댓글, 국내 포털은 흉내낼 수 없는 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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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포털의 댓글은 이제 아는 사람 사이에선 유명하다. 박노자 교수는 "악플"의 문화라는 글을 통해서 유별난 한국의 악플 문화에 대한 진단을 내린 적이 있는데... 진단 내용은 또 그렇다 치고 가령

한국 문화를 공부하려는 외국 학생에게는 - 어느 정도 성숙된 학생이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논문을 써야 할 일만 아니라면 - "네이버에서의 기사 댓글들을 읽어보라고" 교원의 양심을 걸고 권고할 수 있습니까? 저 같으면, 학생에게 "한국" 그 자체가 싫어질 것 같아서 절대 권고 못할 것입니다. 특히 "외국"이 개입되면 아예 입에 올리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하도 많이 나오기에 저만 해도 참아 못읽지요. 예컨대 한국 여성들과 가끔가다 추잡한 일을 벌이는 일부 영어 강사 관련의 기사가 나간 적이 있었는데, 상당수의 댓글은 "양넘에게 ... 벌려주는 우리 나라.... 문제야! 대한민국의 진정한 남성들이여, 저 ...들을 정신차리게 교육시키고 혼내주라!"는 식이었어요. 예컨대 외국 여성이 이와 같은 문구를 읽어서 우리 국내 마초주의의 깊이를 여실히 느끼게 되면 계속 한국학하기가 쉽겠습니까? 제 학생에게도 몇 번 현실적 문제로 나타난 부분이고, 저로서 아주 두려운 부분입니다.

라고 걱정하는 부분을 보면서는 악플의 심각성이 극에 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동네 창피하다.', '국가적 망신이다.'와 같은 유교적 국가주의의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바깥에서 보는 한국의 댓글 문화가 저렇다면, 저게 바로 한국에 대한 선입견 없는 객관적 판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득해졌던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가 속한 공동체의 수준이 이 정도구나 하는 생각의 확인remind이었다고 할까. (박노자는 다른 글에서 아프간 피랍 사태에 대한 한국 누리꾼들의 반응을 실은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지誌의 기사를 링크하고 있기도 했다.)

한국의 댓글 문화가 아주 건전하지는 못하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정부에서도 고심 끝에 대형 포털 등에서는 '제한적 본인 확인제'라는 반半실명제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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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구글 뉴스(미국판)에서는 메일을 통한 코멘트(댓글과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게시라는 방식을 시도한다고 한다. 전문가나 관계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하는데, '네이버보다 못하다.'라든지 '웹web적이지 않다.'라는 평가도 있고 심지어는 '구글이 뭐만 하면 찬탄하는 건 사대주의가 아닌가?'하는 조금 다른 범주의 평가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상당히 괜찮은 방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와 같은 형태의 구글 뉴스의 코멘트는 실제로 악성 댓글의 부작용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매체media의 기능을 어느 정도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도 있다:

1) 먼저 구글 뉴스의 코멘트는 악플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것은 구글에서 모든 코멘트를 확인한 후에 게시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구글 뉴스에 코멘트를 게시하려면 특정 주소로 관련 메일을 전송해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번거로운 작업이다. 개개의 악플은 조직적이고 치밀한 계획을 통해 이루어진다기보다는 순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번거롭다'는 점에서 이미 악플은 차단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번거로움'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2) 전문가나 관계자의 코멘트만을 게시하므로 코멘트의 질이 높을 수밖에 없다. 구글 검색을 통해 가끔 해외의 포럼forum을 열람하면 상당히 질 높은 대화가 오가는 것을 가끔 볼 수가 있는데, 이와 같은 코멘트 게시의 방식은 이 수준 높은 대화를 통해 그 자체로 하나의 추가 기사나 박스 기사를 읽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줄 수 있다.

3) 만약 기사에 오류가 있거나, 명예훼손 등의 사안이 관련된 경우 구글 뉴스의 코멘트는 상당한 정도로 관련된 문제를 경감시킬 수 있다. 이 경우 언론을 상대로 정정보도청구권이나 반론보도청구권 등을 행사해서 정정 기사 또는 반론 기사를 게제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겠지만, 그 경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므로 구글 뉴스의 코멘트가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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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포털의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댓글 문화의 자유도나 편의도를 중요시하고 있거나, 댓글 문화의 자정 작용을 믿는 사람들일 것으로 짐작된다. 당장 생각해도 구글 뉴스의 코멘트처럼 불편하고 부자유스러운 데다, 일일이 '검열'을 거치는 모양새는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악해지지 말라Don't be evil."는 구글의 모토에는 상당히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구글의 모토는 중국 내 서비스를 하면서 중국 정부의 검열 방침을 수용하면서 수난을 받기 시작했지만, 정부의 검열을 받는 것과 뉴스 코멘트의 내용을 확인 후에 게시하는 것은 다르다: 중국 정부와의 타협은 중국 내 서비스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노린 것이지만, 코멘트에 대한 자체 검열 정책은 말초적인 댓글에 대한 봉쇄를 통해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한국에는 종이 신문이나 TV 뉴스를 보면서 이에 대한 댓글은 어떤 게 달렸을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건전한 호기심을 넘어 때로는 선정적이고 말초적인 폭력적 댓글을 즐기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그만큼 말초적인 인터넷 댓글은 중독성이 있다. 구글은 그런 식으로 페이지 트래픽을 증가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요컨대, 다소 이상해보이는 구글이 이번 코멘트 정책은 한국적 댓글 문화에 대한 연구를 통해 나온 고육책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다.



덧.

이와 함께 구글 뉴스의 코멘트는 웹페이지의 캐시와 블로거 이외에 사용자생산콘텐츠(User Generated Contents)를 구글의 서버에 저장한다는 점에서 이채로운 서비스로 판단된다. 세계일보 기사에 따르면 저장 기간은 약 30일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Posted by 엔디
위키피디아, 구글 검색엔진과 정면대결?: (세계일보)

위키피디아의 설립자가 위키피디아처럼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검색 엔진을 만들 거라고 한다. 내심 구글을 따라잡는 검색 엔진이 목표인 모양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구상하고 있는 자세한 방식은 모르겠지만, 위키의 방식으로 검색은 아무래도 무리가 아닐까 싶다. 그 이유는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보람이 없고, 양이 방대한 데다 다른 언어에 무력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위키피디아가 '자원봉사'의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각 분야의 전문가 내지는 준전문가들이 '내가 지식을 전달하는 전달자다'라고 하는 일종의 사명감이나 명예욕 또는 최소한 재미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디드로Diderot를 비롯한 계몽 철학자들의 결론이 백과전서였던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는 계몽주의의 '발상지'였음에도, 불어에는 '계몽주의'라는 단어가 없다. 불어로 계몽주의는 빛의 시기Siécle de lumière라고 하는데, 여기는 빛이 가진 '지식'과 '지혜'의 속성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 신화를 잘 들여다보면 프로메테우스가 코카서스 산에 묶이게 된 것도 '불'을 인간에게 전해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바슐라르Bachelard는 『불의 정신분석』에서 아버지나 선생님보다 더 잘 알고 싶은 경향을 '프로메테우스 콤플렉스'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 길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위키피디아를 이끌던 유저들은 자신들을 일종의 '프로메테우스'나 '계몽철학자'들로 여겼을 것이라는 짐작 때문이다.)

하지만, 검색 알고리듬을 기계 대신 수행하는 작업은 자원봉사로 하기에는 보람이 지나치게 적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실제로 많은 작업을 사람이 하는 '통합검색' 시스템이 있어서 잘 알 수 있는데, 그것은 흔히 노가다(<どかた, 막일)로 불릴 만큼 고된 일이다. 한국에서는 돈을 받고서야 하는 일이라는 말이다.

더구나 백과사전과 일반 검색 대상 웹페이지는 그 양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차이가 크며, 업데이트 속도도 '하늘과 땅 차이'다. 그 모든 페이지들에 조금이라도 사람의 손길이 미쳐야 한다면 그 시간과 비용이란 엄청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글과는 달리 위키피디아형 검색 엔진은 개발자들 또는 자원봉사자들이 사용하는 언어(아마도 영어) 이외의 언어에는 절대적으로 무력해지고 마는 것이다. 각 언어의 문법 구조만 알면 자연언어처리를 통해 자동으로 목록이 만들어지는 구글형과 달리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구조는 사람들이 자신이 아는 언어로만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위키형 검색 엔진이 성공하려면 각 언어권마다 충분한 수의 열정적인 자원봉사자들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 위키아 검색엔진의 성공 가능성은 극히 낮다. 위키아가 잊고 있는 것은 그뿐이 아니다: 구글이 개발하거나 사들인 수많은 툴들... 블로거닷컴, 피카사, 캘린더, 지메일, 스프레드시트 등도 이제 꺾기 힘든 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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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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