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어릿광대의견해

빨간 사과의 진실과 구라

엔디 2010. 3. 15. 03:00

IMF 위기를 조금씩 극복해나가던 2001년 한 카드사의 신년 광고는 어느 여배우를 등장시켜 아주 단순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여러분, 부자되세요. 꼭이요." 무차별 카드 발급의 여파로 신용불량자가 매해 증가하던 시절이었다. 광고는 대박을 쳤다. 카드사의 이미지도, 배우의 이미지도 덩달아 올라갔다. 카드사로서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지점을 정확히 공략한 셈이었다.

소비자들은 모두 부자가 되기를 원했다. 적어도 그런 말이라도 듣기를 바랐다. "부자되세요."

그래서…… 그때부터였던 듯하다, 친한 사람들끼리 발랄하게 "새해 복 많이 받아" 대신 "새해 돈 많이 받아" 하고 인사를 주고 받았던 것은. 그 말은 묘하게도 위악爲惡스러운 매력이 있었고, 또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는 그런 욕심이 있었으므로 '진실'한 말이기도 했다.

은밀한 내면의 욕구를 드러내는 데 점점 사람들은 망설이지 않았고, 또 그런 태도를 상찬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전 사회가 동참한 '조용한 혁명'이었다.

진실과 구라#

개그맨 김구라가 지상파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어쨌든 황봉알 등과 함께 인터넷 방송에서 '막말'을 일삼던 김구라는 본래 지상파에 어울리지 않던 인물이다. 지상파 방송사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지만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김구라는, 욕설과 비방 등 거의 무한정의 자유가 가능했던 인터넷 방송에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인기를 끌었다.

그는 지상파에 나와서도 (표현의 수위는 다소 낮췄지만) 이 당시의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돈과 여자를 밝히고, 뭐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럭' 하고 화를 낸다. 상대방에게 면박을 주거나 인신공격 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이를 그의 매력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김구라와 대비되는 인물로는 최진실이 떠오른다. 최진실은 1988년에 데뷔했고, 한 전자회사의 광고를 통해 폭발적인 대중의 인기를 얻는다. 그것은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부르주아 가정의 화목함을 강조한 카피 덕분이었다. 고종석(2009, 23)은 한국일보에 연재한 '여자들' 연작의 두번째 글 최진실-21세기의 제망매(祭亡妹)에서 그 모습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최진실은, 다른 자살자들과 달리, 내 가족이었다. 내 안쓰러운 누이였다. 그녀는 '만인의 연인'이었다기보다 '만인의 누이'였다.

최진실의 첫 메인 모델 작품인 VTR 광고가 떠오른다. 남편이 퇴근해 돌아오자마자 아내에게 축구경기를 녹화해놓았느냐 묻자, 아내가 살짝 토라져 "나보다 축구가 더 좋다는 거죠?" 라고 항변한다. 남편은 쩔쩔매며 사과하고, 시청자를 향해 아내가 득의양양한 얼굴로 말한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

그 광고 속의 최진실은 단번에 대중을 사로잡았다. 파릇한 나이의 그녀가 행복에 겨워하며 상큼하고 야무진 새댁 역할을 하는 그 광고 덕분에, 그 전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최진실은 웬만한 TV드라마 주인공 못지않은 대중 스타가 됐다.

그러나 최진실은 생애의 마지막까지 그 '부르주아 가정의 화목함'이라는 잣대 때문에 심한 마음고생을 겪게 된다.

남편과의 불화와 폭력, 이혼 후 자녀의 성본(姓本)변경 등으로 이목을 끌었고 사망 후 최근까지도 생전에 광고 모델로 활동했던 한 건설회사의 손해배상 청구가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져 2억원을 배상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화목한 가정 생활을 보여줘 아파트 광고에 적합한 이미지를 유지했어야 하는데, 거꾸로 가정 불화로 멍든 얼굴과 충돌현장을 공개해 품위 유지 약정을 위반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그러므로 어쩌면 고종석(2009, 24)의 이어지는 이 말을 우리는 일정 부분 긍정하게 된다:

화장품회사 사장이든 전자제품회사 회장이든 아파트 건설업자이든, 최진실과 광고로 이어졌던 자본가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를 상품미학의 한 톱니바퀴로 만든 이 자본주의체제를 나는 어쩔 수 없이 지지한다.

그것이 인간의 비천한 심성에 가장 들어맞는 체제이므로. 나는 최진실이 나온 드라마나 영화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흔히 과장된 비장함이나 비윤리적 희극성, 비현실성에 감염돼 있었다. 그러나 그 영화들과 드라마들에 나온 최진실이라는 누이를 나는 은근히 좋아했다.

김구라가 '진실'을 폭로하는 방식으로 연예 활동을 하고, 최진실은 '구라' 곧 화목한 가정의 환상을 유포함으로써 인기를 유지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컬하다.

최진실은, 그러니까 '구라'와 환상은 이제 이 땅에 없다. 김구라의 '진실'은 여전히 살아남았고. 그러나 김구라의 '진실'은 과연 진실일까.

'솔까말'의 폭력성: '진실'은 진실인가#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박권일은 주간지 『시사인』에 실은 「끔찍하다, 그 솔직함」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누리꾼들의 은어인 '솔까말'을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솔까말'은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의 준말로 거짓과 위선을 폭로하는 통쾌함을 주지만, 반대로 솔직함 속에서 돈과 권력을 욕망하는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는 폭력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는 이 말이 속마음--그의 표현대로라면 혼네本音--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솔까말'의 폭력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과거 '병신'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을 '장애인'으로 바꿔 부르는 것은, 그들이 진짜 '병신'인데 그걸 그대로 드러내면 예의 없는 표현이라 '장애인'이라는 대체 수단을 마련한 것이 아니다. 장애인은 '병신'이 아니라 단지 신체 어느 부분이 불편한 구석이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여기에 '솔까말'을 대입하면 "솔까말 그게 '병신'이지"가 된다. 이런 것이 진짜 '솔까말'의 폭력성이다.

즉, '솔까말'은 상대방이 어떤 진실을 믿든지, 그것은 위선일 뿐이라고 지적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다. "솔까말 돈이 최고지, 솔까말 SKY대학이 최고지, 솔까말 삼성 없으면 대한민국 굶어죽지…." 이 같은 말들은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라는 허울 속에, 사회의 잘못된 구조를 더욱 고착화시킨다. 돈이 최고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도, SKY대학이 최고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도, 삼성이 없어도 대한민국이 굶어죽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 말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열심히 늘어놓아야 하지만 대체로 소용이 없다. '솔까말'은 어떤 근거를 들어 하는 언사가 아니고, 단지 자신의 '믿음'만을 드러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나가보자면, 누군가 "솔까말 돈이 최고지"라고 말하면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던 듣는이는 문득 자신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솔까말'은 구체적인 근거가 없이 단지 세상에 횡행하는 '속설'을 기초로 한 말이기 때문에, 이 성찰은 겉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부 순수한 사람들은 자신을 혐오하거나 세계를 비관하게 될 수도 있다. '솔까말'은 이렇게 세계를 긍정했던 사람들을 쓰러뜨린다.

'솔까말'은 솔직하게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속설'을 드러낼 뿐이다.

자본주의의 신, 자본주의의 탄생#

공영방송 KBS는 최근 「공부의 신」이라는 드라마에 이어 「부자의 탄생」을 방송하고 있다. 이들 드라마는 공영방송이 어떻게 '솔까말' 식의 '진실'을 전파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지 상세하게 보여줬다.

시청률 면에서 동시간대 최고를 기록했던 「공부의 신」은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국립 천하대' 출신이며, 이런 세상을 고치려면 '천하대'에 가라고 외친다. 천하대는 한국인들에게 '최고 대학'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국립 서울대'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주연 배우인 김수로는 인터뷰에서 '서울대'라는 명칭을 방송에서 쓰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서울대'라는 명칭을 그대로 못 쓰고 '천하대'라는 가상의 대학을 상정해서 제작한다"면서 "그러고 보니 시청자들에게 내용이 다가가는 데 어려움이 많고, 촬영 현장에서도 '서울대'라고 했다가 '천하대'로 고치는 등 NG도 많이 난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천하대가 최고대학이라는 어떤 근거도 드라마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냥 모두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천하대'에 가서 어느 선생님께 무엇을 배우고 싶다는 목표도 없다. 심지어 결말에서는 천하대에 합격하고도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 등장인물도 나온다.

'부자의 탄생'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는 '역시 돈이 최고'라는 사회적 인식의 병폐, 곧 '속설'을 강화한다.

재벌과의 '원나이트스탠드'로 태어난 주인공이 성공해 재벌 아버지를 찾는다는 줄거리는, 일종의 '핏줄결정론'을 형성하며 한국 재벌가에 만연한 불법·편법 경영권승계를 정당화할 우려도 있다.

"KBS가 이상의 실현과 올바른 가치관의 확립이라는 건강한 사회관 대신 '천하대'와 '돈'이라는, 현물화된 욕망의 정점만을 추구하는 현대극을 기획하고 있다는데 큰 우려를 표하고 싶다"는 KBS 시청자위원회 보고서도 나올 정도다.

자본주의의 선악과#

글머리에 언급했던 카드사는 '빨간 사과'를 기업 이미지로 쓰고 있다. 이에 걸맞게도 그 카드사는 광고 한 편으로 한국 사회 전체가 자본주의의 선악과 열매를 따먹도록 한 셈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눈이 밝아져' 선과 악, '진실'과 '구라'를 알게 됐다. 그러므로 이를테면 '부자되세요'는 자본주의적 원죄原罪다. 순수한 사람도 닳고닳은 사람도 이 원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극단적인 자본주의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무엇을 찾을 수는 없을까. '눈이 밝아져' 이 원죄를 받아들이게 됐다면, 스스로 우리 눈을 어둡게 하면 어떨까.

그것은 어머니가 내게 사과를 사오라고 돈을 주셨을 때의 일이었다. 어머니는 1그로센짜리 은화를 주셨다. 그런데 사과 값은 6페니히밖에 되지 않았다. 가게 주인 여자한테 1그로센짜리 은화를 내주자, 여인은 내가 보기에 아주 우울한 표정으로 오늘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팔지 못했기 때문에 거스름돈이 한푼도 없노라 말했다. 그리고는 1그로센어치를 모두 사가길 원하는 것이었다. 그때 6페니히짜리 동전이 내 주머니에 있다는 생각이 언뜻 떠올랐다. 그것이면 지금의 곤란한 문제가 풀릴 거라는 생각에 기뻐하면서 그것을 부인에게 내주며 말했었다.

"이제 이걸로 나한테 6페니히를 거슬러 줄 수 있잖아요?"

하지만 그녀는 내 뜻을 영 알아채지 못하고는 1그로센짜리 은화를 내게 되돌려 주고 6페니히짜리 동전을 받아 넣었던 것이다.

막스 뮐러(1987, 34)가 언급한 이 대목은 내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어린이가 얼마나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나 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의 뮐러에게는 '돈'보다 중요한 것이 아주 많았다. 무언가 곤란한 일이 자신의 도움으로 풀릴 수 있다면 자신의 돈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다. 번역자인 차경아는 이 모습을 들어 그를 '귀여운 공산주의자'(143)라고 부르는데, 어린 뮐러가 커 가면서 '솔까말'이라는 자본주의 선악과를 따먹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이 책에서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눈이 밝은 것이 아닐까.

참고문헌#

고종석. 2009. 『고종석의 여자들』. 서울:개마고원.
Max Müller. 1987. 『독일인의 사랑』. 신역판. 차경아 옮김. 서울:문예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