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3

고도를 기다리며 쏟아내는 장광설: Beckett『고도를 기다리며』

'고도Godot'는 죽음이다. 도대체 사람이 이생에서 죽음말고 무엇을 기다릴 수 있단 말인가. 이성복이 삶이란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던 것처럼 고도기다리기 역시 '집으로 가는 길'이다. '집'에 도달하면 그들은 살게(즉, 죽게) 된다. 블라디미르 내일 목이나 매자. (사이) 고도가 안 오면 말야. 에스트라공 만일 온다면? 블라디미르 그럼 살게 되는 거지. -『고도를 기다리며』오증자 옮김, 민음사, 2000, 158쪽.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죽기를 바라고 목을 매달아도 그들은 죽을 수 없다. 에스트라공 그렇다면 당장에 목을 매자. 블라디미르 나뭇가지에? (둘은 나무 앞으로 다가가서 쳐다본다) 이 나무는 믿을 수가 없는걸. (24쪽) 그곳은 '죽지 못하는 곳'이다. 에스트라공이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

더 아름다운 천국: Hesse『페터 카멘친트』

『페터 카멘친트』는 헤세의 데뷔작이다. 나는 그래서 이 작품이 정돈되기 보다는 거칠은 어떤 것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그런 것을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작품은 깨끗했다. 데뷔작에서부터 우리가 흔히 '헤세적'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잘 드러나고 있었다. 가령 자연 친화, 기독교적 신의 거부, 민중적 삶에 대한 애착 등이 여기서 페터 카멘친트라는 인물을 통해 제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아마 이것들은 이미 그의 유년기에 형성된 것이기가 쉽다. 인도 선교사였던 그의 아버지와 동양학자였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상상해 볼 수 있겠다. 카멘친트는 '촌뜨기'다. 그는 도회지에서 사교생활을 해보지만 결국 그는 촌뜨기로서 시골로 돌아간다. 줄거리만 가지고는 『수레바퀴 아..

출판과 나의 삶: 민음사 박맹호 대표 강연 요약

강연의 시작은 박맹호 대표의 유년시절의 추억이나 전란 당시의 상황, 그리고 대학 졸업 후의 '낭인浪人'생활 같은 개인적인 문제로 시작했지만 마땅히 이어갈 말이 없었던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박맹호 대표는 연대기에 따른 출판에 대해 조금씩 이야기했다. 그가 출판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대부분의 책은 일본어 중역본이었다고 했다. 내용뿐 아니라 장정·디자인도 일본 책에서 그대로 베껴 글씨만 한글로 바꾸었다고 했다. 그는 거기서 '창피함'을 느꼈던 것 같다. 1950년대의 우리나라 출판은 '구루마くるま' 즉 수레에 끌고 다니며 출판사를 경영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책이 거의 일어판 중역이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때부터 시작한 출판사로 계몽사나 삼성출판사, 금성출판사 등을 예로 들었다. 그렇지만 50년대 ..

상황Situations 2003.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