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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

곳의 감옥, 곳의 욕망: Duras『모데라토 칸타빌레』 1 욕망이란 이 곳에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 실재로서 현재하는 것을 바란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면 사실 '그대'는 곁에 없는 것이 아닌가 고민해 봐야 한다. 삶의 영원한 항등식처럼,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은 행복한 삶이다. 여기까지 인정한다면, 그 다음 행복의 각론에서 저마다의 차이를 인정해야 하는 순서가 남아 있다. 뒤라스의 『모데라토 칸타빌레』에서 안 데바레드 부인이 바랐던 것은 그가 속한 곳의 정원과 무도회와 파티에는 없는 것이었다. 데바레드 부인의 행복이란 무엇이었을까. 데바레드 부인은 무엇을 바랐고, 무엇을 욕망했을까. 2 르네 지라르는 모든 욕망은 주체와 대상 이외에 또다른 타자가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중세의 기사들은 자신들의 롤 모.. 더보기
입자의 크로놀로지: 이윤학『먼지의 집』 책장에서 오랫동안 잠자던 시집을 한 권 꺼내본 적이 있는가. 종이가 바스러질까 조심스럽게 꺼내서, 어딘지 색이 바랜 것 같은 모습에 눈을 껌뻑거린다. 그리고는 촛불 끄는 시늉을 하듯 조용히 입김을 불어본다. 더께앉은 먼지가 날아오르면서 눈을 따갑게 한다. 그렇게 한참을 눈을 비비고 나면, 별 무늬도 없는 장정인데도 제 색을 찾은 시집은, 미켈란젤로의 천정화처럼, 선명하게 윤기가 흐른다. 그러나 그 윤기를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선연하게 물이 흐른 흔적이 있다. 1 제비가 떠난 다음날 시누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제비집을 헐었다. 흙가루와 함께 알 수 없는 제비가 품다 간 만큼의 먼지와 비듬, 보드랍게 가슴털이 떨어진다. 제비는 어쩌면 떠나기 전에 집을 확인할지 모른다. 마음이 약한 제비는 생각하겠지.. 더보기
나르시시슴과 그 확장: 김혜순 시 다섯 편의 분석 김혜순의 시는 '몸의 시'이다. 인간이 육체와 욕망을 발견하게 된 것이 르네상스 이후라고 한다면 그때부터 생산되었을 수많은 시들에 몸의 묘사나 언급이 안 나올 리 없지만, 김혜순의 시를 '몸의 시'라고 하는 것은 그보다 더 나아간 의미에서이다. 대개의 경우, 시에서 나타나는 몸은 주체이거나 대상이다. 1인칭의 몸이 다른 대상을 욕망할 때, 그 '몸'은 주체의 몸이다. 또 1인칭이 3인칭의 몸을 욕망할 때, 그 '몸'은 대상의 몸이다. 그런데, 김혜순의 시에서 '몸'은 주체이자 곧 대상이다. 이 강렬한 나르시시슴narcissisme, 그것이 김혜순 시의 본질이다. 김혜순 시에서는 특징적으로 물의 이마쥬가 무척 강렬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거기서 물의 이마쥬는 자세히 살펴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