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책/소설

토속어의 유화油畵: 이문구『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엔디 2003. 5. 21. 05:27
낮이고 밤이고 혼자였던 시절, 외로움이든 무엇이든 밀려오면 소설을 읽었었다. 으례 소설은 읽히는 것으로 여겼었고, 그 예외라면 스토리 위주가 아닌 『낯선 시간 속으로』정도를 들었다.

이문구의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는 스토리 위주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스토리가 상당히 살아있는 단편집인데도 나를 오래도록 붙들고 놓아주질 않았다. 책 뒷표지를 보았다. "여기에서 말은 이미 말 이상이다." 말이 말보다 윗길에 있다면 그의 소설이 시詩라는 말이 된다. 이문구는 시를 썼던가.

책을 다 읽고 나서의 자답自答은 '그렇다'였다. 그가 충청지방의 토속어로 소설을 썼다, 고 대체로 말하겠지만 사실은 그가 충청지방의 토속어를 썼더니 그것이 소설이 되었다고 하는 게 더 옳을지도 모를 정도로 그의 소설은 말과 동화되어있다. '내용과 형식'이라는 상투적인 낱말을 빌려 설명하자면, '그의 소설의 내용은 바로 그 형식'이라는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가령 "성님이사 워디가 워떠시간 그류, 아녈 말루 우루과이라운드라구 해두 좋구 새 신미앵요라고 해두 좋구, 좌우간 핑계 하나 딱 부러지는 짐에 그 지긋지긋한 늠의 지게공학과 좀 졸업해번지구 남은 여생일랑 여벌처럼 사시면 구만이신디."에서 충청도 사투리를 빼면 "형님이 어디가 어떠셔서 그러세요? 우루과이 라운드든 새 신미양요든 이 참에 농사 그만 두시고 여생은 여벌처럼 사세요."가 되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 충청도 사투리를 빼면 남는 것은 백지가 남는다. 내가 엉터리로 옮긴 표준어표기와 원문을 대조해 읽어보라. 표준어표기에 '내용'이라는 것이 담겨있는가를.

요컨대, 이문구의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에서의 토속어는 그것 자체가 하나의 화구畵具인 것이다.

또, 이 책은 대체로 '나무 연작'을 싣고, 「더더대를 찾아서」를 덧붙인 형태이다. 여기 나무는 한 눈에 알 수 있듯이 모두 쓸모없는 나무이다. 장자의 「材之患」은 무용無用의 용用을 말하고 있다. 장자의 어감과는 좀 다르더라도 무용한 듯 무용하지 않은 소중한 개개의 나무들을 이문구는 하나씩 하나씩 형상화하고 있으며, 그 형상화된 개개의 나무들은 모두 토속어이다.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 왔다
이문구 지음/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