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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飜譯語成立事情』
『번역어성립사정』
柳父章, 서혜영 옮김, 일빛.
2003년 4월 1일 초판.

<ㅉ=5>글머리에

이 책에서 다루는 '사회' '개인' '근대' 등의 번역어는 학문과 사상의 기본 용어이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나 신문지면 등에도 자주 나오는 말이다. 그런데도 가정의 거실에서 가족들끼리 또는 직장 동료들끼리 편하게 대화를 할 때에는, 이런 말은 보통 사용하지 않는다. 상당히 교육 정도가 높은 사람의 가정이라 하더라도 그럴 것이다. 만약 편안한 자리에서 누군가가 이러한 말을 입에 올린다면, 주위 사람들이 얼른 자세를 고쳐 앉거나 자리가 썰렁해질지도 모른다. 즉 이런 말은 사용되는 장소가 한정돼 있어서, 일상 생활의 장에서가 아니라, 학교나 활자 속의 세계 혹은 집안이라 해도 공부방에서만 사용된다. 일상어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다른 세계의 말이다. 우리들은 생활 속에서 각각의 장면에 따라 이러한 말을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난해한 책을 많이 읽은 젊은이라 하더라도 교실이나 친구와 토론하는 자리에서는 어렵고 딱딱한 어감의 말을 자주 입에 올릴지 몰라도, 어머니 앞에서는 그런 말투를 사용하지 않는다.

일본의 학문과 사상의 기본 용어가 일상어와 따로 놀면서 이 책 곳곳에서 지적한 바 여러 가지 왜곡이 따르게 되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렇게 언어가 따로 놀게 된 데에는 한자를 수용하기 시작한 이래 형성된 뿌리 깊은 배경이 있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번역어가 일상어와 동떨어져 있는 덕에 근대 이후 서<ㅉ=6>구 문명의 학문과 사상 등을 빨리 받아들일 수 있었던 측면도 있다.

이와 같은 우리들의 숙명적인 사실을 놓고 좋으냐 나쁘냐를 가르기보다는, 우선 사실 그 자체를 알았으면 한다. 그것은 의외로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쓴 이유이다.

이 책 앞부분에서 다룬 여섯 개의 용어인 '사회' '개인' '근대' '미' '연애' '존재'는 바쿠후(幕府) 말기에서 메이지(明治) 시대에 걸쳐 번역 과정에서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혹은 실질적으로 신조어와 동등한 말이다. 그 뒤에 다른 네 개의 용어, 즉 '자연' '권리' '자유' '그' ('그녀'는 신조어)는 원래부터 사용되던 일본어로 일상어 속에 살아 있던 말인데, 번역어로서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 것들이다. 이상 두 가지 경우 번역어가 갖는 문제는 서로 약간의 차이가 있다. 특히 후자와 같이 전래된 일본어를 번역어로 사용했을 경우에는, 서로 다른 뜻이 혼재하면서 상호 충돌하는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양자 모두 번역어 특유의 효과로 인해 뜻을 알기 힘들거나 의미를 혼동하게 하는 등의 문제를 똑같이 안고 있다.

번역어의 문제를 다루는 나의 기본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본문 속의 여러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을 모두 모아 '근대'의 제2절 부분에서 종합하여 설명하였다.

이 책에서 다룬 번역어에 대해서는 다른 지면에서도 이야기를 한 바 있다. 그 중 이 책에서 다룬 주제가 처음 나온 문헌은 다음과 같다.

<ㅉ=7>'사회'  저서 『번역이란 무엇인가』, 호세 대학(法政大學) 출판부. 1976년.

'개인'  『문학』1980년 12월호,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

'근대'  『도서』1981년 1~3월호, 이와나미쇼텐

'미'     『도서』1981년 5~7월호

'연애'  『번역의 세계』1979년 10월호, 일본번역가양성센터

'존재'  『번역의 세계』1980년 8~9월호

'자연'  저서 『번역의 사상』, 헤이본샤(平凡社), 1977년

'권리' '자유' '그, 그녀'  저서『번역이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는 나의 번역론에서 단어론을 총정리한다는 생각으로 각각의 논문을 상당 부분 손질했다. 또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쓰기 위해 노력했다.

이 책이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기까지는, 이와나미쇼텐 편집부의 사카마키 카츠미(坂卷克巳) 씨께 도움 받은 바가 크다.

1982년 1월
야나부 아키라
Posted by 엔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한 것은 하이데거였다. 언어가 먼저인지 '존재'가 먼저인지가 '닭과 달걀의 변증법'과 같은 쓸모없는 싸움이라 일컫더라도, 우리 '근대'사 속에서 등장한 서구어의 번역어들을 보면 하이데거 쪽의 손을 은근히 들어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존재'나 '근대'가 바로 그 번역어들이다. '사회,' '개인,' '권리'와 같은 것들이 바로 그 번역어들이다. 이들 번역어들의 특징은 시쳇時體말로 '썰렁하다'는 것이다. 뜻과 맛은 다르지만 '지나치게 학구적이다'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서구어에서 être, moderne, société, individu, droit같은 낱말들은 평소에 자주 쓰이는 말들이다. 대표적으로 '사회'같은 낱말은 우리 현실에서는 거의 글말文語에서만 쓰인다고도 볼 수 있지만, 영어의 society는 입말口語과 글말에 두루 쓰이는 말인 것이다. 2003년 출간된 4판 『롱맨현대영어사전Longman Dictionary of Contemporary English』의 society 항목을 보면 이 낱말이 글말written에서 자주 쓰는 1000낱말 중의 하나인 동시에, 입말spoken에서 자주 쓰는 1000낱말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부터 생긴 것일까. 대개의 번역어들을 '근대' 일본에게 빚지고 있는 우리는 일본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바로 '근대' 일본에서 번역어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정립되었는가를 추적하는 글이다. 말하자면 번역어의 계보학을 세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각 낱말의 세세한 계보는 책 자신에게 맡겨두고 그 맨 아래층에 깔린 저자의 생각을 읽어보면 이렇다. "일반적으로 어떤 번역어가 선택되고 남는가 하는 물음에 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문자의 뜻으로 보아 가장 적절한 말이 남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가장 번역어다운 말이 정착한다." (177쪽)

지금은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한겨레 신문 이상수 기자는 『창작과 비평』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말 철학 용어에서 생소한 한자가 지나치게 많아 우리에게 '가짜 어려움'을 주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최근에 '우리말로 철학하기'의 운동이 일고 있는 것도 실로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윤구병 선생 같은 분도 싸르뜨르의 L'Être et le néant의 우리말 제목은 '있음과 없음'이 훨씬 더 적합하고 원어의 뜻에도 가까운데 『존재存在와 무無』로만 옮겨지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고민은 사실 일본에서도 일찍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를 소개하고 있다. 후쿠자와는 그의 벗과 대화하면서 "자네와 같은 이들은 서양 원서를 번역하는 데 한결같이 네모난 문자(한자를 뜻함)만 사용하려 하는데 그것은 어째서인가?"(45-46쪽)라고 물으며 서양어를 자연스러운 일본어로 옮겨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했던 것이다.

우리도 '피투성被投性의 존재'같은 말을 버리고 '던져진 존재'로 가려고 하고 있다. 후쿠자와는 후년에 할 수 없이 스스로의 소신을 꺾고 '사람들이 많이 쓰는' 번역으로 전회했다고 하는데 우리의 이번 시도는 어떨까. 언젠가 우리말을 대상으로한 '번역어가 생긴 유래'라는 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번역어 성립 사정
야나부 아키라 지음, 서혜영 옮김/일빛

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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