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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3.29 내재적 접근론과 과거사법
객관적이라는 것은 기준이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잣대가 하나라면 분란이 일어날 염려가 없다. 그것이 법치주의의 근간을 이룬다. 법치주의의 한계는 이미 선진先秦 시대에 유가 철학자들과 도가 철학자들이 누누이 강조했던 것이지만, 비할 수 없이 커진 현대 사회는 반드시 체계système에 의해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경계인'이라 불리는 송두율 교수를 생각한다. 송두율 교수가 귀국 후 잡혀 있었던 이유는 그가 이북에서 노동당에 가입했던 전력 때문이다. 보수 언론들은 큼지막한 활자로 그 글씨를 써 놓고 가판대에서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두 장을 넘기면 송두율 교수가 썼던 책에서 '내재적 접근론'이 문제라면서 짐짓 독자들의 판단에 훈수를 두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접근론'은 사실 어려운 전문용어는 아니다. 그 사회를 안에서 바라봐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이 논의는, 서울 가봐야 서울 안다는 당연한 이야기다. 물론, 가치판단을 전혀 배제하고 있다는 단점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 보수파들이 자주 드는 예를 그대로 언급한다면, 그가 인권 탄압이나 비민주성이 이남보다 이북이 더 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분명 문제가 없지 않다. 아주 소박한 수준의 내재적 접근론이라면 히틀러의 독재조차 그 사회의 눈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아서 상황이 금새 역전되었다. 과거사진상규명법이 논란거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진보언론과 진보단체들은 이 법안에 적극 찬성하고 있고, 말과 글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문장들이 드물게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 시점에서 소박한 수준의 '내재적 접근론'을 주창하는 이들은 송두율 교수의 맞은 편에 있던 사람들이다. 일제시대에 살아보지도 않고 쉽게 단죄하지 말라는 것이다.

소박한 수준의 '내재적 접근론'은 한마디로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이북의 상황도 일제 치하의 상황도 그들에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한 중대한 요인이다. 우리는 그 요인들을 존중해야 한다. 동시에 이와 같은 접근방식의 한계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인식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의 잣대로 모든 사물의 길이를 재는 것이다. 사실 정쟁을 풀 실마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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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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