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이 바꿀 수 있는 사법의 세계

1. 손 무덤

로스쿨이 이토록 큰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은, 그 동안 법조인들과 변호사들의 삶이 평탄했기 때문이다. 시민의 손발인 판검사가 편했다는 것은 시민들이 그간 겪은 고통이 크다는 뜻이고, 말을 팔아 돈 버는 서비스업종 변호사가 편했다는 것은 아직까지 그들 앞에서 '손님'들이 '왕'인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 말은... 대다수의 시민들에게 법은 아직 먼 존재라는 말이다. 가령 단병호 의원의 딸인 단정려 씨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고 싶다는 소망"은 아버지와 같다고 밝힌 것(한겨레)이 이례적인 것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은 법의 보호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박노해 시인은 시 「손 무덤」의 일절을 통해 노동자가 느끼는 법과의 거리를 보여준 적이 있다. 프레스에 노동자의 손목이 날아갔는데, 그를 타이탄 트럭으로 병원에 실어주고 나서 동료 노동자들이 찾아간 곳은 변호사가 아니라 종로의 큰 서점이었다.

훤한 대낮에 산동네 구멍가게 주저앉아 쇠주병을 비우고
정형이 부탁한 산재관계 책을 찾아
종로의 크다는 책방을 둘러봐도
엠병할, 산데미 같은 책들 중에
노동자가 읽을 책은 두 눈 까뒤집어도 없고

- 박노해, 「손 무덤」부분

노동자에게 변호사는 그토록 어려운 존재였고, 그래서 찾아간 서점에서도 노동자는 책에 의해 소외를 당하는 현실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 장면은 묘하게 같은 시집에 실린 「지문을 부른다」와 겹쳐져서, 노동자의 법적 소외가 존재론적 차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평생토록 죄진 적 없이
이 손으로 우리 식구 먹여살리고
수출품을 생산해 온
검고 투박한 자랑스런 손을 들어
지문을 찍는다

없어, 선명하게
없어,
노동 속에 문드러져
너와 나 사람마다 다르다는
지문이 나오지를 않아
없어, 정형도 이형도 문형도
사라져 버렸어
임석 경찰은 화를 내도
긴 노동 속에
물 건너간 수출품 속에 묻혀
지문도, 청춘도, 존재마저
사라져 버렸나봐

- 박노해, 「지문을 부른다」부분

요는 지금까지 법은 꼭 필요한 사람들 곁에 없었다는 말이 된다. 그 이유는, 역시 돈 때문이다.


2. 로스쿨과 변호사의 수

로스쿨이 사법 개혁의 하나가 된다는 것은 일단 자본주의적 논리에 기초한 해법이다: 고시라는 형식을 통해 법조인을 뽑으면 한정된 숫자로 뽑을 수밖에 없는 반면, 로스쿨 졸업생들을 간단한 자격 시험을 통해 변호사로 만들면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를 보다 쉽고 빠르게 양성할 수 있는 것이다.변호사 공급에 비해 수요가 너무 많은 현재 상황의 타개책으로 공급을 늘리는 정책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 모델은 미국인 셈인데, 우스개소리로 미국에는 길거리에서 돌을 던지면 변호사가 맞는다고 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인구 대비로 1만 명당 37.3명 정도 되는 모양인데, 한국은 1만 명당 1.7명이다(2005년 기준, 한국경제 칼럼). 미국은 인구 10만 명당 352.1명인데, 한국은 17.4명이다(한국경제 기사, 2007년 8월 24일)



일단 공급을 늘리는 방안은 가장 확실하고도 강력한 방안으로 판단된다. 그것은 변호사들이 적은 수임료를 주는 사건도 맡게 될 것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일정 자격을 갖춘 법 전문가들이 보다 많아짐으로써 쉽게 법의 일상화가 진행되고 일반인들도 법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하다. 이를테면, 허위 사실의 유포뿐 아니라 특정 사실의 공공연한 적시도 명예훼손이 된다는 것과 그것이 공공복리에 이바지한다면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정도의 기본적인 법 지식을 몰라 피해를 보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라는 말이다.


3. 로스쿨 대 고시

프레시안은 로스쿨 제도가 확립되면 상고만 졸업하고 독학으로 고시를 패스하여 변호사가 되는 이른바 '노무현 신화'는 사라진다고 적고 있다:

비싼 등록금도 문제로 꼽힌다. 이번에 통과된 로스쿨법이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 일본의 경우 로스쿨의 학비는 천문학적 수준이다. 국내 로스쿨의 등록금 수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한 학기 학비가 1000만 원을 훌쩍 넘으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전망대로라면 서민 가정에서 자란 학생이 법조인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지적에 대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로스쿨 졸업 후, 공익 변호사가 되려는 이를 위한 장학금 제도를 강화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로스쿨 재학 중 과도한 빚을 진 변호사들은 아무래도 인권, 환경, 노동, 복지 등 공익성이 강한 분야를 기피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그리고 이런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농촌에서 태어나 상고만 졸업하고 독학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해 판사가 된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사례는 더 이상 나올 수 없다.

하지만, 기사는 동시에 수만의 '고시 낭인'을 양산하는 현행 시스템을 옹호하고 있지도 않다. 다른 외부 필자의 기고는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숫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급 규모가 중요하지 양성 시스템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발 방법은 '일정 수준의 자격'을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내가 보기에 로스쿨 제도야말로 보다 많은 변호사들을 공급하면서도 '일정 수준의 자격'을 갖추도록 하기 적당한 시스템이다.

또한 현재의 고시 시스템은 법조인의 선발 방식만을 규정하고, 그들이 어떻게 학습해야 하는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고시 학원 등의 무분별한 사교육에 의존하도록 만든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로스쿨은 대학원 코스로 편입된다는 점에서 선발 방법과 함께, (변호사들로부터) 수업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학습 방법까지 규정된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할 만하다. (비록 로스쿨 입학 시험에 대한 학원 의존이나 졸업 후 자격 시험에 대한 학원 의존이 생길 수 있지만, 그 부분은 한국의 사교육 '문화'에서 단칼에 없애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로스쿨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통하는 높은 등록금도 장기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다. 로스쿨 졸업자의 대다수가 변호사가 되는 현실에서, 은행권은 회수가 거의 확실할 채무자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국가나 대학에서 편성할 장학금도 적지 않을 것이다. 4년제 대학 졸업생만 입학 자격을 준다는 점을 우려할 수는 있겠지만, 법조인에게 대학 졸업 정도의 학력을 요구하는 것은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얼마나 정확한 통계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고시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는 현재도 고졸 이하 변호사의 비율은 전체의 1%가 안 된다(직업).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돈이 없어서 대학을 못 갈 정도의 사람이 고시 공부에 올인하고 있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http://www.jigup.co.kr/job/bpjob33_view.php?code=750의 자료로 구성)

4

로스쿨이 완벽한 제도라는 것이 아니다. 시스템이란 완벽으로 점근선을 그어가는 것이지 완벽한 시스템이라는 것은 없다. 다만 로스쿨이 현재의 시스템보다 합리적이고, 사회적으로 낭비가 적으며 보다 많은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제도라는 것이다. 나타날 부작용들은 어느 정도 예견 가능하며 그것은 제도적으로 보완하면 된다. 로스쿨은 지나치게 자본주의적이고 지나치게 미국적임에도 한국의 현재적 상황에서는 서민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제도라고 생각된다.

* 2007년 8월 27일 인구 x명당 변호사수 자료 업데이트. (via xChart)
Posted by 엔디
인터넷에서 수난받는 시작품들

별이 갈 길을 비추었던 서사시의 시대를 동경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대의 시는 '향유'된다기보다는 '소비'되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나는 늘 절망한다. 나는 좋은 시는 끊임없이 재생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재생산이란 하나의 시가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 속에 다른 울림을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재생산 과정에서 원래의 시가 가지고 있는 아우라는 사라지지 않고, 어떤 경우에는 그 시를 딛고 있는 다른 시를 낳기도 한다.

인터넷과 '미니홈피' 시대의 시의 '소비'는 좀 색다른 경향이 있어서, 시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고치거나 다른 사람의 시에 자신의 시를 덧붙이거나, 시를 마음껏 자기 것으로 이용한다. 그렇게 '가공'된 시는 원작의 분위기를 잃고 대개 감동적인 사랑이나 착한 도덕률의 삶을 설파하는 교과서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 순간 시가 잃어버리는 것은 시니피앙이다.

1

도종환 시인의 시는 「접시꽃 당신」 시절부터 수첩이나 다이어리에 적혀 회자되던 것이다. 그의 시는 서정윤이나 특정 시점 이후의 류시화의 시와 달리 삶에서 비어져나온 어떤 빛이 있는 시였다. 이를테면, 베개맡의 머리칼처럼 생명이 빠져나간다는 표현은 쓰기 쉬운 것이 아니다. 그 시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탁월한 성찰에 관한 시였다. 씨앗과 열매는 거의 자연스럽게 그 앞의 혹은 그 뒤의 꽃을 연상시키고 벌레는 수정受精을 떠올리게 하는데, 시인 부부가 섬겼던 농사일은 거기서 거의 확실한 삶의 은유가 되어 있다.

나는 이런 아픈 사랑의 시를 좋아하는데, 널리 알려진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나 또 이정록 시인의 「보석달」 같은 시는 읽을 때마다 조금 숙연해진다.

보석달

식 올린지 이년
삼개월 만에 결혼 패물을 판다
내 반지와 아내의 알반지 하나는
돈이 되지 않아 남기기로 한다
다행이다 이놈들마저 순금으로 장만했다면
흔적은 간 데 없고 추억만으로 서글플 텐데
외출해도 이제 집걱정 덜 되겠다며 아내는
부재와 평온을 혼돈하는 척, 나를 위로한다

농협빚 내어 장만해준 패물들

빨간 비단상자에서 꺼내어 마지막으로 쓰다듬고
양파껍질인 양 신문지에 둘둘 만다
버려야 할 쓰레기처럼 밀쳐놓고 화장을 한다
거울에 비친 허름한 저 사내는 누구인가
월급날이면 짜장면이 먹고 싶다던
그때처럼 화장시간이 길다
동창생을 만나러 나갈 때처럼
오늘의 화장은 서툴러 자꾸 지우곤 한다

김칫거리며 두루마리 화장지를
장식처럼 주렁주렁 매달고 돌아오는 길
자전거 꽁무니에 걸터앉아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콧노래 부르며 노을이 이쁘단다
금 판 돈 떼어 섭섭해 새로 산
알반지 하나를 쓰다듬으며 아내는
괜히 샀다고 괜히 샀다고
젖은 눈망울을 별빛에 씻는다
오래 한 화장이 지워지면서
아내가 보석달로 떠오른다

하지만 이 시들이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순간 이 시인들의 삶 역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FOR SALE이 되고 만다.

무서워라,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 시詩라는 것이 존재할 이유는 없다...

2

뿐만 아니라, 시가 멋대로 바뀌어 회자된다면 장기적으로 상당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먼저 웹의 어떤 텍스트도 확정된 텍스트로 믿을 수 없고, 어떤 작가도 자신의 글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

시의 내용을 조금 바꾸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항변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확실히 세계에서 닳고 닳은 언어라는 질료는 다루기가 쉽지 않다. 다 빈치 작품 「모나리자」에 멋대로 덧칠을 해서 웹에 게시하면서 내가 무얼 잘못했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아니, 그렇다면 또 뒤샹의 「L.H.O.O.Q」에 대해 말할 사람이 있으려나. 모든 문학사와 미술사를 다시 써야 할 판이다.)

3

아니면 여기서 '저자의 죽음La mort de l'auteur'에 대해서 말해야 할까? 놀랍게도 텍스트가 마구 바뀌고 시의 형상이 훼손되는 그 가운데에서도 저자는 죽지 않았다. 저자의 이름은 훼손된 텍스트 앞에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가끔 도종환을 도종완으로 잘못 쓰는 경우는 있다.) 그 말은 웹에 올려진 텍스트가 저자의 권위에 호소하는 것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뜻한다. 다른 저자의 권위를 빌어 글을 쓰는 것이나 그 씌어진 글을 우리는 위작僞作이라고 부른다.

롤랑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을 말했을 때 그는 '작품에서 텍스트로de l'œuvre au texte'를 말했다. 글의 주인은 저자가 아니라 독자라고 말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본다. 하지만 '소비'되는 글들은 여전히 텍스트가 아니라 작품으로 기능하고 있다. 바르트는 "저자는 합리적인 자본주의의 산물"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웹에서 떠돌아다니는 훼손된 텍스트들은 철저한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Posted by 엔디
출판도 유행을 따르는 것 같다. 아니, 내가 헤아려 보건대 출판이야말로 유행에 가장 민감한 분야 중 하나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셜록홈즈 전집이나 뤼팽 전집이 시일에 큰 차이를 두지 않고 두세 출판사에서 중복 출판된 것이 하나의 예가 될 것이며, 또 얼마 전의 '쥘 베른'의 중복 출판도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유행은 '삼국지'다. 소설가 황석영이 『삼국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질 때 즈음하여 다른 출판사들은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삼국지』로 가장 많은 상업적 성공을 본 민음사나 정역正譯의 자부심이 넘치는 솔출판사의 온-오프라인 서점 마케팅은 꽤나 살벌했다. 그 와중에 나는 글 한편 '이링공 뎌링공' 만들어 '당첨'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분은 그렇게 깔끔하고 깨끗하지 않다. '삼국지'라…. 상식적인 것부터 잠시 보자면 우리가 흔히 '삼국지'라 불리는 것은 진수가 쓴 동명同名의 역사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나관중이 각색한 『삼국지연의』를 말하는 것인데, 『삼국지연의』는 『수호지』, 『서유기』(혹은 『홍루몽』), 『금병매』 등과 함께 중국의 4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다. 다시 말해 재미있는 소설작품이다. 그 안에서 삶의 지혜나 처세의 능란함을 배우기도 한다. 재미있으면서 지혜나 능란함을 배울 수 있다면 분명히 좋은 책이다. 그런데, 그것도 정도程度문제다.

다른 글에도 내가 썼듯이, 무명의 번역자가 옮긴 것이나 아동용 다이제스트판, 번역자도 표시되지 않은 '해적판' 등을 제외하고 중국문학자나 문인, 적어도 문文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의 번역만도 열을 헤아린다. 박태원, 이문열(민음사), 김홍신(대산출판사), 구용 김영탁(솔), 김동리·황순원·허윤석(박영사), 장정일(문화일보 연재), 황병국(범우사), 월탄 박종화(어문각/대현출판사), 정비석(고려원), 조성기(열림원), 연변대학삼국연의번역조(청년사)까지.

10여 개의 번역본을 헤아리면서 누구인들 한 가지 의심 하나 가지지 않을 수 있으랴. 모두가 정역正譯을 뽑내고, 자신의 『삼국지』가 진짜 '삼국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차라리 이문열은 "쓸모없는 노력의 중복"을 막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많이 반영시켜 평역評譯을 한다고 밝혔으니, 그 평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솔직하다고 하겠다.

황석영의 『삼국지』가 나온 것은 바로 이 시점이다. 듣자하니 창비의 수장(?) 백낙청 교수까지 황석영을 독려하여 번역작업을 진착시켰다고 한다. 입술 끝에서 씁쓸함을 느꼈던 것은 그 말을 듣고서가 아니었나 싶다.

황석영 자신도 중복출판에 대한 부담감은 그대로 떠앉지 않았을까 싶다. 모든 '삼국지' 번역자가 그러하듯이 황석영도 변명조의 역자 서문을 실었다. 역자는 말한다.

『삼국지』의 줄거리는 원래 정통역사서에서 출발해 여러 시대에 걸친 민중들의 구전설화와 재담, 연희·연극 등의 공연예술, 작가·문인들의 창작이 덧붙여져서 이루어진 것이다. 열 중에 일곱이 사실이라면 나머지 셋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이 나머지 셋이야말로 각 시대를 통해 끈질기게 이어져내려온 민중들의 꿈과 소망이 반영되어 있는 부분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보다 더욱 중요한 역사의식이다.

특히 원작자인 나관중의 정치적 입장은 당대 민중의 인의론(仁義論)과 한족 정통성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나관중은 이민족 원나라에 항거하는 농민봉기에도 가담했으며, 그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장사성(張士誠)과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천하통일의 기초가 된 조조의 위나라보다 유비의 촉한을 중심으로 줄거리가 서술되고 있는 당연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조조는 귀족이었고 손권도 강남 명문제후의 후손이었지만, 촉한의 유비·관우·장비는 물론 제갈량까지도 당대 백성들과 거의 같은 몰락한 선비거나 지방 무뢰배에 지나지 않았다. 유비가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의리를 지키느라고 여포에게 여러 차례 시달린다든가, 세력의 근거지가 될 한중땅을 단번에 차지할 수 있는데도 도덕적 대의명분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가까스로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을 보면 『삼국지』가 당대 민중들과 더불어 추구하려 했던 가치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관운장이 온갖 영예를 뿌리치고 조조를 떠나 필마단기로 유비를 찾아가는 과정이나 선주 유비와의 약속 때문에 어리석은 유선을 보좌하다가 위나라 정벌을 떠나기에 앞서 제갈량이 「출사표」를 올리는 대목 등에서 우리는 뜨거운 감동과 함께 눈물에 젖는다. 그러나 인덕과 의리를 추구한 유비 삼형제와 제갈량 등의 촉한은 실패한다.

의(義)를 추구했지만 현실에서 실패하고 좌절한 영웅을 기리는 백성들의 풍조는 동서고금이 다 같은데, 일본에서는 오히려 조조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때로는 그를 중심으로 『삼국지』의 기본 줄거리를 전개하는 작품도 있다. 이는 패권과 현실에서의 힘을 추구하는 가치관에서 비롯한 것이다. 나는 저러한 이른바 '현대적 해석'에 대해서 백성들의 보편적인 염원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축이다. 따라서 나는 원본의 관점과 흐름에 적극 찬동했고, 이것이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삼국지』에 대한 일관된 애정의 원천이기도 하다.

고전은 무엇보다도 원문대로 전달이 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누구나 그것을 읽고 나름대로의 가치관에 따라 해석하고 비판하고 재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고전의 정신이야말로 무한한 재생산의 보고이다. 『삼국지』의 형성과정이 그렇듯이, 천여년 동안 여러 시대와 나라를 거치면서 투영된 당대 백성들의 소망이며 꿈은 역사적으로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변명과 추측이 난무하여 일관성을 결하고 있는 이 옮긴이의 말은 『장길산』작가의 번역이라는 이미지에 그야말로 밀려나고 있다. 그는 나관중이 원에 항거하는 농민봉기와 그 지도자인 장사성과 관계가 있다는 '설說'을 근거랍시고 들며 "위나라보다 유비의 촉한을 중심으로 줄거리가 서술되고 있는 당연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고, "인의론(仁義論)과 한족 정통성"에 근거를 둔 정치적 입장을 견지했다고 하다가 유비 등이 "무뢰배"였다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민중과의 유대는 황석영이 '힘'의 심볼로만 파악한 조조의 위魏나라에서 더 잘 보인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위진남북조시대'라고 부를 때, 우리는 촉蜀과 오吳의 존재를 깡그리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동양사학계가 '위'를 삼국의 대표격으로 본 이유는, 조비가 헌제의 양위를 받았다는 것도 작용했겠지만, 역사의 정통성을 당대 민중과의 유대와 민중을 위한 정책의 유무로 판단하기도 하는 사정 때문이다. 당시 위는 한나라 때부터 있었던 '둔전제'를 발전시킨 '전농부 둔전제'를 시행하였는데, 빈농貧農에게는 토지뿐만 아니라 밭갈이 소와 농기구, 그리고 종자까지 대여해 허창 주변에서 둔전시키기도 하였다.

더구나 인의론이란 무엇인가. 『삼국지연의』의 서두에 등장하는 '고조참백사'는 유劉씨가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내포를 담고 있다. 유비가 결국 황제가 된 것도 (적어도 명분상으로는) 백성들의 열망과 염원과는 별 관계없이 그가 옛 왕족의 후손이라는 것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보편적인 염원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축"이라서 나관중의 역사인식에 찬동한다는 것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무지의 소치所致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고전은 원문대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그의 변辨에 대해서도 우리는 충분히 반박할 수 있다. 그것은 『월탄 삼국지』나 '이문열『삼국지』'는 또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정역正譯을 표방하며 나왔고 어느 정도 인정도 받고 있는 '구용『삼국지』'의 존재를 깡그리 무시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구용『삼국지』'의 비교우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럴 뜻도 없지만 그럴 능력도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황석영이 구용의 작품이 있음에도 새롭게 '삼국지'를 낸다면 구용의 작품에 대해서도 어떤 입장 정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황석영 삼국지에 의의가 전혀 없지는 않다. 중국 고대 인물화의 권위자라는 왕훙시의 삽화를 실었다는 점 이외에도 흔히 번역대본으로 삼는 '모종강본'을 버리고 원본인 '나관중본'을 번역텍스트로 삼았다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창작과비평사'와 같은 출판사가 『삼국지』를 출간하는 것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민음사 관계자가 "본래 영웅사관에 입각해 있는 삼국지는 '민중작가' 황석영과는 어울리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 것은, 더구나 그 지면이 조선일보이고 보면, 속이 뒤틀리는 대목이긴 하지만 어쨌든 맞긴 맞는 이야기다. 『삼국지』의 원본이 여기 있는데, 창비의 원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삼국지 1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왕훙시 그림/창비(창작과비평사)

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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