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6

기독교와 정치: 이명박과 예레미야서 ②

이전글: 희년과 나그네됨: 이명박과 예레미야서 ① '나그네됨'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이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기독교는 위험하다. 그리스도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언급했던 것은 두 사랑의 계명, 곧 여호와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사도 요한은 한 편지에서 다소 충격적인 발언을 한다(요일 4:20):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흔히 이웃 사랑에서 자주 인용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배울 필요가 있다. 도움이 필요한 소외된 자를 돕는 선한 사마리아인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모범이기 때문이다. 사마리아인이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 돈을 스..

조작된 은혜의 방정식: 므두셀라와 홍수

성경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오래 산 사람은 므두셀라다. 이 땅에서의 수명에 대해 관심이 많은 우리 인간들은 므두셀라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사실 창세기를 들여다보면 창세기 기자記者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창 5:21-27):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다음 삼백 년 동안 하느님과 함께 살면서 아들딸을 더 낳았다. 에녹은 모두 삼백육십오 년을 살았다.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느님께서 데려가신 것이다.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다. 므두셀라는 라멕을 낳은 다음 칠백팔십이 년 동안 살면서 아들딸을 더 낳았다. 므두셀라는 모두 구백육십구 년을 살고 죽었다. 성경에 므두셀라가 등장하는 것은 이 일곱 절 두 문단이 전부다. 창..

뱀을 닮을 필요성: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과 단기선교

0. 선교의 중요성 주지하다시피 기독교에서의 선교란 무척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다. 마태복음 28장에서, 그리고 사도행전 1장에서 그리스도는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이를 지상至上 명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이후, 기독교의 역사는 선교의 역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개개의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보낸 선교사라고 보아야 옳다. 흔히 '임무'의 뜻으로도 쓰이는 mission은 본래 예수회Jésuite가 해외로 선교사를 파송할 때 사용했던 말로 '보내다'라는 뜻의 라띤어 'mittere'에서 나왔다고 한다. 선교사를 보내는 일, 선교사로 가는 일은 기독교의 임무mission인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영혼의 구원이 기독교의 존재 이유는 아니라는 점..

고도의 심리전?

탈레반, 피랍여성 울먹이는 육성 공개 탈레반에 피랍된 임현주 씨의 육성을 공개한 것을 두고 언론에서는 '고도의 심리전'이라고 난리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피랍자들의 육성을 들려주는 것은 저런 국제적으로 알려진 단체뿐 아니라 우발적으로 어린이를 유괴하는 유괴범들도 다 하는 기본적인 '협상' 방법이다. 상대를 잘 경계하고, 상대의 방법을 분석해야지 상대를 과장하는 것은 좋지 않다. 상대를 과장하는 과정에서 쓸데없이 감정이 들어갈 수 있고, 이 사안에는 또 민족주의가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 또 현재 사회에 만연한 개신교에 대한 반발심리도 커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고인이 되기는 했지만, 나머지 사람들이라도 건강하게 무사히 돌아오기를 빈다. 그리고, 개신교도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 개신교가 제발 좀 ..

기독교와 사탄의 2분법: 이랜드 사태

이랜드 사태가 점점 심각한 상태로 빠져든다.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오십년대 평양에서 '빨갱이'들을 악마라고 불렀고, 칠팔십년대에 학생운동하고 노동운동하던 사람들을 마귀라고 불렀고, 오늘날 노조 간부들을 사탄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우구스띠누스가 받아들인 플라톤주의의 쉬운 2분법이 기됵교에게 익숙할 수밖에 없지만, 저런 명칭은 지나치게 정치적이라서 더 부끄럽다: 일단 상대를 사탄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상대에 대한 모든 인식은 닫혀버리고 만다. 종교도 정치처럼 언어예술이자 립서비스로 변하는 순간이다. 이럴 때 개신교인임이 무척이나 부끄럽다, 슬프다.

설교의 위상과 반면교사

정용섭 대구성서아카대미 원장 설교비평 책 눈길 열왕기하 2장 23-24절은, 자신을 보고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하고 외친 아이들을 저주하며 곰을 불러 찢어 죽이는 선지자 엘리사를 묘사하고 있다. 때때로 이 장면은 목회자의 권위를 보여준 사례로 인용되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성경을 찬찬히 읽어보면 그것과는 별반 관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회자의 권위를 보여준다는 쪽은 아이들의 놀림에서 '대머리'에만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엘리사는 대머리였다고 하는 주석을 본 바도 있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한 요소는 아닌 것 같다; 만약 중요했다면 (일부) 주석이 아니라 본문에 나와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놀림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올라가라'는 부분이다. 열왕기하의 바로 앞 부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