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끝무렵에 대학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세기말 학번'이라고 했다. 당시 내가 있던 대학의 총학생회은 이른바 '비(운동)권'이었고, 단과대 학생회는 NL(민족자주)이었다. 별로 개의치 않았다. 새터(신입생수련회)에서 단대학생회가 주는 가방을 받았다. '통일'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었고 보라색과 회색이 있었는데, 나는 바라던 회색 가방을 받아서 내심 기뻤다. 학생회는 신입생들에게 IMF를 주제로 촌극을 만들라고 했다. 우리는 각 과/반별로 모여 촌극을 준비했고, 한국이가 대학 들어가서 공부 안 하고 놀다가 결국 F 학점을 받지만(I am F!=IMF),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열심히 공부해 A로 올라선다는 진부한 스토리의 우리 과/반 촌극은 전체 2위를 차지했다. 그게 다였다.우리네 동기들은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