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백인의 승리'란 영화를 주말 명화극장 시간에 본 기억이 납니다. 흑인 권투선수 챔피언을 백인들이 온갖 치사한 방법을 동원해서 아예 세상에서 매장시켜버리는 '치사한 백인의 승리'를 그린 영화였습니다.

지금 그런 치사한 백인의 승리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이란 마흔살짜리 사나이를 잡기 위해 정의의 가치를 앞세워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마구잡이로 폭격하고 있습니다.

얄궃게도 이런 때 유엔과 코피아난 사무총장님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순진해서 그런지 노벨평화상 받는 사람은 절대 전쟁을 안할 거라 생각했는데,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신 우리 대통령 각하가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노벨평화상금이 어마어마하게 큰돈이라는데 주최측에서 그 상금을 돌려달라고 하지는 않을까요?

하기야 노벨상금이란 것 자체가 무시무시한 폭발물을 만들어 장사해서 번 돈이니 그다지 도덕적이지도 않고 평화적이지도 않습니다.

권정생(2008, 222) 선생은 '제발 그만 죽이십시오'란 글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예로 들며 노벨평화상을 평가절하한다. 결국 노벨평화상도 백인들의 것이거나 혹은 힘있는 자의 것이라는 뜻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상 평가절하는 잘못하면 '노벨상을 돈 주고 샀다'는 수구 세력의 목소리에 힘을 실을 수도 있는 발언이다. 실제로 노벨상 수상 소식이 들릴 즈음 '노벨상의 공신력이 떨어진 것 같다'는 말도 떠돌았다. 그러나 권정생 선생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 또 사실이다. 사르트르가 '부르주아의 상'이라는 이유로 노벨문학상을 거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겠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는 혈우병?#

시린 에바디

cc-by-2.0 : Original photo by Shahram Sharif http://www.flickr.com/photos/sharif/64545526/in/photostream/

이슬람권 여성으로는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시린 에바디가 방한했다. 한국의 여성인권활동가들을 만나고 싶었던 그는 방한 일정을 쪼개 한국여성의전화를 방문해 강연을 했는데, 문제는 이 강연의 내용이다. 통역을 포함해 한 시간 남짓 되는 강연에서 그는 '가부장제'를 '혈우병'에 비유했던 것이다.

혈우병은 "혈액을 응고해 주는 인자가 부족하여 피가 잘 멈추지 않는 병"으로 성염색체 중 X염색체에 존재한다. 이 병은 대개 보균자인 어머니에게서 아들에게로 유전한다. 즉, 어머니의 경우는 그 염색체를 갖고만 있지만 아들에게 유전됐을 경우 그 아들은 혈우병이 발병하는 것이다.

결국 시린 에바디가 "가부장제는 혈우병"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가부장제의 톱니바퀴에서 여성이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진단한 셈이다. 이 이론에 그대로 기대자면 가부장제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유지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나아가 여성이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려 해도 "너희들이 애써 유지해온 것이 가부장제 아니냐"는 가부장주의자들의 반론까지 가능하다.

이에 대해 참석자 가운데서 반론이 나오자 시린 에바디는 "가부장적 문화를 타파하는 데 여성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해명했으나 근본적인 취지에 대해서는 번복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집안에서부터 아들과 딸을 다르게 대한다는 것이 문제라고 반복했을 뿐이다.



가부장제 재생산의 메커니즘#

시린 에바디의 관점이 문제인 이유는, 그의 생각과 달리 세상의 어머니들이 양성을 평등하게 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과 이란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어머니들이 딸보다 아들을 우대하며, 더 자유롭게, 더 권리를 향유하도록 키운다. 그러나 그 때문에 어머니들을 비난할 수 있는가는 좀 생각해봐야 한다.

시린 에바디의 말은 이미 '여성(어머니)이 양육의 문제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전제가 은연 중에 깔려 있다는 점에서 주목에 값한다. 실제로 양육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한 가정, 한 마을, 나아가 한 국가, 한 행성의 문제인데도 그의 주장만 들으면 양육은 어머니의 문제로 환원될 뿐이다.

플라톤처럼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자녀를 키워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양육의 문제를 한 가정에 그것도 어머니라는 한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었을 때의 문제점에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나 기타 사회활동참가율을 떨어뜨린다는 점 이외에도 가부장제 자체의 재생산이 더 심각해진다는 점도 있는 것이다.

여성의 대다수가 살림과 자녀양육만을 전담하는 문화적 상황에서는 어머니가 자녀에게 이에 걸맞은 사회적·문화적 관점에 따라 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바로 가부장적 교육이다. 조선시대의 어머니가 딸에게 정절이니 열녀니 하는 교육을 시켰던 것이 어찌 조선시대 어머니들의 문제라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런 사고방식을 강요했던 시대와 문화의 문제라고 해야 한다.



이슬람과 여성인권#

한편 시린 에바디는 성차별은 이슬람 율법 때문이 아니라 가부장적 문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슬람 율법은 평등한데, 이를 곡해하는 가부장주의자들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슬람 문화권이 아닌 나라에서 여성이 받는 차별에 대해 한참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슬람 율법의 어떤 부분이 양성평등을 지향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슬람율법과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한국적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인지도 모르지만, 오해를 부르지 않기 위해서는 소개를 해줬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일부다처를 허용하는 등 우리(또는 서구)의 시각에서는 이슬람율법이 양성을 평등하지 못하게 말하고 있다는 견해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신앙에 대해 딴지를 걸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꾸란을 잘 모른다. 그 나름의 경전 해석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기는 한다.)

노벨상과 기층문화#

시린 에바디의 강연을 통해 결국 드러난 것은 천하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도 결국은 하나의 기층문화 아래 종속되는 인간일 뿐이라는 당연한 결과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화를 이끌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6.15 선언을 했더라도 결국 그는 신자유주의를 이 땅에 본격적으로 도입한 첫 대통령이다. 게다가 그는 권정생 선생이 지적한 대로 아프가니스탄 파병도 결정했다. 한반도에서 태어나 자란 그에게 미국이라는 나라는 여전히 없어서는 안 될 은인이었던 셈이다. 그게 뼛속까지 파고든 기층문화다. 미국을 싫어하는 젊은이들도 맥아더의 동상을 철거하자거나 주한미군이 전면 철수하도록 하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린 에바디는 이슬람권 최초의 여성판사이며 뛰어난 인권변호사였지만, 또 그 덕분에 노벨평화상도 수상했지만, 결국은 한 명의 이란인에 불과했다. 이것은 그에 대한 비난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칭찬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약간은 그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참고문헌#

권정생. 2008. 『우리들의 하느님』. 개정증보판. 대구:녹색평론사.

우리들의 하느님 - 10점
권정생 지음/녹색평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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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엔디
0. 선교의 중요성

주지하다시피 기독교에서의 선교란 무척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다. 마태복음 28장에서, 그리고 사도행전 1장에서 그리스도는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이를 지상至上 명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이후, 기독교의 역사는 선교의 역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개개의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보낸 선교사라고 보아야 옳다. 흔히 '임무'의 뜻으로도 쓰이는 mission은 본래 예수회Jésuite가 해외로 선교사를 파송할 때 사용했던 말로 '보내다'라는 뜻의 라띤어 'mittere'에서 나왔다고 한다. 선교사를 보내는 일, 선교사로 가는 일은 기독교의 임무mission인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영혼의 구원이 기독교의 존재 이유는 아니라는 점이다. 기독교의 존재 이유는 영혼 구원이 아니라 여호와의 영광이다. 따라서 영혼 구원만을 목적으로 여호와의 영광을 가리는 행동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대개의 경우 영혼이 구원받는 자리에서 영광도 드높아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과 이를 둘러싼 국내외적 상황을 살펴본다면 영혼 구원 혹은 영혼 구원을 위한 행동이 여호와의 영광과 항등식을 이루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 짧은 글은 아프가니스탄 단기 선교에 대한 평가를 위해 단기 선교가 무엇인지 간략히 살펴보고 보다 지혜로운 선교를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위해 쓴 것이다.

(합법적으로 블로그에 노래를 틀 수 있을 때까지 노래 잠시 내립니다. 2008년 3월 24일. 조환곤, 선교지로 향하며)

1. 장기 선교와 단기 선교

선교를 구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그 길이를 기준으로 장기 선교와 단기 선교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장기 선교는 몇 년에서 몇 십년, 혹은 일생을 바쳐서 어느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일하는 것이고, 단기 선교는 며칠, 몇 주, 몇 달, 혹은 대략 한두 해 정도의 사역 기간을 갖는다.

장기 선교와 단기 선교를 나눈 기준은 기간이지만, 그 둘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먼저 선교사들이 선교에 임하는 자세가 다를 것이다. 또, 선교를 위한 준비 기간 역시 다를 것이다. 또한 선교사들의 신분이나 연령 등이 다를 것이며, 선교사들의 숫자도 다를 가능성이 높다: 아무래도 장기 선교를 떠나는 사람은 보다 비장한 각오를 하고 보다 더 치밀하게 준비할 것이며, 평신도이기보다는 신학을 공부한 교역자이기가 쉽고 아주 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장기 선교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가기보다는 혼자, 혹은 부부나 일가족 정도가 떠나는 것이 보통이다.

단기 선교는 교역자들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짧은 시간 복음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기 위해 떠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청소년이나 청년들이 방학을 이용해서 떠나는 여행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두 종류의 단기 선교를 《선교타임즈》에서는 각각 '비전 트립vision trip'과 '미션 트립mission trip'으로 '미션 트립mission trip'과 '비전 트립vision trip'으로 적절하게 구분한 바 있다. (단기선교, 이것만은 알고 가자) 모든 '비전 트립'은 '미션 트립'으로 이어져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전 트립'이 '미션 트립'보다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주 작은 일에도 우리는 선교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데, 가령 선교지에서 선교사님 집 청소를 도와주는 일만 했다고 해도 우리는 선교를 한 셈이다. 그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롬8:28)는 세계관으로 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게다가 '비전 트립'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선교사의 방을 닦으면서 자신의 삶 속에서 선교를 실천하는 각오를 다질 수도 있고 선교사가 되고자 하는 꿈을 키울 수도 있다.


2 뱀과 비둘기

단기 선교를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기도라고 할 것이지만, 그밖에도 선교지에 대한 자세한 공부와 언어 및 문화에 대한 숙지가 필요하고 때에 따라서는 특수한 훈련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6)고 명령한 적이 있다. 영어로는 and, 불어로는 et로 연결된 두 구절은 어느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상반절에 나와 있듯이 그리스도가 제자들을 세상 속으로 파송하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기 때문이다. 이 말이 제자들을 택한 백성인 유태인에게 보내면서 했던 말인 것을 생각해보면 이슬람이나 토착 종교권으로 선교를 갈 때에 얼마나 더 큰 준비가 필요한지 알 수 있다.

그런데 한달 이하의 비전 트립 형식의 단기 선교를 간다고 했을 때, 이와 같은 준비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기도로 준비하는 것은 기본이자 베이스가 되겠지만, 전공자가 아닌 이상 언어를 익힌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문화에 대한 공부도 소홀히 하기가 쉽다. 때로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나 선교사라는 것을 숨겨야 할 때도 있는데, 이것도 훈련을 받고 늘 긴장하면서 살지 않으면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나는 위험 지역이나 선교 불가 지역으로의 비전 트립은 최대한으로 자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아프가니스탄으로 단기 선교를 떠난 분당 S교회 팀은 그런 의미에서 조심성이 없었고, 준비가 부족했다. 아니, 비전 트립 형식으로 아프간으로 떠났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신앙적 오만이었다고 생각한다. 아프간 정도 되는 곳이라면, 적어도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선교사가 의료 봉사나 교육 봉사 등의 사역을 겸하면서 (필요하다면) 가명까지 쓰면서 조심스럽게 사역을 해야 하는 곳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차인표 씨의 아래 글은 잘못된 비유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악어들이 득실거리는 어느 강가에 "위험"이라는 푯말이 서 있습니다. 강을 건너던 작은 배가 뒤집혀 아이들이 빠져서 허우적거립니다. 그들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죽어가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한 무리의 어른들이 강으로 뛰어 듭니다. 아이들을 한명, 두명 구하던 그 어른들은 이내 악어의 공격을 받아 피투성이가 되기 시작합니다.
차인표 씨의 미니홈피

어린이가 나쁜 일을 당하고자 하면 구하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맹자가 '우물에 빠지려는 어린 아이'의 비유孺子入井說를 든 이후로, 오랜 전통을 가진 예시문인 셈이다. 하지만 이번 아프간 사건에서의 문제는 (비유로 이야기하자면) 아이들이 빠져 허우적거리는 곳에 아이들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그곳에는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수영 선수나 구조원이 들어가야 옳고, 물 밖의 아이들은 단기적으로는 그런 수영 선수나 구조원을 찾아다니고 장기적으로는 수영 선수나 구조원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았어야 옳은 것이다.


3 단기 선교의 세부적인 주의점: S교회 아프간 단기선교팀의 행동과 관련하여

선교가 반드시 심각하기만 하고 재미라고는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선교는 재미보다는 어려움과 힘듦, 심지어 삶의 위협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밤에 숨죽이고 찬양을 부르는 사람들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S교회 단기 선교단은 그곳 모스크와 이슬람 성지와 같은 곳에서 예배와 워십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디시인사이드 갤로그) 이와 같은 행동은 이슬람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린 것으로 보이는 글들의 문체에서 그들의 기쁨이 잘 드러나 있는데, 이 역시 무척이나 실망스러운 모습이다. 복음화가 절실한 곳에서 워십과 예배를 드릴 때의 슬픔이나 무거움이 완전히 표백된 기쁨에 찬 그 글을 보면서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찬양이 진실로 여호와를 기리고 영광을 돌리는 것인지, 아니면 일종의 '신앙 고수'의 이벤트인지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행동은 비기독교인들에게 커다란 반발을 일으킨다. 개신교도들이 흔히 하는 오해 중에는 비기독교인들의 비난이 거센 것을 자신들의 행동이 옳은 증거로 여기는 것이다. 비기독교인들의 비난은 개신교도들이 신앙의 윤리대로 사는 것을 두고 하는 몰이해의 비난일 수도 있고, 개신교도들이 정말 잘못하는 것을 두고 하는 준엄한 비난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비난 그 자체만을 가지고 가치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개신교도의 준거는 성경이어야 하지, 비기독교인들의 반응이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반발을 사는 행동도 없어야 한다. 세상의 법과 도덕에 맞추어도 신앙적 및 신학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에는 세상의 법과 도덕을 따르는 것이 좋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막12:17) 돌려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칫 여호와의 영광을 가리는 행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인해 욕을 먹은 것은 개신교도만이 아니라, 여호와와 그리스도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슴아픈 사태는 없으면 없을수록 좋다.

'떡과 복음'이라는 말이 있다. 기아대책이라는 선교 단체의 슬로건이다. 생각해보면 현재 아프가니스탄 선교만큼이나 어려웠을 식민지 조선에서의 선교는 저 원칙에 입각해 이루어졌다. 한국 복음화의 두 축인 장로교의 언더우드와 감리교의 아펜젤러가 각각 의사, 교육자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당시 조선은 의사와 교육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조선의 비폭력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유관순 역시 선교사가 세운 이화학당 출신이다. 아프가니스탄도 지금 교육과 의료라는 떡이 필요하다. 이는 아프가니스탄 선교의 '문'을 열기 위해 꼭 필요하다. 피랍 여성 가운데 처음 미국 방송사 CBS와 육성 통화를 한 임현주 씨는 실제로 그 문을 위해 오래도록 아프간에서 봉사 활동을 한 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토록 오래 '떡'으로 섬겨서 조금씩 열리고 있는 아프간 선교의 문이 이번 단기 선교 이벤트로 인해 닫혀버린 것이다. (모기불 통신)

그밖에 국내외 정세에 개신교도들이 너무 어두운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4 조심스러운 제언

단기 선교는 비교적 재정 여력이 있는 나라의 그러한 교회에서 주로 기획해서 간다. 그런 단기 선교를 이벤트성 행사나 선교를 명목으로 한 여행이 아니라 보다 의미 있는 비전 선포식으로 바꾸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또는 해외가 아니라 국내의 미자립 교회 등에 찾아가서 개척의 어려움도 듣고 봉사활동도 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활동도 변질되면 무서운 암세포가 될 수도 있다:

도시 교회 수련회나 봉사활동으로 온 사람들로 인해 농촌 교역자들을 골머리를 썩히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교회에서 조금한 시골교회에서 찾아와서 자신들의 여름 수련회을 농어촌 교회 지역봉사를 섬기겠다고 찾아와서는 봉사하는 것이 오히려 농촌 교회 교역자를 얘를 먹이고 있다고 리서치 하는 우리들을 붙잡고 하소연 하시는 것을 교역자님과의 인터뷰 가운데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 안하시면 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런 행사 유치를 통해 조그마한 교회재정에 도움을 얻고 또 도시지역의 협력하는 교회에서  부탁을 하는데 어떻게 안들어 줄 수 있느냐며 저희에게 되물으셨다. 그것도 제 날짜에 와 주면 감사하다고 하시며 온다고 해서 다 준비해 놓았더니 약속한 날, 몇일 전에 갑자기 취소하면 이처럼 씁쓸한 일이 없다고 저희에게 토로하시는 것을 보게 되었다.
여호수아 프로젝트

결국 우리는 늘 순결하고 지혜롭도록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1:5)

그리스도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7:1)고 했다. 나는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분당 S교회 단기 선교팀을 비판한 셈이다. 나 자신 그들보다 나은 점이 없고 결코 그들을 판단할 만한 위치에 있지는 않다. 다만, 악하고 게으른 종이지만 조금이나마 선교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짧은 글이나마 적어 본다.

◎ 현재 파랍된 아프가니스탄 단기선교 팀 모두의 무사 귀환을 기원합니다.
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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