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13

고도를 기다리며 쏟아내는 장광설: Beckett『고도를 기다리며』

'고도Godot'는 죽음이다. 도대체 사람이 이생에서 죽음말고 무엇을 기다릴 수 있단 말인가. 이성복이 삶이란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던 것처럼 고도기다리기 역시 '집으로 가는 길'이다. '집'에 도달하면 그들은 살게(즉, 죽게) 된다. 블라디미르 내일 목이나 매자. (사이) 고도가 안 오면 말야. 에스트라공 만일 온다면? 블라디미르 그럼 살게 되는 거지. -『고도를 기다리며』오증자 옮김, 민음사, 2000, 158쪽.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죽기를 바라고 목을 매달아도 그들은 죽을 수 없다. 에스트라공 그렇다면 당장에 목을 매자. 블라디미르 나뭇가지에? (둘은 나무 앞으로 다가가서 쳐다본다) 이 나무는 믿을 수가 없는걸. (24쪽) 그곳은 '죽지 못하는 곳'이다. 에스트라공이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

대사의 리듬: 임영웅《고도를 기다리며》

극단 산울림의 《고도…》가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다는 소리도 들은 바 있고 해서 기대를 상당히 했는데, 그 기대가 전혀 깨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의 흠도 없이 진행된 연극은, 거의 세 시간이나 되는 긴 연극이었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예상과는 무척 다른 연극이긴 했다. 그건 나의 고정관념 때문에 텍스트를 잘못 읽어서 생긴 문제였다. '실험극', '부조리극' 따위의 말 때문에 나는 이 연극이 으례 지루하고, 시종 비장감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베케트의 '고도…'는 비장한 극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희극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라고 이 연극을 보고 동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이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형식이다. 비극적인 희극 혹은 희극적인 비극. 연극은 거의 완전히 원작을..

극장전 2003.06.21

상상력의 재미, 즐거움: Goscinny & Uderzo『아스테릭스』

"만화를 왜 읽는가" 하는 것은 어리석은 물음이다. 묻는이가 만화를 한 번도 읽지 않았다면 모르되 그도 만화가 재미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화가 왜 재미있는가' 하는 물음은 쉽게 대답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프랑스 만화 '아스테릭스'에는 유쾌한 재미가 있다. 그 재미는, 우데르조의 표현대로라면, 대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데서 얻어지는 재미이다. 누가 만화가 상상력을 저하시킨다고 했던가? '아스테릭스'의 즐거운, 뒤집힌 상상력은 창조적 사고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아스테릭스'의 특징은 무엇보다 명언과 속담과 관련된 언어유희와 역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행하는 패러디, 그리고 캐릭터 강한 인물들의 반복되는 행동에 있다고 생각된다. "'아스테릭스'가 왜 재미있는가" 에 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