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어릿광대의견해

조작된 은혜의 방정식: 므두셀라와 홍수

엔디 2008. 1. 29. 03:04

성경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오래 산 사람은 므두셀라다. 이 땅에서의 수명에 대해 관심이 많은 우리 인간들은 므두셀라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사실 창세기를 들여다보면 창세기 기자記者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창 5:21-27):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다음 삼백 년 동안 하느님과 함께 살면서 아들딸을 더 낳았다. 에녹은 모두 삼백육십오 년을 살았다.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느님께서 데려가신 것이다.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다. 므두셀라는 라멕을 낳은 다음 칠백팔십이 년 동안 살면서 아들딸을 더 낳았다. 므두셀라는 모두 구백육십구 년을 살고 죽었다.

성경에 므두셀라가 등장하는 것은 이 일곱 절 두 문단이 전부다. 창세기는 아담의 후손에 대해 긴 족보를 열거하고 있으며, 그 바로 앞에는 므두셀라보다 훨씬 중요하고 소중한 에녹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의 눈은 에녹보다는 므두셀라에 대한 소개 쪽에 치우쳐 있는 듯하다. 정말 969년을 이 땅에서 살고 싶은 것일까? 그러나 (그 자신은 120년을 산) 모세는 이런 시를 남기고 있다(시 90:10-12):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 년, 근력이 좋아야 팔십 년, 그나마 거의가 고생과 슬픔에 젖은 것, 날아가듯 덧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누가 당신 분노의 힘을 알 수 있으며, 당신 노기의 그 두려움을 알겠습니까?
우리에게 날수를 제대로 헤아릴 줄 알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이 지혜에 이르게 하소서.

최근에는 므두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므두셀라 증후군이란 과거를 아름답고 찬란했던 것으로만 기억하려고 하는 경향을 말한다고 한다. 아마도 나이가 들수록 현세를 긍정하게 되고 이 땅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인간의 한계를 반영한 작명인 듯하다.


1. 므두셀라, 그가 죽을 때 심판이 온다?

그런데 성경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므두셀라가 죽은 해에 특별한 사건이 일어난 것을 관찰할 수 있다.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다. 창세기 8장 11-12절은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이월 십칠일, 바로 그 날 땅 밑에 있는 큰 물줄기가 모두 터지고 하늘은 구멍이 뚫렸다. 그래서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땅 위에 폭우가 쏟아졌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단순한 산술 계산만으로 187+182+600=969를 얻을 수 있다. 곧, 므두셀라는 우리가 '노아의 홍수'라고 불리는 사건이 있던 해에 세상을 떠났던 것이 확실하다.

이를 두고 창조과학회에서는 이것이 여호와의 은혜라고 홍보한다. 미국 창조과학회the Institute of Creation Research의 학회장president인 존 D. 모리스John D. Morris 박사는 므두셀라는 어떻게 죽었을까? How Did Methuselah Die? 제하의 글을 통해 므두셀라의 장수長壽는 여호와의 인내였다고 쓰고 있다. 그에 따르면 므두셀라라는 이름이 '그가 죽을 때 심판이 온다when he dies, judgment'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므두셀라가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였던 하나님의 사람 에녹은 아들의 이름을 “그가 죽을 때 심판이 온다”라는 의미를 가진 ‘므두셀라’로 지었다. 그는 아마도 장차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예언적으로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매우 흥미롭게도 므두셀라는 하나님이 노아의 대홍수로 타락한 세상을 심판하셨던 바로 그 해에 죽었다.
[…]
그리고 이것이 므두셀라에게 일어났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는 마지막 순교자였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살해되었을 때, 하나님의 인내는 끝났던 것이다. 인류를 보존하시기 위해서, 특별히 장차 구속주가 오시게 될 여자의 후손을 남겨놓기 위해서, 하나님의 정의는 마침내 촉발되었던 것이다.

When Methuselah was born, his godly father must have prophetically known of coming things for his son's name means "when he dies, judgment," and interestingly enough, Methuselah died in the same year God judged the sinful world with the great Flood of Noah's day.
[…]
And this may have been what happened to Methuselah. Perhaps he was the last martyr, and when he was killed, God's patience was over. In order to preserve mankind, and in particular Eve's lineage through whom the Redeemer would one day come, God's justice was finally unleashed.

말하자면 여호와는 므두셀라가 죽을 때 이 땅을 심판하기로 하였지만, 오래 참고 인내함으로 인간들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 포악한 인간들이 므두셀라마저 죽이자 여호와는 므두셀라가 태어날 때 스스로와 인류에게 한 약속을 지켜 '의로운 자'였던 노아의 가족들만 남기고 나머지 인류를 홍수로 심판하였다는 것이다.

백운대 교회 김선기 목사는 이와 비슷하게 므두셀라가 므두와 셀라(샬라흐: 보내다)로서 "이 아이가 죽을 때 홍수를 보내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므두셀라와 홍수를 극적으로 연관시킨 이 이야기는 이형異形variation이 있다.


2. 므두셀라, 창 던지는 자?

삼성교회 한인종 목사는 므두셀라의 뜻을 "창 던지는 자"라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고대 세계에서 '창 던지는 자'란 마을에서 가장 힘이 센 용사로, 그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 마을의 전멸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에녹이 65세 되던 해에 므두셀라를 얻었습니다.이 아들을 얻고서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에녹은 이 아들을 통해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은 '창 던지는 자' 라는 뜻입니다.
신학자 뉴우 베리에 의하면 고대 시대 각 마을에는 그 마을을 지키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그는 그 마을에서 가장 힘이 좋은 용사로 그가 죽으면 그 마을은 곧 적에게 점령당하고 말았습니다.
'창 던지는 자'가 죽는다는 것은 그 마을, 그 부족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그래서 '므두셀라'는 '죽음 뒤에는 심판이 온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므두셀라가 죽은 해에 노아 홍수의 심판이 왔습니다.즉,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므두셀라를 주신 것은 종말에 대한 메시지였습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하나님께로부터 얻은 순간 바로 이 땅에 종말이 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므두셀라를 낳자마자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합니다.이것이 에녹의 지혜요, 믿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경고를 수없이 받았습니다.성경은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고, 그리고 우리 눈앞에 그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므두셀라에 대한 평가는 다르지만, 은평교회의 이병돈 목사도 므두셀라의 뜻을 "대확장" 또는 "창 던지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3. 므두셀라, 라 신의 사람?

미국 IVP에서 발간한 『새성경사전New Bible Dictionary』은 므두셀라의 뜻을 다르게 풀이하고 있다(F. F. Bruce et al. eds. 1996, 544):

므두셀라 METHUSELAH (히. 메투쉘라흐 מְתוּשָׁלַח, '라<Lach> 신의 사람'이라는 뜻이 분명하다). 창세기 5장의 계보에 열거되어 있는 8번째 족장이다. 그는 에녹의 아들이요 노아의 손자였다. 히브리어 역본과 LXX에 따르면, 그는 969세까지 살았다(사마리아 역본에 따르면 그는 720살까지 산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는 므두셀라에 대한 다른 언급이 없이 그 이름의 뜻이 '라 신의 사람'이라고만 적고 있다. ("노아의 손자"라고 되어 있는 것은 원문의 실수이거나 번역자의 실수일 것이다.)


4. 조작된 은혜의 방정식

신의 은혜는 신에게서 오는 것이다. 조작된 이야기이든 아니든 그 이야기를 듣고 은혜와 감동을 받을 수는 있다. 그것이 일반적으로 기독교 공동체와 공동체가 속한 사회에 일정 부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진리라는 방정식의 해가 하나 뿐이라고 믿는 기독교인으로서 작은 진실부터 규명하지 않으면 그들이 믿는 은혜는 껍데기에 불과하게 되고 말 것이다. 조작된 은혜의 무서운 점은 그것이 성경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여기에서 므두셀라의 뜻이 '라 신의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므두셀라의 뜻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확인이 있기까지 우리가 쉽게 은혜라는 감정에 휩싸이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이지, 이 목사와 저 목사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는 아니다.

신약의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가장 훌륭한 전도자인 바울로부터 가장 기쁜 소식인 복음을 전해 들으면서도 끊임없이 그 방정식의 해가 옳게 구해진 것인지 확인했던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표준새번역, 행 17:11):

베뢰아의 유대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 사람들보다 더 고결한 사람들이어서, 아주 기꺼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곧 성경을 통하지 않고는 어떠한 은혜도 쉽사리 사상누각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을 깨닫고, 해가 없거나 해가 많다고 주장하는 조작된 은혜를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기독교적인 태도이자, 논리적인 태도이며, 또한 과학적인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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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Bruce, F. F. et al. ed. 1996. 『새성경사전』. 나용화·김의원 옮김. 서울:기독교문서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