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3

닳은 메타포: 박흥용『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좋은 예술작품이 갖추고 있어야할 여러 조건 중에는 새로움도 포함된다. 탄탄한 줄거리나 재미있는 볼거리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이 전부는 아니다. 박흥용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 좋은 예술작품이 되기 어려운 까닭은 여기에 있다. 작품의 전체적인 틀은 성장소설Bildungsroman의 원형을 갖고 있다. '견주堅柱' 혹은 '견자犬子'가 서자로서의 불만을 품고 있다가 어떻게 당대 최고의 칼잡이가 되고, 또 거기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이 만화가 그리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전통적 메타포들이 동원되었다. 메타포들이 이 작품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엄청나다. 메타포를 빼면 짧게 요약한 줄거리에 불과할 정도다. 이를테면 '방짜'의 메타포가 그렇다. 방짜 메..

움직이는 시간, 움직이지 않는 시간: Prado『섬』

프라도의 『섬』은 특이한 만화다. 대부분의 만화는 몰입없이 빨리 읽을 수 있도록 비교적 단순한 서사구조récit를 가지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만화들은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갖지 못하고 내용으로 환원되기도 한다. 그런 만화들의 경우에는, 한 편의 작품이 그 줄거리로 대체되어도 큰 문제가 없어보인다. 『섬』은 독자의 몰입을 요구한다. 독자는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려는 바가 무엇인가, 이 작품이 왜 이렇게 구성되었는가를 생각하기 시작하고, 종국에는 작품에 깊이 몰입하게 된다. 퍽 짧은 이 책이 두번씩 세번씩 읽히는 이유도 그것이고, 시일이 지난 뒤에도 다시 꺼내읽게 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스콧 매클루드는 그의 『만화의 이해』에서 '홈통'의 역할을 강조하며, 바로 그곳이 독자의 상상력이 개입할 ..

상상력의 재미, 즐거움: Goscinny & Uderzo『아스테릭스』

"만화를 왜 읽는가" 하는 것은 어리석은 물음이다. 묻는이가 만화를 한 번도 읽지 않았다면 모르되 그도 만화가 재미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화가 왜 재미있는가' 하는 물음은 쉽게 대답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프랑스 만화 '아스테릭스'에는 유쾌한 재미가 있다. 그 재미는, 우데르조의 표현대로라면, 대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데서 얻어지는 재미이다. 누가 만화가 상상력을 저하시킨다고 했던가? '아스테릭스'의 즐거운, 뒤집힌 상상력은 창조적 사고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아스테릭스'의 특징은 무엇보다 명언과 속담과 관련된 언어유희와 역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행하는 패러디, 그리고 캐릭터 강한 인물들의 반복되는 행동에 있다고 생각된다. "'아스테릭스'가 왜 재미있는가" 에 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