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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기다림의 목적: 가오싱젠《버스 정류장》 이성복이 「다시 봄이 왔다」에서 "기다리던 것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가 누구의 목을 껴안 듯이 비틀었는가 나도 안다 돼지 목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이라고 울부짖었을 때도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도 기다림에 대한 연극이다. 이 작품이 자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비교되는 이유는, 이 기다림의 시간이 흡사하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와 버스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작품이 펼쳐지는 공간 또한 상당히 흡사하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고도를 기다리는 장소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시골이고, 《버스 정류장》 역시 '버스 정류장車站' 팻말이 서 있는 시골길이다. 또, 두 작품의 공간은 연극 내내 바뀌지 않는다; 두 작품의.. 더보기
몰리에르「따르뛰프 혹은 위선자」 도린느 "솔직히 말해서 연인들이란 모두 돌았어요!" - 몰리에르, 「따르뛰프 혹은 위선자」 Dorine "À vous dire le vrai, les amants sont bien fous!" - Molière, Le Tartuffe ou L'Imposteur 명언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는 말이다. 가끔 이렇게 몰리에르 선생을 존경하게 된다. 하긴 말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더보기
고도를 기다리며 쏟아내는 장광설: Beckett『고도를 기다리며』 '고도Godot'는 죽음이다. 도대체 사람이 이생에서 죽음말고 무엇을 기다릴 수 있단 말인가. 이성복이 삶이란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던 것처럼 고도기다리기 역시 '집으로 가는 길'이다. '집'에 도달하면 그들은 살게(즉, 죽게) 된다. 블라디미르 내일 목이나 매자. (사이) 고도가 안 오면 말야. 에스트라공 만일 온다면? 블라디미르 그럼 살게 되는 거지. -『고도를 기다리며』오증자 옮김, 민음사, 2000, 158쪽.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죽기를 바라고 목을 매달아도 그들은 죽을 수 없다. 에스트라공 그렇다면 당장에 목을 매자. 블라디미르 나뭇가지에? (둘은 나무 앞으로 다가가서 쳐다본다) 이 나무는 믿을 수가 없는걸. (24쪽) 그곳은 '죽지 못하는 곳'이다. 에스트라공이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 더보기
대사의 리듬: 임영웅《고도를 기다리며》 극단 산울림의 《고도…》가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다는 소리도 들은 바 있고 해서 기대를 상당히 했는데, 그 기대가 전혀 깨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의 흠도 없이 진행된 연극은, 거의 세 시간이나 되는 긴 연극이었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예상과는 무척 다른 연극이긴 했다. 그건 나의 고정관념 때문에 텍스트를 잘못 읽어서 생긴 문제였다. '실험극', '부조리극' 따위의 말 때문에 나는 이 연극이 으례 지루하고, 시종 비장감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베케트의 '고도…'는 비장한 극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희극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라고 이 연극을 보고 동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이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형식이다. 비극적인 희극 혹은 희극적인 비극. 연극은 거의 완전히 원작을.. 더보기
소통의 서사극: Brecht『서사극 이론』 나는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이라는 전작 저술이 있는줄로 알았다. 전에 한두페이지 읽다가 치우고 읽다가 치운 책을 이틀에 걸쳐 읽었다. 글이 씌어질 당시의 정황이나 다른 희곡 작품들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글들도 조금 있어서 수월치는 않았다. 전체적으로는 지루했다. 전작 저술이 아닌 까닭에, 같은 내용이 여러 편의 논문이나 강연록에 자주 비슷한 형태로 노출되었다. 지속적으로 그가 강조하는 것은 '감정이입'에 대한 비판과 '낯설게 하기 효과Verfremdungseffekt'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감정이입에 대해서 그가 가진 불만은 이렇다. 배우가 연기를 잘하면 잘 할수록 관객들은 그 역할에 감정이입되어 자기가 '그'인 것으로 느끼기 때문에 여러 부작.. 더보기
진실과 거짓, 삶과 죽음: 『크루서블』 - 아서 밀러 지음, 성기웅과 '연인' 각색, 김재엽 연출, '연극과 인생' 공연 『크루서블Crucible』 0. 성경the Bible을 꿰뚫는 하나의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구원'이다. 한데, 구원은 '죄sin'를 전제로 한다. 죄가 없는 한 구원은 있을 수 없다. 누가복음Luke 5장 32절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라고 말하고 있다. 토라Torah에 기록된 수많은 율법들은 죄를 규정하고 있다. 그 최소한의 축약본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십계명인데, 그 열 가지 계명 중에 가장 보편적으로 어겨지는 사항은 제 9계명일 것이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출애굽기Exodus20:16, 신명기Deuteronomy5:20 진실은 긍정적인 것이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