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최초로 국제기구 공식언어 채택 쾌거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모든 언어가 '도구'로서의 기능만 갖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언어의 타동사적인 측면은 자동사적인 측면보다 훨씬 강조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언어 예술이라고 불리는 문학이나 언어를 통해 내밀한 사유를 하는 철학이 아니라면, 언어는 분명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도구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언어가 다른 언어보다 뛰어나다거나 못하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언어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이유는 분명히 언어 외적인 것이다. 옛적의 중국어, 프랑스어가 그랬고, 지금의 영어가 그렇다.

대학 시절 한 선생님은 대학생들이 소위 '원서'라고 하는 깨알 같은 영미권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 나라의 학문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가령, 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영어로 된 책을 많이 보아야 하는데 그것은 영어가 심리학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 아니라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영미권 특히 미국에서 발달된 학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영학이나 사회학, 정보산업이나 생명공학 등 분야 학문 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른 언어도 사정은 비슷해서 대륙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독일어를 배워야 하며, 패션 관련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어나 이딸리아어를 배워야 한다. 선생님은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철학 분야에서의 '퇴계학'과 언어학 분야에서 '훈민정음(한글)'이라는 것이다. 그 둘만이 한국이 학문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분야라는 것이다.


한국어가 특허 협력 조약PCT: Patent Cooperation Treaty의 국제 공개어로 채택되었다. 이제는 국제 특허를 출원할 때, 기존의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중국어, 아랍어 등으로 특허 내용을 번역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특허청 관계자는 한국이 "세계 4위의 특허 출원국이자 세계 5위의 PCT 출원국"이라는 점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마 그뿐 아니라 한국어를 모어로 하는 인구 수가 6700만으로 세계 16위(Ethnologue 2005 기준)에 달한다는 점도 반영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몇몇 신문이 이를 계기로 한글의 뛰어남을 찬양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대전일보는 해당 사실을 전하면서 사설을 통해 독일 언어학자 베르너 사세의 한글 찬사와 작가 펄 벅의 한글 찬사를 인용했고, 문화일보 역시 사설을 통해 한글에 대한 칭찬을 싣고 있다. 이러한 무분별한 찬양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하나는 PCT의 국제 공개어로 채택된 것은 '한글'이 아니라 '한국어'라는 점에서 두 신문은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셈이라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한국어 또는 한글이 내재적인 우수성으로 인해 PCT에 채택된 것이 아니라 특허 출원 수나 모어 화자의 수가 기준이 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정인지의 말처럼 훈민정음(한글)이 "비록 바람 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일지라도 모두 이 글자를 가지고 적을 수가 있다雖風聲鶴唳鷄鳴狗吠 皆可得而書矣."고 믿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서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한글이 PCT 국제 공개어로 채택된 것이 아니라면 그에 대한 말을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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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바뀌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대체로 '사회의 변화'가 그 원인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언어학자 울만Ullmann은 말의 의미변화 원인을 언어적, 역사적, 사회적, 심리적 원인, 그리고 외래어의 영향에 의한 원인 등 다섯 가지로 나누었지만 그 다섯 원인들이 무자르듯 정확하게 갈라지는 것은 아니다. 가령 우리네 근대화 과정을 생각하면 일본을 통해 서구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외래어 혹은 외국어의 영향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것은 또한 사회적 원인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음이 비슷한 것들은 의미혼동을 겪게도 된다. 역사적 원인이라는 것은 이런 사실들을 통시적으로 보았을 때의 변화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비근한 예를 찾느라 우리네 근대화 과정을 예로 들었지만, 사실 그만큼 심각한 언어변화를 찾기도 힘들다. 해서 우리말 속에는 일본말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왔는데, 지속적인 '국어순화'를 통해 일본말은 많이 사라진 상태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말의 생명력은 끈질기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말 낱말책에 실린 일본말과 일본식 한자어를 합치면 30%정도가 된다고 한다. 과연 책을 읽다보면 독자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사실들이 많이 있다. "이것도 일본말이었어?"

본전이라는 의미의 '똔똔,' 어린이들이 주로 배우는 놀이인 '셋셋세(세세세),' 감청색이나 짙은남색을 뜻하는 '곤색'은 물론이고 일생一生을 뜻하는 '생애生涯'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힘'의 전남 방언으로 등록되어 있는 '히마리' 등이 모두 일본말이라는 것이다. ('생애'는 물론 정극인의 「상춘곡」에도 등장하지만, 그때의 '생애'는 지금과 같은 일생의 뜻은 전혀 담지 않고 처한 환경 혹은 생활 환경을 뜻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테레비television, 리모콘remote controller, 레미콘ready-mixed-concrete, 도란스trans 등에서 보듯이 본래 일본어가 아닌 것들까지도 우리는 일본식으로 자주 읽는 것이다. 책에는 없지만 밧데리battery와 같은 낱말은, 일본에서 영어를 배워 발음이 어색한 윗 세대들의 표기법을 비웃는, 요즘 젊은 층들도 아무 거리낌없이 쓰는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장을 완전히 수긍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말이 된 낱말들까지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말의 순수함은 혈통의 순수함만큼이나 검증하거나 보장하기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말이 다른 말들 속으로 들어갈 때는 각자의 자리매김을 다시 하기 때문이다. 복거일은 '사라さら'라는 말을 없앨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쓰고 있다.

지금 우리의 삶에서 사라는 접시와 완전한 동의어는 아니다. 사라는 큰 접시를 뜻한다. 그래서 그 말을 몰아내면, 다른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은 언뜻 보기보다 크다
- 복거일『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문학과지성사, 1998, 132쪽.
이렇듯 개개의 말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는 복 씨가 어떻게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게 큰 영어공용어화를 주장하게 되었는지 그 복잡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위의 글만은 우리가 새겨 읽어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말 속에서 걸러내야 할 일본말이나 한자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계주라는 말보다는 이어달리기라는 말이 훨씬 좋다. 공사판의 수많은 일본말들은, 최근 '순화'의 노력을 하고 있듯이, 우리말로 바꾸어써도 전혀 지장이 없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모든 일본말을 우리말로 바꾸어써야 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실질적으로 저자 박숙희씨도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철학哲學이나 기차汽車와 같은 낱말은 일본식 한자말이지만, 우리말로 정착이 된 것이라고 보고 이는 책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말로 정착되었다'의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가령 '와사비'와 같은 낱말은,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끔 '겨자'라는 말을 쓸 뿐, 우리말 언중들이 다같이 쓰는 말인데 이를 꼭 '고추냉이 양념'이라고 고쳐야 하는가말이다. 더구나 와사비는 초밥 등의 일본음식을 먹을 때 주로 쓰는 말인데말이다.

그 밖에 사소한 문제들도 있다. 이를테면, 이해를 돕기 위해 넣은 예문이 일본말을 쓰면 "불량한 사람"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자네들이 무슨 불량배인가, 좋은 우리말을 놔두고 왜 일본말이야."라는 예문이 가진 문제점은 명확하다. 그건 일제강점기의 낱말인 "불령선인不逞鮮人"의 현대판 민족주의적 번안어이다. 또한 부부인듯한 두 사람이 등장할 때, 남자쪽은 대개 '해체'나 '하오체'를 쓰고 여자쪽은 '해요체'를 쓰는 것도 바른 묘사는 아니다.

반드시 바꿔 써야 할 우리말 속 일본말
박숙희/한울림어린이(한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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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허 선생의『문장강화』는 '文章强化'가 아니라 '文章講話'다. 초판(1940)으로 치면 63년, 증정판增訂版(1947)으로 쳐도 50년은 족히 넘게 오래된 이 책을 다시 읽은 이유는 여러 미디어에서 꽤나 칭찬을 해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기에라도 남겨두는 이유는 충분히 그 칭찬에 값하는 것 같이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에 대한 칭찬은 해제를 쓴 임형택 교수가 다 한 셈이니, 무엇보다 이 책은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보여주는 글인 것이다. 부록의 예문 색인만 네 쪽이 되니 그것은 수치로도 증명되지만 어느 쪽이고 책을 펼쳐봐도 예문이 없는 장면은 볼 수 없다시피 하다. 어느 곳은 아주 예문이 왼쪽-오른쪽 두 쪽을 꽉 채우고 있기도 하다. 임 교수는 "예문의 풍부함은 신문학 20년이 도달한 우수한 성과를 집결해놓았다 할 것이다."(4쪽)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이 하나도 과장이 아니게 생각된다. 알게모르게, 아니 전연 모르면서 근대문학을 아래로 보았던 내게 반성의 기미가 보일 듯도 하다.

이태준은 또한 당시에 이미 언어예술로의 문학에 대해 상당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책이라고는 '책'보다 '冊'자가 더 책 같다."(224쪽)는 부분은 흔히 한자어의 장점으로 꼽히는 함축이나 축약의 쉬움에다 중요한 한 가지 점을 더하고 있다.


내친 김에 기림의『문장론신강文章論新講』도 읽었다. 88년에 심설당에서 아마 초판을 내고 말은 것 같은 기림 전집의 넷째 권이다. 본래는 50년 4월에 낸 글이라, 잠시 멈칫했다. 전쟁 직전에 문장론을 쓰다니.

이태준의 『문장강화』가 '보여주기'식의 글이라면 기림의 『문장론신강』은 설명하기 식이다. 서양 문학과 철학에 상당한 조예가 있은 기림은 아리스토텔레스, 리처즈, 소쉬르, 가디너 등을 인용하며 거의 일반언어학 수준의 '이론편'과 역시 외국 이론의 수입이 많고, 실무에 닿아있긴 하지만 상허에 비하면 거의 없다시피한 실용성을 지닌 '실천편'을 두고 있었다. '문장론'이라는 제목으로는 꽤나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부록으로 실린 「새 문체文體의 갈 길」, 「새 말 만들기」, 「한자어漢字語의 실상」 이 세 편의 글은 '한글오로지쓰기'와 관련해 중요한 부분들이 들어있었다. 그것은 번잡한 대로 이태준의 한자어에 대한 입장과도 함께 읽으면 좋을 글인 것 같다.


이태준은 김두봉 선생의『말본』머리말에서

길이 없기어든 가지야 못하리요마는 그 말미암을 땅이 어데며 본이 없기어든 말이야 못하리요마는, 그 말미암을 바가 무엇이뇨. 이러므로 감에는 반드시 길이 있고, 말에는 반드시 본이 있게 되는 것이로다.

와 같은 책 본문의

쓰임
ㅏ, 몸은 다른 씨 위에 쓰일 때가 있어도 뜻은 반드시 그 아래 어느 씀씨에만 매임
ㅓ, 짓골억과 빛갈억은 흔히 풀이로도 쓰임

을 문제삼으며 "무슨 암호로 쓴 것 같이 보통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26쪽)고 적고 있다.

그는 또 염상섭의 단편 「전화」와 「제야除夜」의 일부를 각각 인용하여 순우리말 중심인 「전화」를 "성의일원적聲意一元的"인 문장이라 하고 한자어가 많이 섞인 「제야」를 "성의이원적聲意二元的"인 문장이라 지칭하면서, 묘사에는 앞의 것이 좋고 학문이나 논설, 이론에는 뒤의 것이 낫다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그도 황진이의 유명한 「동지달 기나긴 밤을-」의 "서리서리"와 "굽이굽이"를 각각 "곡곡曲曲"과 "절절折折"로 신자하가 옮겼다는 데 가서는 "능역能譯"이긴 하지만 "'서리서리' '굽이굽이'의 말맛을 도저히 따르지 못하는 것"(63쪽, 강조 인용자)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반면 기림은 기본적으로 '한글 오로지 쓰기'에 상당히 가까운 면을 보이면서도 이른바 '순수주의'에는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어떤 한자어는 아주 "사생아私生兒"라고 부르고 있기도 하면서, 어떤 고유어는 한자어보다 더 어려운 고유어라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 당시를 기준으로 하였으니 지금에 와서는 조금 우스운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생물生物'이나 '무생물無生物'을 '산것' '안산것'이라고 고친 것은 "어린이들에게 쉬운 말로부터 가르치려는 좋은 의도가 보"(203쪽)인다고 하고 '암염岩鹽'을 "거의 우리가 쓰지 않는 일본말 한자어"(204쪽)라고 일컬으며 '돌소금'으로 옮겨놓은 것을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적고 있다. 또 '변성암變成岩'을 '변해 된 바위'라 하고 '火成岩'을 '불에 덴 바위'라고 한 것은 시일이 지나면 순우리말이 한자어를 물리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상사형相似形'을 '닮은꼴'로 바꾸는 것이나 '대각선對角線'을 '맞모금'으로, '반경半徑'을 '반지름'으로 바꾸는 것을 두고는 "우리는 과연 새말을 낡은 한자어보다 더 변호할 정열을 느끼게 될까."(205쪽)라고 묻고 있다.

게다가 '파충류爬蟲類'를 '길동물'로 '포유동물哺乳動物'을 '젖빨이 동물'로 옮기는 데는 동의하면서 '양서류兩棲類'를 '물뭍동물'이라고 멋지게 옮긴 것에는 반대하고 있다.


어쨌든 '우리말 오로지 쓰기'와 '국한문병용론'을 포함하여 두 문장론 책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은 바로 문체론이다. 어문일치語文一致 혹은 언문일치言文一致를 모든 글의 중심으로 하고 딛고 일어설 든든한 반석으로 여기는 것에서는 당대의 문장가들의 무거운 역할들이 눈앞에 보이는 것이다. 특히 이태준은 책의 앞부분에서

"벌써 진달래가 피었구나!"를 지껄이면 말이요 써놓으면 글이다. 본 대로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하듯이, 본 대로 생각나는 대로 문자로 쓰면 곧 글이다. (12쪽)

라고 하다가도 책의 마지막에 가서는

언문일치의 문장은 틀림없이 모체문장, 기초문장이다. 민중의 문장이다. 앞으로 어떤 새 문체가 나타나든, 다 이 밭에서 피는 꽃일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언문일치 문장은 민중의 문장이다. 개인의 문장, 즉 스타일은 아니다. 개성의 문장일 수는 없다. 언문일치 그대로는 이 앞으로는 예술가의 문장이기 어려울 것이다. (296쪽)

라고 쓰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물론 기림도 뷔퐁Buffon의 "글은 사람이다Le style est l'homme même."(80쪽, 277쪽)를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도 하다.


문장강화
이태준 지음, 임형택 해제/창비(창작과비평사)

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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