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먼저 가만히 작고 어두운 영화관 하나를 떠올려보자. 시인 기형도가 죽었다던 허름한 종로의 극장도 좋고, 사람들이 데까메론을 알건 모르건 매년 그해의 '보카치오'를 동시상영으로 마구 틀어댔던 동네의 3류 극장도 좋다. 예술영화를 자주 틀어주는, 그래서 관객은 별로 없는 조용한 극장도 괜찮다. 사실 꼭 작고 어두운 극장일 필요도 없다. 푹신푹신한 의자에 음료 거치대까지 있는 최신식 멀티플렉스 영화관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내가, 당신이, 그리고 사람들이 영화를 본다는 것이다.

자, 영화가 끝났다. 영화란 건 늘 금세 끝나는 법이니까.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대다수 극장에서는 환하게 불도 켜준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어디로? 세상으로. 커다란 박스 속에 들어가 한두 시간을 어둠 속에 머물며 주인공과의 삼투현상을 경험했던 우리는 이제 다시 '나'로 돌아온다. 문득 궁금하다. 내가 잠시 사라진 동안 세상에는 별일이 없었나?

우리가 극장에 있는 그 한두 시간 동안 어쩌면 어머니는 감기에 드셨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눈이 더 침침해져 돋보기 안경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누이는 어디선가 휴대폰을 잃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 시간 동안 대통령이 유명을 달리했을지도 모르고, 크레인에 올라갔던 한 노동자가 실신했을지도 모른다. 어딘가 요정에서는 정치인들의 킬킬거리는 소리가 새나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미국의 군대가 어느 민간인과 언론을 향해 총질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두운 극장 속에 있는 그 사이에.

출구없는 극장#

사건과 사고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가 극장을 가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되거니와 그럴 수도 없다; 우리는 누구나 극장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는 델리스파이스와 함께 출구 없는 극장을 노래하고 있다:

오 오 오 너는
오 오 오 너는
생의 무대 위 안락의자에 고양이처럼
차갑고 초연한 고양이처럼 앉아있지
출구 없는 극장 안에, 출구 없는 극장 안에

수많은 영화들 지나가네
웃기고 슬프고 외롭고 힘들고 대답없는
그런데 이 어두운 극장 밖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오 오 오 너는…
오 오 오 너는…

이를테면, 우리는 누구나 출구 없는 극장 안에 앉아 있다. 웃긴 영화와 슬픈 영화를 번갈아 보지만, 그것들 대부분은 우리 삶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아침 지하철에서 봤던 신문지를 모으는 할아버지와 지하도 입구 앞에 앉아 손을 벌리고 있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장애인 사내를 보고서도 그저 '뻔하게 슬픈 영화로군' 하고 중얼거릴 뿐이다. 우리가 이 습한 극장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안 그랬을는지도 모른다. 지팡이를 짚고서 객차를 오가는 사람을 보고서도 조금쯤 눈물을 흘리고, 제 부모를 졸라 천원 한 장이라도 그 가벼운 바구니에 넣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기억은 모두 사라져 알 수 없다. 그 젖은 필름만 기억 속에 남아 이젠 거의 외울 수도 있을 정도가 됐다, 시인 김혜순이 「달력공장 공장장님 보세요」에서 "이 음악은 이제 너무 들었어요 지겨워요 / 열두 곡이 다 흐른 다음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잖아요?"라고 노래했던 것처럼. 딱하지만, 나와는 관계 없는 영화들이다. 달력의 배경사진 같은 영화들.

하지만 순간 우리는 얼마간 외로워진다. 가령 어느날 지하철에 서 있던 나에게 급성위경련이 찾아왔다. 그래, 앉으면 조금쯤 안정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앞에 앉아있는 아저씨는 나에게 관심조차 없다. 입속에서는 역한 침이 나온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화장실로 뛰어간다. 요컨대 내가 만든 영화도 결국 그렇고 그런 영화일 뿐이었던 것이다. 다 보고 나서도 별로 기억나는 장면도 없는 영화 말이다. 아무리 내가 떠들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그제서야 이 극장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출구는 없다.

그제서야 문득 궁금하다: 그런데, 이 어두운 극장 밖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한국에서의 학살#

참, 그렇지. 바깥에서는 학살이 있었다고 했어. 삐까쏘Picasso라든가 황석영, 이런 사람들이 그런 소문을 전했지. 삐까쏘는 「한국에서의 학살」로, 황석영은 『손님』으로. 신천 대학살이라고 했어. 처음엔 조금 놀랐고, 다음에는 의심했고, 이어 분노했지만, 곧 평온을 되찾았어. 그건, 그래, 예술성 짙은 좋은 영화였을 뿐이니까.

생각난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그 표현주의적인 면모가 뛰어났지. 「1808년 5월 3일」이라는 고야의 그림과 「황제 막시밀리안의 처형」이란 마네 작품의 구도를 그대로 가져왔고. 마침 그러고보니 삐까쏘는 공산주의자였다지.

『손님』은 또 어떻고. 종래의 리얼리즘을 재편하겠다며 다성성多聲性을 들고 나온 황석영의 역작이었어. 다성성이란 건 그러니까 러시아의 문학평론가 바흐찐이 도스또예프스끼 시학에서 얘기했던 건데, 뭐 등장인물들이 작가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하고 작가에게 대들기도 하는 여러 목소리를 가진 거라고 하던가. 영어로는 폴리포니polyphony. 근데 『손님』을 읽어보니 꼭 그렇지도 않던걸. 여러 사람이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다 똑같은 말만 하던걸. 종래의 리얼리즘을 바꾼다는 황석영의 말을 차치하고, 어쨌든 좋은 작품이었지. 그러고보니 황석영은 북에도 갔다왔잖아. 내 기억이 맞다면,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벌건 표지의 책도 한권 냈을걸.

하지만 어쨌거나 이런 것들은 다들 옛날 얘기만 하잖아. 이젠 시대가 달라진 거 아니야? 극장 바깥은 아직도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뭐? 학살이 또 있었다고?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그래. 그러고보니 들은 적이 있었던 것도 같아. 하지만 이젠 학살이 하나 더 있고 덜 있고 간에 상관이 없는 그런 지경 아니야?

학살은 아우슈비츠에서도 있었고, 킬링필드에서도 있었어. 남미나 아프리카 같은 데선 한때 거의 일상적이었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원자폭탄도 떨어졌다구. 그리고 사실 빈민가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은 학살이 상시화된 거 아니야? 수많은 학살 가운데 하나가 더 있다고 해서 지금 무슨 차이가 있냐구.

작은 연못#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의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하지만 학살로 사람들이 죽었어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죽었어요. 가끔씩 티격태격 다퉜고, 때로는 서로 흉도 보고 비웃기도 했지만, 그래도 함께 살던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었어요.

순진하게 미군을 믿다가 죽고, 탈출하다 죽고, 말이 안 통해 죽고, 갓난 아이는 그저 울다가 죽고…….

지금껏 우리의 슬픔을 얘기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어요. 누구는 그럴리 없다고 했고, 누구는 전쟁 통이니 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했어요.


그래놓고, 이제와 또다시 전쟁을 하자고 해요. 우리를 죽인 사람들이 우리편이고, 우리를 구해준 사람이 적이래요.

그럼 우리는 누구인가요? 누가 우리인가요? 우리는 적인가요? 적은 우리인가요?

극장 밖#

비로소 출구가 열렸다.

어두운 극장을 나서서 바깥 세상으로 나왔다.

어떻게 나왔을까, 지금까지는 왜 출구가 안 보였을까.

바깥 세상은, 그러나, 극장 안과 마찬가지로, 어둡다.

지금이 몇 시인지 모르겠다, 사람들마다 다르게 말했다.

한 노인은 지금이 상쾌한 아침 10시라며 기지개를 켰고, 어떤 정치인은 지금은 새벽 5시임을 확신한다고 했다.

토끼를 키운다는 작가들은 지금이 25시라고 입을 모았고, 커다란 벽시계는 밤 11시5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문득 손목시계를 보니 뉴스를 할 시간이었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Posted by 엔디
출판도 유행을 따르는 것 같다. 아니, 내가 헤아려 보건대 출판이야말로 유행에 가장 민감한 분야 중 하나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셜록홈즈 전집이나 뤼팽 전집이 시일에 큰 차이를 두지 않고 두세 출판사에서 중복 출판된 것이 하나의 예가 될 것이며, 또 얼마 전의 '쥘 베른'의 중복 출판도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유행은 '삼국지'다. 소설가 황석영이 『삼국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질 때 즈음하여 다른 출판사들은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삼국지』로 가장 많은 상업적 성공을 본 민음사나 정역正譯의 자부심이 넘치는 솔출판사의 온-오프라인 서점 마케팅은 꽤나 살벌했다. 그 와중에 나는 글 한편 '이링공 뎌링공' 만들어 '당첨'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분은 그렇게 깔끔하고 깨끗하지 않다. '삼국지'라…. 상식적인 것부터 잠시 보자면 우리가 흔히 '삼국지'라 불리는 것은 진수가 쓴 동명同名의 역사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나관중이 각색한 『삼국지연의』를 말하는 것인데, 『삼국지연의』는 『수호지』, 『서유기』(혹은 『홍루몽』), 『금병매』 등과 함께 중국의 4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다. 다시 말해 재미있는 소설작품이다. 그 안에서 삶의 지혜나 처세의 능란함을 배우기도 한다. 재미있으면서 지혜나 능란함을 배울 수 있다면 분명히 좋은 책이다. 그런데, 그것도 정도程度문제다.

다른 글에도 내가 썼듯이, 무명의 번역자가 옮긴 것이나 아동용 다이제스트판, 번역자도 표시되지 않은 '해적판' 등을 제외하고 중국문학자나 문인, 적어도 문文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의 번역만도 열을 헤아린다. 박태원, 이문열(민음사), 김홍신(대산출판사), 구용 김영탁(솔), 김동리·황순원·허윤석(박영사), 장정일(문화일보 연재), 황병국(범우사), 월탄 박종화(어문각/대현출판사), 정비석(고려원), 조성기(열림원), 연변대학삼국연의번역조(청년사)까지.

10여 개의 번역본을 헤아리면서 누구인들 한 가지 의심 하나 가지지 않을 수 있으랴. 모두가 정역正譯을 뽑내고, 자신의 『삼국지』가 진짜 '삼국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차라리 이문열은 "쓸모없는 노력의 중복"을 막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많이 반영시켜 평역評譯을 한다고 밝혔으니, 그 평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솔직하다고 하겠다.

황석영의 『삼국지』가 나온 것은 바로 이 시점이다. 듣자하니 창비의 수장(?) 백낙청 교수까지 황석영을 독려하여 번역작업을 진착시켰다고 한다. 입술 끝에서 씁쓸함을 느꼈던 것은 그 말을 듣고서가 아니었나 싶다.

황석영 자신도 중복출판에 대한 부담감은 그대로 떠앉지 않았을까 싶다. 모든 '삼국지' 번역자가 그러하듯이 황석영도 변명조의 역자 서문을 실었다. 역자는 말한다.

『삼국지』의 줄거리는 원래 정통역사서에서 출발해 여러 시대에 걸친 민중들의 구전설화와 재담, 연희·연극 등의 공연예술, 작가·문인들의 창작이 덧붙여져서 이루어진 것이다. 열 중에 일곱이 사실이라면 나머지 셋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이 나머지 셋이야말로 각 시대를 통해 끈질기게 이어져내려온 민중들의 꿈과 소망이 반영되어 있는 부분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보다 더욱 중요한 역사의식이다.

특히 원작자인 나관중의 정치적 입장은 당대 민중의 인의론(仁義論)과 한족 정통성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나관중은 이민족 원나라에 항거하는 농민봉기에도 가담했으며, 그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장사성(張士誠)과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천하통일의 기초가 된 조조의 위나라보다 유비의 촉한을 중심으로 줄거리가 서술되고 있는 당연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조조는 귀족이었고 손권도 강남 명문제후의 후손이었지만, 촉한의 유비·관우·장비는 물론 제갈량까지도 당대 백성들과 거의 같은 몰락한 선비거나 지방 무뢰배에 지나지 않았다. 유비가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의리를 지키느라고 여포에게 여러 차례 시달린다든가, 세력의 근거지가 될 한중땅을 단번에 차지할 수 있는데도 도덕적 대의명분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가까스로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을 보면 『삼국지』가 당대 민중들과 더불어 추구하려 했던 가치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관운장이 온갖 영예를 뿌리치고 조조를 떠나 필마단기로 유비를 찾아가는 과정이나 선주 유비와의 약속 때문에 어리석은 유선을 보좌하다가 위나라 정벌을 떠나기에 앞서 제갈량이 「출사표」를 올리는 대목 등에서 우리는 뜨거운 감동과 함께 눈물에 젖는다. 그러나 인덕과 의리를 추구한 유비 삼형제와 제갈량 등의 촉한은 실패한다.

의(義)를 추구했지만 현실에서 실패하고 좌절한 영웅을 기리는 백성들의 풍조는 동서고금이 다 같은데, 일본에서는 오히려 조조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때로는 그를 중심으로 『삼국지』의 기본 줄거리를 전개하는 작품도 있다. 이는 패권과 현실에서의 힘을 추구하는 가치관에서 비롯한 것이다. 나는 저러한 이른바 '현대적 해석'에 대해서 백성들의 보편적인 염원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축이다. 따라서 나는 원본의 관점과 흐름에 적극 찬동했고, 이것이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삼국지』에 대한 일관된 애정의 원천이기도 하다.

고전은 무엇보다도 원문대로 전달이 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누구나 그것을 읽고 나름대로의 가치관에 따라 해석하고 비판하고 재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고전의 정신이야말로 무한한 재생산의 보고이다. 『삼국지』의 형성과정이 그렇듯이, 천여년 동안 여러 시대와 나라를 거치면서 투영된 당대 백성들의 소망이며 꿈은 역사적으로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변명과 추측이 난무하여 일관성을 결하고 있는 이 옮긴이의 말은 『장길산』작가의 번역이라는 이미지에 그야말로 밀려나고 있다. 그는 나관중이 원에 항거하는 농민봉기와 그 지도자인 장사성과 관계가 있다는 '설說'을 근거랍시고 들며 "위나라보다 유비의 촉한을 중심으로 줄거리가 서술되고 있는 당연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고, "인의론(仁義論)과 한족 정통성"에 근거를 둔 정치적 입장을 견지했다고 하다가 유비 등이 "무뢰배"였다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민중과의 유대는 황석영이 '힘'의 심볼로만 파악한 조조의 위魏나라에서 더 잘 보인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위진남북조시대'라고 부를 때, 우리는 촉蜀과 오吳의 존재를 깡그리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동양사학계가 '위'를 삼국의 대표격으로 본 이유는, 조비가 헌제의 양위를 받았다는 것도 작용했겠지만, 역사의 정통성을 당대 민중과의 유대와 민중을 위한 정책의 유무로 판단하기도 하는 사정 때문이다. 당시 위는 한나라 때부터 있었던 '둔전제'를 발전시킨 '전농부 둔전제'를 시행하였는데, 빈농貧農에게는 토지뿐만 아니라 밭갈이 소와 농기구, 그리고 종자까지 대여해 허창 주변에서 둔전시키기도 하였다.

더구나 인의론이란 무엇인가. 『삼국지연의』의 서두에 등장하는 '고조참백사'는 유劉씨가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내포를 담고 있다. 유비가 결국 황제가 된 것도 (적어도 명분상으로는) 백성들의 열망과 염원과는 별 관계없이 그가 옛 왕족의 후손이라는 것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보편적인 염원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축"이라서 나관중의 역사인식에 찬동한다는 것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무지의 소치所致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고전은 원문대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그의 변辨에 대해서도 우리는 충분히 반박할 수 있다. 그것은 『월탄 삼국지』나 '이문열『삼국지』'는 또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정역正譯을 표방하며 나왔고 어느 정도 인정도 받고 있는 '구용『삼국지』'의 존재를 깡그리 무시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구용『삼국지』'의 비교우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럴 뜻도 없지만 그럴 능력도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황석영이 구용의 작품이 있음에도 새롭게 '삼국지'를 낸다면 구용의 작품에 대해서도 어떤 입장 정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황석영 삼국지에 의의가 전혀 없지는 않다. 중국 고대 인물화의 권위자라는 왕훙시의 삽화를 실었다는 점 이외에도 흔히 번역대본으로 삼는 '모종강본'을 버리고 원본인 '나관중본'을 번역텍스트로 삼았다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창작과비평사'와 같은 출판사가 『삼국지』를 출간하는 것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민음사 관계자가 "본래 영웅사관에 입각해 있는 삼국지는 '민중작가' 황석영과는 어울리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 것은, 더구나 그 지면이 조선일보이고 보면, 속이 뒤틀리는 대목이긴 하지만 어쨌든 맞긴 맞는 이야기다. 『삼국지』의 원본이 여기 있는데, 창비의 원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삼국지 1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왕훙시 그림/창비(창작과비평사)

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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