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허 선생의『문장강화』는 '文章强化'가 아니라 '文章講話'다. 초판(1940)으로 치면 63년, 증정판增訂版(1947)으로 쳐도
50년은 족히 넘게 오래된 이 책을 다시 읽은 이유는 여러 미디어에서 꽤나 칭찬을 해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기에라도 남겨두는
이유는 충분히 그 칭찬에 값하는 것 같이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에 대한 칭찬은 해제를 쓴 임형택 교수가 다 한 셈이니, 무엇보다 이 책은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보여주는 글인 것이다. 부록의 예문 색인만 네 쪽이 되니 그것은 수치로도 증명되지만 어느 쪽이고 책을 펼쳐봐도 예문이 없는 장면은 볼 수 없다시피 하다. 어느 곳은 아주 예문이 왼쪽-오른쪽 두 쪽을 꽉 채우고 있기도 하다. 임 교수는 "예문의 풍부함은 신문학 20년이 도달한 우수한 성과를 집결해놓았다 할 것이다."(4쪽)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이 하나도 과장이 아니게 생각된다. 알게모르게, 아니 전연 모르면서 근대문학을 아래로 보았던 내게 반성의 기미가 보일 듯도 하다.
이태준은 또한 당시에 이미 언어예술로의 문학에 대해 상당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책이라고는 '책'보다 '冊'자가 더 책 같다."(224쪽)는 부분은 흔히 한자어의 장점으로 꼽히는 함축이나 축약의 쉬움에다 중요한 한 가지 점을 더하고 있다.
내친 김에 기림의『문장론신강文章論新講』도 읽었다. 88년에 심설당에서 아마 초판을 내고 말은 것 같은 기림 전집의 넷째 권이다. 본래는 50년 4월에 낸 글이라, 잠시 멈칫했다. 전쟁 직전에 문장론을 쓰다니.
이태준의 『문장강화』가 '보여주기'식의 글이라면 기림의 『문장론신강』은 설명하기 식이다. 서양 문학과 철학에 상당한 조예가 있은 기림은 아리스토텔레스, 리처즈, 소쉬르, 가디너 등을 인용하며 거의 일반언어학 수준의 '이론편'과 역시 외국 이론의 수입이 많고, 실무에 닿아있긴 하지만 상허에 비하면 거의 없다시피한 실용성을 지닌 '실천편'을 두고 있었다. '문장론'이라는 제목으로는 꽤나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부록으로 실린 「새 문체文體의 갈 길」, 「새 말 만들기」, 「한자어漢字語의 실상」 이 세 편의 글은 '한글오로지쓰기'와 관련해 중요한 부분들이 들어있었다. 그것은 번잡한 대로 이태준의 한자어에 대한 입장과도 함께 읽으면 좋을 글인 것 같다.
이태준은 김두봉 선생의『말본』머리말에서
와 같은 책 본문의
을 문제삼으며 "무슨 암호로 쓴 것 같이 보통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26쪽)고 적고 있다.
그는 또 염상섭의 단편 「전화」와 「제야除夜」의 일부를 각각 인용하여 순우리말 중심인 「전화」를 "성의일원적聲意一元的"인 문장이라 하고 한자어가 많이 섞인 「제야」를 "성의이원적聲意二元的"인 문장이라 지칭하면서, 묘사에는 앞의 것이 좋고 학문이나 논설, 이론에는 뒤의 것이 낫다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그도 황진이의 유명한 「동지달 기나긴 밤을-」의 "서리서리"와 "굽이굽이"를 각각 "곡곡曲曲"과 "절절折折"로 신자하가 옮겼다는 데 가서는 "능역能譯"이긴 하지만 "'서리서리' '굽이굽이'의 말맛을 도저히 따르지 못하는 것"(63쪽, 강조 인용자)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반면 기림은 기본적으로 '한글 오로지 쓰기'에 상당히 가까운 면을 보이면서도 이른바 '순수주의'에는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어떤 한자어는 아주 "사생아私生兒"라고 부르고 있기도 하면서, 어떤 고유어는 한자어보다 더 어려운 고유어라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 당시를 기준으로 하였으니 지금에 와서는 조금 우스운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생물生物'이나 '무생물無生物'을 '산것' '안산것'이라고 고친 것은 "어린이들에게 쉬운 말로부터 가르치려는 좋은 의도가 보"(203쪽)인다고 하고 '암염岩鹽'을 "거의 우리가 쓰지 않는 일본말 한자어"(204쪽)라고 일컬으며 '돌소금'으로 옮겨놓은 것을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적고 있다. 또 '변성암變成岩'을 '변해 된 바위'라 하고 '火成岩'을 '불에 덴 바위'라고 한 것은 시일이 지나면 순우리말이 한자어를 물리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상사형相似形'을 '닮은꼴'로 바꾸는 것이나 '대각선對角線'을 '맞모금'으로, '반경半徑'을 '반지름'으로 바꾸는 것을 두고는 "우리는 과연 새말을 낡은 한자어보다 더 변호할 정열을 느끼게 될까."(205쪽)라고 묻고 있다.
게다가 '파충류爬蟲類'를 '길동물'로 '포유동물哺乳動物'을 '젖빨이 동물'로 옮기는 데는 동의하면서 '양서류兩棲類'를 '물뭍동물'이라고 멋지게 옮긴 것에는 반대하고 있다.
어쨌든 '우리말 오로지 쓰기'와 '국한문병용론'을 포함하여 두 문장론 책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은 바로 문체론이다. 어문일치語文一致 혹은 언문일치言文一致를 모든 글의 중심으로 하고 딛고 일어설 든든한 반석으로 여기는 것에서는 당대의 문장가들의 무거운 역할들이 눈앞에 보이는 것이다. 특히 이태준은 책의 앞부분에서
라고 하다가도 책의 마지막에 가서는
라고 쓰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물론 기림도 뷔퐁Buffon의 "글은 사람이다Le style est l'homme même."(80쪽, 277쪽)를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사실 이 책에 대한 칭찬은 해제를 쓴 임형택 교수가 다 한 셈이니, 무엇보다 이 책은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보여주는 글인 것이다. 부록의 예문 색인만 네 쪽이 되니 그것은 수치로도 증명되지만 어느 쪽이고 책을 펼쳐봐도 예문이 없는 장면은 볼 수 없다시피 하다. 어느 곳은 아주 예문이 왼쪽-오른쪽 두 쪽을 꽉 채우고 있기도 하다. 임 교수는 "예문의 풍부함은 신문학 20년이 도달한 우수한 성과를 집결해놓았다 할 것이다."(4쪽)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이 하나도 과장이 아니게 생각된다. 알게모르게, 아니 전연 모르면서 근대문학을 아래로 보았던 내게 반성의 기미가 보일 듯도 하다.
이태준은 또한 당시에 이미 언어예술로의 문학에 대해 상당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책이라고는 '책'보다 '冊'자가 더 책 같다."(224쪽)는 부분은 흔히 한자어의 장점으로 꼽히는 함축이나 축약의 쉬움에다 중요한 한 가지 점을 더하고 있다.
내친 김에 기림의『문장론신강文章論新講』도 읽었다. 88년에 심설당에서 아마 초판을 내고 말은 것 같은 기림 전집의 넷째 권이다. 본래는 50년 4월에 낸 글이라, 잠시 멈칫했다. 전쟁 직전에 문장론을 쓰다니.
이태준의 『문장강화』가 '보여주기'식의 글이라면 기림의 『문장론신강』은 설명하기 식이다. 서양 문학과 철학에 상당한 조예가 있은 기림은 아리스토텔레스, 리처즈, 소쉬르, 가디너 등을 인용하며 거의 일반언어학 수준의 '이론편'과 역시 외국 이론의 수입이 많고, 실무에 닿아있긴 하지만 상허에 비하면 거의 없다시피한 실용성을 지닌 '실천편'을 두고 있었다. '문장론'이라는 제목으로는 꽤나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부록으로 실린 「새 문체文體의 갈 길」, 「새 말 만들기」, 「한자어漢字語의 실상」 이 세 편의 글은 '한글오로지쓰기'와 관련해 중요한 부분들이 들어있었다. 그것은 번잡한 대로 이태준의 한자어에 대한 입장과도 함께 읽으면 좋을 글인 것 같다.
이태준은 김두봉 선생의『말본』머리말에서
길이 없기어든 가지야 못하리요마는 그 말미암을 땅이 어데며 본이 없기어든 말이야 못하리요마는, 그 말미암을 바가 무엇이뇨. 이러므로 감에는 반드시 길이 있고, 말에는 반드시 본이 있게 되는 것이로다.
와 같은 책 본문의
쓰임
ㅏ, 몸은 다른 씨 위에 쓰일 때가 있어도 뜻은 반드시 그 아래 어느 씀씨에만 매임
ㅓ, 짓골억과 빛갈억은 흔히 풀이로도 쓰임
을 문제삼으며 "무슨 암호로 쓴 것 같이 보통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26쪽)고 적고 있다.
그는 또 염상섭의 단편 「전화」와 「제야除夜」의 일부를 각각 인용하여 순우리말 중심인 「전화」를 "성의일원적聲意一元的"인 문장이라 하고 한자어가 많이 섞인 「제야」를 "성의이원적聲意二元的"인 문장이라 지칭하면서, 묘사에는 앞의 것이 좋고 학문이나 논설, 이론에는 뒤의 것이 낫다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그도 황진이의 유명한 「동지달 기나긴 밤을-」의 "서리서리"와 "굽이굽이"를 각각 "곡곡曲曲"과 "절절折折"로 신자하가 옮겼다는 데 가서는 "능역能譯"이긴 하지만 "'서리서리' '굽이굽이'의 말맛을 도저히 따르지 못하는 것"(63쪽, 강조 인용자)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반면 기림은 기본적으로 '한글 오로지 쓰기'에 상당히 가까운 면을 보이면서도 이른바 '순수주의'에는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어떤 한자어는 아주 "사생아私生兒"라고 부르고 있기도 하면서, 어떤 고유어는 한자어보다 더 어려운 고유어라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 당시를 기준으로 하였으니 지금에 와서는 조금 우스운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생물生物'이나 '무생물無生物'을 '산것' '안산것'이라고 고친 것은 "어린이들에게 쉬운 말로부터 가르치려는 좋은 의도가 보"(203쪽)인다고 하고 '암염岩鹽'을 "거의 우리가 쓰지 않는 일본말 한자어"(204쪽)라고 일컬으며 '돌소금'으로 옮겨놓은 것을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적고 있다. 또 '변성암變成岩'을 '변해 된 바위'라 하고 '火成岩'을 '불에 덴 바위'라고 한 것은 시일이 지나면 순우리말이 한자어를 물리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상사형相似形'을 '닮은꼴'로 바꾸는 것이나 '대각선對角線'을 '맞모금'으로, '반경半徑'을 '반지름'으로 바꾸는 것을 두고는 "우리는 과연 새말을 낡은 한자어보다 더 변호할 정열을 느끼게 될까."(205쪽)라고 묻고 있다.
게다가 '파충류爬蟲類'를 '길동물'로 '포유동물哺乳動物'을 '젖빨이 동물'로 옮기는 데는 동의하면서 '양서류兩棲類'를 '물뭍동물'이라고 멋지게 옮긴 것에는 반대하고 있다.
어쨌든 '우리말 오로지 쓰기'와 '국한문병용론'을 포함하여 두 문장론 책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은 바로 문체론이다. 어문일치語文一致 혹은 언문일치言文一致를 모든 글의 중심으로 하고 딛고 일어설 든든한 반석으로 여기는 것에서는 당대의 문장가들의 무거운 역할들이 눈앞에 보이는 것이다. 특히 이태준은 책의 앞부분에서
"벌써 진달래가 피었구나!"를 지껄이면 말이요 써놓으면 글이다. 본 대로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하듯이, 본 대로 생각나는 대로 문자로 쓰면 곧 글이다. (12쪽)
라고 하다가도 책의 마지막에 가서는
언문일치의 문장은 틀림없이 모체문장, 기초문장이다. 민중의 문장이다. 앞으로 어떤 새 문체가 나타나든, 다 이 밭에서 피는 꽃일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언문일치 문장은 민중의 문장이다. 개인의 문장, 즉 스타일은 아니다. 개성의 문장일 수는 없다. 언문일치 그대로는 이 앞으로는 예술가의 문장이기 어려울 것이다. (296쪽)
라고 쓰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물론 기림도 뷔퐁Buffon의 "글은 사람이다Le style est l'homme même."(80쪽, 277쪽)를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도 하다.
문장강화 이태준 지음, 임형택 해제/창비(창작과비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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