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통독한 것이 얼마만일까. 시 한 편을 읽을 여유도 없는 삶이 무척이나 삭막하다. 여유란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니까. 마음이 무겁다. 시를 읽는다는 것이 그렇게 누리는 호사는 아닐까. “의심하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1. 밤/잠 조영석의 시집 『선명한 유령』에서는 줄기차게 ‘밤/잠’이 등장한다. 시란 본래 꿈이고, 꿈은 대개 밤에 자면서 꾸는 것이니까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닐 수 있다. 통속적인 구분도 괜찮다면, 서정 시인은 밤에 시의 행을 늘려가고, 소설가는 낮에 ‘집필실’에서 원고지의 장수를 늘려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정 시인은 ‘밤’이라는 낱말을 지배한다. 시인은 골방에 들어가거나, 잠깐 눈을 감는 동안에도 밤을 불러낼 수 있는 것이다. 거기서 시인은 ‘지금/여기’가 아니라 ‘언젠가/다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