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기억의 축적이다. 기억들은 오늘을 받치는 토양으로 삶의 기저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 기억들을 나름의 순서로 재구성하는 것이 소설을 비롯한 글의 목적이다. 문제는 흔히 그 기억들은 현실의 힘에 밀리고 눌려 쉽사리 지각변동을 겪게 된다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하면, 본래 사람이 가진 기억이라는 것이 사실 온전하지 않아서 우리가 기댈 만한 것이 못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기억하는 행위 그 자체는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지만 그 기억의 내용은 우리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어떤 사건을 대할 때 기억에만 의존한다면 우리는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결과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황석영의 소설 『손님』에는 이러한, 기억이 갖는 문제점들이 엿보인다. 황해도 신천의 학살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