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조탁에 관심이 많았던 시문학 동인 시인 김영랑은 『영랑시집』에 실린 시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에서 가을이 깊어가는 시절에 대한 감탄이 담긴 누이의 한 마디를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내용으로만 보면 이 작품은 전적으로 그 누이의 말이 계기가 되어 쓰여진 작품으로 보이는데, 첫 연의 시작과 두 연의 마지막에서 똑같이 반복되는 그 한 마디가 시의 발단과 절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오-매 단풍들것네」
장광에 골불은 감닙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들것네」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니리
바람이 자지어서 걱졍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보아라
「오-매 단풍들것네」- 김영랑,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전문
http://blog.daum.net/kdk99/17951751 CC-by-nc-nd 골든모티브
강희숙 조선대 교수의 전라도의 언어 11: “오메 단풍 들것네”에 따르면 호남 사투리에서 ‘오매’, ‘오메’ 또는 ‘워매’는 표준어의 ‘어머’ 또는 ‘어마’에 해당하는 감탄사이다. 그러나 ‘어머’와 ‘오-매’의 말맛語感은 완연히 다르다. ‘어머’가 다소 깍쟁이 같거나 여우 같은 느낌이라면 ‘오-매’는 그 길이와 억양까지 능청스럽고 천연덕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러니까 영랑의 누이가 서울 사람이었다면 짧은 소리로 ‘어머 단풍 들겠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 단풍 들겠네’를 들었을 때의 심정이 ‘오-매 단풍 들것네’를 들었을 때의 심정과 같을 수는 없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뒤엣것이 그야말로 단풍에 대한 감탄처럼 느껴진다면 앞엣것은 단풍이 드니 어디 여행을 가야겠다거나, 사진을 찍어야겠다거나 아니면 집앞을 쓸어야겠다는 다짐—이를테면 ‘어머 비 오겠네’처럼—으로 느껴진다.
그러니까 영랑의 누이가 서울 사람이었다면 어쩌면 영랑은 누이의 말에서 아무런 시적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고, 우리는 영랑의 뛰어난 이 시를 갖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한국 문학은 영랑 누이의 ‘오-매’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전라도 사람들을 비하하는 말로 ‘오오미’가 쓰인다고 한다. 말이란 본래 누구나 쓰는 것이므로 오염되는 일이 많지만, 정지용과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한국어를 가꿨던 영랑의 주요 시어가 누군가를 낮잡아 일컫는 데 쓰인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특히 그 쓴 맛이 더한 것은, 저 비하의 표현에 정치가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 정치란 본래 말과 수사의 가장 치열한 한 극단이므로 그 말이 거칠 수밖에 없지만, ‘오오미’는 스스로 뜻signifié을 잃고 모양새signifiant만 남아 언어라는 기호의 상징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정치로 떨어져버린 언어는 회생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 말은 이제 붉은 점멸 신호등과 같다. 같은 지시만 반복할 뿐인 그 신호등을 운전자들은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지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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