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6.06 어머니와 무상급식 (6)
  2. 2009.08.11 시린 에바디와 노벨평화상의 한계 (1)

경북 구미의 선산이 고향인 내 어머니는 아주 평범한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다까기 마사오高木正雄와 동향인 탓에 비생산적인 오해를 사기도 했고, 실제로 아직도 그를 위인 중 하나로 꼽고 있지만, 글쎄 정치와는 별 무관한 삶을 살아왔다고 스스로 믿는 한 교사였을 뿐이다. 자식인 내가 이명박이 대통령 돼서는 안 된다고 안 된다고 길길이 뛰니까 대신 이회창을 찍은, 그런 TK 출신의 한 사람일 뿐이다.

어머니가 대구교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것은, 어쩌면 가난 때문이었다. 당시 교대는 2년제였고, 학비가 무료였다. 대신 졸업 후에는 반드시 몇 년 이상 교사로 근무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교사 인력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그런 식으로 양성하려 했던 것 같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이야기다. 학비가 무료인 대신 취업을 보장해 준다니! 하지만 그때는 가난하면서 성적이 곧잘 나오는 사람들이 교대를 많이 갔다고 했다.

대구에서 자란 어머니는 그렇게 해서 영주나 청송, 안동 등지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자라면서 수도권이나 서울로 집을 옮겼고, 서울교대 출신이 아니면 서울시내 학교로 갈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어머니는 경기권 학교에서 오래 교사 생활을 했다.

그래, 오늘은 어머니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곽노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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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어느 날이다. 퇴근을 하고 돌아오니 어머니가 내게 밥을 차려주시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둘씩 이야기했다.

말벗이 필요하셨던 것일까. 그날 나는 같은 학년 선생님들 중 아무도 정신지체장애인 어린이를 맡으려 하지 않아 어머니가 결국 두 장애 어린이를 다 맡기로 했다는 이야기부터 교장과 교감이 쓸데없는 권위를 부린다는 이야기, 요즘 젊은 교사들은 책임감이 없다는 이야기, 5~6학년 학생들은 요즘 머리가 너무 커서 징그럽다는 이야기, 웬일인지 근래에는 하루종일 서서 수업을 하다보면 무릎이 자꾸 아프다는 이야기까지 오랜 시간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귀가 번쩍 뜨인 건 급식비 이야기였다.

당시 어머니 반에는 급식비를 내지 않는 학생이 10명 가까이 됐다. 종례 때마다 알림장에 '급식비'라고 쓰라고 알려주고, 썼는지 확인하고, 부모님께 보여드리라고, 내일은 꼭 급식비를 가져와야 한다고 하면 학생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학교 서무실에서는 매달 급식비를 내지 않은 학생들의 명단을 전달하며 얼른 독촉하라고 성화지만, 어머니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이가 깜박 잊어 급식비를 가져오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집에 돈이 없어서 급식비를 못 내는 것인지, 모질지 못한 어머니는 차마 묻지 못했다. 그렇다고 급식비를 내라고 학부모에게 전화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학생들에게 매번 차근차근 전달하는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는 급식비를 내지 않고 2~3달이 지나면 진짜 급식을 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주 가끔씩 한두 달치 급식비를 어머니가 대신 내기도 했다. 그러나 매번 그럴 수는 없었다.

급식 3일째
by Seokzzang Yun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어느날은 굳게 마음을 먹고 오래 급식비를 내지 않은 아이 하나를 종례를 마치고 따로 불렀다.

"급식비를 오랫동안 안 가져왔는데, 너 잊어서 그런 거니, 아니면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거니?"

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돈 많이 벌어온다고 어디론가 떠났고, 지금 자신은 고모와 함께 살고 있다고, 그제서야 천진한 표정으로 말했다. 초등학교 2~3학년이 가난이라든가 급식비라든가 빚이라든가 그런 걸 얼마나 알겠는가. 그 아이는 엄마아빠가 보고 싶지만, 그래도 자신은 행복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교사가 이 학생은 급식비를 낼 수 없는 가난한 학생이라고 미리 신청하고, 소정의 절차를 밟으면 아이는 앞으로 급식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껏 내지 않은 급식비까지 모두 해결되는 건 아니다. 안 낸 급식비는 그대로 그 아이의 빚으로 남는 셈이다.

어머니는 이런 제도가 정말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콩나물 시루와 같은 교실에서 담임 선생님이 학생의 가정 형편까지 모두 알기란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물어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묻는다고 학생들이 모두 자진해서 손을 드는 것도 아니다: 자기 집안의 형편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도 있고, 알더라도 답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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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교사였던 시인 나희덕은 첫 시집에 실린 시 「한 그릇의 밥」에서 "한 그릇의 밥을 푸면서 / 한 알도 흘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교사, / 러는 발밑에 떨어진 것도 주워담아 / 제 입에 넣고 맛있게 씹을 일이다"라고 썼다. 농부가 곡식의 낟알을 소중히 하듯 교사들은 학생을 아끼는 것이다.

이들 밥알 하나하나에게 '한 그릇의 밥'을 그저 주어야 한다는 게 곽노현과 같은 '진보' 교육감들의 주장이자 공약이었다. 나는 내 어머니가 교육감 선거에서 누구를 찍었는지 모른다. 곽노현을 찍었는지 다른 후보를 찍었는지 아니면 이원희를 찍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곽노현의 주장과 공약이 실천되면 평범한 교사였던 어머니가 바랐던 교육 현장이 실현되리라고 생각한다. 한 그릇의 더운 밥 같은 교육현장 말이다.

RS5P5317
RS5P5317 by kwaknohyun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내 어머니는 연전에 무릎이 아파 계단을 잘 오르내리지 못하고, 오래 서 있지 못하게 된 탓이 명예퇴직했다. 퇴직 후 오래 근무했다고 정부로부터 무슨 표창을 받았는데, 내가 싫어하는 대통령의 이름이 적힌 그 표창장을 어머니는 오래 거실에 내걸었다.

나는 지금 그런 어머니를 이해한다. 자식인 나는 내 어머니가 교사로 일한 30여년에 대한 칭찬과 표창을 자랑스러워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못 이룬 교육의 꿈을 곽노현이, 그리고 제2, 제3의 곽노현이 이뤄가리라 믿는다.

중요한 것은 번역이다. 정부여당이 '무상급식'은 사회주의라고 색깔론으로 포장하면 내 어머니 같은 평범한 교사들은 때로 속아넘어갈 수도 있다. 우리반 아이들에게 그저('공짜로'나 '무상으로', '거저' 등의 말보다 '그저'가 더 교사들의 마음을 대변해준다고 생각한다) 더운 밥 한 그릇을 먹이는 것, 그게 '무상급식'이다.


Posted by 엔디

'위대한 백인의 승리'란 영화를 주말 명화극장 시간에 본 기억이 납니다. 흑인 권투선수 챔피언을 백인들이 온갖 치사한 방법을 동원해서 아예 세상에서 매장시켜버리는 '치사한 백인의 승리'를 그린 영화였습니다.

지금 그런 치사한 백인의 승리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이란 마흔살짜리 사나이를 잡기 위해 정의의 가치를 앞세워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마구잡이로 폭격하고 있습니다.

얄궃게도 이런 때 유엔과 코피아난 사무총장님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순진해서 그런지 노벨평화상 받는 사람은 절대 전쟁을 안할 거라 생각했는데,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신 우리 대통령 각하가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노벨평화상금이 어마어마하게 큰돈이라는데 주최측에서 그 상금을 돌려달라고 하지는 않을까요?

하기야 노벨상금이란 것 자체가 무시무시한 폭발물을 만들어 장사해서 번 돈이니 그다지 도덕적이지도 않고 평화적이지도 않습니다.

권정생(2008, 222) 선생은 '제발 그만 죽이십시오'란 글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예로 들며 노벨평화상을 평가절하한다. 결국 노벨평화상도 백인들의 것이거나 혹은 힘있는 자의 것이라는 뜻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상 평가절하는 잘못하면 '노벨상을 돈 주고 샀다'는 수구 세력의 목소리에 힘을 실을 수도 있는 발언이다. 실제로 노벨상 수상 소식이 들릴 즈음 '노벨상의 공신력이 떨어진 것 같다'는 말도 떠돌았다. 그러나 권정생 선생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 또 사실이다. 사르트르가 '부르주아의 상'이라는 이유로 노벨문학상을 거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겠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는 혈우병?#

시린 에바디

cc-by-2.0 : Original photo by Shahram Sharif http://www.flickr.com/photos/sharif/64545526/in/photostream/

이슬람권 여성으로는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시린 에바디가 방한했다. 한국의 여성인권활동가들을 만나고 싶었던 그는 방한 일정을 쪼개 한국여성의전화를 방문해 강연을 했는데, 문제는 이 강연의 내용이다. 통역을 포함해 한 시간 남짓 되는 강연에서 그는 '가부장제'를 '혈우병'에 비유했던 것이다.

혈우병은 "혈액을 응고해 주는 인자가 부족하여 피가 잘 멈추지 않는 병"으로 성염색체 중 X염색체에 존재한다. 이 병은 대개 보균자인 어머니에게서 아들에게로 유전한다. 즉, 어머니의 경우는 그 염색체를 갖고만 있지만 아들에게 유전됐을 경우 그 아들은 혈우병이 발병하는 것이다.

결국 시린 에바디가 "가부장제는 혈우병"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가부장제의 톱니바퀴에서 여성이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진단한 셈이다. 이 이론에 그대로 기대자면 가부장제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유지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나아가 여성이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려 해도 "너희들이 애써 유지해온 것이 가부장제 아니냐"는 가부장주의자들의 반론까지 가능하다.

이에 대해 참석자 가운데서 반론이 나오자 시린 에바디는 "가부장적 문화를 타파하는 데 여성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해명했으나 근본적인 취지에 대해서는 번복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집안에서부터 아들과 딸을 다르게 대한다는 것이 문제라고 반복했을 뿐이다.



가부장제 재생산의 메커니즘#

시린 에바디의 관점이 문제인 이유는, 그의 생각과 달리 세상의 어머니들이 양성을 평등하게 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과 이란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어머니들이 딸보다 아들을 우대하며, 더 자유롭게, 더 권리를 향유하도록 키운다. 그러나 그 때문에 어머니들을 비난할 수 있는가는 좀 생각해봐야 한다.

시린 에바디의 말은 이미 '여성(어머니)이 양육의 문제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전제가 은연 중에 깔려 있다는 점에서 주목에 값한다. 실제로 양육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한 가정, 한 마을, 나아가 한 국가, 한 행성의 문제인데도 그의 주장만 들으면 양육은 어머니의 문제로 환원될 뿐이다.

플라톤처럼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자녀를 키워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양육의 문제를 한 가정에 그것도 어머니라는 한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었을 때의 문제점에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나 기타 사회활동참가율을 떨어뜨린다는 점 이외에도 가부장제 자체의 재생산이 더 심각해진다는 점도 있는 것이다.

여성의 대다수가 살림과 자녀양육만을 전담하는 문화적 상황에서는 어머니가 자녀에게 이에 걸맞은 사회적·문화적 관점에 따라 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바로 가부장적 교육이다. 조선시대의 어머니가 딸에게 정절이니 열녀니 하는 교육을 시켰던 것이 어찌 조선시대 어머니들의 문제라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런 사고방식을 강요했던 시대와 문화의 문제라고 해야 한다.



이슬람과 여성인권#

한편 시린 에바디는 성차별은 이슬람 율법 때문이 아니라 가부장적 문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슬람 율법은 평등한데, 이를 곡해하는 가부장주의자들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슬람 문화권이 아닌 나라에서 여성이 받는 차별에 대해 한참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슬람 율법의 어떤 부분이 양성평등을 지향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슬람율법과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한국적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인지도 모르지만, 오해를 부르지 않기 위해서는 소개를 해줬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일부다처를 허용하는 등 우리(또는 서구)의 시각에서는 이슬람율법이 양성을 평등하지 못하게 말하고 있다는 견해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신앙에 대해 딴지를 걸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꾸란을 잘 모른다. 그 나름의 경전 해석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기는 한다.)

노벨상과 기층문화#

시린 에바디의 강연을 통해 결국 드러난 것은 천하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도 결국은 하나의 기층문화 아래 종속되는 인간일 뿐이라는 당연한 결과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화를 이끌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6.15 선언을 했더라도 결국 그는 신자유주의를 이 땅에 본격적으로 도입한 첫 대통령이다. 게다가 그는 권정생 선생이 지적한 대로 아프가니스탄 파병도 결정했다. 한반도에서 태어나 자란 그에게 미국이라는 나라는 여전히 없어서는 안 될 은인이었던 셈이다. 그게 뼛속까지 파고든 기층문화다. 미국을 싫어하는 젊은이들도 맥아더의 동상을 철거하자거나 주한미군이 전면 철수하도록 하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린 에바디는 이슬람권 최초의 여성판사이며 뛰어난 인권변호사였지만, 또 그 덕분에 노벨평화상도 수상했지만, 결국은 한 명의 이란인에 불과했다. 이것은 그에 대한 비난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칭찬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약간은 그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참고문헌#

권정생. 2008. 『우리들의 하느님』. 개정증보판. 대구:녹색평론사.

우리들의 하느님 - 10점
권정생 지음/녹색평론사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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