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우석 감독의 데뷔작인 영화 '변호인'은 성공한 영화다. 개봉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관객 수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일반적인 서사 예술의 문법으로 봐도 변호인은 별다른 흠을 잡을 수 없는 영화다; 아니 흠을 잡을 필요가 없는 영화다. 학벌이나 환경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던 한 사내가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고, 그 다음에 보다 의미있는 일을 위해 사회적인 성공을 저버리는 이야기.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 굳이 작은 흠을 찾자면 '속물 변호사' 송우석이 갑자기 '인권 변호사'가 되는 모습이 너무 급작스럽다는 점 정도가 될 것이지만 줄거리 자체는 수백 번도 더 들어본, 매끈한 것이다. 거기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덧칠하는 순간 관객은 구름처럼 몰렸다.
지금까지 관객 1000만 명을 넘은 한국 영화는 모두 9편이지만, 그 가운데 감독의 데뷔작이었던 작품은 변호인 하나뿐이다. 이런 사실은 변호인이 이만큼 성공한 것이 단지 영화가 좋아서는 아닐 것 같다는 의심이 들게 한다. 노무현을 그리는 어떤 정치적 상황에 기댄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제작자인 최재훈 위더스필름 대표는 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전제조건이 '노 전 대통령의 색깔을 최대한 빼자'는 거였"다고 밝히고 있고, 조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주연배우인 송강호도 언급했듯이 출연진도 영화 제작발표회에서 노 전 대통령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느 중학생들이 만해 한용운의 시 '알 수 없어요'에서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라는 싯귀에 밑줄을 긋고 태연히 '님'이라고 해답을 적듯이 사람들은 너나없이 변호인이라는 영화 제목 아래 밑줄을 긋고는 아무 의심 없이 노무현이라고 해답을 적었던 것이다.
감독도 배우들도 이내 그 '해답'에 화답했다. 양 감독은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왜 노 전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그가 청문회에서 보여줬던 모습과 1992년 3당합당 때의 기억 때문이라고 답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출연진은 2014년 1월 23일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고 송강호는 방명록에 "영광이었습니다"라고 적었다.
제작진과 출연진은 이런 태도는 마치 변죽만 열심히 때리면서 관객이 직접 복판을 울리기를 기다린 것처럼 보인다. 한가운데는 놓아두고 둘레만 애무하는 것 같은 모양새다. 의도한 것이라면 뛰어난 마케팅이다.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조차 "변호인은 픽션 드라마이지 논픽션 드라마가 아니다"라고 발언해 영화사의 이런 마케팅에 도움을 준 셈이 됐다.
영화평론가 허지웅은 주간경향에 실은 글에서 "변호인을 감상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단점은 영화 외부로부터 발견된다"면서 변호인의 단점으로 '일베'의 존재와 '열성 노무현 팬덤'의 존재를 들었다.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고 잘 만들어졌지만 영화 바깥의 '어른의 사정'이 걱정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사실 일베의 존재와 열성 노무현 팬덤의 존재는 이미 변호인이 보유한 상업적 장점이다. 그리고 '어른의 사정'은 이미 영화 속에 있다.
변호인에서 가장 중심이자 영화의 클라이막스가 되는 부분은 역시 재판이다. 조선일보는 부림사건을 수사했던 고영주 당시 부산지검 공안검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 변호인이 실제 사건과 얼마나 달랐는지를 하나하나 지목하려 했고, 한겨레는 부림사건 피해자들인 고호석 씨와 송병곤 씨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변호인이 얼마나 실제 사건과 비슷한지를 보여주려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림사건이 실제 변호인과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가가 아니다. 실제 부림사건에서 문제가 됐던 책이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였든 무타이 리사쿠의 '현대의 휴머니즘'이었든, 내부고발자 군의관이 있었든 없었든, 국밥집 아들의 모델이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별로 상관 없다. 그 정도의 각색은 여느 영화에서나 다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노무현의 색깔을 최대한 빼려고 노력했다는 이 영화에서 노무현에 대한 미화가 있었다면 얘기가 다르다.
문학평론가 유종호(1998, 21-28)는 프랑스 시인 자끄 프레베르의 시 '위대한 사람'을 인용하면서 전기(자서전)을 고쳐 쓰는 일의 허영심을 지적한다. "내가 그를 만났던/ 돌 깎는 사람 집에서/ 그는 후세를 위하여/ 제 몸의 치수를 재고 있었다"는 '위대한 사람'처럼 제 몸의 치수 재기를 위해 자꾸 과거를 윤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유종호는 염상섭 만세전의 해방 이전 판본과 해방 이후 판본의 비교를 시도한다:
"요보말씀예요? 젊은 놈들은, 그래도 제법들이지만, 촌에 들어가면 대만의 생번(生蕃)보다 낫다면 나흘까, 인제 가서 보슈…… 하하하,"
'대만의 생번'이란 말에, 그 욕탕에 들어 앉었든 사람들이, 나만 빼어놓고는 모다 킥킥 웃었다. 나는 가만히 앉었다가 무심코 입살을 악물고 치어다 보았으나, 더운 김에 가리워서, 궐자(厥者)들에게는 자세히 보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말이지, 나는 그 우국의 지사는 아니다. 자기가 망국민족의 일분자이라는 사실은 자기도 간혹은 명료히 의식하는 바요, 따라서 고통을 감(感)하는 때가 없는 것은 아니나……
유종호는 이렇게 1924년판 만세전을 인용해놓고 1948년판과 비교하면서 "검열당국에겐 거슬리는 말이지만 그대로 나와 있고, 제4텍스트(1948년판)에서도 크게 바뀐 것은 없다"고 평가한다. 바꿔 말하면 해방 이전에도 할 말을 다 했고, 해방 이후에도 우국지사였던 양 윤색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장들은 어떨까: "증인이 말하는 국가는 이 나라 정권을 강제로 찬탈한 일부 군인들, 그 사람들 아니야?" "니는 애국자가 아이고, 죄 없고 선량한 국가를 병들게 하는 버러지고 군사정권의 하수인일 뿌이야."
부림사건의 희생자들이 당시 변호인이었던 노무현 변호사가 판사와 싸웠다는 증언을 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신군부의 서슬이 퍼렇던 1981년에, 모든 발언이 속기로 기록되는 재판장에서 노무현이 저런 단어까지 썼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이런 발언은 이 영화가 1981년이 아니라 2013년에 개봉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대사이기가 쉽다. (더구나 극중 송우석은, 국밥집 난동 신에서 보듯, 저런 종류의 의식은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위험하다. 노무현은 분명 20세기말에서 21세기초 한국 사회의 한 문제적 개인이지만, '후세'가 알아서 그 몸의 치수를 다시 재서 윤색하는 것은 그 자신을 위해서도 나쁘다.
이 작품이 만약 부림 사건 재판이라는 시공간을 이용해 신군부 초기의 어떤 시대적 진실을 내보이려 했다면 일부 각색이 있었더라도 대체로 좋은 영화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호인은 부림사건으로 끝맺지 않고 1987년 노무현에 대한 구속적부심에서 변호사 99명이 공동변호인단을 꾸린 장면을 마지막으로 하고 있다.
양 감독은 이런 결말에 대해 "송우석이 7년 뒤에도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이유를 밝혔지만, 이 부분도 이 영화가 '부림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니라 노무현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임을 드러내 주는 대목이다. 이 영화는 노무현의 색깔을 뺀 영화가 아니라 속속들이 노무현의 색깔로 채워진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전기영화는 대체로 흥행을 위해서 많은 사실을 각색하거나 윤색하고서는 영화 바깥에서는 '이 영화는 실화'라고 광고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 그대로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노무현은 부림 사건을 나서서 맡고 재판장에서 열심히 싸운 것만으로 이미 훌륭한 변호사다. 적어도 그 시점 그 공간에서 노무현이라는 개인은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다. 거기에 대한 덧칠이나 개칠은 오히려 그 작품을 훼손하는 일이 될 성 싶다.
참고문헌:
유종호. 1998. 문학이란 무엇인가. 서울:민음사. 증보판.
슬로우뉴스에 실린 글.
'극장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어두운 극장 밖에선 도대체…: 『작은 연못』 (0) | 2010.04.12 |
---|---|
길의 지식, 거리의 지혜: 보라 《로드 스쿨러》 (14) | 2008.09.24 |
나르시즘과 글쓰기: Michel Gondry 《수면의 과학》 (3) | 2008.08.01 |
진실의 가능성과 가치: Milos Forman《고야의 유령들》 (2) | 2008.04.03 |
죄의식과 인류의 기원: 홍상수《밤과 낮》 (12) | 2008.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