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전

아이가 아이였을 때: Wim Wenders《베를린 천사의 시》

엔디 2003. 6. 17. 21:04

Als das Kind Kind war...
아이가 아이였을 때…




《베를린 천사의 시》의 원제는 '베를린의 하늘Der Himmel über Berlin'이다. 영어 제목은 '욕망의 날개Wings of desire'다. 아무데나 詩를 갖다붙이는 행태는 비난받을 것이지만, 이 영화의 번역과 이 당시의 영화제목의 번역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내용과도 잘 부합하고 있다. 적어도 《식스 센스》, 《나씽 투 루즈》, 《어댑테이션》따위보다는 훨씬 낫다.

역사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던 천사는, 영화에서 색맹이다. 그들은 지하철, 도서관, 누군가의 집, 길거리…… 어디에나 있지만 사실은 아무 데도 없다. 가령 그들에겐 모든 역사가 TV이다, 환상이다. 감정도 얼마간 가질 수 있고 사람들의 생각도 마음대로 읽어내지만 그걸로 끝이다. "우린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야!" 그들은 역사의 방관자다.



천사는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 마천루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을 보고, 그의 생각을 읽어내고, 그는 떨어지고, 다만 "안돼Nein!!!"라고 소리칠 뿐이다. 그들은 왜 있는 것일까? 그들은 왜 영원한 것일까? 그들은 죽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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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엘Damiel이라는 한 천사(Bruno Ganz 扮)가 강림했다. 그의 강림은 전혀 신비롭지 않았다. 아마 높은 곳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그의 갑옷이 그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그가 사람이 되면서 제일 먼저 느낀 것이 아픔이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가 아픔을 기뻐하기 때문이다. 그는 뒤통수에 흐르는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고("맛이 좋군.") 행인에게 묻는다. "이게 빨간색?"

아이가 아이였을 때,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나는 왜 나이고, 네가 아닌가.
왜 나는 여기에 있으면서, 저기에 있을 수 없는가.
내가 아직 나이기 전에, 나는 무엇이었는가.
언젠가는 나란 존재는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천사가 천사였을 때,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알기를 바랐다.
천사가 천사였을 때, 영원한 삶을 가졌다.
그럼에도 그는 살기를 바랐다.

그가 인간이 되었을 때 가장 중요한 변화는 색깔이 아니다. 감각도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표면적인 변화에 불과하다. 그는 영생을 넘어서는, 순간에 바야흐로 직면한 것이다. 그가 느끼는 순간은 다만 순간으로서가 아니라, 놀라워라, 영원으로 있는 것이다. 그가 영원이었을 때 이리저리 표류하던 이미지와 사건들이 그가 순간이 되자 하나의 극점을 향해 나름의 배열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와의 사랑을 시작하면서 마리온Marion(Solveig Dommartin 扮)은 말한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라, 무언가의 화신이고……"



영화에는 한 시인이 나온다. 머리터럭이 거의 빠진, 주름살이 온 얼굴을 덮은, 지팡이 짚은 노시인이다. 시인의 일은 물론 시를 쓰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시로 쓰는가. 인생을? 슬픔을? 죽음을?

앞으로 달려가던 미개인이 돌을 던졌다. 그리고 그것이 전쟁의 시작이 되었다.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전쟁의 역사, '늙.은.' 시인은 아마도 그것을 쓸 것이다. 그곳 베를린에서. 히틀러는 단지 히틀러가 아니라 무언가의 화신이고, 2차대전은 단지 2차대전이 아니라 무언가의 화신이고, 시인은 그리고 그것을 쓰는 시인이고…….

아이가 아이였을 때 산딸기를 따러 높은 곳에 올라갔고,
지금도 그렇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낯선 사람 앞에서 쑥스러워했고,
지금도 그렇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창던지기도 했고,
그때 꽂힌 창이 지금도 흔들리고 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가 바로 '지금jetzt'이다. '지금'이 영원보다 영원한 것이다.

Lied vom Kindsein
Song of Childhood
어린 시절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