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책/詩

유쾌한 여담: 정민『한시 미학 산책』

엔디 2004. 8. 4. 23:00
정민 선생님의 『한시 미학 산책』을 읽었다. (『정민 선생님과 함께 읽는 한시 이야기』를 지하철에서 하도 많이 발견한 탓에 '정민 선생님'이 굳어버렸다. 그렇지 않으면, 대개 '선생' 정도로만 이를텐데. 하지만, 훌륭한 책을 쓴 사람은 '선생'보다는 '선생님'이 옳다.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은 중국에서는 존경의 뜻으로 '子'를 붙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선생님'을 붙인다고 하셨다.) 한자와 한문문법에 익숙지 않아 보다 깊은 독서를 하기는 힘들지만, 그런 나에게도 이 책은 재미있으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책이다. 일주일에 한 편씩 한자 공부를 겸해 한시 한 편을 보면 좋겠다. 잊지 않으면 말이다.

여담이지만, 『한시 미학 산책』에 모란과 고양이에 얽힌 설명이 나온다. 이야기의 시작은 당 태종이 선덕여왕에게 모란 그림과 꽃씨를 보냈는데, 선덕여왕이 그 그림에 나비가 없음을 보고 그 꽃에 향기가 없음을 미리 알아냈다는 『삼국유사』의 한 기사이다. 정민 선생님은 모란 그림이 나비가 없음은 나비 '접蝶'의 중국 발음은 '디에'로, 팔십늙은이 '질(늙을老 아래 이를至)'과 발음이 같아, 나비는 곧 팔십늙은이를 쌍관雙關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 나비를 그리면 흔히 고양이를 같이 그리는데, 이는 고양이 '묘猫'자의 중국음인 '마오'는 칠십늙은이 '모(늙을老 아래 털毛)'와 같아 이를 쌍관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말을 듣고 퍼뜩 생각난 것이 덩샤우핑鄧小平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었다. '묘猫'가 '마오'로 읽힌다면 '흑묘백묘론'은 얼마쯤 '마오'쩌둥毛澤東을 풍자한 것은 아닐까? 중국말을 모르니 알 수 없지만, 이만한 상상은 해롭지도 않고 재미있으니 그걸로 족하다. 물론, 중국말을 아는 이가 대답해주어도 좋겠다.


한시미학산책
정민 지음/솔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