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책/詩
근대시와 그 고향: 보들레르와 이성복
1921년 안서의 번역시집 『오뇌懊惱의 무도舞蹈』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되고, 1941년 미당의 『화사집花史集』에 실린 「수대동시水帶洞詩」에서 "샤알·보오드레―르처럼 설ㅅ고 괴로운 서울女子를 / 아조 아조 인제는 잊어버려"라고 노래된 보들레르는 프랑스 상징주의의 시조始祖로서 여러 가지 층위로 한국시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시적 영향이라는 것은 마치 복류伏流하는 물과도 같아서 시집으로 묶여 출간된 '땅위'의 결실만으로는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결실을 비교함으로써 그 사이의 근친관계parenté를 알아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 중에서도 이성복의 경우는 보들레르와의 관계가 표면적으로 상당부분 드러난 경우에 속한다. 그것은 '이성복적 풍경' 속에서 보들레르가, 이성복 시의 가구家具로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I 누이 sœur
그해 늦은 봄, 저수지 옆 방갈로에서 일박. 모닥불 위로 날리던 기십만 개의 별들. 밤새 뻐꾸기 울음은 내 팔뚝에 흔들리는 木船의 그림자 같은 문신을 새기고, 누이여, 아침엔 그 많은 원추리 꽃들 어디서 네 눈을 찾아야 할지 몰랐다. 노란 꽃잎 선풍기 날개처럼 단 눈들, 윙윙대는 소리 굴렁쇠 바퀴처럼 굴리던 눈들. 지금도 뻐꾸기 울면 정신 나간 내 팔은 노 젓는 시늉을 하고, 누이여, 그날 우리가 탄 배는 윙윙대는 원추리 별들 사이 조심조심 나아간다. 밤새 잃어버린 네 눈을 찾아서.
- 이성복, 「누이여, 그날 우리가 탄 배는」 전문全文
2003년 말에 출간된 이성복의 시집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은 특이한 시집이다. 시 한 편 한 편마다 번역시의 일부분이 부제처럼 붙어있다. 시 「누이여, 그날 우리가 탄 배는」에는 보들레르의 「여행에의 초대」가 부분 인용되어 있다: "내 사랑, 내 누이야, / 꿈꾸어 보렴, 거기 가서 / 단 둘이서 사는 달콤한 행복을!"
보들레르가 쓴 가장 아름다운 시편을 시인의 체험으로 승화시킨 이 시는 「여행에의 초대L'invitation au voyage」의 정확한 이해이다. 두 시가 갖고 있는 공통화소는 아름다운 고장, 배[船], '누이sœur'라는 호칭, 누이의 눈에 대한 집중 등이다. 그렇지만, '여행'이라는 소재가 필연적으로 아름다운 고장을 상기시키고, 역시 거의 필연적으로 '배'의 이미지를 요청한다고 하면, '누이'야말로 이 두 시를 연결시키는, 보다 중요한 공약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보들레르에게 있어서 '누이'라는 호칭은 가령 「이방인L'étranger」의 "내게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형제도 없습니다. Je n'ai ni père, ni mère, ni sœur, ni frère"에서처럼 가족의 하나로 표현되어 부정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시인이 애정을 가지고 표현하려는 대상에 붙여진다.
1) 멋진 자매, '우아함'과 '힘'이 넘친다
L'Élégance et la Force abondent, sœurs divines
2) 연인이여 아니 누이여, 순간의 부드러움이 되어요 / 가을의 영광처럼, 지는 해처럼.
Amante ou soeur, soyez la douceur éphémère / D'un glorieux automne ou d'un soleil couchant.
3) 누이야, 나란히 헤엄쳐, / 우리 쉬지 말고 헤엄쳐 가자 / 나의 꿈꾸던 낙원으로!
Ma sœur, côté à côté nageant, / Nous fuirons sans repos ni trêves / Vers le paradis de mes rêves!
4) 당신들의 지옥까지 내 영혼이 좇았습니다, / 가여운 누이들이여, 나는 당신들을 불쌍히 여기고, 또 그만큼 사랑합니다,
Vous que dans votre enfer mon âme a poursuivies, / Pauvres sœurs, je vous aime autant que je vous plains,
5) 사랑하는 여자에게, 선택된 누이에게 바칠 「여행에의 초대」를 작곡할 음악가가 누구일까요?
quel est celui qui composera l'Invitation au voyage, qu'on puisse offrir à la femme aimée, à la sœur d'élection?
1)은 「가면Le masque」에서 인용된 것이다. 「가면」은 에르네스트 크리스토프Ernest Christophe의 조각상을 노래한 것인데, 그의 조각상이 무척 매력을 갖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 '가면'을 벗겨보면 "머리 둘 달린 괴물monstre bicépale"이었다는 혹평이 이 시의 주된 내용이다. 인용한 부분은 앞의 매력적인 '가면'을 묘사하는 부분으로, "자매sœurs"가 최대의 찬사로 쓰였다. 이 때의 '자매'는 물론 여성 명사 '우아함'과 '힘'을 의인화한 것이지만, 흔히 여성혐오에로 경도되어 있는 보들레르가 극도의 찬사에 여성 명사의 '여성됨'을 강조하는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는 「가을의 노래Chant d'automne」에서 인용된 것이고, 3)은 「연인들의 술Le vin des amants」에서 인용된 것이다. 5)는 같은 제목의 산문시 「여행에의 초대」에서 인용한 것이다. 여기서 '연인amante'과 '누이sœur'가 동격同格으로 쓰였다는 것은 확실하다. 문학평론가 김윤식(1984, 54-55)은 「「무정無情」의 문학사적文學史的 성격」에서
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물론 여성이지만 오빠의 입장에서 보면 여성도 남성도 아닌 중성같은 존재이다. 여성이되 범할 수 없는 기품을 지닌 것, 여성이되 가장 잘 보호해야 할 존재, 오빠에게 있어서는, 자기가 아니고는 아무도 보호할 수 없는 그런 존재인 것이며, 그것은 피의 명령이자 윤리의 명령이기도 하다. 누이의 존재가 정결함과 순수함의 상징인 것은 이 탓이다. 그것은 오빠라는 존재의 소년적인 순수성과 정비례 하는 것이어서 마치 童貞 그것과도 같다.
고 '누이'라는 모티프를 분석하고 있다. 보들레르가 연인에게 '누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아마도 이와 같은, 김붕구(1977, 166)가 'amant-père'라고 부른, 다정한 모습의 혹은 숭배자의 모습의 사랑을 형상하는 행위였을 것이다. 여기서 벌써 근친상간적인 죄의식은 말끔히 표백되어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쟌느 뒤발 시편에서 보이는 성애적인erotique 모습이 여기서는 전혀 드러나 있지 않으며, 사랑의 표현도 무척 고상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2)에서는 존칭의 사용vouvoyer과 예의를 갖춘 부탁으로, 3)에서는 함께 헤엄치는 모습으로의 비유로, 그리고 5)에서는 노래를 바치는offrir 행위로 나타난다.
한편 4)는 「천벌받은 여인들Femmes damnées」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시구詩句인데, '무한을 찾는 이chercheuses d'infini'라는 점에서 시인과 똑같은 레스보스Lesbos 여자들에 관한 시이다. 벤자민Benzamin은 "레즈비언은 현대성의 여걸이다. 그녀 속에 보들레르 특유의 에로스의 이상이―그녀는 냉혹함과 사나이다운 성격을 상기시키는 여인이다―위대한 고대의 이상과 함께 집결되어 있다. 이것이 『악의 꽃』에서 레즈비언의 위치를 특별하게 하는 점이며, 보들레르가 왜 오랫동안 책에 레즈비언Les Lesbiennes이라는 이름을 주려 했던가를 설명해준다"고 말한다(Baudelaire 2003, 358). 그런 점에서 레즈비언은 시인이 생각하는 '소수의 행복한 독자', 곧 그의 동류semblable인 것이다. 이들에게 시인이 '누이' 칭호를 붙이는 것은, "내게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형제도 없"다는 시인이기에 무척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윤영애는 「이방인」의 그 구절을 마태복음 12장 48절의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Who is my mother? and who are my brethren?"와 연관시켰지만(Baudelaire 1979, 23), '누이'의 이러한 쓰임은 이어지는 50절의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라는 말과 연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보들레르에게 있어서 '누이'가 차지하는 위상은 무척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성복에게 있어서도 누이는 무척 중요한 시적 대상이다. 그의 등단작인 두 편의 시, 「1959년」과 「정든 유곽에서」에서 벌써 "어머니는 살아 있고 여동생은 발랄하지만"이라는 구절과 "누이가 듣는 音樂 속으로 늦게 들어오는 / 男子가 보였다 나는 그게 싫었다"는 구절이 보인다. 이 누이는 「모래내·1978년」에서는 "거기서 너는 살았다 선량한 아버지와 / 볏짚단 같은 어머니, 티밥같이 웃는 누이와 함께"와 같은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정든 유곽에서」의 단정할 수 없는 분위기를 감안하고서라도 행복한 대상으로 그려지는 누이가 이후 보다 더 중요한 시적 대상으로 나아가는 것은 '치욕'과 연관되면서이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중에서도 뒤편의 「처형處刑」은 그러한 '치욕' 시편의 시작이 된다.
일어나라, 일어나
내 어머니 부르실 때마다
황폐한 무덤을 허물고 나는 일어섰다
누이의 뺨에는 살얼음이 반짝이고
내 노래는 주르르 흘러 내리기도 하였다
밤마다 치욕은 녹슨 못처럼 박혀 있었다
나는 그곳에 옷이랑 가족 사진을 걸었다
고개 떨구면, 누룽지 같은 記憶들이 일어나고
손 닿지 않는 곳엔 뽀오얀 곰팡이가 슬었다
아침부터 내 신발은 술로 가득 차 있었다
아버지,
가능하면 이 잔을 치워 주소서……
- 이성복, 「처형處刑」 부분
누이의 뺨에 있는 살얼음은 눈물을 가리키는 것이고, '눈물이 흐른다'는 일상표현 속에서 화자話者의 노래도 "주르르 흘러 내"린다. "잔을 치워 주소서"라는 기도는 예수의 겟세마네 기도를 환기시키는데, 그러한 장치는 더 있다. '치욕'이 "녹슨 못처럼 박혀 있었다"는 데서 십자가 사건이 연상되고, "무덤을 허물고 나는 일어섰다"는 데서 나사로의 부활 혹은 예수 자신의 부활이 겹쳐진다. 예수의 성육신과 부활이 '죄péché'와 관계된 것임을 생각한다면, 이 치욕은 죄로 인한 치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무덤을 허물고" 일어서자마자 누이의 울음이 제시되고 곧이어 화자의 노래가 흘러내리는 순서를 생각해본다면, 이 치욕은 누이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화자는 누이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누이의 치욕은 아버지와 관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치욕-슬픔'의 잔을 치울 수 있는 존재는 아버지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고 나면 구갑龜甲 같은 치욕이」에서 시인은 "자고 나면 龜甲 같은 치욕이 등에 새겨졌다 누이를 빼놓고는 아무도 몰랐다 […] 아버지를 볼 수 없었고 믿을 수 없었다 […] 귀기울이면 누이는 낮게, 낮게 소리쳤다 치욕이야, 오빠, 치욕이야! 내가 몸 비틀면 누이는 날아가버렸다"고 쓰고 있다. 시집 『남해 금산』의 해설인 「치욕의 시적 변용」에서 김현(1992b, 47)은 그 치욕을 다음과 같이 재구再構하고 있다.
시인은 시적 화자인 내가 겪은 악몽의 이미지들을 낱낱이 늘어놓지 않는다. 시에 막연히 암시된 것에 의하면, "이곳에 입에 담지 못할 일이 있었어! 가담하지 않아도 창피한 일이 있었어!"(p.19)라는 정도이다. 그 입에 담지 못할 일들 때문에 사람들은 안방으로 몰려가 "소곤소곤 이야기"(p.19)할 수밖에 없다. 그 일을 당한 사람은, 역시 시에 막연히 암시된 것에 따르면, 내 누이, 혹은 그냥 누이다. "누이를 빼놓고는 아무도 몰랐다"(p.20). 화자는 그래서 "아버지를 볼 수 없었고 믿을 수 없었다"(p.20). 아버지와 누이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리하여 이성복에게 있어서도 누이는 '보호해야 할 존재'로 부각되지만, 보들레르와는 달리 이미 누이는 '보호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성복의 시에서 다시 누이가 등장하는 것은 17년이 지난 뒤에서이다. 위에서 인용한 「누이여, 그날 우리가 탄 배는」이 바로 그 시인데, 그마저도 회상체의 시라는 점은 무척 시사적이다. 그런데, 보들레르와 이성복의 놀랄 만한 또다른 공통점은 다함께 '누이의 눈'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II 눈 yeux
운문시 「여행에의 초대」에서 보들레르가 가고 싶어하는 곳, '거기là-bas'는 누이를 닮은 고장이다. 보들레르는 그 고장의 태양이 "변덕스런traître" 누이의 눈, 그 신비로운 매력을 가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태양은 "동양의 찬란함la splendeur orientale"을 주는 존재이고, 운하와 마을을 "히아신스와 금d'hyacinthe et d'or"으로 옷 입히는 존재이다. 여기서 '눈'은 욕망과 의식conscience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의식은 항상 무언가를 향한, 즉 대상을 전제한 의식이다(한국현상학회 1984, 41). 후썰에 따르면 "대상을 지향하는 의식은 노에마를, 그리고 그 노에마 속에 의미를 가지며, 의식은 이 의미에 의하여 대상과 관계"한다(14). 사르트르는 시선視線이야말로 대자對自로서의 의식意識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Sartre 1990, 428 이하). 이처럼 뚜렷한 목표를 가진 의식은 그 지향성으로 말미암아 곧 욕망으로 환치된다. 보들레르가 "그대의 가장 작은 / 욕망까지도 채우기 위해 / 그들은 세계의 끝에서 온다C'est pour assouvir / Ton moindre désir / Qu'ils viennent du bout du monde."고 노래한 것은 그래서이다.
이성복이 누이의 눈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성복의 화자가 찾는 눈은 "잃어버린 눈"이기 때문에 좀더 절박한 상황이다. "원추리 꽃들" 사이에서 잃어버린 누이의 눈은 "원추리 별들" 사이에서 빛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누이가 현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 누이는 「정든 유곽에서」의 "더럽힌 몸으로 죽어서도 / 시집 가는 당신의 딸"이기 때문이다. 그가 누이의 눈을 찾는 것은 누이의 의식을 찾는 것이다. 이성복의 시세계는 누이로 대표되는 시대의 의식, 시대의 아픔을 찾아내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보들레르와 이성복의 시는 동시대의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그들의 시를 읽을 때, 그들은 카메라의 렌즈를 19세기 빠리로, 1980년대의 서울로 향한다.
III 산책자 flâneur: 근대성modernité와의 관련성 속에서
발터 베냐민(1983, 134-136)은 보들레르의 「지나는 여인에게A une passante」를 분석하면서, 보들레르의 시선에 주목한다. 보들레르가 바라보는 것은 무엇보다도 지나는 여인의 눈이다.
날렵하고 고결하게. 조각 같은 다리로.
나는, 나는 마셨다, 정신병자처럼 안달하며,
그의 눈 속에서, 폭풍우의 싹이 심긴 창백한 하늘을,
매력적인 부드러움과 살인의 쾌락을.
섬광… 그리고 밤! ― 순간의 아름다움이여
단번에 나를 다시 살게 한 그 눈길의 아름다움이여,
영원 속에서만 그대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인가?
Agile et noble, avec sa jambe de statue.
Moi, je buvais, crispé comme un extravagant,
Dans son œil, ciel livide où germe l'ouragan,
La douceur qui fascine et le plaisir qui tue.
Un éclair... puis la nuit! ― Fugitive beauté
Dont le regard m'a fait soudainement renaître,
Ne te verrai-je plus que dans l'éternité!
- Ch. Baudelaire, 「지나는 여인에게」 부분
여인의 눈 속에서 보들레르는 "폭풍우의 싹이 심긴 창백한 하늘"과 "매력적인 부드러움", 그리고 "살인의 쾌락"을 느낀다. 이것이 성적인 함의를 품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베냐민은 그것이 "마음 속속들이 에로스에 의해 사로잡힌 자의 황홀함"이 아니라 "고독한 자에게 엄습할 수 있는 일종의 성적인 충격에 더 가깝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한 태도는 상대방이 '누이'가 아니라 군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대도시에서의 삶이 사랑에 대해 입히는 상처를 밖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베냐민은 계속해서, 지나치는 여인에 대한 사랑의 모티프가 보들레르에게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보들레르의 경우에는 "그가 지나는 여인의 눈 속 깊숙이 들여다보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더 중요한 지점을 점유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요한 것은 '지나는 여인'이, 화자가 자신의 눈을 깊숙이 들여다보는데도 섬광 같은 아름다움의 느낌만을 남기고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그것은 "군중과 더불어 나타난 그 여인이 휩쓸려 사라지는 군중의 물결"을 가장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의 꽃』의 '빠리 풍경Tableaux Parisiens' 편과 산문시집 『빠리의 우울Le Spleen de Paris』은 그와 같은 군중들을 그 자신의 눈으로 지켜본 시편들의 모음[集]이다. 보들레르가 보는 빠리의 군중들은 하나같이 소외당한 사람들이다. 시인은 「빨간 머리 거지소녀에게」서 "옷의 구멍으로 / 가난과 아름다움을 / 보이는" 모습을 목격한다. 보다 더 깊은 사색에 들어가서 시인은 "고향 호수로부터 파리 한복판으로 유배된"(이진성 2003, 206) 「백조」를 보고는 소외당한 사람들, 앙드로마크와 표류된 뱃사람과 포로와 패배자들과 그 밖에 많은 다른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당시 망명 생활을 하며, 프랑스로부터 '소외'당한 빅토르 위고"(200)를 떠올리고 이 시를 헌정한다. 그 밖에 많은 다른 사람들은 대개 이렇다: 「일곱 늙은이들」, 「가여운 할머니들」, 「소경들」, 그리고 「밭 가는 해골」. 이들은 모두 도시 속에서 소외당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시인은 그들 하나하나를 본다. 이러한 사정은 『빠리의 우울』에서는 「늙은 여인의 절망」, 「미망인들」 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흔히 쓰이는 '군중 속의 고독'은 이미 그 군중이 형성되기 시작했을 때, 보들레르에 의해 포착되어 「군중Les foules」이라는 시로 씌어진다: "대중, 고독: 적극적이고 풍부한 시인에게 있어서 환치 가능한 동등한 개념 Multitude, solitude: termes égaux et convertibles par le poëte actif et fécond." 시인은 그래서 "군중을 즐기는 것은 일종의 예술jouir de la foule est un art"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세계는 유명한 시 「이 세상 밖이라면 어느 곳에나Any where out of the world」에서는 "이 삶은, 모든 환자들이 침대를 바꾸고 싶어하는 병원과도 같다. 어떤 사람은 난로 가에서 아파하고 싶어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창가에서라면 자신이 나을 거라고 믿는다 Cette vie est un hôpital où chaque malade est posédé du désir de changer de lit. Celui-ci voudrait souffrir en face du poêle, et celui-là croit qu'il guérirait à côté de la fenêtre."와 같이 나타난다. 그래서 화자는, 혹은 시인은 "어디든지! 이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 좋겠소! N'importe où! pourvu que ce soit hors de ce monde!"하고 외치는 것이다. 시인은 『빠리의 우울』의 '후기Épilogue'에서 빠리의 모습을 충격적으로 제시한다: "만족한 마음으로 나는 산에 올랐다. / 그 산에서 나는 도시를 상세하게 주시할 수 있었다. / 병원, 娼家, 연옥, 지옥, 감옥 Le cœur content, je suis monté sur la montagne / D'où l'on peut contempler la ville en son ampleur, / Hôpital, lupanar, purgatoire, enfer, bagne" 그리고 곧이어 "사랑하노라, 오 더러운 수도여! Je t'aime, ô capitale infâme!"라고 선언해버린다.
이러한 빠리의 풍경은 20세기 초 릴케(2000, 9)의 말테Malte가 느꼈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말테는 처음 빠리에 와서 "그러니까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 도시로 온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밖에 나갔다왔다. 많은 병원을 보았다. 어떤 사람이 비틀거리다가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기에 그 후의 일은 보지 않아도 되었다"는 문장들을 시작으로 긴 수기를 작성한다. 그러나 굳이 빠리가 아니더라도, 20세기에 들어서는 독일의 시인작가들도 이와 같은 도시의 슬픔을 알게 되었다. 문병호(1995, 121)는 율리우스 하르트Julius Hart의 시 「베를린Berlin」을 인용하며 당시의 독일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너, 베를린, 잿빛 대양처럼 / 네 거대한 몸뚱어리를 펼치는구나 Endlos ausbreitest du, dem grauen Ozean gleich / den Riesenleib" 그에 따르면 "급격한 산업화와 더불어 특히 베를린으로 대표되는 독일에서의 대도시 형성은 표현주의 시인들이 경험한 현대 문명의 구체적 공간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그리고 19세기의 빠리가 보들레르의 서정시로 형상화되어 "대도시의 파괴성·폭력성, 대도시에서의 대중의 곤궁함과 비참함 등"이 "추함Häßlichkeit의 카테고리를 통해 묘사"(111)되었던 것처럼, 20세기의 베를린에서는 "독일 표현주의 시인들이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한 결과의 산물인 대도시 시"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한편, 그 같은 모습은 한국의 근대시에서도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이용악(1995, 12)은 1937년 동경에서 출간한 시집 『분수령』에서 근대화된 동경에서의 삶을 "주름잡힌 이마에 / 石膏처럼 창백한 불만이 그윽한 나를 / 거리의 뒷골목에서 만나거든 / 먹었느냐고 묻지 말라 / 굶었느냐곤 더욱 묻지 말고 / 꿈 같은 이야기는 이야기의 한마디도 나의 沈默에 侵入하지 말어다오"와 같은 표현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 모습은 서울도 전혀 다를 바 없어서, 가령 오장환은 그가 바라본 '병든 서울'을 이렇게 형상화하고 있다:
바보와 같이 거물어지는 하늘을 보며 나는 나의 키보다 얕은 가로수에 기대어 섰다. 병든 나에게도 고향은 있다. 근육이 풀릴 때 향수는 실마리처럼 풀려나온다. 나는 젊음의 자랑과 희망을, 나의 무거운 절망의 그림자와 함께, 뭇사람의 웃음과 발길에 채우고 밟히며 스미어오는 황혼에 맡겨버린다.
제 집을 향하는 많은 군중들은 시끄러이 떠들며, 부산히 어둠속으로 흩어져버리고. 나는 공복의 가는 눈을 떠, 희미한 路燈을 본다. 띠엄띠엄 서 있는 포도 우에 잎새 없는 가로수도 나와 같이 공허하고나.
- 오장환, 「황혼黃昏」 부분
그 모습은 또 국문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자주 산책자flâneur로 명명되는 구보 박태원에게는 이렇게 형상화된다:
광교 모통이 카페 앞에서, 마침 지나는 그를 적은 소리로 불렀던 아낙네는 분명히 소복을 하고 있었다. 말씀 좀 여쭤 보겠읍니다. 여인은 거의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말하고, 걸음을 멈추는 구보를 곁눈에 느꼈을 때, 그는 곧 외면하고, 겨우 손을 내밀어 카페를 가르치고, 그리고,
"이 집에서 모집한다는 것이 무엇이에요."
카페 창 옆에 붙어 있는 종이에 녀급대모집(女給大募集). 녀급대모집 두 줄로 나누어 씨어 있었다.
- 박태원, 「소설가小說家 구보씨仇甫氏의 일일一日」 부분
게다가 윤동주에게서는 보들레르와 릴케의 '병원病院' 모티프가 다시 발견된다. 윤동주가 그의 첫 시집의 제목을 '病院'으로 하려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마광수 1986, 22-23). 윤동주(1995, 104)는 서울을 하나의 병원으로 인식한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근대성이 한국에 어떻게 뿌리내렸고, 근대 초기의 시인들이 이를 어떻게 형상화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우리의 목표와는 거리가 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19세기의 프랑스 빠리, 20세기 초의 독일 베를린, 그리고 1930년대와 40년대의 동경과 경성에 대한 이와 같은 묘사들이 1980년대의 서울의 모습과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1980년대의 형상화는 이성복이 담당하는 것이다.
그날 아버지는 일곱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前方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驛前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未收金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愛人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占 치는 노인과 便桶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市內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 이성복, 「그날」 전문全文
이성복은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에서 "43편의 시들"을 "하나의 통일적인 유기체"로 만드려고 노력했다(김현 1992a, 122). 그것은 배열에 심혈을 기울여 완성된 시집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시가 하나의 일관된 시선視線을 가지고 세계를 바라보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의 아포리즘에서 이와 같이 말하여진다: "누구든지 자기 시대의 밑바닥에서 학대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간과하고서는 더 이상 정직할 수 없다. 그가 신이라 할지라도……"(이성복 1990a, 24). 이성복은 시적 정직을 위해서 세계를 관찰하고 그 세계를 시 속에 녹이기 시작한다.
1) 오지 않는 봄이어야 했기에 / 우리는 보이지 않는 監獄으로 자진해 갔다
-「1959년」
2) 집에 敵이 들어올 것 같았다 / (집은 地下室, 집은 개구멍) / 흰피톨 같은 아이들이 소리 없이 모였다 / 귀를 쫑긋 세우고 아버지는 문틈을 내다보았다 // 밥이 타고 있었다 / 敵은 집이었다
-「금촌 가는 길」
3) 벽제. 목욕탕과 工場 굴뚝. 시외 버스 정류장 앞, 중학생과 아이 업은 여자. / 벽제. 가보진 않았지만 훤히 아는 곳.
-「벽제」
4) 나무들은 설익은 열매를 / 자꾸 떨어뜨렸다 그해 여름이 끝날 무렵 서리 맞은 / 친구들은 우수수 떨어지며 결혼했지만 당분간 아이 낳을 / 생각을 못했다
-「그해 여름이 끝날 무렵」
5) 어느날 갑자기 여드름 투성이 소년은 풀 먹인 군복을 입고 돌아오고 / 조울증의 사내는 종적을 감추고 어느날 갑자기 일흔이 넘은 노파의 배에서 / 돌덩이 같은 胎兒가 꺼내지고 […] 한약방 주인은 國會議員이 된다 어느날 갑자기, 갑자기 장님이 눈을 뜨고 / 앉은뱅이가 걷고 갑자기, ×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이성복은 이러한 자신의 태도를 '리얼리즘'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1990년에 발표된 「아버지·어머니·당신」에서 "철저한 리얼리즘만이 완벽한 심볼리즘에 도달하는 지름길"이라는 의견을 피력한다(이성복 1990b, 125). "일체의 정신주의적 가능성을 엿보이지 않고 현실의 있는 그대로에 충실하는 것만이 궁극적으로 물질을 정신으로, 현실을 상상으로, 가족의 문제를 종교의 문제로 전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리얼리즘은 시인을 절망의 상태로 이끌어간다. 자의식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다른 누구도 아닌 '시인'이기 때문이다.
IV 광대 fou
시인이 절망하는 이유는 세계가 아름다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근대화된 세계는 모든 것을 물화物化시킴으로써, 예술에 대한 가장 큰 적이 되었다. 그래서 때로 예술가는 '타협'이냐 '정직'이냐를 놓고 고민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보들레르는 일찌감치 그것을 꿰뚫어보았다. 그의 「알바트로스L'albatros」에서도 드러나는 이 고민은, 「매수된 무사이La muse vénile」에서 보다 직접적이고 경멸적으로 묘사된다. 여기서 보이는 "굶는 광대saltimbanque à jeun"라는 말은 근대의 예술가를 표현하고 있다. 광대의 모티프는 『빠리의 우울』에서는 「광대와 베누스Le fou et la Vénus」와 「늙은 광대Le vieux saltimbanque」라는 시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성복(1990a, 216)은 그의 아포리즘에서 '굶는 광대'라는 표현이 예술가의 가장 적확한 호칭이라고 말한다:
아침에 눈 뜨면서 불현듯 '굶는 광대'라는 말이 머리에 떠오른다. 다시 생각해 보니 카프카의 말이다. 그러나 예술가를 지칭하는 말 가운데 이보다 더 잘 들어맞는 말이 있을까. 그렇다. 예술가는 '굶는 광대'이다.
"카프카의 말"이라는 것은 시인의 착각이거나, 아니면 연대기적으로 카프카를 통한 재인용으로 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가 근대성을 꿰뚫어본 두 예술가, 보들레르와 카프카를 스승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선을 향한 두 개의 등대―카프카와 보들레르"라고 그의 아포리즘에 적었다(127). 이 구절은 『이성복 문학앨범』에서 시인 송재학에 의해 재차 인용되면서 그 중요성이 인정된다: "그때까지 이성복은 얼마나 서구 지향적이었던가. 이성복이 세상의 항로(航路)에서 본 두 등대는 카프카와 보들레르였으니."
보들레르와 카프카, 그리고 이성복은 근대 사회에서 스스로를 '굶는 광대'로 규정함으로써 자의식에서 벗어나려 하고, 고통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카프카가 유언을 통해 자신의 원고를 다 불태우라고 했다는 사실은 시사적이다(Kafka 1986, 268).
V 잠 dormir, 권태 ennui
이성복(1982, 13-16)은 1982년에 제출한 석사학위논문 「Baudelaire에서의 현실과 신비」에서 보들레르가 현실을 부정하는 방법으로 '잠'을 선택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새벽 한 시A une heure du matin」의 "이 열쇠의 회전이 내 고독을 늘리고, 세계로부터 나를 격리시키는 방벽을 강화할 것이다Il me semble que ce tour de clef augmentera ma solitude et fortifiera les barricades qui me séparent actuellement du monde"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그의 폐쇄욕과 도피욕을 지적하고, 「레테Le léthé」와 「심연에서 외친다De Profundis Clamavi」, 그리고 「암살자의 술Le vin de l'assassin」을 인용하면서 보들레르가 얼마나 잠들고 싶어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개처럼 잠들리라! Et je dormirai comme un chien!" 이성복에 따르면 이 표현은 특히 더 의지적이다. "<잠자다dormir>는 동사는 미래형으로 진술되어, 잠에 대한 시인의 열망이 포화상태로 치닫고 있음을 알린다"는 것이다.
이성복의 시에서도 그와 같은 '잠' 혹은 '죽음'으로 표상되는 잠의 모티프는 자주 나타난다. 잠든 몸은 아플 수가 없으므로, 잠은 현실 도피의 수단이다. 이성복은 이미 그의 시에서 그것이 현실 도피의 수단이라는 것까지도 밝혀주고 있다: "가장 안전한 집은 무덤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해바라기처럼 웃으리라"(이성복 1990a, 115).
1) 의심하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정든 유곽에서」
2) 病을 돌보던 / 靑春이 그때마다 나를 흔들어 깨워도 가난한 / 몸은 고결하였고 그래서 죽은 체 했다
-「정든 유곽에서」
3) 봄밤엔 별을 보지 않아도 돼, / 네 얼굴이 더욱 빛나 아프쟎아? / 봄밤엔 잠자면서 오줌을 누어야 해
-「봄밤」
4) 《가슴아, 이틀만 뛰지 말아 줘
-「루우트 기호 속에서」
5) 여러 번 흔들어도 깨지 않는 잠, 나는 잠이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6) 죽고 싶었다, 다만, 까닭을 알 수 없이
-「분지일기」
그런데, 이 같은 잠은 삶에 대한 '권태'의 표현이다. 보들레르가 「독자에게Au lecteur」를 통해서 밝힌 "가장 흉하고, 가장 고약하고, 가장 더러운plus laid, plus méchant, plus immonde" 괴물, 그가 바로 권태C'est l'Ennui이다. 이 권태는 삶의 의욕을 상실케 하는 존재인 '악 중의 악'이다(이진성 2003, 110):
그가 '권태'를 '악' 중의 '악'으로 꼽은 것도 분석적 지성의 선택이 아니라 불가피한, 그리고 어떠한 의도도 숨겨지지 않은 취향의 선택으로 보아야 한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느낀 '고독감'은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신경 약화, 의지 박약, 의기 소침, '억눌림과 권태의 암울한 감정인 우울(spleen)'과 무력증으로 확장되어 그를 종종 괴롭혔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했다. 때로는 몇 달 동안이나 긴급한 일들을 뒤로 미루게 하는 '몽롱한 상태'에 빠져 들기도 하는 보들레르는 삶의 의욕을 상실케 하는 이 같은 '지긋지긋한 정신상태'를 서시에서는 극복해야 할 '악 중의 악'으로 꼽고, '권태'라는 널리 쓰이는 말로 호칭한 것이다.
이성복의 권태는 헐거움으로 나타난다. 가령 그가 「나는 식당 주인이」에서 "삶은 내게 너무 헐겁다……"라고 했을 때, 그는 비할 바 없는 나락의 권태로움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삶이 결국 「격렬한 고통도 없이」 "날이 가고 봄 여름이 가"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욕망'까지도 버리게 되는 것이다:
머잖아 이 욕망도 끊어질 것이다 달그락거리는 기억의 서랍에 먼지 곱게 쌓일 것이다 名山大川 흐르던 핏물 든 숨소리에 이끼 끼일 것이다 머잖아, 머잖아 근질거리는 혀에 곰팡이 슬고 異物 같은 죽음이 흰피톨 곁에 다가올 것이다.
흰피톨이여
내 죽음 곁에 누울,
흰 바둑돌 같은 누이들이여!
- 이성복, 「머잖아 이 욕망도」 전문全文
무엇보다도 「정든 유곽에서」라는 데뷔작의 제목부터가 그것을 드러내주고 있다. 시인은 '유곽'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다. 유곽은 그 존재원리 자체가 '정들 수 없다'는 데에 있는데, 시인은 "집은 유곽이다"(이성복 1990a, 154)라고 말하며 그 안에서 침잠해 있었다. 그것은 처절한 '자기 소비'이다. 보들레르(2001, 45)는 "자신을 소모할 권리를 얻기 위해서 돈을 치르는 곳은 딱 두 군데뿐인데, 공중 화장실과 창녀들에게이다"라고 갈파했다. 그렇다면 이성복 혹은 그의 시적 화자가 얼마나 자신을 소모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또 그렇게 소모하기를 스스로 바랬는가, 는 가령 그의 아포리즘 가운데
나의 첫 시집은 『정든 유곽에서 1』
두번째 시집은 『정든 유곽에서 2』
…………………………………………
마지막 시집은 『정든 유곽에서 n』
이렇게 하면 나는 출발점에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한 것이 되며, 그것은 바로 내가 바라는 완벽한 승리이다.
라는 부분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137).
그러나 이성복도 보들레르도 잠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는 잠을 자면서도 고통하고 고민했다. 이성복은 "자면서 고통과 불행의 正當性을 밝혀냈고 反復法과 / 기다림의 이데올로기를 완성했다 나는 놀고 먹지 않았다 / 끊임없이 왜 사는지 물었고 끊임없이 희망을 접어 날렸다"라는 구절을 써넣고 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남을 걱정한다.
어떻게 깨어나야 푸른 잎사귀가 될 수 있을까
기어이 흔들리려고 나는 全身이 아팠다
어디서 깨어나야 그대 내 잎사귀를 흔들어 줄까
그대 손 잡으면 그대 얼굴이 지워지고
- 이성복, 「금촌 가는 길」 부분
VI 깨어남 réveiller: 그들의 시적 여정旅程
그 깨어남은 시詩를 통해서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저주받은 땅에서 키울 수 있는 꽃은 '시' 밖에 없"기 때문이다(이성복 1990a, 141). 후고 프리드리히(1996, 55)는 그러한 깨어남을 '자아집중'이라고 이름붙인다:
방법상의 끈질김과 철두철미함으로 그는 현대성의 필연적 산물인 불안, 무출구성, 열렬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공허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이상성 앞에서의 좌절과 같은 자신의 내면에 투영된 생의 모든 국면들로 진입한다. 그는 자신이 그러한 운명을 감내할 수 있는 신들린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신들림'과 '운명'은 그의 핵심적인 두 표제어이다. 더 나아가서 '집중', 그리고 아울러 '자아집중'이 여기에 부가된다. […] 이에 대한 대립개념들이 '용해'와 '매춘'이다. 18세기 조명파 이단들에서 유래한 '매춘'의 개념은 자기포기, 정신적인 운명으로부터의 무단이탈, 다른 곳으로의 도피, 산만함에 의한 배신을 의미한다. 이것들이 보들레르가 강조하고 있는 저 현대문명의 징후들이며, 그 앞에서 자신을 지켜야 하는 위험들이다. 요컨대 그는 '자신이 타고난 운명'에 의해서, 즉 개성이라는 우연을 제거하고 하나의 자아로 집중함에 의해서 생겨난 대가(大家)인 것이다.
보들레르의 "시적 여정은 '권태'라는 악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적 모험이다"(이진성 2003, 109). 그 여정은 '우울과 이상' 그리고 '빠리 풍경'을 딛고 '술'을 통해서 환상의 세계를 추구하려다 실패하고, 이로 인한 '악의 꽃'의 파괴욕과 '반항'의 정신이 다시 그를 결국 '죽음'으로 끌고가는, '현실에서 신비로' 그리고 '신비에서 현실로' 내려오는 구도를 그리고 있다. 그리하여 보들레르도 시대의 아픔을 그려낸 서정시인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보들레르에게 있어서의 '죽음'이 삶의 끝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 '죽음'이여, 늙은 선장이여, 때가 되었소! 닻을 올리시오!
이 나라는 지겹소, 오 '죽음'이여! 준비를 하시오!
하늘과 바다는 잉크처럼 검지만,
그대도 알다시피 우리 마음은 빛으로 가득 차 있소!
우리를 회복시킬 그대의 독을 우리에게 부으시오!
이토록 그 불이 우리 머릿속을 불태우니, 우리는
심연 깊숙이 묻히기를 바란다오, '지옥'이나 '천국'이나, 아무려면 어떻소?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미지'의 바닥으로!
O Mort, vieux capitaine, il est temps! levons l'ancre!
Ce pays nous ennuie, ô Mort! Appareillons!
Si le ciel et la mer sont noirs comme de l'encre,
Nos cœurs que tu connais sont remplis de rayons!
Verse-nous ton poison pour qu'il nous réconforte!
Nous voulons, tant ce feu nous brûle le cerveau,
Plonger au fond du gouffre, Enfer ou Ciel, qu'importe?
Au fond de l'Inconnu pour trouver du nouveau!
- Ch. Baudelaire, 「여행Le voyage」 부분
보들레르의 '죽음'은 다시 생을 위한 돌아옴이며,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한 새 출발이다. 그의 '교감Correspondence'의 정신은 '자연La Nature' 속에서 발견했던 것이었고, 권태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이었다. 권태의 무기력증은 세계는 상형문자이며, 자신은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인간, 그 중에서도 특히 시인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풀리게 된다. 그는 하늘에 속한 자이기 때문이다: "안개 낀 삶을 짓누르는 / 권태와 한없는 슬픔을 뒤로 하고 / 기운찬 날개로 / 맑고 밝은 들판을 돌진하는 자 행복하도다 Derrière les ennuis et les vastes chagrins / Qui chargent de leur poids l'existence brumeuse, / Heureux celui qui peut d'une aile vigoureuse / S'élancer vers les champs lumineux et sereins!" 그리하여 보들레르는, 보들레르 자신의 말을 빌자면, "악마 또는 동물성에의 기원"인 "하강하는 쾌감"을 넘어서 "신 또는 정신적인 것에의 기원"인 "상승하려는 욕망"으로 옮겨간다(Baudelaire 2001, 89). 그것은 보들레르를 데까당이라고 매도했던, 그리고 그 영웅주의에 있어서 "보들레르의 히로이즘의 대척물對蹠物"(김붕구 1977, 300)의 입장을 견지했던 니체와도 유사한 부분이다. 바슐라르(2000, 271)는 "나의 배는 이제 창공을 저어 가네……"하고 노래하는 니체의 시 「태양은 기울고」를 인용하면서, 도취 속의 상승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유명한 바슐라르의 「이방인」 분석을 알고 있다. 바슐라르는 「이방인」에서 "나는 구름을 사랑한다오…… 흘러가는 구름…… 저기로…… 저 놀라운 구름들을요!"하는 구절이 "그 어떤 묘사를 덧붙이지 않아도" "곧바로 우리를 매혹해 끌어당"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리라고 설명한다(343).
이성복(1990a, 217)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무척 긴 아포리즘을 통해 자신의 삶이 "'신비에서 현실로' '현실에서 신비로' 결실없는 왕복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 고백이 중요한 이유는, 보들레르를 대상으로 한 그의 석사학위논문이 「Baudelaire에서의 현실과 신비」이기 때문이다. 그 논문은 서론-본론(현실-현실에서 신비로-신비-신비에서 현실로)-결론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성복이 보들레르와 자신의 유사성을 인식했거나, 보들레르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시인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성복에게 있어서 시적 여정은 특히 고통과 치욕이라는 삶, 그럼에도 그가 장시 「분지일기」에서 노래한 대로, "살아야 할 시간들"(이성복·이인성·정다비, 1982, 35)인 삶을 그가 인식하는 과정이다. 그 삶은 "해가 지면 다시 끓어 오르는 물방울 같은 삶"이며 또한 "그 사이로 나타나는 정밀한 細部"이다. 그래서 이성복은 외친다(48). "――깨워 다오, 깨워 다오 잠든 머리를 / 시멘트 바닥에 쿵쿵 내리쳐서라도 깨워 다오!" 이성복은 그래서 마지막까지 깨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아무런 고통이 없는 '뒹구는 돌'이 되고 싶었던 이성복은 결국 '잠 깨'게 되는 것이다. 이성복의 또다른 장시 「약속의 땅」에서도 거짓뿐인 '약속의 땅'과 그 벗어남이 그려져 있다.
김현(1992b, 46-47)은 『남해 금산』의 해설에서 "시인이 따로 발표한 두 편의 장시, 「분지 일기」(1982)와 「약속의 땅」(1983)은 섬세하게 구축된 뛰어난 시들인데, 그것을 그는 산산이 해체하여, 여러 편의 시로 다시 만든다. 그 구축―해체의 움직임은, 시인의 마음이, 악몽에 세련된 시적 형태를 부여하기 싫다는 쪽으로 자꾸 움직이고 있음을 입증한다"고 썼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악몽'으로부터의 탈출과정이고, 잠깨는 과정이다. 그런 잠깸 이후에 이성복이 구축한 시세계가 시집 『그 여름의 끝』으로 대표되는 연애시의 체계이다.
「연애시와 삶의 비밀」에는 이성복의 연애시 이론을 담고 있는 산문이다. 거기서 그는 문학을 통한 구원이라는 관념을 유보한다(이성복 1990b, 79): "지금에 있어 문학은 나에게 구원도, 구원의 수단도 아니다. 나는 구원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구원이라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모든 것에 대해 '판단 중지'를 요청한다." 이어 그는 삶을 성sex과 물과 길로 비유하면서, 특히 그 성적인 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성이 "삶의 공시적인 이해를 가능케 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음양 이론을 끌어온다. 그리하여 그에게 있어서는 삶이란 동떨어진 것이 아니게 된다. 그가 첫 시집에 실린 시 「여름산」에서 이미 "당신은 남의 가난이 얼마큼 당신과 관계 있다고 생각합니까"라거나 "당신은 백 사람 중에 하나가 병들어 아프면 당신도 아프다고 생각합니까"하고 물었던 것처럼, 모든 이의 삶은 하나로 통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아포리즘을 통해 누차 이를 강조했다: "나는 사물 내부의 동심원이고, 사물은 나의 내부의 동심원이다"(이성복 1990a, 43), "일체가 상형문자다. 정신병자나 아이들만이 그것을 안다"(50),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길은 '소리'를 따라 '의미'의 단층을 뛰어넘는 데 있다"(59), "한 사람의 상처는 모든 사람의 상처다"(110).
결론을 대신하여
한 도시가 다른 도시의 과거로 완전히 함몰될 수 없듯이, 한 시인도 다른 시인의 과거로 환원될 수는 없다. 이성복을 이루는 요소는 보들레르 이외에도 많다. 가령 이성복의 또다른 스승은 카프카였다. 둘 사이의 유사성을 고찰해 보는 것은, 필연적으로 둘 사이의 차이점을 밝히는 일에 골몰하게 만든다. 그러나 보들레르가 이성복 시의 기본적 토양을 마련해주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둘 사이의 차이점이 있다면 '가족'의 문제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성복은 스스로의 시적 여정을 또한 '아버지―어머니―당신'의 세계로 압축시킨 일도 있는 반면에, 보들레르는 가족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근의 이성복은 보들레르에게 이렇게 잔소리한다:
수레바퀴가 돌아도 중심은 돌지 않는다. 테두리가 돌면 중심 축은 나아간다. 중요한 건 이뿐, 테두리가 중심 축 폼을 잡아서는 안 된다. 테두리가 돌기에 중심 축이 나아가는 게 아니라, 중심 축이 나아가기에 테두리는 도는 것. 우리는 모른다, 누가 이 수레를 어디로, 언제까지 끌고 가는지. 영원한 수레는 나아가고 헛되이 바퀴는 돌고 도는 것. 아 미치겠다 보들레르야, 보채지 좀 마라. 네 헛소리가 자갈밭 구르는 수레바퀴 소리보다 크구나. 어째 넌 그리 말귀를 못 알아듣냐.
- 이성복, 「보채지 좀 마라」 전문全文
그 잔소리의 근거는 보들레르의 「독자에게」의 두 줄이다: "우리 숨쉴 때마다, 안 보이는 강물처럼 죽음은 / 희미한 탄식 소리 지르며 허파 속으로 내려간다" 이성복이 얻은 세계관이 보들레르보다 더욱 현세지향적이라는 것은 바로 이곳에서 알 수 있다. 그것이 가족주의와 '음양'의 힘이다.
그러나 도시의 삶을 통해 근대성을 추구하고, 그것을 아름다운 시로 형상화하는 모습은 두 사람이 같다는 것은 기억해두어야 한다. 새로운 시는 아마도 거기서 올 것이기 때문이다.
I. 텍스트
1. 보들레르Baudelaire
Baudelaire, Charles. 1954. Œuvres Complètes. texte établi et annoté par Y.-G. Le Dantec. Paris:Librairie Gallim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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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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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a. 『그대에게 가는 먼 길: 이성복 아포리즘』. 서울:살림.
――――. 1990b. 『꽃 핀 나무들의 괴로움: 이성복 산문집』. 서울: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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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이인성·정다비 엮음. 1982. 『우리 세대의 문학』 1: 새로운 만남을 위하여. 서울: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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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rich, Hugo. 1996. 『현대시의 구조: 보들레르에서 20세기까지』. 장희창 옮김. 한길문학예술총서17. 서울: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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