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어릿광대의견해

이명박 '욕쟁이 할머니' 광고의 커뮤니케이션 구조

엔디 2007. 12. 31. 00:59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욕쟁이 할머니' 광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광고였다. 이명박의 강한 이미지와 부자 이미지, 여러 가지 비리 이미지를 날리기 위해 정반대에서 승부를 건 한나라당의 비장의 무기였다. 한나라당도 이명박도 분명히 서민이나 중산층이 아니라 계층적으로 상류층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정책을 내세우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선거전에서는 서민들의 표가 필요하기 때문에 만든 '웰메이드' 이미지 광고였다. 대통합민주신당에서는 광고에 나오는 할머니가 사실은 종로 낙원동 국밥집이 아니라 강남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는 할머니이며, 광고에서는 할머니가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지만 실제 고향은 충청도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 광고라는 논평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이른바 ‘위장 광고’ 논란은 이명박 후보의 이 광고가 얼마나 화제가 되는 광고인지를 보여주는 역설적인 지표라고 보아야 한다.



1. 이명박 대선 광고 '욕쟁이 할머니' 편

광고는 흑백에 가까운 모노톤의 질감으로 꾸며져 있다. 거리에는 눈발이 흩날린다. 돼지고기를 썰고 국자로 국밥을 담던 할머니는 누군가가 오는 것을 보고 "어? 오밤중에 웬 일이여? 배고파?" 하고는 국밥을 가져다준다.

이명박 대선 광고 욕쟁이 할머니 편

"맨날 쓰잘데기 없이 쌈박질이나 허구 지랄이여, 에이. 우린 먹구 살기 힘들어 죽겄어." 하는 쓴소리도 잊지 않는다. 할머니가 "청계천 열어 놓고 이번엔 뭐 해낼겨?" 하며 이명박의 서울 시장 시절 '업적'을 살짝 들추어내자마자 화면은 이명박이 뜨거운 국밥을 먹는 모습으로 바뀐다. "밥 더 줘? 더 먹어 이눔아." 계속 할머니의 독백이다. 그 독백이 끝나는 지점에서 성우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이명박은 배고픕니다." 이명박은 계속 뜨거운 국밥을 급히 먹고 있다.

이명박 대선 광고 욕쟁이 할머니 편

거리에는 계속 눈이 내리고 있고, 그 눈이 내리는 지점은 그저 길거리가 아니라 검은 연탄이 쌓인 곳이다. 내레이션은 계속된다. "누구나 열심히 땀 흘리면 성공할 수 있는 시대."라고 할 때 연탄 하나가 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명박 대선 광고 욕쟁이 할머니 편

한겨울 밤, 국밥집에는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고 젊은 연인으로 보이는 손님은 할머니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가게를 들어선다. "국민 성공 시대를 열기 위해 이명박은 밥 먹는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할머니의 목소리. "밥 처먹었으니께 경제는 꼭 살려라잉? 알겄냐?" 이명박 대신 내레이션이 답한다: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이명박 대선 광고 욕쟁이 할머니 편

처음으로 광고에서 할머니가 환한 웃음을 보인다. 이명박도 웃음으로 답하고, 둘은 어느 사이 서로 안고 악수를 나눈다. 그 동안 내레이션은 "실천하는 경제 대통령, 기호 2번 이명박이 해내겠습니다."라고 끝을 맺는다.

이명박 대선 광고 욕쟁이 할머니 편

광고에서 이명박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급히 밥을 먹고, 웃으며 할머니와 얼싸안을 뿐이다.


2. 로만 야콥슨Roman Jakobson의 커뮤니케이션 이론

로만 야콥슨은 커뮤니케이션 모델을 통해 메시지가 말하는 사람으로부터 듣는 사람에게로 전달될 때의 여러 가지 요소를 검토한 바 있다. 이를 도식화 하면 다음과 같다.

야콥슨 도표

야콥슨은 이 여섯 요소 가운데 무엇이 강조되느냐에 따라 말이 커뮤니케이션의 어떤 기능으로 사용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말하는 사람이 강조되면 ‘감성적 기능emotive function’의 특성을, 듣는 사람이 강조되면 ‘지시적 기능conative function’을, 그리고 상황context이 강조되면 ‘정보공유 기능referential function’을 갖고, 또 채널contact이 강조되면 ‘교감적 기능phatic function’을, 부호code가 강조되면 ‘메타언어적 기능metalingual function’을 가지며, 메시지 자체에 강조점을 찍게 되면 ‘시적 기능poetic function’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야콥슨 도표

야콥슨은 커뮤니케이션 모델을 소개한 글에서 "언어학이 언어 예술의 모든 영역에서 또 모든 단계에서 그것을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고 선언한다. 야콥슨의 커뮤니케이션 모델은 또한 미디어의 기능을 설명하는 데에도 사용할 수 있다. 미디어가 어느 요소에 강조점을 두는지 확인하면 그 미디어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고, 맥루한의 구분대로 따뜻한 매체인지 차가운 매체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3. 야콥슨의 커뮤니케이션 구조와 17대 대선 이명박 대선 광고 '욕쟁이 할머니' 편

이명박 후보의 '욕쟁이 할머니' 광고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이명박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광고에서 등장하는 목소리는 욕쟁이 할머니의 되바라진 목소리와 성우의 비교적 반듯한 목소리뿐이다. 대선 후보의 광고에서 후보자 본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후보자 아닌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장 극적으로 강조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관심 갖는 대상은 후보자이기 때문에 광고에서 후보자가 짧게 한 마디만 해도 다른 사람의 열 마디보다 더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인데, 이 광고에서 후보자가 침묵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욕쟁이 할머니와 성우의 목소리가 강조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욕쟁이 할머니의 말에는 물음만 있지 대답은 없다; 이명박은 "오밤중에 웬 일이여? 배고파?" 하는 질문에도, "이번엔 뭐 해낼겨?"라는 질문에도, "밥 더 줘?" 하는 물음에도 아무런 답도 하지 않는다. 광고는 그런 욕쟁이 할머니의 독백으로 이어져간다. 여기서 이명박 광고의 가장 중요한 감성적 접근이 드러난다. 욕쟁이 할머니는 "맨날 쓰잘데기 없이 쌈박질이나 허구 지랄이여, 에이. 우린 먹구 살기 힘들어 죽겄어."라고 분명히 현실 정치를 비난하고 있다. 그 비난은 상당히 많은 대중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말이지만, 사실 정치에 대한 이성적 접근과는 거리가 멀다. 다시 말해, 해당 멘트는 정치권에서 양극화와 경제 성장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꼭 진행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단지 내가 살기가 너무 힘들다는 말이다. 또, 이 부분은 두 번째 광고인 '살려주이소'와 쉽사리 연결되기도 한다. '살려주이소'에서도 이명박은 거리에서 시장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살려주이소'라는 말을 듣는다. '실천하는 경제 대통령'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단순히 내걸기보다, 많은 서민들의 목소리로 지금 살기가 너무 힘들다는 말을 들려줌으로써 자신의 '경제'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야콥슨은 말하는 사람이 강조되는 커뮤니케이션은 '감정적 기능'을 갖는다고 말했다.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말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감정적 토로를 통해 드러냈을 때, 그 파괴력은 엄청날 것이다. 국가적인 양극화로 서민 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므로 이런 감정 토로에 동의할 사람은 거의 듣는 사람 전체라고 봐도 좋다. 이명박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경제를 살릴 수 있는지도 말하지 않고, 쉽사리 자신을 '실천하는 경제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여기서 환기되는 것이 상황과 부호이다.

광고를 보면서 쉽사리 욕쟁이 할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은, 현 노무현 정권의 경제 정책 실패--대다수의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적 차원에서--의 탓이다. 이것은 이명박에게 중요한 상황context이다. 이명박 후보측은 이런 유리한 국가적 상황을 밑바탕에 깔고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실정失政이,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뒤집힐 수 있다는 어떤 근거도 없이 이명박은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를 전유專有하게 되는데,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상황을 잘 이용했기 때문이다.

한편, 아직까지 한국 정치의 고질병으로 남아 있는 '지역주의'도 중요한 상황으로 작동한다. 본래 충청도 출신인 욕쟁이 할머니에게 전라도 사투리를 요구한 광고주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비교적 분명하게 추측할 수 있다. 흔히 영남권 정당으로 알려져 있는 한나라당에게 있어서 취약 지역인 호남 사람의 목소리가 절실했던 것이다. 이 호남 사투리는 2편인 '살려주이소'의 부산 사투리와 연결되면서 '전국 후보 이명박'을 천명한다. 여기서 사투리를 하나의 부호로 본다면 이 광고가 일종의 메타언어적 기능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지역주의적인 한국 정치의 상황 속에서 상황화된 부호의 역할을 사투리가 담당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이 광고에서 할머니의 역할은 현재의 상황을 환기시키면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정보 공유와 감정 전달을 꾀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정보 공유'라고 하였지만, 그것이 수용자가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알게 하는 정보 공유라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수준의 정보 공유라는 점이다. 그것은 역시 이 광고에서 중요한 것은 상황이 아니라 서민 한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을 뜻한다. 앞서 말했듯이 '상황'이라는 것도 경제성장률 몇 퍼센트, 양극화 지수 몇이라고 하는 객관적인 지표가 아니라 "죽겄어."나 "살려주이소."로부터 오는 자못 과장된 감정적 표현이라는 점을 떠올려본다면 이 광고가 말하는 사람의 감정에 얼마나 치우친 광고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뒷부분에서 이어지는 반듯한 성우의 내레이션은 욕쟁이 할머니를 보완하면서, 어느 정도는 이명박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이명박 스스로가 욕쟁이 할머니의 수준이어서는 곤란하므로 아나운서를 연상시키는 반듯한 목소리의 성우가 동원된 것이다. "이명박은 배고픕니다."라는 목소리에서 이명박이 3인칭으로 지칭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이명박의 목소리로 "나는 배가 고픕니다."라고 했을 때, 그 말은 말하는 사람을 강조하므로 감정표시적 기능이 될 뿐이다. 하지만 제3자의 말을 통해 "이명박은 배고픕니다."라고 한다면 그 말이 객관성을 획득하기가 훨씬 용이할 뿐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을 강조하게 되므로 정보 공유의 기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명박 스스로 "나는 배가 고픕니다."라고 했을 때 "재산이 수백억이나 되는 사람이 배고프다니"라며 거부감을 가질 사람들이, 제3자가"이명박은 배고픕니다."라고 했을 때에는 "실천하는 경제 대통령"의 실천력을 상기하게 되는 것이다.

성우의 "국민 성공 시대" 발언과 할머니의 "밥 처먹었으니께 경제는 꼭 살려라잉?"하는 말에는 두 말하는 사람이 함께 공유하는 이명박에 대한 믿음이 실려있다. 이명박은 듣는 사람의 역할을 하게 되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이명박은 광고의 다른 모든 부분에서보다 더 강조되어 있다. 이명박의 대변자인 성우가 마지막 말을 끝낸 시점인데다가 할머니의 발언이 명령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할머니의 발언은 여기서 지시적 기능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경제를 살려라"라는 명령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이명박에게 그럴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은연 중에 광고는 커뮤니케이션의 지시적 기능을 이용해서 수용자들에게 이명박이 그럴 능력이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게끔 만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활짝 웃고, 이명박도 할머니를 얼싸안고 웃는 모습은 두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채널, 곧 접촉contact의 양상을 강조한다. 유권자의 한 사람과 대통령 후보의 접촉은 바로 그런 정감어린 교감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수용자는 판단하게 된다. 욕쟁이 할머니의 국밥집이라는 장소부터가 서민적이고 정겨운 곳이고, 그곳에서 국밥을 먹는 사람들은 정이 넘쳐 있다. 새로 국밥집에 들어오는 젊은 연인들도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이와 같은 곳이 만남의 채널이 되는 것이다. 광고는 앞으로 이명박과의 만남이 이와 같이 정겨울 것이라고 수용자들에게 인식시킨다. 또한 앞으로도 계속 이명박이 이런 곳에서 서민들과 함께 호흡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4. 결론: 이명박 대선 광고의 전략과 이미지

이명박 후보의 '욕쟁이 할머니' 광고는 커뮤니케이션 상의 여러 요소 가운데 특히 말하는 사람adresser을 강조한 텍스트이며, 특정 부분에서는 듣는 사람adressee인 이명박을 강조하고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명박과의 채널 곧 접촉contact을 강조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럼으로써 이 광고는 정당의 정책 설명이나 공약 설명과는 거의 관계가 없고, 오로지 이명박이 가진 긍정적인 이미지(경제)만을 집중적으로 드러내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부자)를 은연중에 숨기는 식으로 기능하는 광고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광고가 본래 이성적 접근보다는 감정적 접근이 필요한 양식이긴 하지만, 정치 광고가 이토록 감정과 이미지에만 매달리는 것이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 바람직한 일일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어떤 의미에서, 광고는 현대 정치의 가장 부정적인 면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양식일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