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2/13 2

번역어와 일상사유: 야나부 아끼라『번역어성립사정』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한 것은 하이데거였다. 언어가 먼저인지 '존재'가 먼저인지가 '닭과 달걀의 변증법'과 같은 쓸모없는 싸움이라 일컫더라도, 우리 '근대'사 속에서 등장한 서구어의 번역어들을 보면 하이데거 쪽의 손을 은근히 들어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존재'나 '근대'가 바로 그 번역어들이다. '사회,' '개인,' '권리'와 같은 것들이 바로 그 번역어들이다. 이들 번역어들의 특징은 시쳇時體말로 '썰렁하다'는 것이다. 뜻과 맛은 다르지만 '지나치게 학구적이다'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서구어에서 être, moderne, société, individu, droit같은 낱말들은 평소에 자주 쓰이는 말들이다. 대표적으로 '사회'같은 낱말은 우리 현실에서는 거의 글말文語에서만 쓰인다고도 볼 ..

신비주의와 진실: Sontag『은유로서의 질병』

신비주의와의 싸움은 지금의 현실에서 소중하다. 이 시대에도 아직 신비주의가 횡행하고 있는 탓이다. 지금 우리가 가진 신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를테면 '죽음'이 있다. 어느 시인을 두고, 그의 죽음이 그의 시를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이나 그가 스스로의 죽음을 시에서 예견했다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신비주의다. 그런 식의 신비주의는 문학을 정치하게 보려는 노력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그러하므로 그것은 올바른 문학이론이나 문학비평이 될 수 없다. 그것은 현대비평이 혐오해마지 않는 실증주의와 인상주의의 단점만을 수용한 최악의 읽기다. 수잔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은 질병이 가지고 있는 신비주의를 하나하나 검토해본 책이다. 친인척들을 병으로 잃은, 그리고 스스로도 유방암을 비롯한 여러 병들을 겪은 저자는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