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책/소설

새 『어린 왕자』와 아르데코7321의 비즈니스맨 정신

엔디 2008. 5. 2. 00:20

얼마 전에 쓴 어린 왕자를 소비하는 사회: 어린 왕자 상표권 분쟁에서 나는 "아르데코7321이나 유족 재단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고 적었다. 나는 정말 몰랐다; 그래서 나는 "기존의 출판사들이 생떽쥐뻬리의 명예를 높였으며, 아르데코7321의 매출도 높여 주었을 것"이라고 너무 순진하게 진단했던 듯하다. 그리고 얼마 전 '새 『어린 왕자』'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계일보의 조정진 기자는 예담(위즈덤하우스)판 『어린 왕자』가 아르데코7321과 관련되어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스캔들마케팅이란 글을 쓴 것 같다. 서점에 가서 책 표지만 한 번 봐도 아르데코7321이라는 글자를 볼 수 있었을 텐데. 2008. 5. 6. 11:48 추가)

아르데코7321 측은 처음부터 기존의 책들을 모두 서점에서 몰아낸 다음, 서점에 자신들의 책을 깔 심산이었던 것 같다. 평소에 저작권이 만료되어 공공영역public domain에 편입된 앨리스나 도로시 등 캐릭터 상품을 팔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아르데코7321의, 문제의 공지사항#

아르데코7321은 최근의 저작권 또는 상표권 논란이 부담스러운 듯, 당사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장문의 글을 남겼다. 그 글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소설’어린왕자’는 퍼블릭도메인으로 어느 누구나 소설’어린왕자’를 활용하여 책을 만들 수 있고 제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단, 글(Text)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소젝스(SOGEX)사는 생택쥐페리의 조카인 올리버 다게이(Oliver d’Agay)와 가족이 운영하고 있는 재단으로서, 영리의 목적보다는 ’어린왕자’가 세상에 소중하게 남아 있기를 바라면서 세계 여러나라에 ’어린왕자 박물관’과 같은 ’가치있는 어린왕자의 보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미 프랑스와 일본의 하꼬네에 박물관을 오픈하였고 한국에도 곧 박물관이 들어 올 예정입니다.
위와 같은 가치있는 사업을 위하여 소젝스사에서는 일부 영리목적의 수익사업을 하고 있으며, 소젝스사의 가치있는 사업에 부응하기 위하여 아르데코7321™은 소젝스사와 디자인문구 관련 상품과 서적에 대해서 독점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사실 관계는 두 가지다: 먼저 『어린 왕자』의 텍스트 저작권은 만료되었다는 것과, 아르데코7321은 소젝스 사와 디자인문구 관련 상품과 서적에 대한 상표권 관련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어린 왕자』 텍스트와 삽화의 저작권#

『어린 왕자』의 텍스트 저작권이 (한국 내에서) 만료되었다는 것은 당연하다. 생떽쥐뻬리는 1944년 사망했고, 한국의 저작권법은 저작자 사후 50년까지 저작권을 보호한다; 생떽쥐뻬리의 저작물은 한국 내에서 1994년까지 보호받을 수 있다. (실제로는 베른 조약 가입 시기 및 저작권법 개정 역사와 관련하여 한국 내에서는 그보다 훨씬 먼저 저작권이 소멸되었다.)

문제는 아르데코7321이 『어린 왕자』의 텍스트만 저작권이 만료되었고, 그림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저작권법에는 글과 그림(삽화)의 저작권 보호 기간을 다르게 규정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이 주장은 사실 관계를 완전히 오도하는 내용이 된다. 이상한 것은 아르데코7321 측의 주장이 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이 회사 홈페이지의 질문답변 게시판에 앨리스나 도로시 등 퍼블릭 도메인으로 장사해놓고 이제 와서 퍼블릭 도메인을 사용한 출판사들의 책을 서점에서 몰아내는 행태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고, 아르데코7321은 이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이번 조선일보의 보도로 인해서 발단이 된 어린왕자 상표권분쟁은 저작권과는 별도로 다른 내용입니다.
먼저 저작권은 한국이 베른조약에 1996년 부터 가입한 이후부터 국제저작권법의 영향을 받아서 작가 사후 50년동안 저작권을 보호 받는 다는 내용으로 그 이 후 부터는 퍼브릭 도메인으로 분류됩니다.
고객님께서 말씀하시는 앨리스와 도로시, 어린왕자는 모두 저작권으로부터 자유로운 퍼블릭도메인입니다.
그리고 이번 사태는 저작권이 아닌 상표권 분쟁으로 아르데코7321이 프랑스의 소젝스사와 디자인문구 관련제품과 출판에 대해서 독점계약을 한 후 소젝스사의 에이전트인 GLI 건설팅으로 부터 소젝스사의 어린왕자 등록 상표를 부당하게 사용하고 있는 출판사들과 이들의 책을 판매하고 있는 유통사에게 판매를 하지 말아 달라는 편지내용 전달하고 나서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글과는 분명히 조금 다른 내용이다. 위에서 인용한 글은 텍스트의 저작권만 만료되었다는 내용이지만, 이 성난 고객에 대한 답변에서 아르데코7321은 이건 저작권 문제가 아니라 상표권 문제이므로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먼저 지난번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르데코7321은 처음부터 공지사항을 통해 "국내 최초로 저작권 구입과 함께 / 새롭게 태어난 어린왕자를 / 아르데코 7321에서 만나보세요~"라고 홍보했고, 언론에도 비슷한 내용의 보도자료를 돌린 듯 서울경제, 연합뉴스(네이버 링크), 매거진 정글의 보도에서도 상표권이라는 말은 아주 찾아볼 수 없고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했다는 내용만 읽을 수 있다. (아르데코7321은 이후 공지사항에서 '저작권'이라는 말을 '라이센스'라는 낱말로 바꾸었다.)

어린왕자 오리지널 삽화가 들어간 정식 한국어판
그뿐 아니다. 최근 출간된 예담(위즈덤하우스)·아르데코7321 판 『어린 왕자』는 표지에 "어린왕자 오리지널 삽화가 들어간 정식 한국어판LE CHEF D'ŒUVRE DE SAINT-EXUPERY AVEC SES ILLUSTRATION D'ORIGINE"이라는 표시를 금박을 붙여 표시하고 있다.

또, 표지 안쪽과 속표지면에는 "이 책은 국내 최초로 원본 삽화 저작권을 갖고 있는 / 프랑스 Sogex사와의 계약을 통한 정식 한국어판입니다. / LE PETIT PRINCE TM ⓒ SUCCESSION ANTOINE DE SAINT-EXUPERY 2008"이라고 적고 있다(강조 는 인용자).

이 책은 국내 최초로 원본 삽화 저작권을 갖고 있는 / 프랑스 Sogex사와의 계약을 통한 정식 한국어판입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아르데코7321 측은 일단 '정식 저작권 계약'이라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해서 자사 상품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저작권법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항의하는 경우에만 사실은 문제가 되는 것이 저작권이 아니라 상표권이라는 것을 밝히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것이 회사의 내부 정책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드러난 모양새가 그렇다.

(그게 아니라면 아르데코7321측도 처음에는 문제가 상표권인지 저작권인지 잘 몰랐을 거라는 가정도 해볼 수 있다. 설마 그런 단순한 것을 몰랐을까 싶지만, 그간 아르데코7321측의 행동을 보면 그런 가정도 가능하다. 특히 2007년 10월 이후 거의 6개월이나 '저작권'이라고 표시되어 있던 공지사항의 '저작권'이란 낱말을 4월달에 문제가 불거지자 '라이센스'란 낱말로 바꾼 점이나, '저작권' 관련 이슈로 다룬 기사들을 해당 공지사항 아래 링크한 점, 한번 출간되면 돌이킬 수 없는 책에까지 '상표권' 또는 '라이센스'가 아니라 '저작권'이라는 말을 적은 점 등을 보면 특히 그렇다.)

아르데코7321은 한 술 더 떠서 어린왕자를 법정에 세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글을 공지사항에 올렸다. 여기서 아르데코7321은 자신과 소젝스사의 정당성을 한번 더 주장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국내 출판사들을 법질서를 어지럽힌 당사자들로 몰아붙인다:

세계적으로 어린왕자 도서를 살펴보면 미국 2개(Harcourt , Gallimard), 유럽 1개(Gallimard), 대만 1개, 일본 20개의 출판사에서 어린왕자 도서를 출판하고 있습니다. 어린왕자 책이 한국에서 600여 개 출판사에서 출간했다고 하는데 전세계 출판사를 모두 합쳐도 어린왕자를 출간한 한국의 출판사의 수에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남의 것 이라고 함부로 훼손, 도용하고 또, 법질서를 무시하고 ’그 동안 저작권을 한번도 내지 않고 사용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주욱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라고 생때를 쓰면서 한국의 특허청을 상대로 상표등록 취하소송을 하겠다고 하는 소수의 대형 출판사의 행태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아르데코7321은 사실 관계를 호도한다. 한국의 출판사들, 특히 '소수의 대형 출판사'들은 『어린 왕자』와 관련하 저작권법을 위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출판사들이 이익만을 바라보고 그간 중복 출판 관행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남의 것 이라고 함부로 훼손, 도용하고 또, 법질서를 무시"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아르데코7321은 긴 잘못을 비로소 척결한 혁명군처럼 정의를 전유해버린다. 그리고 그 다음은?

책 출간을 통한 이윤 창출이다.

아르데코7321의 『어린 왕자』 서적 상표권 계약#

맨 위에 인용한 글에서 아르데코7321은 처음부터 서적에 대한 상표권 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무척 중요한 문제다. 이 회사가 처음 상표권 계약을 맺을 당시부터 서점가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책을 출간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상표권은 동일 범주 내의 상품에만 적용된다. 즉, 나이키라는 상표가 신발이나 스포츠용품 관련 상표로 등록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나이키라는 이름의 스넥이나 아이스크림을 출시할 때에는 아무런 법적 영향력이 없다는 뜻이다. 만약 아르데코7321이 서적 관련 상표권 계약을 맺지 않고 문구류 관련 상표권만 맺었다면, 대행사에 요청해서 서점에서 기출간된 책을 빼달라고 요청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아르데코7321은 앞으로 자신들이 책을 출간하겠다는 내용은 빼놓고, 일단 기존 출판사들의 책을 정리하고 기존 출판사들을 비난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장이 혼란한 것을 틈타 새 책을 내놓았다. '새 『어린 왕자』'의 번역자인 강주헌이 「옮긴이의 말」을 쓴 것이 2008년 2월이고, 그 글에서 『어린 왕자』 번역 부탁을 받은 것은 "올해 초"라고 말하고 있다. 아르데코7321의 공지사항에 따르면 아르데코7321측이 계약을 맺은 것이 2007년 10월이므로, 예담(위즈덤하우스)과 출간 관련 계약을 따로 맺은 시간을 고려하면 대략 시간이 맞아떨어진다.

실업가와 어린 왕자#

어린 왕자가 만난 실업가
『어린 왕자』의 지적재산권 분쟁을 바라보면서 생각난 것은 어린 왕자가 만난 실업가였다. 불어에서도 마땅한 말이 없어 생떽쥐뻬리도 businessman이라고 쓸 수밖에 없었던 이 지극히 미국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Saint-Exupéry 2007, 53; Saint-Exupéry 1999, 52):

"물론이지. 임자 없는 다이아몬드는 그걸 발견한 사람의 소유가 되는 거지. 임자가 없는 섬을 네가 발견하면 그건 네 소유가 되는 거고. 네가 어떤 좋은 생각을 제일 먼저 해냈으면 특허를 받아야 해. 그럼 그것이 네 소유가 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별들을 소유하고 있는 거야. 나보다 먼저 그것들을 소유할 생각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

Bien sûr. Quand tu trouves un diamant qui n'est à personne, il est à toi. Quand tu trouve une île qui n'est à personne, elle est à toi. Quand tu as une idée le premier, tu la fais breveter : elle est à toi. Et moi je possède les étoile, puisque jamais personne avant moi n'a songé à les posséder.

물론, 이 구절이 생떽쥐뻬리 유족들이 모든 저작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럴 가능성이 없을 뿐더러 옳은 일도 아니다. 그러나 생떽쥐뻬리의 어린 왕자가 무언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이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어린 왕자가 소유하는 것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는 별을 소유한다는 실업가의 말을 듣고 그것이 '아주 시적assez poétique'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곧 무언가를 소유하려면 그 대상에게 유익해야être utile 한다고 자신만의 '소유 철학'을 편다(Saint-Exupéry 2007, 54):

"나는 말이야, 꽃을 한 송이 소유하고 있는데 매일 물을 줘. 세 개의 화산도 소유하고 있어서 매주 그을음을 청소해 주곤 하지. 불이 꺼진 화산도 청소해 주니까 세 개란 말이야.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거든. 내가 그들을 소유하는 건 내 화산들에게나 내 꽃에게 유익한 일이야. 하지만 아저씨는 별들에게 유익하지 않잖아……."

어린 왕자가 다시 돌아와 이 땅에 선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생떽쥐뻬리는 분명히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어른들은 참 이상하군."

어린왕자 - 10점
생 텍쥐페리 지음, 전성자 옮김/문예출판사

어린 왕자 - 10점
생 텍쥐페리 지음, 김화영 옮김/문학동네

어린 왕자 - 2점
생 텍쥐페리 지음, 강주헌 옮김/예담


참고문헌#

Saint-Exupéry, Antoine de. 1999. Le Petit Prince. Paris:Édition Gallimard.
------, 2007. 『어린 왕자』. 에버그린북스02. 전성자 옮김. 서울:문예출판사.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