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바람'이라고 부르던 兄이 있었다. 그는 발소리도 없이 나타났다가, 인기척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그는 어쩌면 자유로웠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제 '바람'으로서의 그가 많이 외로웠으리라고 짐작한다. 겨울의 문턱 즈음에 태어난 그가 스스로를 '바람'이라고 부를 때, 산뜻한 봄바람이 연상되는 경우는 없었다. 나는 매년 가을 경에 요절한 시인의 시비詩碑에 앉아 시를 읽곤 했다. 그때마다, 그때마다, 바람이 불었다. 황동규에게 '바람'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그의 시는 항상 바람 부는 곳에서 있고, 그 바람은 또한 항상 비바람 아니면 눈보라다. 때문에 그의 바람은 "산 위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도, 더운 여름날 여자들의 치마 끝자락을 살짝 들어올리는 가벼운 바람도 아니다. 그의 바람은 늘 습윤濕潤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