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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와 진실: Sontag『은유로서의 질병』

엔디 2004. 2. 13. 22:31
신비주의와의 싸움은 지금의 현실에서 소중하다. 이 시대에도 아직 신비주의가 횡행하고 있는 탓이다. 지금 우리가 가진 신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를테면 '죽음'이 있다. 어느 시인을 두고, 그의 죽음이 그의 시를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이나 그가 스스로의 죽음을 시에서 예견했다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신비주의다. 그런 식의 신비주의는 문학을 정치하게 보려는 노력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그러하므로 그것은 올바른 문학이론이나 문학비평이 될 수 없다. 그것은 현대비평이 혐오해마지 않는 실증주의와 인상주의의 단점만을 수용한 최악의 읽기다.

수잔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은 질병이 가지고 있는 신비주의를 하나하나 검토해본 책이다. 친인척들을 병으로 잃은, 그리고 스스로도 유방암을 비롯한 여러 병들을 겪은 저자는 '병은 고쳐야할 그 무엇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특히 결핵과 암과 관련된 문학작품에 대해서 저자는 깊숙이 고찰하고 있는데, 그 대상이 문학작품이라는 점은 주목에 값한다. 저자에게 있어서 문학은 신성한 어떤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병에 대한 오해만 증폭시켜온 기제일 뿐이다.

실제로, 문학은 오래 전부터 사실과는 구별되는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왔다. 때문에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왼손잡이가 유전되는 것으로 설정된 과학적 오류라든가, 블레이크가 「갓난이의 기쁨」에서 난 지 이틀밖에 안 된 아이가 미소짓는 것을 묘사한 것이라든가, 윌리엄 골딩이 『파리대왕』에서 근시 안경으로 불을 피우도록 한 것은 전체적인 진실과 대비해서 지극히 사소한 거짓이라 그다지 중요한 사항으로는 여기지 않는 것이 보통인 것이다(유종호 1994, 48-51). 하지만 위의 예들에서는 확실히 그것이 옳다고 말할 수 있다 할지라도, 손택의 여러 예들을 우리가 쉽게 멀리 물리칠 수 있을지는 생각해보아야할 일이다.

이를테면, 카프카가 자신의 결핵을 두고 '정신의 병이 넘친 것'으로 받아들인 것을 보자. 카프카의 이런 생각은 지극히 신비주의적이다. 결핵은 결핵일 뿐이지, 문학을 위한 선물도 기제도 아니다. 그에게 결핵이 없었다면 그의 문학은 훨씬 치졸했을 것이라는 인식도 마찬가지로 신비주의다. 카프카의 질병이 그의 문학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그것은 질병 그 자체가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카프카가 그것을 '정신의 병이 넘친 것'으로 은유화시켰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는 가장 아름다운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탄생시킬 수 있었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결국 자신을 치료할 수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문학의 본질적인 목적과 같은 것과 만나게 된다. 예술은 본래 치료를 위한 행위였던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아름다운 작품이라 해도 그것이 인간의 치료의지를 박탈하고 그것을 신비적인 것이나 숙명으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진실에 반反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이 과연 진정한 아름다움일까, 하는 점을 깊이 숙고하게 한다.

물론, 이런 이분법적 사고로는 카프카의 문학에 대한 일면적인 평가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카프카의 문학이 일관되게 가지고 있는 질병의 모티프와 그 은유가 사실은 어디에 기대고 있는지를 아는 일은 오히려 그의 떽스뜨texte를 다양하게 볼 수 있기 위한 원동력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를 평가해주어야 할 것이다.

* 유종호(1994),『문학이란 무엇인가』개정판, 민음사.


은유로서의 질병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이후(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