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Godot'는 죽음이다. 도대체 사람이 이생에서 죽음말고 무엇을 기다릴 수 있단 말인가. 이성복이 삶이란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던 것처럼 고도기다리기 역시 '집으로 가는 길'이다. '집'에 도달하면 그들은 살게(즉, 죽게) 된다.
블라디미르 내일 목이나 매자. (사이) 고도가 안 오면 말야.
에스트라공 만일 온다면?
블라디미르 그럼 살게 되는 거지.
-『고도를 기다리며』오증자 옮김, 민음사, 2000, 158쪽.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죽기를 바라고 목을 매달아도 그들은 죽을 수 없다.
에스트라공 그렇다면 당장에 목을 매자.
블라디미르 나뭇가지에? (둘은 나무 앞으로 다가가서 쳐다본다) 이 나무는 믿을 수가 없는걸. (24쪽)
그곳은 '죽지 못하는 곳'이다. 에스트라공이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지 않는군."(61쪽), "그래 반가우니 이젠 무얼
한다?"(101쪽), "이젠 뭘 한다?"(127쪽)라며 매차례 푸념할 때, 그는 영원성에 대해서 푸념을 퍼붓는 것이다. 그는
아주 "제일 좋은 길은 날 죽여주는 거다."(104쪽)라고 말하기도 한다.
고도는 매일의 약속을 연기한다. 그는 저녁에 메신저(소년)을 보내 사람들에게 자신의 약속을 미룬다. 여기서 '미룬다'는 것은
오늘은 아니라는 뜻이겠지만, 좀더 구체적으로는 오늘이 아닌 날은 아니지 않다는 것이다. 고도는 자신의 약속을 미룸으로써 자신의
약속을 가장 효과적으로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아마 잠을 말하는 것일까?) 이런 '미룸-상기'의 기술에 말려들어
그들은 고도에게 "꽁꽁 묶여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27/30쪽)
포조와 럭키 역시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이 '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가 된 것이 다른 무엇도 아니고, 우연에 기초한 원인없는 결과라는 점은 죽음의 속성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것이다.
포조 어느 날 깨어보니 캄캄하더란 말이오. 마치 운명처럼. (사이) 그래서 지금도 나는 혹시 내가 잠을 자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때가 있다오. (144-145쪽)
포조 묻지 마시오. 장님에겐 시간 관념이 없는 법이오. (사이) 그리고 시간과 관계되는 건 다 모른다오. (145쪽)
포조 (버럭 화를 내며) 그놈의 시간 얘기를 자꾸 꺼내서 사람을 괴롭히지 좀 말아요! 말끝마다 언제 언제 하고 물어대다니! 당신, 정신 나간 사람 아니야? 그냥 어느 날이라고만 하면 됐지. 여느 날과 같은 어느 날 저놈은 벙어리가 되고 난 장님이 된 거요. 그리고 어느 날엔가는 우리는 귀머거리가 될 테고.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거요. 어느 같은 날 같은 순간에 말이오. 그만하면 된 것 아니냔 말이오? (더욱 침울하게)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는 거지. 해가 잠깐 비추다간 곧 다시 밤이 오는 거요. (149-150쪽)
이런 면에서 고도는 죽음이고 그들은 인류의 대표라고 할 수 있겠다. 아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인류의 대표'이고 포조는 '인류 전체'다. 짐작컨대 럭키나 소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블라디미르 […] 방금 들은 살려달라는 소리는 인류 전체에게 한 말일 거야.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엔 우리 둘뿐이니 싫건 좋건 그 인간이 우리란 말이다. 그러니 너무 늦기 전에 그 기회를 이용해야 해. 불행히도 인간으로 태어난 바에야 이번 한 번만이라도 의젓하게 인간이란 종족의 대표가 돼보자는 거다. (133쪽)
에스트라공 다른 이름으로 불러보면 어떨까?
블라디미르 아주 뻗은 건 아닐까?
에스트라공 그럼 재미있을 거다.
블라디미르 뭐가 재미있어?
에스트라공 다른 이름으로 불러보는 게 재미있겠단 말이다. 아무 이름이나 차례차례로 말야. 그럼 시간이 잘 갈 거다. 그러노라면 진짜 이름이 나오겠지 뭐.
블라디미르 포조가 저자 이름이래도.
에스트라공 이제 두고보면 알 게 아냐? 자…… (생각한다) 아벨! 아벨!
포 조 이쪽이오!
에스트라공 그것 봐.
블라디미르 이런 짓거리에는 이제 넌더리가 난다.
에스트라공 또 한 놈의 이름은 카인일 거다. (부른다) 카인! 카인!
포 조 이쪽이오!
에스트라공 그러면 인류 전체다. (140쪽)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았지만 사실은 모두 거짓이다. 고도가 빵이네 희망이네 통일이네 자유네 많은 소리가 있지만, 영어 God(신神)과
불어 Dieu(신神)의 합성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걸 도대체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베케트 자신이 "내가 그걸 알았으면 작품에다
썼을 것"이라는 말을 익살스러운 대답으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가 그것을 알고 썼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히려 기다리는 행위 그 자체다. 그것이 인생이다, 라고 나는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민음사 |
'타오르는책 > 희곡&만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닳은 메타포: 박흥용『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1) | 2004.02.19 |
---|---|
움직이는 시간, 움직이지 않는 시간: Prado『섬』 (0) | 2003.12.31 |
소통의 서사극: Brecht『서사극 이론』 (0) | 2003.04.23 |
상상력의 재미, 즐거움: Goscinny & Uderzo『아스테릭스』 (0) | 2001.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