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년 유종호가 보기에 한국 문학의 가장 큰 문제는 전통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결여의 인식은 단절의 인식에서 온다: "초서로부터 딜런 토머스까지의 앤솔로지에는 「청산별곡」에서 「청록집」까지의 앤솔로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적어도 근본적인 의미의 단절은 없다."(20쪽) 외적인 단절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청록집」의 시인들이 「청산별곡」을 전통으로 보지 않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화전민이 하듯이 전통이라는 새로운 밭을 일구어 나간다.
유종호가 일구려는 화전火田은, 의욕적인 그의 데뷔작에서부터 드러난다. 주로 저쪽의 문학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언어에 대한 자의식의 유곡幽谷"(157쪽)을 살펴본 뒤 그는 그 유곡이 "전통의 문제까지도"(158쪽) 포괄하는 근본적인 문제라고 선언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사조나 발표지를 중심으로 문학을 판단하던 선대의 비평가 그룹에서 벗어나 문학성을 판단하는 비평으로 직진할 수 있었다. 그가 전통의 결여를 뼈아프게 인식했던 이유는 그것이 우리 문학인들에게 "괴로운 자유"(21쪽)를 부과했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처음부터 백지에서 출발함으로써 말라르메와는 다른 의미의 백지의 공포"를 느끼게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전통의 압력의 부재가 누구나 손쉽게 시를 쓸 수 있다는 무모성을 낳게 했"기 때문이다(22쪽).
5,60년대라고 전통 논의가 없었을 리 없다. 모르긴 몰라도, 서기보다도 단기를 애용했던 당시의 전통 논의는 오히려 더 뜨겁고 열정적이었을 것이다. 일례로 『한국문학사』(1949)를 쓴 조윤제는 그 서문에서 "실로 감개무량한 일이다. 나는 국문학사 강의의 첫 시간을 마치고 내 연구실로 들어가 뜨거운 눈물이 방울방울 내 옷깃에 떨어지고 있는 것을 뒤에 알았다"는 류의 애국애족의 센티멘틀리즘을 선보이면서, 그 센티멘틀을 "국문학사의 사명은 […] 그것이 현대국문학을 위함"이라는 전통-명제로 귀결시키고 있다. 그러나 유종호가 보기에 그런 전통론은 "명확한 개념규정 없이"(244쪽) 함부로 쓰여진 것이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1960년대의 문학의 과제가 소박한 전통개념의 수정과 이에 따른 시야의 확장에 있어야 한다고 믿고 싶다"(245쪽)고 고백한다. 그 수정과 확장은, 짐작 가능하듯이, 언어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한국어의 특색은 토착어와 (일산日産)한자어가 뚜렷이 구분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토착어가 그리는 전근대적 세계와 한자어가 그리는 근대적 모습 역시 뚜렷이 구분된다. 토착어가 가지는 심미적인 특색은 그가 계속해서 강조해오고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는 이를 두고 "손쉬운 토착어의 조직과 세련은 결국 토착어의 전근대적 인간상의 형상에만 안주하게 될 위험성이 많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현대 한국의 진면목을 일실하고 일면적인 한국만을 고집하는 보수에의 길로만 일편단심 걸어가게 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오히려 그는 한국 문학의 가능성을 한자어에서 보았던 것 같다: "우리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은 토착어의 자리를 대치하여 가고 있는 생경한 언어군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형상해 가느냐는 점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송욱의 「하여지향何如之鄕」에 대한 그의 평가는 이와 같은 추론 과정에서 얻어진다. 「하여지향」이 주로 한자어를 통해서 씌어진 것을 두고 "우리말의 성격을 암시하는 중요한 사실"(71쪽)이라고 설명하는 그는 「하여지향」 속에서 엘리엇이 말한 '일상생활의 산문'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가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 시의 끈, 시의 존재이유raison d'être는 음악성이다: "그는 시의 음악성으로 산문에의 전락을 예방하고 있습니다."(64쪽) "김구용 씨에게서 보게 되는 산문에의 절대적인 굴종은 시의 영토를 확대해 보자는 의욕이 결국은 시 자체를 부정해 버리고 만 전형적인 예다."(309쪽) 그런 점에서 유종호는 시와 산문의 경계의 흩뜨림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그 사이의 경계를 더욱 분명히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언어의 자의식을 매개로 한 전통론의 하나가 되어있다.
유종호가 시와 산문의 경계로 언급한 음악성의 정체는 「산문정신고」에서 드러나 있다: "운율이나 리듬을 위해서 때로 현실의 사실의 왜곡이나 기피나 방기적放棄的 생략을 불사하는 정신, 바로 여기에 우리가 시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의 요체가 있다. 정말의 산문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이를테면 현실 관찰의 내용이나 그 전달의 충실을 위해서 운율이나 리듬을 희생시키는 정신을 말한다. 아니 처음부터 운율을 개의치 않는 정신을 말한다."(162쪽) 이것은 시 작품이라는 "어떤 고립된 세계의 독자적 질서를 위해서 현실 사실들의 개입을 강력하게 거부"하는 것이 시요, 사회의 "전면적 진실"을 노리는 것이 산문이라는 설명으로(170-171쪽), 나아가서는 사례로 든 황순원의 시적 소설이 우수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산문정신과는 떨어진 것이라는 선언에까지 이어진다(174-175쪽).
그가 세우려는 전통의 윤곽은 여기서 좀더 분명해진다. 그가 바라는 전통이란, 시와 산문이 '음악성'이라는 기준을 사이에 두고 각자의 정도를 지키면서 균형을 잡아가는 모습이다. 그것은 당시의 "시단에는 시도 산문도 될 수 없는 문자의 집단이 너무나 많이 범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구용의 실험이 갖는 의미에 공감하면서도 그것을 문제삼고, 김승옥의 소설을 상찬하다가도 마지막에서 우려를 표명하고, 서정인의 소설을 상찬하다가도 마지막에서 걱정의 한두 마디를 삽입하는 것이다.
2
청년 유종호의 또다른 빛나는 부분은 그의 휴머니즘의 거부에서 드러난다. 「인간 부재―한국 문학에서의 휴머니즘」, 「오열하는 휴머니즘―한 상투 문구에의 의혹」 등의 두 글은 휴머니즘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있고, 「화해의 거부―하근찬」는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휴머니즘으로 경도되지 않은 하근찬을 상찬하는 글로 되어 있다. 물론 여기서의 휴머니즘은 도식적이고 편견적인 휴머니즘이다. 그는 한국 문학에서의 휴머니즘은 ① 일편단심 선의의 인간 ② 그 배율背律로서의 악한 ③ '돌아온 탕자'의 셋 가운데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고 설명한다.
편견적이고 도식적인 휴머니즘이 지닌 가장 큰 문제점은 조잡한 "예정조화"(420쪽)에 있다. 모든 갈등과 번민은 다가올 "예정조화"를 위한 장치일 뿐인 것이다. 이것은 사회 속에서 존재하는 문학이 사회의 문제를 진지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거짓으로 잠시 해결해버리려는데서 그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동족방뇨凍足放尿식 해결은 사회의 문제가 기실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 속에 달려 있다는 식으로 쉽게 전이된다. 이 사이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세계관을 우리는 근대 초부터 일찍이 겪어왔던 것이다: "이광수가 똘스또이를 통해서 휴머니즘을 표방한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그의 똘스또이 이해는 어쨌든 '자기의 곤궁상태의 원인이 자기들 자신 속에 있지 않고 외부의 여러 조건 속에 있다는 생각처럼 인간에게 유해한 것은 없다'는 수긍할 수 없는 똘스또이 만년의 명제를 그대로 채용하고 있음은 사실이다."(362쪽)
이것은 특히 지식인들이 갖는 특질이다. 지식인들이 항시 모델로 삼은 것은 일본이나 일본을 통해 본 서구였기 때문에 그들은 서구와 한국(조선)의 "낙차"가 절망적인 낙차로 보인다(366쪽). 여기서 지도자적인 면모를 띠는 사람은 이광수류의 '민족'론자로,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이효석류의 '초속주의'로 떨어진다는 것이다(362쪽). 이 묘한 새것 콤플렉스는 지식인이 마땅히 경계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요지이다.
3
그러나 생각해보자. "동양 최고의 고전의 하나인 『시경』이 민요를 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사관仕官으로 실패한 서생이 전란의 시대에 남긴 단장斷腸의 시편들"(456쪽)을 들어 사르트르류의 시 인식을 거부하고 시와 참여의 문제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비교적 뒤의 입장과 비교해보자. 서구의 문학자들을 계속해서 바라보아 얻어낸 '언어의 자각'이나(「언어의 유곡」), "우리의 당장의 의무는 오히려 저쪽에서 시험이 끝난 것이라 할지라도 한번쯤 완벽의 극치까지 가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247쪽)는 식으로 지각생을 자인하면서 전통을 마련하려는 조바심을 내는 모습은 새것 콤플렉스의 다른 모습이 아닌가. 그렇게 본다면 청년 유종호의 전통 확립의 의욕과 새것 콤플렉스의 경계는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혹은 우리는 그것을 4월 혁명 이후의, 유종호의 변모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휴머니즘에 관한 두 편의 글은 1961-62년에 씌어진 것이고 지식인론과 하근찬론은 모두 둘째 책인 『문학과 현실』에 실린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로 현재까지의 그가 보여주는 완강한 시의 옹호는 그 같은 가설을 세우기 힘들게 하는 측면이 있다.
청년 유종호가 보기에 한국 문학의 가장 큰 문제는 전통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결여의 인식은 단절의 인식에서 온다: "초서로부터 딜런 토머스까지의 앤솔로지에는 「청산별곡」에서 「청록집」까지의 앤솔로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적어도 근본적인 의미의 단절은 없다."(20쪽) 외적인 단절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청록집」의 시인들이 「청산별곡」을 전통으로 보지 않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화전민이 하듯이 전통이라는 새로운 밭을 일구어 나간다.
유종호가 일구려는 화전火田은, 의욕적인 그의 데뷔작에서부터 드러난다. 주로 저쪽의 문학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언어에 대한 자의식의 유곡幽谷"(157쪽)을 살펴본 뒤 그는 그 유곡이 "전통의 문제까지도"(158쪽) 포괄하는 근본적인 문제라고 선언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사조나 발표지를 중심으로 문학을 판단하던 선대의 비평가 그룹에서 벗어나 문학성을 판단하는 비평으로 직진할 수 있었다. 그가 전통의 결여를 뼈아프게 인식했던 이유는 그것이 우리 문학인들에게 "괴로운 자유"(21쪽)를 부과했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처음부터 백지에서 출발함으로써 말라르메와는 다른 의미의 백지의 공포"를 느끼게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전통의 압력의 부재가 누구나 손쉽게 시를 쓸 수 있다는 무모성을 낳게 했"기 때문이다(22쪽).
5,60년대라고 전통 논의가 없었을 리 없다. 모르긴 몰라도, 서기보다도 단기를 애용했던 당시의 전통 논의는 오히려 더 뜨겁고 열정적이었을 것이다. 일례로 『한국문학사』(1949)를 쓴 조윤제는 그 서문에서 "실로 감개무량한 일이다. 나는 국문학사 강의의 첫 시간을 마치고 내 연구실로 들어가 뜨거운 눈물이 방울방울 내 옷깃에 떨어지고 있는 것을 뒤에 알았다"는 류의 애국애족의 센티멘틀리즘을 선보이면서, 그 센티멘틀을 "국문학사의 사명은 […] 그것이 현대국문학을 위함"이라는 전통-명제로 귀결시키고 있다. 그러나 유종호가 보기에 그런 전통론은 "명확한 개념규정 없이"(244쪽) 함부로 쓰여진 것이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1960년대의 문학의 과제가 소박한 전통개념의 수정과 이에 따른 시야의 확장에 있어야 한다고 믿고 싶다"(245쪽)고 고백한다. 그 수정과 확장은, 짐작 가능하듯이, 언어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한국어의 특색은 토착어와 (일산日産)한자어가 뚜렷이 구분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토착어가 그리는 전근대적 세계와 한자어가 그리는 근대적 모습 역시 뚜렷이 구분된다. 토착어가 가지는 심미적인 특색은 그가 계속해서 강조해오고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는 이를 두고 "손쉬운 토착어의 조직과 세련은 결국 토착어의 전근대적 인간상의 형상에만 안주하게 될 위험성이 많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현대 한국의 진면목을 일실하고 일면적인 한국만을 고집하는 보수에의 길로만 일편단심 걸어가게 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오히려 그는 한국 문학의 가능성을 한자어에서 보았던 것 같다: "우리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은 토착어의 자리를 대치하여 가고 있는 생경한 언어군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형상해 가느냐는 점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송욱의 「하여지향何如之鄕」에 대한 그의 평가는 이와 같은 추론 과정에서 얻어진다. 「하여지향」이 주로 한자어를 통해서 씌어진 것을 두고 "우리말의 성격을 암시하는 중요한 사실"(71쪽)이라고 설명하는 그는 「하여지향」 속에서 엘리엇이 말한 '일상생활의 산문'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가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 시의 끈, 시의 존재이유raison d'être는 음악성이다: "그는 시의 음악성으로 산문에의 전락을 예방하고 있습니다."(64쪽) "김구용 씨에게서 보게 되는 산문에의 절대적인 굴종은 시의 영토를 확대해 보자는 의욕이 결국은 시 자체를 부정해 버리고 만 전형적인 예다."(309쪽) 그런 점에서 유종호는 시와 산문의 경계의 흩뜨림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그 사이의 경계를 더욱 분명히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언어의 자의식을 매개로 한 전통론의 하나가 되어있다.
유종호가 시와 산문의 경계로 언급한 음악성의 정체는 「산문정신고」에서 드러나 있다: "운율이나 리듬을 위해서 때로 현실의 사실의 왜곡이나 기피나 방기적放棄的 생략을 불사하는 정신, 바로 여기에 우리가 시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의 요체가 있다. 정말의 산문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이를테면 현실 관찰의 내용이나 그 전달의 충실을 위해서 운율이나 리듬을 희생시키는 정신을 말한다. 아니 처음부터 운율을 개의치 않는 정신을 말한다."(162쪽) 이것은 시 작품이라는 "어떤 고립된 세계의 독자적 질서를 위해서 현실 사실들의 개입을 강력하게 거부"하는 것이 시요, 사회의 "전면적 진실"을 노리는 것이 산문이라는 설명으로(170-171쪽), 나아가서는 사례로 든 황순원의 시적 소설이 우수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산문정신과는 떨어진 것이라는 선언에까지 이어진다(174-175쪽).
그가 세우려는 전통의 윤곽은 여기서 좀더 분명해진다. 그가 바라는 전통이란, 시와 산문이 '음악성'이라는 기준을 사이에 두고 각자의 정도를 지키면서 균형을 잡아가는 모습이다. 그것은 당시의 "시단에는 시도 산문도 될 수 없는 문자의 집단이 너무나 많이 범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구용의 실험이 갖는 의미에 공감하면서도 그것을 문제삼고, 김승옥의 소설을 상찬하다가도 마지막에서 우려를 표명하고, 서정인의 소설을 상찬하다가도 마지막에서 걱정의 한두 마디를 삽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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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유종호의 또다른 빛나는 부분은 그의 휴머니즘의 거부에서 드러난다. 「인간 부재―한국 문학에서의 휴머니즘」, 「오열하는 휴머니즘―한 상투 문구에의 의혹」 등의 두 글은 휴머니즘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있고, 「화해의 거부―하근찬」는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휴머니즘으로 경도되지 않은 하근찬을 상찬하는 글로 되어 있다. 물론 여기서의 휴머니즘은 도식적이고 편견적인 휴머니즘이다. 그는 한국 문학에서의 휴머니즘은 ① 일편단심 선의의 인간 ② 그 배율背律로서의 악한 ③ '돌아온 탕자'의 셋 가운데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고 설명한다.
편견적이고 도식적인 휴머니즘이 지닌 가장 큰 문제점은 조잡한 "예정조화"(420쪽)에 있다. 모든 갈등과 번민은 다가올 "예정조화"를 위한 장치일 뿐인 것이다. 이것은 사회 속에서 존재하는 문학이 사회의 문제를 진지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거짓으로 잠시 해결해버리려는데서 그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동족방뇨凍足放尿식 해결은 사회의 문제가 기실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 속에 달려 있다는 식으로 쉽게 전이된다. 이 사이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세계관을 우리는 근대 초부터 일찍이 겪어왔던 것이다: "이광수가 똘스또이를 통해서 휴머니즘을 표방한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그의 똘스또이 이해는 어쨌든 '자기의 곤궁상태의 원인이 자기들 자신 속에 있지 않고 외부의 여러 조건 속에 있다는 생각처럼 인간에게 유해한 것은 없다'는 수긍할 수 없는 똘스또이 만년의 명제를 그대로 채용하고 있음은 사실이다."(362쪽)
이것은 특히 지식인들이 갖는 특질이다. 지식인들이 항시 모델로 삼은 것은 일본이나 일본을 통해 본 서구였기 때문에 그들은 서구와 한국(조선)의 "낙차"가 절망적인 낙차로 보인다(366쪽). 여기서 지도자적인 면모를 띠는 사람은 이광수류의 '민족'론자로,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이효석류의 '초속주의'로 떨어진다는 것이다(362쪽). 이 묘한 새것 콤플렉스는 지식인이 마땅히 경계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요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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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생각해보자. "동양 최고의 고전의 하나인 『시경』이 민요를 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사관仕官으로 실패한 서생이 전란의 시대에 남긴 단장斷腸의 시편들"(456쪽)을 들어 사르트르류의 시 인식을 거부하고 시와 참여의 문제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비교적 뒤의 입장과 비교해보자. 서구의 문학자들을 계속해서 바라보아 얻어낸 '언어의 자각'이나(「언어의 유곡」), "우리의 당장의 의무는 오히려 저쪽에서 시험이 끝난 것이라 할지라도 한번쯤 완벽의 극치까지 가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247쪽)는 식으로 지각생을 자인하면서 전통을 마련하려는 조바심을 내는 모습은 새것 콤플렉스의 다른 모습이 아닌가. 그렇게 본다면 청년 유종호의 전통 확립의 의욕과 새것 콤플렉스의 경계는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혹은 우리는 그것을 4월 혁명 이후의, 유종호의 변모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휴머니즘에 관한 두 편의 글은 1961-62년에 씌어진 것이고 지식인론과 하근찬론은 모두 둘째 책인 『문학과 현실』에 실린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로 현재까지의 그가 보여주는 완강한 시의 옹호는 그 같은 가설을 세우기 힘들게 하는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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